김규동(1925~2011)


<거지 시인 온다>


철없는 모더니스트 시절

명동에서

내 친구들이

새까만 얼굴의 

천상병이 나타나면

야, 저기 거지 시인 하나 온다라고

우스갯소리 했지요

상대 나왔다는 친구가

뭐 저러냐

너 또 200원 줘라

그러잖아도 너 알아보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빈정댔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때 천상병이를 거지 시인이라 놀려주던 친구들은 다 시인이 못되고

천상병이는 시인으로 남게 되었군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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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상대 출신 시인. 여늬 상대 출신들처럼 회사원 생활도 했다. 그러면서도 시인이었다. 기인이라는 말도 들었다.

1960년대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기인이던 사람이 폐인이 됐다. 

서울 인사동에서 '귀천'이란 찻집을 운영한 아내에게 매일 용돈을 받아썼다. 막걸리 한 병과 담배 한 갑 살 수 있는 정도.

조금씩 남겨서 아내에게 생일 선물도 사줬다고 한다.

김규동의 '거지 시인 온다'는 이 시절의 천상병을 노래한 시다.

충북대 정효구 교수는 '시 읽는 기쁨'이란 저서에서 천상병을 '위대한 폐인'이라고 부른다.

왜 위대하다고 했을까. 천상병의 시 '귀천'를 소개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이 엄청난 탐욕의 시대에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가난을 두려워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가난이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 앞에서 누가 쉽게 초연해질 수 있겠습니까?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까닭은 이 엄청난 공포의 대상을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존재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죽음과의 화해를, 이 시인이 먼저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룩해내었기 때문입니다."


천상병(1930~1993)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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