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학교 동기들과의 송년회를 끝내고 귀가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올해는 부쩍 먹고살기 힘들다는 푸념이 많아졌다. 시골 중학교를 나온 동기들은 5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당시만 해도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 진학률도 높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중학교의 경우 동기 100명 중 2명꼴로 대학에 갔다. 나머지 중 절반은 중학교를 마친 뒤 공장 근로자가 되거나 가게 점원이 되거나 농사를 지었다. 고등학교까지 나온 동기들도 비슷한 행로를 밟았다. 대다수가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몇몇은 택시 기사가 됐고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많은 친구들은 1980년대 초중반에 말 그대로 ‘무작정 상경’해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흐름에 올라탔다. 먹고살만하다 싶었는데 그들의 생업전선이 흔들리고 있다. 자녀들 취직과 결혼 문제도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A는 올 들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끝에 직원을 내보내고 부인이 나와서 함께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A는 청춘을 바쳐 근무했던 공장이 문을 닫은 뒤 인근에 식당을 열었다. 직장에서 구조조정된 후 택시를 몰고 있는 B는 카카오택시가 도입되면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A와 B의 연소득은 4000만원 안팎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C는 정부가 비축미를 공매 방출해 쌀값을 떨어뜨리려 한다면서 핏대를 올렸다. 자기 논과 빌린 논을 더해 60마지기(1만2000평)에서 논농사를 하고 있는 C는 직불금까지 포함해 연소득이 30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푸념했다. C는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벼를 추수한 뒤에 보리를 심어서 2모작을 하고 있다. 

우리 동기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 속에서 누구는 기회를 잡았고 누구는 어려움에 처했다. 세계 경제의 변화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파고였다. 세계는 이제 저성장이 정상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이 일반적 현상이 됐다는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다. 우리 중에 누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동유럽국가들이 전 세계에 공산품을 쏟아낼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B와 C는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된 중국의 저가 공산품과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직장을 잃거나 어려움에 처했다. A를 비롯한 수많은 50대가 제조업에서 밀려난 뒤 자영업자로 변신했다. 2017년 말 기준 자영업자는 568만명이다. 전체 취업자의 2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2%를 훨씬 웃돌 정도로 과포화 상태다. 그래도 A는 버텨보겠다고 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기 전에 수많은 A들을 만나 그들의 생존조건을 면밀히 조사해 본 적이 있는가. 동기들 입에서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대통령을 비판하는 얘기를 오랜만에 들어봤다.

베이비 부머 세대인 동기들은 경제성장의 수혜자이면서 기여자였다. 인구 폭발을 불러온 50대들은 다양한 부문에 산업 인력을 제공했다. 수많은 촌놈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산업역군이 됐다. 경제활동인구가 늘고 노동 투입량이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은 높아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구보너스 효과다. 앞으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경제활동인구는 줄기 시작했다.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05명이었다. 현재의 인구규모가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대략 2.1명은 되어야 한다. 올해는 0명대 합계출산율 시대 원년이 될 것 같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척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총수요도 감소한다.

세계 경제환경은 우리가 바꿀 수 없고 인구를 갑자기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면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임금·보상체계 개편 등이 필요한데 이는 조직화된 기득권층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벼랑 끝에 선 민생을 되살리고 저성장의 덫에 걸린 경제를 누가 구해낼 것인가. 모두 힘을 모아야겠지만 누구보다 현 정부와 집권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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