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사람들은 혼자 있길 좋아한다고 해서 'Lone Star'라는 별칭이 붙은 텍사스주. 멕시코에서 독립한 주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은 텍사스가 멕시코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할 때 독립군을 이끌었던 샘 휴스턴의 이름을 딴 도시다.  오스틴은 텍사스 초기 정착 미국인들을 이끌었던 스티븐 오스틴의 이름을 딴 도시다.

텍사스 오스틴과 샌 안토니오 사이에 위치한 텍사스 주립대. 외교부 출입시절 필자의 부사수였던 김치욱 후배와 함께. 기자를 그만두고 이 곳으로 유학을 떠났다.

샌 안토니오의 대표 관광지는 알라모 전투 현장이다.  19세기 초반 오스틴의 영도 아래 당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에 정착한 미국인들은 1930년대에 이르자 멕시코인들의 수를 넘어서게 됐다. 그러자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는 1836년 멕시코 전역에 효력이 미치는 헌법을 공포했는데 그 대상 영역에는 텍사스도 포함됐다. 텍사스인들이 멕시코에서 탈퇴하기로 결정을 내리자 산타 안나는 텍사스인들을 응징하기 위한 공격을 감행한다. 그는 3000명의 병력으로 샌 안토니오를 공격했는데 그 곳에는 윌리엄 트라비스 대령이 지휘하는 텍사스인 187명이 지키고 있었다. 텍사스인들은 알라모 선교본부의 담을 등지고 앉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이들은 산타 안나의 대군을 열흘동안 상대하다 3명을 제외하곤 전원 전사했다. 이 3명은 수잔나 디킨슨이라는 병사의 아내와 15개월된 그녀의 아기, 트라비스 대령의 노예 조다. 산타 안나는 이들을 살려서 텍사스 군사령관인 샘 휴스터에게 계속 저항하면 샌 안토니오 꼴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1836년 3월 텍사스군과 산타 안타의 군대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텍사스군은 숫적으로 밀렸으나 자만으로 방심하고 있던 산타 안나 군대를 기습했다. "알라모를 기억하라"고 외치면서. 멕시코 군은 산타 안나까지 포로로 잡히는 대패를 당하고 리오그란데 강 너머로 퇴각했다. 텍사스인들은 곧바로 헌법으 제정하고 휴스턴을 새로운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후 미국에 텍사스 병합을 신청했다. 텍사스는 이제 미국 땅이 됐다. 

 

텍사스인들이 멕시코와 맞서 싸운 알라모 전투지

 

텍사스는 면화 등 농업주였으나 20세기 초반 석유가 발견되면서 산업주로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텍사스 가죽 제품 가게.

 

미국 엘파소와 멕시코 후아레즈 접경. 엘파소는 과거 스페인과 멕시코의 통치를 받은 지역이라 '미국 속의 스페인'이라 불릴 정도로 스페인 문화가 곳곳에 스며든 도시다.

 

72시간 이내에 미국으로 돌아온다면 엘파소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것은 멕시코 비자 없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으로 다시 넘어올 때는 절차가 엄격하다. 관광객의 경우 여권은 물론 귀국 비행기표도 요구할 수 있다. 차로 운전해서 멕시코 탐방하는대신 엘파소와 후아레즈를 운행하는 트롤리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엘파소 비지터 센터에서 버스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미국 접경인 멕시코 마을

 

멕시코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과거 핵실험이 이뤄졌던 미국 알라모 연구소 인근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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