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후반기 국회 구성을 놓고 고질적인 정쟁이 재연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다툼이 갈등 현안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7월 여야 원내대표는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말을 바꿨다.

야당이 된 민주당의 박홍근 원내대표는 “후반기 2년 원구성이 국회법에 따라 새롭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의 법적 주체는 현재 원내대표”라며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사수하려는 이유는 의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법사위는 모든 법안이 본회의에 가기 전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 역할을 한다. 법사위원장이 안건을 올리지 않으면 모든 법안은 법사위에서 ‘함흥차사’가 된다. 다수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쥐고 있으면 자신들에게 필요한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할 수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24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을 향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식하면서 여당과 협치하겠다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며 “(두 자리는) 서로 다른 정당이 맡아야 한다. 이것이 협치를 위한 여야의 상호 존중”이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펴 나가기 위해 원내 1당이 국회의장을 배출하면 법사위원장을 원내 2당에 양보하는 관행을 만들어 왔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중 한 사람만 반대해도 법안 처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민주당+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약화했다. 지난 2년 간 민주당이 다수 의석의 힘을 남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300석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180석은 ‘개헌을 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한국 정치는 과반 의석을 확보할 때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제2당과의 협치 대신 ‘입법 독주’, ‘날치기’를 택했다.

민주당은 합법 테두리 안에서 쓸 수 있는 편법과 꼼수를 써 가며 각종 입법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내달렸다. 지금은 정권을 빼앗겨 야당이 됐지만 여전히 의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21대 국회 남은 2년은 더욱더 국민 뜻을 존중하는 여권과의 ‘협치’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자의적 국회운영 시작은 202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1대 국회 개원 후 민주당은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했다.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1대 국회 개원 전 워크숍에서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윤 위원장은 “현재 여야 의석은 단순 과반이 아니라 ‘절대 과반’”이라며 “국민의 뜻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여야는 원구성 협상 난항 끝에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법사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싸우다 합의를 못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단독 개원했고, 먼저 법사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만 선출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의 협상이 틀어지자, 나머지 상임위원장도 민주당 소속으로 채웠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여야 분배 관행이 깨지고 민주당 ‘독식’이 현실화한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몽니’를 부렸다는 지적도 있지만, 민주당이 결국 다수 의석을 앞세워 야당 의견을 묵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다수당 횡포로 훼손되는 의회민주주의

국회 상임위 의사봉을 잡은 민주당은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시작으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르기까지 법안 수십건을 지난 2년간 일방 처리했다. 임대차 3법 처리 당시 통합당은 상임위 내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통상적으로 법안소위에서는 ‘합의처리’를 해 왔다. 법안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정부 의견 등을 참고해 격렬하게 토론한 뒤 만장일치로 상임위 전체회의에 넘기는 관행이 있었다. 하지만 기획재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 행정안전위 등에서는 소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당이 전체회의에 기습 상정 후 의결했다.

2020년 12월 초의 국회 법사위는 무법과 편법으로 얼룩졌다. 당시 범여권은 90일간 활동이 보장된 안건조정위(여야 3명씩 구성돼 안건을 숙의하도록 한 제도)를 77분 만에 무력화시켰다. 당시 열린민주당이 야당 몫 한 자리를 차지해 사실상 ‘위장 여당’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토론을 가로막고 기습 표결을 강행하는 등 군사작전 하듯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헐레벌떡 진행하느라 잊었던 공수처법 개정안의 비용 추계 의결은 건너뛰었다가 뒤늦게 기립 표결로 의결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은 범여권 180석 이상을 자랑하던 2020년까지만 해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합법적 의사진행방해)조차 힘으로 눌렀다. 12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이상 찬성을 받아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켰다.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국정원법 개정안은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당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간첩을 잡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벌어졌던 ‘검수완박’ 법안 처리 때에는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 출신 민형배 의원이 ‘위장 탈당’이라는 꼼수를 부려 논란이 일었다. 이는 국회선진화법을 사문화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상임위 내에서 안건조정위는 소수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다수당이 탈당을 통해 한 명을 ‘위장 야당’으로 만들었다.

 

◆국민의힘도 과거 다수당 땐 ‘법안 날치기’

다수당의 ‘날치기’ 사태가 비단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18대 국회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절대 과반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낸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모두 107건의 안건을 5차례에 걸쳐 단독 처리했다. 대표적으로 2009년 7월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 처리 사례가 꼽힌다. 민주당 의원들이 격렬하게 몸싸움까지 벌이며 저지해 새누리당 의원들 일부는 표결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 탓에 ‘대리 투표’, ‘재투표’ 논란이 벌어졌고,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으로 이어졌다. 당시 처리된 미디어 법안은 신문사와 재벌의 방송 진출 길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국민 60%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날치기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 없이 직권상정한 안건도 99건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정부 예산안을 세 차례씩이나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한 것은 역사적 오점으로 남게 됐다.

민주당 당직자 출신의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은 국회의원들에게 포괄적 위임을 해줬지만 그게 모든 것을 다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국민 위임을 받았으니 내 멋대로 다 하겠다는 건 ‘대의’가 아니라 시스템을 이용한 ‘입법 사유화’가 되는 것이다. 특수한 사안이라면 국민의 의사를 좀 더 살피면서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형창·김현우 기자
 
선진화법 주도 김세연 前의원 인터뷰

 

이달 초 국회를 통과한 일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입법 과정을 두고 ‘국회선진화법 무력화의 결정판’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2012년 제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 입법을 주도했던 김세연(사진)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을 두고 “더 이상 국회에 기대할 게 없다고 본다”며 “요즘은 뉴스도 잘 안 본다”고 개탄했다.

김 전 의원은 24일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여야의) 극단적인 대립을 극복하고, 최대한 소수당의 의견을 존중하고, 숙의하고, 일상화돼 있던 의회 내 폭력을 추방하려는 목적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이미 그 취지가 많이 무색해진 상황”이라며 이 같이 털어놨다. 그는 “특히 안타까웠던 것은 안건조정위원회 제도를 악용했다는 점”이라고 일갈했다.

2020년 4·15 총선에서 과반인 180여석을 얻은 민주당은 21대 국회 들어 고비 때마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며 당론으로 정한 입법을 밀어붙여왔다. 이번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민주당은 여야 동수(각 3인)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 규정을 소속 의원의 상임위원회 사보임과 ‘위장 탈당’ 등을 총동원해 외려 악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의원은 “안건조정위 규정을 넣은 원래 취지는 여야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향의 다선 의원 6명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60일 동안 절충안을 만들어보라는 건데, 이 과정을 오히려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우회·단축하는 용도로 악용하는 걸 보니 (현 국회 상황에) 질리더라”며 “법의 취지를 살리기는 커녕 반대로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저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전 의원은 “이미 제도를 악용해 그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사례가 쌓여버렸기 때문에 기존 틀 안에서 (상황을) 바꾸긴 어려워 보인다”며 “제도 자체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 지형이나 의식 자체가 다 바뀌어야 한다”며 “이미 기득권이 돼 버린 거대 양당을 견제하기 위한 전혀 다른 틀의 논의, 가령 서양처럼 상·하원 제도를 도입해 보다 민의를 잘 반영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김 전 의원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것도 넓게 보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접적인 해법은 아니더라도 일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부수적 요소들, 즉 의전이나 처우 이런 부분의 인센티브를 줄임으로써 국회의원직이 출세의 수단이나 인생 이모작 차원으로 여겨지는 것을 막고, 정말 일을 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든다면 조금 더 국민과 국회의 거리를 좁히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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