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인 제럴드 가드너가 말했습니다.
위트가 정치적 성공의 중요한 요소라고.
미국의 정치 체제는 통치를 잘할 사람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후보자로 지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기기 위해서는 심오함이나 행정 능력보다는 매력이나 위트가,
인격이 아니라 카리스마가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드너의 저서 'The Power of Presidential Humor'에 따르면,
역대 미 대통령 중에서 존 F.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이
위트와 재치면에서 발군이었다는군요.
 
 로널드 레이건(40대 대통령. 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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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취임 당시 만 70세였거든요.
그의 대처 방식은 정공법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나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를 희화화하곤 했답니다.

예컨대 1919년 발족된 워싱턴 기자클럽에 참석해서
“창립한 날이 바로 엊그제 같군요”라고 말하거나,
법조인 협회의 105차 연례 회의에서는
'제가 창립 회의에 참석했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는 또
 '앤드류 잭슨(미국 7대 대통령, 재임 기간 1829~37)은
 일흔 다섯 살에 백악관을 떠났는데 그 때까지도 굉장히
 힘이 넘쳤답니다.  그가 내게 직접 말해준 얘깁니다'라고도 했고,
 자신의 일흔 살 생일 파티에서는
 '오늘은 나의 서른 아홉살 생일의 서른 한 번째 기념일”이라고
 익살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레이건은 84년 대통령 재선 운동 당시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의 나이 공세를
재치있게 돌파했습니다.

대선 후보 2차 TV 토론장에서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대통령은 이미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대통령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대통령은 그런 상황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레이건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상대방이 너무 젊다든가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방청객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환호성으로 이어졌습니다.
레이건의 재치있는 답변으로
나이 논란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먼데일의 대통령 꿈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 놓고 웃음 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레이건의 특기였습니다.
 
'멕시코 시티에서 연설할 때였죠.
연설을 마치자 청중들이 성의 없이 박수를 쳤고
나는 좀 당황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지요.
다음 번 연설자는 스페인어로 얘기했는데,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매 문장마다 박수를 받고 있더군요.
나는 당황감을 감추려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리고 다른 누구 보다도 길게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사가 나를 보면서 말하는 거예요.
'대통령님, 저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 사람은 당신 연설을 통역하는 중이니까요' 라고 말이죠'
 
 해병 부대를 방문한 레이건.
해병들의 용감함을 정말 세련되게 추켜 세웁니다.
이런 유머로 말이죠.

'해병 부대 일부가 소정의 공수 훈련을 받기 위해
육군 부대에 배속됐습니다.
젊은 중위 하나가 모든 과정을 설명해주면서
비행기는 약 800 피트 높이로 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지요.
그들은 비행기에서 뛰어 내려서
그 지역의 다른 병력과 합류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해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대표 몇 사람이 중위에게 가서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중위님, 비행기를 조금 낮게 비행하면 안될까요?  500피트 정도로 말입니다'
중위는 '그 높이로는 낙하산이 펴지는데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안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해병들이 이렇게 반문했답니다.
 '아, 저희가 낙하산을 메고 갑니까?' '
 
 존 F.케네디(35대 대통령.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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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너무 젊어서 문제가 됐습니다.
61년 취임 당시 만 44세였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케네디가의 사람들’을 쓴 조 매카시에 따르면,
멀리서 보면 호리호리한 체격이나
대학생 같은 덥수룩한 헤어 스타일 때문에
28세 정도로 보였다는군요.
민주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인 트루만 조차
'성숙한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그의 대선 후보 지명을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케네디는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나이를 기준으로 해서
44세 이하의 사람들을 지도자의 자리에서 제외시킨다면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워싱턴은 대륙군을 지휘할 수 없었으며
매디슨은 헌법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고
콜롬부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뒤 테오도르 루스벨트,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도
젊은 지도자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케네디 만큼 언론의 사랑을 받은 대통령은 없습니다.
언론은 그의 위트와 재치를 사랑했습니다.
 
케네디가 칼럼니스트의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편지 속엔 대통령 사인의 시세표가 담겨있었고요
조지 워싱턴이 175 달러, 루즈벨트가 75 달러,
그란트가 55 달러, 케네디가 65 달러였습니다.
 
케네디가 답장을 썼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 사인의 가격이 그렇게 높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군요.
시세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편지에는 사인을 하지 않겠습니다'
 
백악관 기자 회견 한 토막.
 
#기자: 공화당은 최근 당신이 많은 실책을 범했다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케네디:나는 그 것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상원 의원 시절 한 소년이 질문했습니다.
 
#소년:상원의원께서는 어떻게 전쟁영웅이 되었습니까.
#케네디:내 본의가 아니었단다. 적들이 내가 탄 배를 침몰시켰거든.
 
케네디는 61년 1월 20일 취임했고
63년 11월 22일 텍사스 달라스에서 오스왈드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그가 백악관에 머물렀던 약 1000일 동안
그의 위트는 찬란한 빛을 발했습니다.
케네디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의 위트와 유머가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허식과 권위에 대항했던 그의 유머는
우리가 스스로의 환상을 비웃을 수 있게 했습니다.
케네디를 추억할 때마다
저는 뭔가에 깊이 베인 듯 합니다.
한 없이 올라가다
결국은 추락할 운명을 타고난
이카루스가 떠오릅니다.
케네디는 그런 운명을 얼마간 직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맘껏 웃어야겠지요?
 
케네디의 다음과 같은
쓸쓸한 고백이 귓전에 울립니다.
 
'세상에는 진실한 것이 세 가지 있는데
그것은 神, 인간의 어리석음, 그리고 웃음이다.
처음 두가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니
세 번째 것 만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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