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김대중) 대통령과 앨 고어 미국부통령간 면담 성사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외교부 당국자들은 「덤」으로 얻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기간중 한­미 정상간 양자회담이 예상됐으나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사태로 불참한 상황에서 그를 대신해 온 고어 부통령이 먼저 金대통령과 만나길 희망했다는 사실에 당국자들은 고무된 듯했다.한 고위 당국자는 『고어 부통령이 「정상」 자격으로 참석했으니 사실상 한­미 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다』며 한껏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담 전 청와대와 외교부 당국자들은 『회담이 아니라 접견형식이다』 『고어 부통령이 金대통령을 존경해서 만나고 싶어한 것 같다』 『북한문제,특히 카트먼 미한반도평화회담특사가 방북한 시점이니만큼 영변 인근 지하시설 의혹 해소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다』고 의미를 부풀렸다.

그러나 막상 면담이 시작되자 이같은 설명을 무색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어 부통령은 대뜸 한국정부의 철강업체 보조금 지급 의혹과 미국 소고기 수입 감소문제를 들고 나오더니 기후변화협약상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조기 달성토록 촉구하는 등 金대통령의 의표를 찔렀다.

고어 부통령의 金대통령 면담 의도는 우리 당국자들의 안이한 평가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金대통령이 그 와중에도 「햇볕정책」을 의제로 올리는 기지와 불공정 무역관행 같은 민감한 사안을 무리없이 받아넘기는 수완을 발휘,그나마 체면을 세우기는 했으나 자칫 이번 면담이 작심하고 나온 듯한 고어 부통령 의도대로 흘러갈 뻔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이해가 항상 우리의 것과 일치하지 않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좀더 냉철한 대미 접근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趙南奎 정치부 기자 1998년 1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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