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모가 시내 병원을 다녀오다 낙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에게 몇 십리 떨어진 병원을 오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혈압약 정도는 집에서 의사로부터 원격진단을 받은 뒤 배송받으면 좋으련만 현행법상 이런 원격의료 행위는 위법이다.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령층이 많고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인근 보건진료소를 찾아 혈압이나 혈당을 측정한 뒤 그곳에 비치된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의사가 있는 보건소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보건소 의사나 간호사는 관내 보건소 전문의와 협진을 통해 해당 보건소를 찾은 환자에게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환자라면 가정에서 직접 혈압 등을 측정해서 스마트폰 앱으로 보건소 의사에게 전송한 뒤 서비스를 받는다. 원격 처방전이 있으니 보건소에 비치된 약도 바로 받을 수 있다. 바로 필자의 노모가 간절히 원하는 의료서비스다. 필자의 노모뿐일까.

보건복지부가 2016년 전남 완도군, 장성군, 옹진군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같은 원격의료는 참여 주민의 83%가 만족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88.9%는 건강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그 전해 실시한 원격의료 시범사업 평가에서는 참여 주민의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8.3점으로 집계됐다. 원격의료 관련 합병증 발생, 이상반응은 없었다. 이런데도 원격의료는 먼 나라 얘기다. 박근혜정부의 정책이라서 폐기된 것도 아니다. ‘스마트진료’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서도 원격진료는 주요 정책 과제다.

올 들어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원격진료를 ‘규제개혁’ 목록에 포함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중기부는 강원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이미 합격판정을 받은 바로 그 원격의료다. 보건복지부도 도서벽지나 원양선박, 교도소, 군부대 같은 의료 취약지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2019년 주요 업무계획에 포함시키며 발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강원도 시범사업은 참여 의원이 거의 없어 사업이 유명무실해졌다. 의사단체의 조직적 반발 탓이다.

의사단체는 원격의료를 ‘핸드폰진료’로 폄하하면서 오진 가능성, 과잉 진료, 대형병원 쏠림현상 등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논리로는 궁색하다.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한국 의료계다. 우리나라는 통신속도와 반응속도가 월등히 향상된 5세대 이동통신(5G)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나라다. 이만한 인재와 기술을 갖추고도 원격의료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미국이나 일본은 의료 후진국이라서 원격의료를 허용한 게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병원 중심에서 자택 진료 등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전환시켰다. 우리도 이제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가 팀을 이뤄서 종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농·어촌이나 격오지 같은 의료 취약지에서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원격의료가 허용돼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민간 보험회사와 헬스케어 업체들도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주체로 새롭게 등장했다. 해외에서는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서 의사에게 전달하는 웨어러블 기기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런 기기들을 활용해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헬스케어 시장이 날로 커지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의료행위의 주체는 의료인’이라는 의료법 규정에 막혀 한정적인 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각종 규제가 의료서비스의 질은 높이지 못한 채 관련 산업의 혁신만 옥죄고 있는 꼴이다.

지금의 의료계를 바라보면 독점으로 이권을 챙겨온 중세 유럽의 동업자조합(길드)이 떠오른다. 진입 장벽을 높이 쌓아놓고 기득권을 굳게 지키던 길드는 근대가 열리면서 무너졌다. 길드로 대표되던 독점체제가 포용적 제도로 바뀐 이후에야 산업혁명이 가능해졌다.

조남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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