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통령실 차관을 지낸 데일 카브레라가 농구 선수 신동파 얘기를 꺼냈을 때 속으로 뜨끔했다. 지난 20일 세계일보 주최로 열린 ‘2019 세계아세안포럼’에서다. 패널로 나선 카브레라 전 차관은 “신동파 선수는 지금도 필리핀에서 인기가 있다”면서 올해로 수교 70년을 맞는 한·필리핀 우호·협력의 상징으로 그를 내세웠다. 신동파는 1969년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혼자 50득점을 하며 당시 아시아 농구 최강이던 필리핀을 무너뜨린 주역이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에서는 신동파 이름을 붙인 상점들이 대거 생겨났다. 자국 팀의 우승을 좌절시킨 상대국 선수가 영웅 대접을 받은 셈이다. 농구를 잘했다고 그런 대접을 받았을까. 언젠가 신동파가 언론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내비친 적이 있다. “내가 치고 들어가다가 필리핀 선수가 파울을 해서 걸려 넘어지면 관중들이 난리가 났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프리드로라인으로 갔다. 심판한테는 꼭 인사를 했다. 그러면 필리핀 기자들이 항상 신문에 ‘필리핀 농구 선수들이여, 신동파의 매너를 배워라’ 하는 식의 기사를 썼다.” 카브레라 전 차관은 신동파를 띄우면서 한·아세안 관계가 앞으로 ‘신사다운’ 방식으로 발전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일본, 중국보다 아세안 진출이 늦은 후발 주자다. 일본과 중국은 수십년 전부터 경제 지원과 화교(華僑) 등을 활용하며 아세안 공략을 본격화했다.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 시장 점유 비율(2017년 기준)은 인도네시아 99대 1, 태국 87대 1이다. 베트남은 47대 32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아세안은 일본의 텃밭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세안 국가들의 정서는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한국에 우호적이다. 신동파나 박항서, 한류(韓流) 스타들의 활약이 컸다. 더 깊은 곳에는 식민지로 전락했던 아픔을 공유한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동류 의식이 깔려 있을 것이다. 아세안을 사로잡은 한국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의 성공 경험이다. 한국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낀 지정학적 숙명을 극복하고 전쟁의 폐허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는 저력을 보였다.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의 롤 모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세안 진출은 중국이나 일본의 아세안 공략과는 달라야 한다. 그간 일본과 중국은 자국에서 경쟁력을 잃은 산업을 아세안으로 이동시켜왔다. 이런 방식은 더 이상 아세안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게 본지 포럼에 참여한 아세안 현지 패널들의 지적이었다. 아세안 국가들은 일본과 중국의 아세안 진출이 자신들과의 상생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본지 인터뷰에서 “아세안 국가들에 ‘너희는 글로벌 가치 사슬의 끝에서 우리를 따라와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중국, 일본과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의 아세안 진출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공장을 옮긴다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세안과 4차 산업혁명시대를 함께 열어가겠다는 열린 자세, 경제협력 사업을 통해 상생하겠다는 동반자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의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주형철 신남방정책특위 위원장과 만난 베트남 부총리는 “매년 한국인과 결혼하는 3000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고 한다. 필자는 그 사실을 전해듣고 카브레라 전 차관이 신동파를 언급했을 때처럼 부끄러웠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세안 이주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매년 2명꼴로 낯선 한국 땅에서 살해되고 있다. 지금 부산에서는 한·아세안 정상들이 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정상회의만으론 부족하다. 이주여성 출신 국회의원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세안 이주민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아세안에서 한국의 국격(國格)이 높아지고 아세안에 진출한 우리 국민이 대우받게된다. ‘Do ut Des’(도 우트 데스)라는 법언이 있다.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는 뜻이다. 근대 국제법의 상호주의 원칙이 이 법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아세안의 미래 모습도 이 원칙 위에서 만들어져 갈 것이다.

조남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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