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청와대 권력의 불투명한 권한 행사.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비대해진 대통령 권력은 입법·사법·행정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면서 정치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여당이 대통령에 종속돼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하고, 독립이 생명인 사법부가 권력에 예속되는 민주주의 퇴행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미래 권력인 주요 대선 후보들은 한결같이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개헌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정작 집권한 뒤에는 정략적 차원의 개헌을 추진하다 야당과 민심의 역풍을 맞는 일이 반복돼 왔다.

올 3월 대선으로 출범하는 청와대는 달라질 수 있을까. 여야 유력 후보들은 청와대 조직 감축, 국무위원 권한 강화 등과 같은 공약을 내놨지만 집권 후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는 개혁을 단행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1987년 만들어진 승자독식의 현행 대통령제는 패거리 정치를 만들어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협치가 가능한 새로운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지만, 유력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모두 권력구조 개편 공약을 꺼리고 있다. 단기적으로 개헌이 어렵다면 누가 당선되든 청와대의 인사권과 정책 기능을 부처로 과감히 넘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靑 인사권, 장관 허수아비 되고 정책 기능 왜곡”

지난해 2월 1심 판결이 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은 문재인정부에서도 청와대의 무리한 인사 개입이 만연했음을 보여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인사균형비서관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김 전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 임원 인사에 앞서 청와대와 협의해 기존 임원의 퇴사를 압박했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김 전 장관과 청와대가 임원 임명을 위해 논의한 인사 대상에는 한국환경공단 등 환경부 산하기관 8곳이 포함됐다.

박근혜정부 시절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통화에서 “고위 관료 정무직 인사도 청와대 인사의 허락을 맡지 않으면 임명되지 않곤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부적절하게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장과 과장을 인사조치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청와대 인사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 인사권한의 한계가 명확지 않다는 점이다. 한 여당 전직 의원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런 곳에까지 개입하느냐’고 느낄 수 있는 곳까지 청와대가 개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법률상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인사에 개입할 수있는 자리는 국무총리 및 장·차관 등 140여개 정도지만, 공공기관의 직위나 장관이 임명하는 자리, 더 나아가 산하기관 임원까지 합쳐지면 최소 3000곳이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청와대는 사기업 인사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곤 한다. 기획재정부 신재민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2017년 KT&G와 서울신문 사장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고 유튜브를 통해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청와대의 과도한 인사권 행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이 강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노무현정부 시절 인사검증 라인에 있었던 한 인사는 “검증이라는 미명하에 인사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정부부처 실·국장들이 청와대에 직접 로비를 하기 일쑤”라며 “결국 장관은 허수아비가 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상임위 간사를 지냈던 한 전직 의원은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가깝다고 자부하는 ‘실력자’들이 자신들과 가까운 인사들을 청와대에 집어넣어 인사를 좌지우지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청와대가 부처 국장급 이상 간부 인사까지 개입하다보니 공무원들이 장관 대신 청와대를 바라보며 일하는 행태가 만연해진다”며 “한마디로 청와대가 앞장서서 직업공무원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권력지향적인 해바라기 공무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인사추천실명제’ 공약을 내걸었다. 인사 결정의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시스템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임 중 문 대통령이 결정한 주요 인사가 누구의 추천을 받았는지, 어떠한 검증과정을 거쳤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공염불에 그친 것이다.

◆청문회도 없는 靑 참모, 규모도 권한도 비대

청와대 참모조직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행정관 등의 권한이 강하고 규모 면에서 비대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연례 인사보고서에 따르면 백악관 비서실 직원은 567명이었다. 이 숫자에 비해 청와대 비서실 직원 수(432명)는 과도한 편이다. 그렇다보니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이 장관들이 참여하는 국무회의보다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놓이게된다는 지적이 따른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 3선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는 정권마다 월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무현정부 때 신설된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통령 어젠다를 추진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면서 부처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전직 의원은 “청와대와 총리실의 기능이 중첩돼 청와대 참모조직에 힘이 실리면 총리실의 조정 기능이 약화한다”면서 청와대 조직은 축소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청와대의 비밀주의도 문제다.

백악관은 연례 인사보고서에 직원들의 이름과 직함, 연봉 등 구체적 내용을 담아 의회에 보고한다. 백악관은 올해 전체 직원의 60%가 여성이고 유색인종은 44% 였다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다양성을 추구하는 행정부”라고 자평했다. 청와대는 국민의힘 이영 의원이 요청한 청와대 직원 규모 질의에 구체적 내용을 비밀에 부친 채 통계 수치만 보내왔다.

 

◆‘차기 정부도 계속된다’… 제도·운영 모두 손봐야

차기 정부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낮아보인다. 이재명, 윤석열 대선 후보 모두 세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 후보 선대위는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다수 정의당 당원들에게 임명장을 보내 “아무리 급해도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윤 후보 선대위는 동의 없이 공무원들에게까지 임명장을 보내 지역 선관위가 조사에 착수했다. 선거기간 뿌려진 숱한 임명장들은 집권 후 자리를 요구하는 채권이나 다름없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속이라는 결말로 끝난 19대 대선 인터넷 댓글조작 의혹 사건은 당사자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한 야당 전직 의원은 “결국 선거 끝나고 난 뒤에 한 자리 받으려고 다들 선대위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러한 선거 풍토와 청와대 위주의 인사권 남발이 계속되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상황 반복은 불가피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려면 무엇보다 청와대의 강력한 인사권한을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사권한 규범화가 제시된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겸임교수는 통화에서 “무제한적인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려면, 미국의 ‘플럼북(Plum Book)’과 같이 대통령의 인사권한을 규범화하고, 이외의 인사는 엄격히 범법행위로 다스리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대선이 끝날 때마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 공무원의 숫자와 임기 등을 일종의 책자로 규정해놓는데, 이를 ‘플럼북’이라 부른다. 이를 한국에서도 응용해보자는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통화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보장해서 청와대의 인사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고, 책임총리에게 실제적인 권한을 줘서 총리도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 내에 여야 및 시민단체까지 참여할 수 있는 인사 감시 기구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통화에서 “승자가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현 정치제도 특성상 대통령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고 모두가 목숨을 거는 구조”라며 “목숨을 거니까 다들 보상이 세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라인이 형성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꼬집었다.

◆尹 “분권형 장관제 도입” 李 “4년 중임제 바람직”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과 관련, 가장 적극적인 대선 주자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다. 윤 후보는 청와대의 기능을 줄이고 장관에게 권한을 강화하는 ‘분권형 장관제’를 제시했다. 윤 후보는 지난 13일 한 토론회에서 “청와대는 정부 조직 전반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시스템을 관리만 하고, 대통령만이 감당할 수 있는 범부처적, 범국가적 사안들을 집중 기획, 조정, 추진할 수 있는 전략조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는 사정기능을 총괄하는 민정수석 폐지를 공언한 상태다. 사정기관을 컨트롤하는 기관을 두면 자연스럽게 정권 반대파를 통제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윤 후보의 생각이다. 윤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후 대통령 부인의 일정 등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책임총리제’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했다. 현행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 각료 해임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적극 활용해 내각에 대한 총리의 통솔력을 강화시키자는 논리다. 이럴 경우 자연스레 청와대 조직은 장기적 과제에 집중하게 된다. 다만, 이 후보는 현재 기획재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예산편성권을 떼내어 청와대 직속 부서에 신설하자는 공약을 냈는데 이는 미국 백악관이 운영하는 ‘예산실’ 체제와 유사하다. 이 경우 청와대가 예산 편성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이 후보는 이날 MBN 인터뷰에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꺼내들며 “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임기 1년을 단축하더라도 그런 방식의 개헌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새롭게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 규모를 반으로 줄이고 장관들에게 책임을 지우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행정권뿐 아니라 입법권, 인사권, 예산권, 감사권까지 가지고 있고 이렇다 할 견제 세력이 없다. 실제로는 ‘왕’을 뽑는 셈”이라면서 대통령 권한 축소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청와대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공약을 내건 상태다. 심 후보는 청와대 비서실 축소 및 수석제 폐지,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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