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설사 대표이사로 배우자와 함께 회사 지분 65%를 소유하고 있던 전 경북 고령군의회 의원 A씨는 2018년 당선 이후 해당 법인이 지방계약법 제33조에 따라 ‘수의계약 체결 제한’ 대상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해 타인에게 대표이사직과 소유 주식을 이전했다. 이후에도 A씨는 사실상 자신이 법인을 계속 운영하며 고령군과 43건에 달하는 수의계약을 체결해 이익을 취했다.

#2. 서울시의회 B의원은 특정 단체의 청탁을 받고 민간경상보조사업 예산안을 발의했다. 이후 해당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자 B의원은 사업 부서에 지방보조사업 변경을 제의하며 특정 업체와 사업을 추진해 줄 것을 청탁했다. 청탁을 받은 부서는 B의원의 소개를 받은 업체와 지방보조사업 공모 기준을 사전 협의한 후 형식적인 공모 과정을 거쳐 해당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1991년 지방의회의원 선거로 막을 올린 완전한 민선 지방자치는 올해로 31년을 맞이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임에도 지방자치는 그간 지방세력과의 유착 등 부정적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는 비판이 아직 유효하다. 이로 인한 무용론마저 제기된다.

4월 26일 6·1 지방선거가 불과 3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근 언론 보도와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지방의회 부패의 민낯이 드러나며 기초의회 무용론이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시행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지방권력 부패를 해소할 장치를 강화했지만 지방의회에 대한 국민 신뢰 제고는 여전히 숙제로 꼽힌다.

지난달 감사원은 지방자치단체 계약 등 관련 비리점검 보고서를 발간했다. 서울시와 경북 고령군 등 문제 소지가 있는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지방의회의원 관련 업체 부당 수의계약 및 민간경상보조사업 관련 비리 등을 점검한 결과 총 15건의 위법 혹은 부당사항이 적발됐다. 관련자 중 3명은 경찰에 고발당했고 3명은 징계를 받았다.

 

지방의회가 본업인 민의 대변에 충실하지 않고 부패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의원의 겸직에 따른 사익 추구나 수의계약 등을 둘러싼 이해충돌 사건은 잊을 만하면 불거져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를 해소하고자 지난 1월13일부터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됐다. 개정된 법은 지방의회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수단을 포함한다. 대표적인 것이 정보공개 의무 규정이다. 기존에는 지방의회 관련 정보공개 의무 규정이 따로 없었지만 개정된 법은 지방의회의 의정활동과 집행부 조직·재무 등 정보공개 의무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겸직을 금하는 규정도 보다 명확히 하고 ‘제 식구 감싸기’를 예방하기 위한 윤리특별위원회 설치도 의무화했다.

그러나 개정법 시행에도 지방자치를 향한 불신의 눈길은 여전하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보여주듯 눈속임으로 규정을 피해 이뤄지는 비리가 여전히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여러 문제는 감시와 견제가 부족한 지방의회의 구조적 현실에서 싹튼다. 중앙정치와 비교해 감시 역할을 할 만한 시민단체나 언론이 부족한 데다 거대양당 위주의 독식 체제로 내부 견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서울 관악구의회 정의당 이기중 의원은 “특정 당 혹은 거대양당이 지방의회를 독식한 상황에선 질적 저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역 공천만 받으면 100% 혹은 50% 이상 당선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이유가 없고 ‘줄서기’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지방의회 의원이 거수기 역할을 하며 중앙당이나 집행부의 하수인이 되는 상황마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관악구의회의 경우에도 진보정당 혹은 제3세력 의원이 지속해서 있었는데 지난 7대 의회에선 이들이 없어져 질적 저하가 일어났다”며 “한쪽 정당 의원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니 질문도 없고 감시·견제 활동도 줄어들어 의회의 전반적인 기능이 약해졌단 평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제9대 경기도의원 출신이고 경기 부천시의원으로 3선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도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서 의원은 “특정 정당이 지역선거를 싹쓸이하는 현 상황에선 나머지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을 수 없고 내부 견제도 약해져 결국 건강한 지방자치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방의회의 구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다양성 확보가 공통으로 언급됐다. 지방의회의 구성이 다양해져 서로 다른 성향과 배경의 의원들이 공존하면 견제 기능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제6대 경북 구미시의회에서 최연소 의원으로 지방정치를 경험한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지방의회에 들어갔을 당시 저는 그 지역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성향의 의원이었고 그 때문에 다른 의원들이 저를 신경 쓰고 의식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성향이 다르고 낯선 사람이 구성원으로 들어오면 이전까지 관습으로 치부해 오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패와 전횡도 어느 정도 예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지방의회는 세대적으로 중장년층, 성별로는 남성, 직종으로는 자영업자나 사업가 출신으로 여러 요소가 과도하게 편중돼있다”며 “어느 계층이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지역민의 필요가 정책에 반영될 수 없고 비슷한 구성원들끼리 서로 눈감아 주니 비리나 사고도 발생하기 쉽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지방의회 구성원 다변화를 위해서는 청년이나 여성, 다양한 직업군 출신의 후보를 적극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선거 제도 개혁 필요도 제기된다.

사실상 거대양당의 독식을 부르는 1인 선거구를 줄이고 비례의원을 늘리거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군소정당의 진입을 용이하게 하자는 목소리는 점차 커져 왔다.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여야는 지난 14일 전국 11개 선거구에서 군소정당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서울 4곳, 경기 3곳, 인천 1곳, 충청 1곳, 영남 1곳, 호남 1곳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시범적으로 도입된다. 특히 여야 거대정당이 각각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영·호남에서 1곳씩 포함된 점이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범 실시 지역에서는 최소 3인 이상의 기초의원을 선출하게 되므로 정의당 등 제3당의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 의원은 “지역선거에도 비례성이 강화돼야 다양한 목소리가 포용될 수 있다”며 “그간 영·호남 지역 등에서 일당독재가 지속해 왔는데 한국사회와 정계는 이를 묵인하며 오히려 그런 편중에 기대 정치를 해 왔다. 지금이라도 지방의회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 차원에서 이번 지방선거가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했으면 좋겠고 나아가 중앙정치도 다양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지원·최형창 기자
 

선거제 개혁운동 앞장 선 하승수 변호사

“지방자치단체장 권한은 너무 크고, 지방의회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주민과 지역 언론·시민단체의 감시는 약한 ‘삼박자’가 합쳐져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입니다.”

선거 제도 개혁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하승수(사진) 변호사는 2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를 살리기 위해선 지방선거 제도 개혁과 비례성 강화를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하 변호사는 “선거 제도는 민심을 반영해야 하는데 표심이 의석으로 반영 안 되는 것이 근본 문제”라며 “대부분 소선거구제로 실시되는 선거 제도를 개선하고 비례성을 강화해야 민심이 고루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선거구제는 표심이 의석으로 반영되는 것을 막는 일차적인 걸림돌이다. 하 변호사는 “아무리 보수적이고 정당 지지율이 편중된 지역이라고 해도 다른 정당 지지율이 20∼30% 정도씩은 나온다. 하지만 지방의원의 경우 대부분이 소선거구제로 선출되기 때문에 그런 표심은 의석에 반영이 안 된다는 점이 문제”이라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해외 선진국의 경우 중앙보다 주민의 삶에 가까운 지방의회의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지방의회에도 비례대표제를 적극 도입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스위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방의회 선거에도 비례대표제를 적극 도입해 지방의회 구성의 다양성을 담보한다. 비례대표제로 지방의회 구성이 다양해지면 지역민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영국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와 비슷하게 소선거구제 중심이지만 런던 등 지방의회 선거에는 비례대표제를 활발히 도입한다”며 “런던은 도시 정책과 교통 정책 등이 훌륭해 세계적으로 많이 참고하는 도시인데, 그런 성공적인 정책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양화된 지방의회 구성도 있다고 본다. 지방의회 구성이 다양해야 실제로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 개선에 중요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주민 참여의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하 변호사는 “주민 감사 청구, 주민 소송 등 지역민이 지방의원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존재하지만, 문제는 잘 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보단 줄었지만 지금도 주민 감사 청구를 위해선 백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일반 주민에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일본의 경우 단 한 사람의 주민도 감사를 청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주민 소송까지도 단 한 명의 주민이 할 수 있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높은 장벽으로 인해 주민들이 지방의회에 접근하거나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고 주민들과의 소통을 늘려야 투명하고 효율적인 지방자치가 가능해진다”고 조언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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