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국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역장벽을 더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자국 경제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과감한 재정과 부양책을 동원하는 한편 수입규제 조치도 속속 도입하는 모양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통상 전반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술개발 등의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정부도 각국과 통상협력 강화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역장벽 높이는 선진국·신흥국

2일 산업·통상계에 따르면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선진국 중심의 저성장과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빚어진 공급과잉 문제 등의 영향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중국과 대립하는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며 글로벌 시장엔 혼란이 가중됐다.

올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 우선구매)’을 기치로 한 이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계승하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특히 미국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배제한 핵심 제품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도 단기간에 마무리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역시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면서 내수 확대 및 자국 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반도체 등의 중간재를 수입하는 대신 자국에서 생산하는 자체 공급망인 홍색공급망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 터키를 비롯한 신흥국들도 자국 제조업 육성을 위한 중간재에 대한 수입규제에 나서는가 하면 수입면허와 강제인증 대상 품목 확대 등 비관세장벽도 강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럽연합(EU)과 미국이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 또는 기업 제품에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무역장벽이 등장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겨냥 수입규제 역대 최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는 우리나라를 겨냥한 각국의 수입규제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트라가 지난 2월 발간한 ‘2020년 하반기 대(對)한국 수입규제 동향과 2021년 상반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는 26개국에서 총 228건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 대한 수입규제는 2011년 117건에서 2013년 127건, 2015년 166건, 2017년 187건, 2019년 210건, 2020년 228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수입규제 형태별로는 반덤핑 164건(72%), 세이프가드 54건(24%), 상계관세 10건(4%) 순이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4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인도 33건, 중국 16건, 터키 14건, 캐나다 13건, 인도네시아 10건, 태국 9건 등의 순이었다. 이 중 인도, 필리핀, 태국 등 신흥국의 규제 건수가 151건으로 전체의 66%나 차지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수입규제를 비롯한 무역장벽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 1·2위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위험이다. 미국 정부는 오는 4일 반도체·배터리·바이오의약품·희토류 등 4개 핵심 품목에 대상으로 실시한 공급망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 계획을 내놓는다면 우리나라로서는 양국 사이에서 또다시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정부, 국제통상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나서야”

전문가들은 백신 공급 등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누그러지더라도 세계경제가 이전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도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다자주의 원칙과 입장을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양자 차원의 FTA(자유무역협정)를 비롯해 지역 차원, 글로벌 차원에서 다른 정부들과 무역협정을 맺으며, 수출시장 확보와 과거 수출시장의 회복은 물론 수출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미·중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 모두 이에 빠르게 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우리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영역에서는 미국 내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고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공급망에 합류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메시지를 지속해서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우리 기업이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와 가격 경쟁력 등을 갖춘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서도 이원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배터리와 같이 이미 우리가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에서는 미국과 어떤 부분에서 협력할 수 있을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반복되는 보호무역·무역전쟁 역사

2018년부터 계속된 미·중 무역분쟁과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탈세계화 노선이 최근 국제 정세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 됐다. 18세기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제시한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이후 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보호무역과 무역전쟁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2일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분쟁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패권을 쥔 지난 한 세기 동안 280건의 무역분쟁에 휘말렸다.

미국은 1929년 맞은 대공황의 해법으로 보호무역을 시작했다. 이듬해 미국 의회가 농업·공업 등의 제품 전반에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 할리(Smoot-Hawley)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2만여종의 제품에 평균 59%의 세금을 물리고, 일부 품목에는 무려 400%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사실상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WTO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조치에 교역국들 보복관세로 대응에 나서면서 이후 5년간 세계 교역량이 3분의 1토막 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7년 미국 주도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출범하고 나서야 보호무역시대가 막을 내렸다.

196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이 ‘치킨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닭고기를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다. 저렴한 미국산 닭고기가 유럽에 풀리자 1962년 유럽경제공동체(ECC)가 닭고기 수입 관세를 올렸고, 이듬해 미국은 유럽산 브랜디, 감자전분, 소형 트럭 등에 대한 관세로 맞받아치면서 무역갈등이 확산됐다.

1980년대에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견제에 시달렸다.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와 철강제품에 고강도 관세를 매겼고, 1985년에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 절상을 유도했다. 큰 폭의 무역흑자로 호황을 거듭하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게 된 원인 중 하나를 미·일 무역갈등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미·중 무역분쟁은 2018년 7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340억달러 규모의 800여개 중국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발발했다. 중국은 즉시 농산물과 자동차 등에 보복관세 조치를 시행하면서 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양국이 몇 차례 경쟁적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대상 제품이 2000억달러 규모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양국은 1단계 무역 합의를 체결했지만, 합의한 분량만큼의 수입 절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언제든 무역분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무역전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8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으로 일본과 외교·정치적 갈등이 커졌고, 이듬해 일본이 우리나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치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등 무역제재로 대응에 나섰고 국민적 차원의 불매운동이 확산하기도 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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