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28일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엔 은행장이 됐다. 이후 17년째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고 있다. 30일 퇴임하는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이야기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집무실에서 30여년을 뱅커로 살아온 하 회장을 만나 금융업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환담했다. 그는 “금융권 후배들이 더 글로벌화된 시각, 디지털 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시야와 전문성을 갖춰서 금융업을 더 발전시켰으면 한다”면서 “선배들이 해야 하는 것을 숙제로 남겨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금융업 발전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을 향해서는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정부 책임으로 돌리는 국민 정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외환위기 2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은행권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금은 잘하고 있나.

“외환위기는 자원이 시장의 기능에 의해 배분되지 않은 탓에 발생한 것이다. 당시 은행은 재무분석 평가를 통해 대출하기보다는 기업 이름을 보고 대출했다. 재벌기업이라면 대출해주고 다른 은행이 대출해준 기업에는 자기들도 대출해주는 식이었다. 지금은 은행들이 많이 변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등을 잘 관리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가 또 올 것으로 보나.

“위기는 반드시 반복된다. 인간의 탐욕과 망각 본성 때문에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에서 온다. (외환위기 이후에 터진) 카드 사태, 저축은행 사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위기였다. 두 사건의 교훈은 ‘유동성이 넘쳐 흐르면 새로운 위기의 씨앗이 잉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가 그랬다. 저축은행 예금자보호 한도가 5000만원이다. 자산 100조원인 시중은행에 맡긴 예금과 시중은행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자산을 가진 저축은행에 맡긴 예금을 똑같이 취급했다. 고객들은 예금자보호도 되고 금리도 높은 저축은행에 분산해서 예금했다. 저축은행은 예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돈이 넘쳐나자 저축은행은 이 돈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했다. 부동산 PF는 3년 이상 자금이 묶인다. 고객은 예금을 6개월, 1년 단위로 단기간에 회수한다. 만기가 엇갈리면 유동성 위기가 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에게 어음발행을 허용한 금융당국 조치를 비판해왔다.

“은행과 증권업계의 대립, 업권 이해 관계를 떠난 이야기다. 원칙에 관한 문제다. 초대형 IB는 신생·혁신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고 시작된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증권사 5곳을 초대형 IB로 지정했다. 이들이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게 되면 어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음 발행해서 기업금융하고 부동산대출 틈새시장 공략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모험자본 제공한다는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초대형 IB는 금융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전업주의’(은행, 증권사, 보험사가 각각 자신의 금융서비스만을 수행하도록 전문화하고 다른 금융업무에의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는 제도)와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를 모두 허무는 조치다. 이제 초대형 IB는 증권업도 하고 은행처럼 예수·대출 기능도 갖게 됐다. 그런데 증권사에 기업대출을 허용하면서 금산분리 이야기는 없다. 재벌이 증권사를 사금고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기업집단이 증권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데 대한 문제 제기인가.

“초대형 IB에 예수·대출 기능이 없으면 상관없다. 자기자본 규모가 4조원인 증권사는 8조원까지 대출해줄 수 있게 됐다. 지방은행 가운데 자기자본 8조원 안 되는 곳이 많다. 이런 은행들은 금산분리 적용받는다. 업권 이해관계가 아니다. 원칙에 관한 문제다.”

―증권사가 은행업무도 할 수 있는 게 ‘겸업주의’다. 겸업주의를 찬성하지 않았나.

(하 회장은 올 초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증권사에 공정 경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자 “지금은 전업주의가 아니라 겸업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맞받았다.)

“겸업주의로 가야 하는 건 맞는 방향이다. 한 금융회사에서 은행, 증권, 보험 서비스를 모두 제공받을 수 있는 겸업주의야말로 소비자보호와 부합한다. 그런데 왜 증권사를 플랫폼으로 써서 겸업주의로 가야 하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은행을 플랫폼으로 해서 겸업주의를 한다.”

―새 정부 출범 후 네거티브 규제(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방식)로 전환해야 한다는 정책제안을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반드시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이 빅데이터다. 그런데 과도한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신탁업도 불특정금전신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고객이 돈을 맡기면서 지시한 대로만 운용할 수 있는 특정금전신탁만 가능하다. 그건 신탁업이 아니다. 은행이 직접 판매할 수 없는 상품을 신탁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판매하는 것에 불과하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자산 관리가 중요한 사회가 됐다. 이런 규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 여러 투자자의 돈을 모아서 한꺼번에 운용하는 집합운용도 허용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신탁을 허용하면서 은행에 집합운용을 못하게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지금도 네거티브 규제로 가야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는 큰데 실행은 안 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어떤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대해 모든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규제를 혁파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신용카드 정보유출 사건을 계기로 크게 강화됐다. 유출 사건 이후 규제가 강화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 ‘타깃’, 백화점 ‘니먼마커스’ 등에서 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은 기업과 시장이 배상하도록 했다. 무슨 사안이 생기면 ‘정부는 뭐 했느냐’고 비판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시장(민간)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시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면 정부는 뭔가 해야 하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은행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나.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인 은행을 보면 IT(정보기술) 쪽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9000명에 이른다. 페이스북 전체 직원이 9200명, 트위터는 3600명이다. 선진 은행은 IT 기업과 비슷하게 가고 있다.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현재 오르곤그룹 대표로 있는 비크람 팬디트는 ‘향후 5년 내 은행 직원의 30%를 AI(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미 은행 업무 중 고객이 직접 영업점에 가야 하는 업무는 전체 업무의 10% 미만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출현했고, 핀테크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기존 금융의 경쟁자는 핀테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러 은행 업무 가운데 핀테크는 자본이 얼마 안 드는, 자본효율적인 업무를 뺏어갈 것이다. 은행에는 자본집약적인 업무만 남게 된다. 결국 은행은 핀테크와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력)을 해야 한다. 은행업도 점점 플랫폼 비즈니스로 바뀔 것이다. 한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뱅크)의 고객수, 계좌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 은행은 플랫폼(카카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도 구글 등 플랫폼이 있는 곳과 협력해서 플랫폼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잘하고 있다고 보나.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은행은 특화된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가야 한다. 기존 은행과 인터넷은행이 같은 영역에서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윈윈도 아니다.”

―30여년을 뱅커로 살았다. 금융권에 남아있는 허상 같은 것은 없나.

“우리나라 금융과 관련해선 신기루가 있다. 금융허브라는 신기루다. 금융을 시장 기능에 맡기지 않으면서 금융허브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금융허브가 별 것 아니다. 수많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시장에 모여서 비즈니스를 활발히 하면 금융허브가 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주 여건 개선하는 것, 아무 소용없다. 이런 건 금융허브가 되는 조건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잘 벌게 해주면 된다. 그러면 다 한국으로 모여든다.”

정리=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사진=남제현 기자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1953년 전라남도 광양 출생●경기고 졸업●서울대 무역학과,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씨티은행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지역본부 임원●씨티은행 한국소비자금융그룹 대표●한미은행장●한국씨티은행장●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전국은행연합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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