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의회 인준청문회가 준 감동
철저 검증 속 축하행사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청문회 올 날은…





2009년 6월10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가 열린 미 상원 덕슨 빌딩.

캠벨 지명자의 모두 발언이 시작되자마자 방청석 맨 앞줄에서 한 아이가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던 엄마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아이를 안고 청문회장 밖으로 황급히 걸어나갔다. 그 아이는 캠벨 지명자의 셋째 딸인 크로에였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 위원장으로서 청문회를 주재하던 짐 웹 상원의원은 미소를 지으며 두 모녀를 바라봤다. 캠벨 지명자는 “위원회가 우리 가족을 초청해준 데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서 아내인 라엘 브레이너드(재무부 국제업무 담당 차관 지명자)와 세 딸, 그리고 장인과 장모를 차례로 소개했다. 장인인 앨버트 브레이너드에 대해서는 “냉전이 한창일 때 유럽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캠벨은 방청석의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청문회가 끝난 뒤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캠벨을 둘러싸고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의 장모인 조앤 브레이너드는 기자에게 “사위가 돌아가신 사돈 어른들을 대신해 우리를 불렀다”면서 “뜻 깊은 자리였으며 사위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인준 대상자의 가족들을 청문회장에 초청하는 것은 미 상원의 오랜 전통이다. 지난 4월 열린 고홍주(헤럴드 고) 미 국무부 법률고문(차관보급)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장에도 그의 어머니인 전혜성 박사 등 가족들이 방청석에서 고 지명자를 격려했다. 한국계인 리아 서 내무부 정책관리 차관보 지명자 인준 청문회에서도 그랬다. 리아 서 지명자는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한 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이들”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가족들이 청문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미 의회의 청문회가 통과의례로 끝나지는 않았다.

캠벨 청문회만 해도 그가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를 설립, 운영하는 과정에서 미 기업체로부터 받은 후원금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까지 지낸 뒤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자 CNAS를 만들었다. 지난 대선 때는 버락 오바마 후보의 외교 정책을 자문했고 오바마 정권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명실상부한 오바마 정부의 실세다. 의원들은 캠벨 지명자가 이런 영향력을 CNAS 후원금 모금 과정에서 악용하지 않았는지를 따져 물었다. 특히 오바마 정부 들어 기업체들의 연구 용역이 CNAS에 대거 몰린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검증 과정에선 여야가 따로 없었다. 캠벨 지명자는 준비한 자료를 제시하며 “규모에 비해선 큰 액수가 아니며 정부 윤리 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처리했다”고 답변했다. 맥락 없이 호통을 치는 의원도 없었고, 부당하게 모욕을 가하는 의원도 없었다. 그들은 묻고 대답할 뿐이었다.

 

 

한국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여야가 검사와 변호사로 갈려 공방을 벌이는 형사법정을 방불케 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전투적인 인사청문 분위기에 길들여진 기자에게 미 의회청문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 의회 관계자는 “청문회장의 신사적인 모습과는 달리 검증 과정은 지명자의 대학 시절 주차 위반 전력까지 파헤칠 정도로 철저하다”고 전했다. 캠벨 지명자만 해도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 동아태 차관보로 내정됐으나 CNAS 후원금 모금 과정 의혹 등을 스크린하느라 인준 요청이 수개월 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지명자는 지명 철회 등을 통해 깨끗이 물러나는 것도 미국 청문 과정의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마치 지명 축하 행사를 치르듯 인사청문이 진행된 것은 겉모습일 뿐, 그 이면엔 철저한 검증 과정과 지명자들의 책임 있는 처신이 전제돼 있다는 것이다.

의혹투성이 인사를 버젓이 고위직에 지명하는 정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는 지명자, 당리당략을 국익에 앞세우는 청문위원들이 존재하는 한, 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축하 행사처럼 진행되는 인사청문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쇄신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이번엔 가족들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지명자들이 인사청문회장에 서길 기대한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coolm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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