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고바이크에 아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자크씨. 스웨덴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말뫼=정지혜 기자

#1.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빨리 뛰는데 어떻게 똑같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건 신체적 차이일뿐 인권은 평등한 가치라고 말해줍니다. 가정에서 잘못 형성된 성 관념을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고쳐주죠.”

스웨덴 남부 도시 말뫼의 스타펠베드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에밀리에 크론베크씨는 성평등 교육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동료 교사인 페트라 롱후르스트 클랑씨는 “성평등 사회는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교육이 필요하다”며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부모에게 전달함으로써 가정의 성평등관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 “스웨덴 사회는 아빠들의 육아가 일상화된 것은 물론 남성의 사회교류 방식으로도 정착한 모습입니다. 놀이터나 도서관에 가면 비슷한 육아 고민을 가진 아빠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동지애를 다져요.”

말뫼에 거주하는 마르틴 야르보씨는 자신의 육아 경험을 소개하며 아빠들 간의 연대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 해보는 육아는 고되지만 다른 아빠들과 늘 ‘육아 동지’로서 모일 수 있기에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라떼 파파’(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라는 용어도 정작 이곳에서는 낯선 말이다. “아빠가 아이를 보는 것이 왜 특별한 일이냐”고 반문할 정도로 양육자로서 엄마와 아빠의 구분이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 포용적 성장을 앞세워 신뢰와 공정성을 끌어올린 복지국가 스웨덴은 모든 국민이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는 나라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평등 사회로 잘 알려져 있다. 유럽성평등기구(EIGE)에 따르면 스웨덴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럽 내 성평등 국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성별에 따른 권리나 기회의 제한이 분명히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다. 여성 인권 향상, 육아·가사의 동일한 분담, 성평등 교육의 일상화 등은 이렇게 사회에 뿌리내렸다.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4일까지 스웨덴 곳곳을 방문해 성평등한 공정사회의 저력을 살펴봤다. 이곳에서는 정부, 기업, 시민이 한마음으로 성평등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도록 선순환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의 자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사회가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인력 낭비가 없고 세금도 더 많이 거둘 수 있으며 일·가정 양립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 따라온다. 또한 의지와 노력을 통해 누구나 계층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스웨덴의 높은 사회이동성 지수(세계경제포럼 기준 전 세계 4위)의 발판이 됐다.

◆“여성은 힘 기르고 남성은 지지자 역할”

스웨덴의 전문가와 시민들은 성평등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성별 불평등이 존재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실행하는 제도는 전향적일 수 없고 탁상공론에 그치게 된다. 스웨덴은 적극적인 성평등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합의에 이른 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일·가정 양립을 해낼 수 있도록 제도와 지원을 실질적으로 정비했다. 세 차례의 대대적인 육아휴직 개혁을 통해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고용주는 직원들이 이를 마음껏 활용하도록 장려했다. 어린 자녀가 아프면 엄마든 아빠든 눈치보지 않고 휴가를 내거나 집에서 근무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여성과 남성 모두 이전과는 달라져야 했다. 여성은 정치·경제적 힘을 길러 자립 능력과 가정 내 동등한 권리를 획득했다. 지난해 기준 스웨덴은 장관급 직책 여성이 57%, 여성 의원 47%, 대기업 여성이사 비율 39% 등을 달성했다. 이 같은 지표를 통합한 성평등 권력(power)지수는 100점 만점에 84.2점을 받아 유럽 국가 중 월등한 1위다. 반대로 남성은 육아·가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일·가정 양립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레나 벵네루드 예테보리대 교수(젠더학)는 이런 단계에 도달하려면 “여성들은 더 많이 주장하고 쟁취해야 하며 남성들은 이를 잘 듣고 지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상적 남성성은 재정의됐다. 스톡홀름에서 만난 시그룬 시시씨는 “자기 시간을 가정 내에서 충실히 공유하는 남성이 ‘진짜 남자답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이제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파트너로 원하고, 남자들 역시 좋은 양육자가 되는 것을 삶의 중요한 목표이자 권리로 여긴다”고 말했다. 린다 릴 말뫼대 교수(사회학)도 “스웨덴에서는 남성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남성들 입장에서도 여성이 경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득이라고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육아휴직 중인 요한 올드브링씨가 집에서 어린 딸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말뫼=정지혜 기자

◆남성 육아휴직, 안 하면 더 튄다

스웨덴의 라떼 파파는 남성의 자발적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다. 약 2주 동안 스톡홀름, 말뫼, 예테보리의 거리 곳곳에서 눈만 돌리면 유모차를 끄는 남성과 마주쳤다. 유모차 곁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숫자가 비슷했다는 점에서 이곳의 남성 육아휴직이 얼마나 잘 자리 잡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엄마와 아빠가 동일한 기간 육아휴직을 번갈아 쓰는 것이 일상화됐다고 한다. 엄마가 일하고 있을 시간인 평일 낮, 공원이나 놀이터는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아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인기 장소다.

말뫼에서 아트 프로듀서로 일하다 지난 4월부터 4달째 육아휴직 중인 요한 올드브링씨는 “아이를 돌보며 엄마들이 느꼈던 감정을 아빠가 똑같이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도 엄마와 아빠에게 똑같이 친밀감을 느끼는 등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빠는 늘 일을 했기 때문에 엄마랑 더 가까웠다고 한다. 올드브링씨는 “나만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들이 다 같이 자연스럽게 쓰는 분위기이고 커리어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도 큰 몫을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여성이든 남성이든 육아휴직 중인 사람이 모든 집안일도 책임지며, 상대방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법·제도·교육이 이끈 시민의식 개선

스웨덴 사회에 정착한 높은 성평등 의식은 저절로 숙성된 것이 아니다. 여성 인권 신장을 통한 성평등에 도달하기 위해 제도권과 시민단체의 일관되고 오랜 노력이 있었다. 올해는 스웨덴 여성이 첫 투표권을 행사한 지 100년이 된 해다. 1970년대에는 거센 페미니즘 물결에 힘 입어 부부가 아닌 개인별 소득세 징수, 고품질 저비용 보육정책이라는 두 가지 주요 법안이 통과됐다. 이런 배경이 여성들의 직업활동 진출을 촉진했다. 초등학교, 어린이집에서부터 성평등 교육이 이뤄진 것은 물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이 매우 상식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자리잡혔다.

2014년 전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부’를 선언한 스웨덴 정부는 모든 정책 및 예산 계획 시 우선순위에 성평등 가치를 놓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카린 스트란도스 성평등부 차관은 지난 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 역시 90년대에는 사회 전반의 성 인지 능력을 높이는 데 난관을 맞았다”며 “무엇이 수용 가능한 범주인지에 대한 자각 등에 있어 ‘규범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굉장한 노력을 요하는 전환”이라고 밝혔다.

스트란도스 차관은 “힘들더라도 성평등 의제를 자꾸 이야기 할수록 문제의 심각성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으며, 얼마나 더 많은 층위의 논의가 필요한지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스웨덴이 정부 차원에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성 주류화에 대해 “규범을 바꾸려면 통계와 확실한 근거를 사회가 직면하도록 해야 한다. 성차별적 맥락을 내포한 데이터를 계속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현실이 절대 평등하지 않음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평등 연구 지원 등을 전담하는 정부 기관인 스웨덴 성평등에이전시(Swedish Gender Equality Agency)의 안나 콜린스팔크 수석도 “때로는 법과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후에야 사람들이 이를 내면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더 많은 자료와 통계를 내밀고, 미디어는 여성의 성취를 더 많이 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콜린스팔크 수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여러 나라의 사례를 비교하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여성의 역할을 돌봄노동자로 한정하는 한 여성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성평등을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여성의 경제적 참여는 제로섬도 아니고 남성들이 패배하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며 “모두가 이기는 길이라는 점을 정부나 미디어가 더 잘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젠더연구 도서관 ‘크빈삼’ 자료실 전경. 예테보리=정지혜 기자

◆북유럽 최대 젠더연구도서관 ‘크빈삼’

스웨덴이 성평등 사회의 토대를 단단히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은 변화를 주도해 온 여성의 기록을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방문한 국립 젠더연구 도서관 ‘크빈삼’(KvinnSam)은 이러한 작업을 북유럽 최대 규모로 하는 곳이다. 예테보리대학교 도서관 안에 자리한 이곳은 1958년 ‘여성 역사 기록관’으로 시작해 1997년 ‘국립 젠더연구도서관’으로 격상됐다. 도서관 이름은 스웨덴어로 여성을 뜻하는 ‘크빈(Kvinn)’과 수집물을 뜻하는 ‘삼(Samling)’을 결합해 만들었다. 스웨덴 여성운동의 역사와 인물별 업적, 여성문학, 120여종의 젠더연구 간행물, 여성 혹은 성 인지적 관점으로 쓰인 책과 언론기사 등이 방대하게 아카이빙돼 있다. 현재까지 15만건 넘는 데이터가 쌓였으며 지금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이곳의 사서인 산나 헬그렌씨는 “처음엔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 만큼 열악했지만 지금은 사서가 8명에 이르고, 국립 자료도서관으로서 존재감을 확보했다”며 “여성 활동가나 기관들이 자신의 기록과 자료를 믿고 맡길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스톡홀름, 말뫼, 예테보리(스웨덴)=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헬싱키 외곽 지역에 형성된 사회주택 단지.

핀란드는 3년 연속 국민 행복지수가 ‘세계 1위’인 나라이다. 보편적 사회복지망을 통해 국민 행복지수와 공정성을 높였다. 특히 핀란드의 주거정책은 한국과 견줘 주목할 만하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계급을 가르는 척도로 통한다. 이 때문에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아닌 사람에게 내 집 마련은 평생의 목표이자 숙제로 남는다. 월급의 대부분을 전세대출금을 갚거나 월세를 내는 데 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핀란드 정부는 주거 불평등의 문제를 ‘사회주택’으로 풀어냈다. 저소득층과 노숙인, 장애인, 청년, 노인 등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집을 공급한다. 월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홈리스가 되지 않도록 지자체에서 600유로의 주택보조금을 준다. 이 때문인지 핀란드 길거리에선 구걸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고 해도 다른 유럽연합(EU) 국가에서 온 집시들이다.

사회주택을 제공받는 수혜자도 많다. 공급 가능한 물량이 많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저소득층은 물론 취약계층에게도 보금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여 사회 경제적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평생 살 수 있는 헬싱키·에스포 사회주택 가보니

“정부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죠. 바로 사회주택입니다.”

에스포의 사회주택 단지.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의 부오사리에서 만난 이동욱(29)씨는 사회주택의 특징을 설명했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인 이씨는 핀란드 이민 5년차다. 올해 초 아내와 딸과 함께 사회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이씨는 지금 살고 있는 사회주택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그동안 도심과 떨어지고 치안도 불안한 69㎡짜리 아파트에서 살면서 매월 1270유로를 냈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도 편리한 102㎡ 규모의 아파트에서 전보다 저렴한 월세를 내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했다.

여기에 이씨가 사는 사회주택은 사교 모임실에 옥상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집기류 역시 정부가 제공한다. 이마저도 살 수 없는 저소득층은 지자체에서 지원해 준다. 이씨는 “핀란드 국민 역시 내 집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저렴한 사회주택이 발판이 되고 있다”면서 “이민을 와서 정착하는 데 여러 경제적 어려움이 따랐는데 사회주택이 집에 대한 부담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헬싱키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필리페씨.

또 다른 헬싱키의 사회주택 단지에서 만난 필리페씨 역시 2년 전 사회주택에 입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사회주택에서 지내고 있는데 무엇보다 조건이 비슷한 주택보다 30~40% 월세가 저렴해 가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포는 헬싱키로부터 18㎞ 정도 떨어진 위성도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분당 혹은 일산 정도의 입지다. 최첨단 산업시설이 많고 헬싱키와 인접해 대규모 사회주택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 만난 비사씨는 17년째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주택은 한번 입주하면 원할 때까지 살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살면서 주거에 대한 불안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촌에 사회주택 건설해 소셜믹스 실현

사회주택을 명칭하는 국제표준은 아직 없다. 이 때문에 소유권과 공급자, 재원, 공급목적 등에 따라 국가별로 다양하게 부른다. 핀란드에서는 사회주택을 ‘정부지원금을 받는 주택’으로 정의했다. 정확히는 ‘카오풍키 아수토(Kaupunki Asunto·도시의 집)’라고 부른다.

핀란드의 사회주택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임대주택과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 점유권이 보장된 임대주택으로 나뉜다. 이런 사회주택은 환경부 산하 주택청(ARA)이 공급과 운영을 맡는다.

야르모 린덴 ARA 부청장은 “현재 ARA가 관리하는 사회주택은 41만5000여가구로 핀란드 전체 주택시장의 약 15%를 차지한다”면서 “핀란드 국민(554만8361명) 7명 중 1명은 사회주택에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핀란드의 주택 비율은 개인이 소유한 자가는 줄어든 반면 임대주택은 늘었다. 1990년대 자가 거주자는 66.8%였으나 2019년에는 55.6%로 줄었다. 사회주택과 같은 임대주택은 1990년대 24.7%에서 2019년 32.8%로 증가했다.

사회주택 입주자에 대한 배려도 엿보인다. 핀란드는 사회주택을 한곳에 모아 대규모 단지로 만들지 않는다. 사회주택과 일반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소셜믹스(Social Mix)’ 제도를 적용했다. 이 때문에 부촌 내에서도 사회주택이 존재한다. 소득이 적은 입주민이 거주하는 사회주택도 교육과 교통, 편의가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배경의 주민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다. 또 같은 동네 주민일지라도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 사회주택과 일반주택을 구분하기 어렵다.

야르모 린덴 부청장은 ‘핀란드 사회주택의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집값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균형적인 발전을 이룩한 게 성과라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부촌이 있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이 있는데 사회주택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공통적으로 월세가 싸기 때문에 거주권에 대한 불평등을 줄였다”고 평가했다.

◆‘주거 빈곤 최약체’ 노숙인 줄이기 팔 걷어

ARA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사회주택 공급 대상은 바로 노숙인이다. 핀란드 정부는 2026년까지 집 없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ARA는 지자체, 비영리 민간단체와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을 발굴해 사회주택을 제공한다.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듯 실제로 핀란드의 노숙인은 감소세다. 2017년 7112명에서 2018년 5482명, 2019년 4600명, 지난해 4341명으로 매년 노숙인이 줄고 있다.

정부의 손이 사회 구석구석 닿을 수 없는 만큼 비영리 민간단체의 역할도 커졌다. ‘와이파운데이션’과 ‘구세군’이 대표적이다. 특히 와이파운데이션은 1만7000가구의 사회주택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홈리스나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 등 주거가 불안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신청 절차를 간소화해 빠른 입주를 돕는다.

핀란드의 사회주택이 활발하게 형성될 수 있는 배경은 높은 사회지출비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비는 1965년 5%에서 2010년 이후에는 30% 수준까지 올랐다. 개인당 복지 지출액은 1970년대 1500유로, 1980년대 3200유로, 1990년대 5800유로, 2000년 6800유로, 2010년 이후에는 1만유로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핀란드가 복지사회만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주택보조금을 주는 지자체는 ‘재정 건전성 유지의 원칙(재정적자 시 다음해는 반드시 흑자재정 편성을 법으로 규정)’을 근거로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핀란드의 양질의 복지는 모두가 함께 잘살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뿌리가 됐다. ARA 관계자는 “국민의 소득에 대한 자발적인 성실신고가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공정사회로 나아가는 복지정책의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헬싱키·에스포(핀란드)=글, 사진 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신영규 THL 방문연구원 인터뷰

핀란드 국민들, 부 재분배 당연시 해
소득의 24~35% 높은 세금 받아들여

한국사회, 선진 사례 따라가기 힘들어
현실 가능한 목표부터 세워 접근해야

국가가 사회 취약계층에게 공공주택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핀란드 복지모델은 사회경제적 경쟁의 출발선을 같게 하겠다는 다른 북유럽 국가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핀란드가 공정성 담보를 위한 복지 확대에 나선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숱한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줄이면서 탄탄한 공정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공정사회’ 핀란드를 떠받치는 가장 굳건한 버팀목은 높은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신영규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원(THL) 방문연구원은 “사회주택 재원으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고용주 기여금 등이 있지만 가장 든든한 지원은 기꺼이 세금을 많이 내겠다는 국민적 공감대”라고 단언했다.

핀란드는 소득에 따른 세금 누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핀란드 국민은 일반적으로 소득의 24~30%를 세금으로 낸다. 물론 소득의 10~15%를 내는 저소득층도 있고 소득의 60%까지 세금을 내는 계층도 있다. 핀란드의 복지재원을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부유층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 취약계층을 도와 사회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신영규 연구원은 “핀란드 국민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특히 북유럽에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계속 방치하면 더욱더 그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핀란드에서도 우파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한국이나 미국보다 강하지 않다”며 “부의 재분배, 공정 경쟁, 불평등 완화를 국가가 지향해야 할 당연한 가치로 본다”고 전했다.

신 연구원은 핀란드의 복지 점수를 10점 만점으로 뒀을 때 최고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장 계량화하긴 힘들지만 복지의 관대성과 포괄성 등을 종합하면 핀란드의 복지 점수는 만점에 근접하다”면서 “아직 한국의 복지 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 15~20%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봤다.

신 연구원은 한국이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핀란드와 같은 선진 사례를 좇아 그대로 이식할 게 아니라 한국형 공정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특히 재난지원금의 100% 지급과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지원, 기본소득과 안심소득 논란처럼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비슷한 부분이 더 많다”며 “한국은 부의 재분배가 좀더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선별복지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보편복지는 ‘모두에게 다 준다’는 뜻도 있지만 정작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덜 지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서다.

신 연구원은 “선별복지의 장점은 재분배 효과가 크다는 것”이라며 “보편적으로 다 주고 나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 받아서 재분배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복지체계 디자인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한국형 공정모델을 개발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헬싱키=배소영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인근의 작은 마을 오덴세에는 ‘동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데르센의 작은 생가가 있다. 구두 수선공 아버지, 세탁부 어머니와 함께 단칸방에서 지내며 가난했지만 성공을 꿈꿨던 안데르센의 유년시절을 간직한 곳이다. 그가 창작한 동화 ‘미운 오리새끼’는 자신의 도약 스토리이기도 한데 그의 성공은 국민 개개인의 적성과 재능을 중시하면서 다양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덴마크 교육·취업시스템의 바탕이 됐다.

기자는 덴마크에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국민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배경에는 계층 이동의 주요 통로인 교육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이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학교마다 학생 수준에 맞는 다양한 학습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자율형사립고교(자사고)와 특수목적고교(특목고)를 없애고 평준화 교육을 추구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 결과 덴마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처음 발표한 ‘전 세계 사회이동성 지수’(Global Social Mobility Index)에서 1위로 평가됐다.

◆입시경쟁 대신 적성에 주력하는 덴마크

덴마크에서 만난 청년들은 무엇보다 적성을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다고 입을 모았다. ‘갭 이어’(Gap year)가 대표적이다. 한국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고등학교 시기에 덴마크 학생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진로를 찾기 위한 여행이나 인턴십을 한다. 덴마크 고등학생 85% 이상이 1년 이상 갭이어를 갖는다.

코펜하겐대학교에서 다문화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마틴 한센(28)은 “덴마크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생각이 유연하다”고 말했다. 그의 본래 전공은 정보통신기술(ICT)이었으나 중간에 다문화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2년간 갭이어를 가지며 이스라엘을 여행했는데 여러 국가의 사람을 만나며 다문화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적성을 찾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덴마크 오덴세에 있는 동화작가 안데르센 동상. SEA 제공

로스킬데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 중인 요아킴 베르너(27)는 덴마크 알츠하이머 협회에서 인턴십을 하며 만든 다양한 콘텐츠에 흥미를 느껴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덴마크에서 기업 인턴십은 교육 과정의 하나로 여겨지는데 정부가 사실상 임금을 제공한다”며 “기업과 정부 모두 학생들이 다양한 기회를 갖고 사회에 기여하는 시민으로서 교육되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에서는 나이가 취업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빵집에서 일해 온 프리다(25)는 최근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 입시에 뛰어들었다. 그는 “공부를 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것은 없다”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학생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 교육기관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코펜하겐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최현주 교수는 “대학마다 설치된 소위원회들이 학생들 각자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장애 등 약점이 있는 학생이 다른 장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위원회가 교육과정을 살피고, 평가기준을 만드는 식이다. 최 교수는 “학생들 스스로도 자신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을 학교에 건의한다”며 “덴마크에선 학생이라는 신분이 사회를 이끌 책임을 갖고 공부를 일처럼 하는 하나의 직업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오비브로의 ‘스포츠 에프터스콜레’(SEA) 학생들이 일과 후 시간에 함께 운동을 즐기고 있다. SEA 제공

◆공동체주의와 책임감 함양하는 ‘에프터스콜레’

덴마크 중학생(9학년) 중 절반가량은 졸업 이후 곧바로 고교에 진학하는 대신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라는, 일종의 자유학교에 진학한다. 학생들은 기숙생활을 하며 1년간 스포츠, 음악, 미술 등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배운다. 의무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등록금은 일주일에 최대 2500크로네(약 45만원) 수준으로 다소 비싸다. 하지만 부모 소득에 따른 국가 지원금이 있어 학생 차원에서는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덴마크 북쪽 도시 오비브로에 위치한 ‘스포츠 에프터스콜레’(SEA)를 찾았다. SEA 학생들은 오전 6시50분에 기상해 방과 학교 담당구역 청소로 하루를 시작한다. 교과목은 민주주의, 윤리, 언어, 수학 등 필수과목들로 구성돼 있다. 오전에 2교시, 오후에 3교시 수업을 하고 오후 6시쯤 저녁식사를 한다. 이후 학생들은 교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거나 스포츠나 음악 등 공동체 활동에 나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고교 졸업 이후의 진로를 결정한다. 학교나 부모가 정해 주는 대신 학생 스스로 인생의 길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앱슨 마티아센 SEA 교장은 “에프터스콜레는 아이들이 사회로 나갔을 때 책임감 있는 사회 구성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개인주의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티아센 교장은 “적성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학생이 있을 때 학교가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며 “학생들은 공동체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졸업 이후 진로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에프터스콜레 졸업 후 학생들은 일반 고교에 진학하거나 전문기술학교, 상업학교 등을 선택한다.

◆정부 신뢰와 복지가 끌어올린 사회 이동성

덴마크 청년들은 폭넓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정부와 사회에 대한 높은 신뢰도, 복지정책을 통해 줄어든 직업 간 격차 덕분이다. 덴마크는 평균적으로 소득의 40%대를 세금으로 거둬 직업별 소득 보존 등 적극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조성한 재원 덕분에 우리나라의 유치원 막학기에 해당하는 0학년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전 교육과정이 무료다. 대학에 입학하면 정부에서 매달 국가교육지원금(SU)이 나온다. 학생들이 학비·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계층간 소득불균형 정도를 0(완전평등)과 1(완전불평등)을 기준으로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활용해 2018년을 기준으로 덴마크를 분석한 결과 세금이 부과된 전후 지니계수는 0.40에서 0.27로 0.13%포인트가량 격차가 줄었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같은 기간 세전 0.37에서 세후 0.33으로 0.04%포인트가 변했다.

크리스티안 비욘스코프 오르후스대 교수(경제학)는 “덴마크 역시 직업별 사회적 지위와 소득격차는 존재하지만 대기업 이사가 청소부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직업 간의 격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여러 지표에서 덴마크가 사회이동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지만 막상 국민들은 계층을 특별히 인식하고 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덴마크인들은 정부가 나라를 공정하게 이끈다고 믿는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덴마크의 정부신뢰도는 72%로 한국(45%)의 1.6배에 달한다. 국가청렴도는 같은 해 100점 만점에 88점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덴마크가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사회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선순환의 원동력이다. 벤트 그레우 로스킬데대 교수(사회과학)는 “모든 시민이 공정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품질 좋은 사회복지시스템은 국민들이 사회를 공정하다고 여기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분야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덴마크에서는 대도시와 시골에 사는 청년들의 빈부격차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소도시의 청년들에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레우 교수는 “덴마크에는 8개 대학이 큰 도시에 하나씩 있는데 작은 도시로 대학을 쪼개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시골에 살면 일자리나 교육에 있어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은 것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도시에 집중돼 있는 기업을 지방으로 보내 균등발전을 도모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도 높은 복지 수준에 따른 노동 의욕 감소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비욘스코프 교수는 “실업급여나 빈곤 복지 지원으로 인해 덴마크 실업자의 10~15%가 직업을 가지고 일할 동기가 없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며 “지난 25년 동안 덴마크 내에서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지만 이를 해결할 정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대목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코펜하겐, 오덴세, 오비브로(덴마크)=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에밀 라우센 가족이 코소르 자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에밀 라우센, 딸 로아, 리나, 아내 서유민씨.

“개천에서 용 난다고요? 모두가 용일 수는 없을까요?”

한국에서 16년간 생활하며 ‘상상 속의 덴마크’를 집필한 작가 에밀 라우센은 한국 사회의 계층이동 문제에 대해 “덴마크에 비해 진학이나 취업 과정에서 경쟁이 심한 환경 때문에 생겨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31일 덴마크 코소르 자택에서 만난 에밀은 “덴마크의 사회계층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며 “직업이나 부(富)로 계층을 나눈다는 것이 덴마크에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덴마크에서 직업은 사람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업이 있는 거지 남들과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덴마크에는 ‘얀테의 법칙(Janteloven, Law of Jante)’이란 게 있다. 자신을 남보다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일종의 사회규범이다. 그는 “덴마크에서 의사나 변호사 등 일부 직업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에서는 일부 해외 영업직을 제외하고 굳이 명함을 만들지 않는다. 사회적 권력을 가진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격 없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에밀의 아버지는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이고 어머니는 교사지만 에밀에게 직업이나 진학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어떤 꿈이 있니”, “좋아하는 것이 뭐니”라고 꿈을 물었을 뿐이다. 실제 그는 학창시절 7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1년 반 동안은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에밀은 “부모님이 교회를 안 다녔는데 신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며 “한국이었다면 부모님이 이해를 못 했을 수도 있다”고 웃음 지었다.

덴마크가 과거부터 이런 모습은 갖춘 건 아니다. 덴마크 1950∼60년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환경미화원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며 직업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묘사되곤 한다. 에밀의 아버지가 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도 부모의 영향이 컸다. 에밀은 “지금 같은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 덴마크인들의 많은 노력과 논의가 있었다”며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의 나라’라는 명칭이 붙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덴마크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에밀은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자유에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며 “때로는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강박관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답은 없다”며 “다만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한 건 확실하다”고 조언했다.

코소르=안승진 기자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승자독식 한국 사회에서는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신의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사교육 과잉투자로 이어지죠. 사교육은 계층 대물림을 작동시키는 원리가 되고 있고요.”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 노동시장 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티모 플렉켄슈타인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사회정책학)는 한국의 경직된 사회이동의 주 요인으로 ‘과잉교육’을 꼽았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끈끈한 바닥(sticky floor)’과 ‘끈끈한 천장(sticky ceil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최상층부와 최하층부에서 사회이동이 일어나기 힘든 불평등 사회를 조장하는 데 있어 한국에서는 사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평등·양극화 문제 해소에 천착해온 박현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사회학)는 이른바 ‘개천용 담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박 교수는 “절대적으로 개천용이 줄어든 것은 직업구조 변화 등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보다는 파이가 성장하며 늘어난 기회를 저소득층이 얼마나 잡을 수 있었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층이동의 양적 측면보다는 분배의 질적인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미국 뉴욕대 공공지식연구소장도 불평등이나 사회 갈등, 양극화 문제를 구조(환경)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저서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폭염사회’ 등을 통해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사람들이 대면해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 현대적 도시를 설계했기 때문에 계층 간 분열과 고립이 심화했다”고 진단한다. 훌륭한 공간들이 민간에 의해서만 제공되는 것은 부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접근성의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끊어진 계층사다리를 주제로 연중 기획물을 연재하고 있는 세계일보는 이달 19∼22일 박 교수와 플렉켄슈타인 교수, 클라이넨버그 소장과 각각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현준 美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왼쪽부터), 티모 플렉켄슈타인 런던정경대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공공지식연구소장

이들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엘리트 시스템, 경제적 불평등 심화, 분배와 평등에 대한 소극적 인식 등이 사회의 공정함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낮은 사회이동성으로 나타났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인터뷰는 사회이동성 최상위 국가인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3국에 대한 현장 취재를 앞두고 이뤄졌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처음 발표한 ‘전 세계 사회이동성 지수(Global Social Mobility Index)’에 따르면 사회이동성 최상위 4개국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 82개국 중 25위로 경제력(12위)과 비교해 사회이동성 지수가 낮은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사회이동성 지수는 한국보다 더 낮은 27위에 그쳤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은 공통적으로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고 평등, 사회적 재분배를 높은 가치로 두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사회 불평등 해소에 나서고, 포용적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은 이들 ‘공정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개천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한국과 미국에서 사회이동, 교육불평등, 사회계층, 노동시장 등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박현준 교수는 ‘개천용 담론’으로 사회 개방성을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이 점점 줄고 더 어려워진 것은 직업구조 변화와 경제 발전 등에 따른 측면이 크며, 이 자체로 사회가 이전보다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진단이다.

박 교수는 단순히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높은 계층으로 옮겨갈 수 있느냐는 ‘절대적 이동’보다는 계층별로 상위 계층에 도달하거나 유지하는 정도를 비교하는 ‘상대적 이동’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계층 간의 절대적인 이동이 이전 세대에 비해 현재 세대에 피자 크기가 얼마나 커졌는지 혹은 작아졌는지를 분석하는 문제라면 상대적 이동은 크거나 작아진 피자를 어떤 계층 출신이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유동성 혹은 기회의 불평등을 가리키는 지표는 절대적 이동이 아닌 상대적 이동 수준을 평가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사회이동을 늘리기 위해서는 ‘파이’를 키우는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평등 또는 격차 줄이기가 공정사회를 만드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직업구조가 농민 위주인 사회가 화이트칼라층 중심인 사회로 변해가면서 사회 전반의 절대적 이동이 늘어났듯이 4차 산업혁명 등을 계기로 다시 절대적 이동은 늘어날 수 있다”며 “하지만 늘어난 파이를 상층부가 먼저 가져가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러면 절대 이동이 늘더라도 개방된 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계층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불만이 나오는 데 대해 박 교수는 “올라가고 내려오는 정도는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다리 간의 높이 차가 더욱 커진 데서 기인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층부와 하층부의 격차는 계속 커지는데 기회가 열리면 상층부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를 먼저 포착해 버리니 박탈감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 이슈와도 연결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선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기회의 공정’이 양극화나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계층 세습화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고 반문했던 ‘능력주의 신화’의 문제점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논의의 초점을 보다 근본적으로 상대적 이동 기회를 늘리는 것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진 파이를 저소득층이 얼마나 더 가져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노동자 계층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을 높여 이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박 교수는 “기득권층이 개혁을 주도하기는 힘들 것 같고 결국 정치와 정책의 영역”이라며 “불평등 구조를 바꾸려면 분배 측면에서 굉장히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위정자들에게 먼저 당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보다 북유럽 모델 참고해야”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한국의 과잉교육 현상에 주목하는 사회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국제적 기준으로 봐도 극심한 수준인 한국의 사교육 열풍이 사회의 기존 계층 질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한국의 사교육은 당신이 어떤 계층에 속해 있든 간에 이를 유산처럼 다음 세대로 내려보내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며 “불평등을 조장하고,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의 투자에 따라 계층 세습화를 용이하게 만드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계층 대물림을 위해 가장 큰 공을 들이는 부분 중 하나는 교육, 구체적으로는 ‘학벌’이다. 한국의 대학교 시스템은 명문대 중심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고 그 간판을 따기 위한 주요 방법은 엘리트 교육에 있다. ‘SKY’, ‘인서울’을 위해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열에 집착해 과도한 경쟁을 벌인다. 이러한 불안은 계층 고착화와 과잉교육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게 만든다.

플렉켄슈타인 교수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수직적 엘리트 시스템에 의존하고 사회보장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사회이동성 지수에서도 한국(25위)과 미국(27위)은 ‘도긴개긴’이다. 특히 한국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에 지출하는 비용이 너무 적고 세금도 매우 적게 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시스템이나 공정함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탓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기 힘든 악순환도 발견된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는 문항에 10명 중 6명이 ‘그렇지 않다’(60.4%)고 답했다. ‘자신의 계층상승이 힘들 것 같다’고 답한 서울 청년은 10명 중 7명(69.5%)에 달했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는 사회적 이동성을 약화시킨다”며 “사회적 계층이 낮을수록 사다리를 점점 더 올라가기 힘들고,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사회이동성 측면에서 실패한 미국보다는 유럽의 사회·교육정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도덕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도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평등한 사회일수록 경제성장률도 높은 경향이 있다”며 “더 많이 가진 강한 사람이 더 큰 짐을 지고, 취약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자원의 공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자원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대표적 나라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회적 인프라의 중요성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 사회적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이제 ‘사회정의’의 문제가 됐다”며 “이는 사회이동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대표적 수단으로 도서관을 든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이와 같은 ‘모두를 위한 궁전’이 늘어나는 것이 불평등 해소와 사회이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같은 계급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배타적 성격의 공간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량적 사회 인프라’를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사회의 주된 원칙”이라며 “통합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이들은 늘 존재하지만 그런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모든 사람은 모든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현대 사회에서는 서로 분리된 삶을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다양하고 개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만 더 나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지혜, 안승진, 배소영 기자 wisdom@segye.com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5년 사회부장 시절 부원들과 함께 제주도 백록담 등반에 나섰다. 제주 둘레길이나 걷고 올까 했는데 편집부 등반 모임에서 백록담을 갔다 왔다는 말에 혹한 것이다. 어느 블로그에도 백록담은 그렇게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는 글이 있어서 청바지 차림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부원들과 백록담 인증샷을 찍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정상을 밟지 못했을 것이다. 고생한만큼 일생의 추억으로 남았다. 나중에 다녀와서 그 블로그를 다시 찾아가 보니 등산 동아리 블로그였다. 물론 내려온 다음에는 전날 술을 마시고도 백록담을 성큼 다녀왔다고 두고 두고 자랑하고 다닌다.  

이걸 보려고 그 고생을 하고 올라왔나 싶을 정도인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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