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하) 취약층 디지털 고립 심화

양금자(가명·60)씨는 재작년 인천의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며 만학도가 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확산한 비대면 수업 환경은 그에게 낯설기만 했다. 조카가 입학 선물로 사준 노트북을 두고도 양씨는 수업 내용을 손으로 필기했다. 컴퓨터 사용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서다. 손으로 적다가 수업 내용을 놓치기 일쑤였다. 수업 자료를 파일로 제공한다는 것은 시험이 끝나고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컴퓨터를 배워보려고 했지만, 한 달에 30만원이나 하는 교습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특히 조별 과제가 있는 수업은 더 힘들었다. 자료 조사부터 발표까지 모두 컴퓨터로 수행돼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손주뻘 동기생들에게 계속 도움을 청하기도 부담스러웠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업을 그만둬야 할 형편이라 시험이 다가올수록 그의 두려움도 커졌다. 입학 후 첫 시험날, 결국 그는 ‘커닝’을 택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시험장 책상에 붙어 있는 거리두기 안내문에 예상 문제 답안을 적었다. 해당 시험에서 적발돼 결국 0점 처리가 됐다.

스마트폰·PC 등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고령층·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디지털 역량은 여전히 일반인과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양씨처럼 디지털 기기가 있어도 못 쓰는 경우가 적잖다. 지역적·경제적 여건과 문화·교육 수준의 격차로 인해 벌어지는 디지털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사회 계층 간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령층·장애인, 디지털 역량·활용 낮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2022 디지털정보격차 보고서’를 보면 일반국민 대비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성 수준은 2020년 93.7%, 2021년 94.4%, 2022년 96%로 해마다 증가했다.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역량 수준은 2020년 60.3%, 2021년 63.8%, 2022년 64.5%로 70%를 넘지 못했다.

디지털 역량 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은 고령층이다. 지난해 고령층 디지털 역량 수준은 54.5%로 정보취약계층 가운데 가장 낮았다. 특히 연령별 디지털정보화 수준을 보면, 20대(127.2%)를 정점으로 70대 이상(55.6%)까지 계속해서 낮아진다. 70대 이상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20대보다 2배 이상 낮았다.

장애인 역시 접근성에 비해 디지털 역량 수준이 낮았다. 지난해 장애인의 디지털 접근성 수준은 96.7%였던 것에 반해 디지털 역량 수준은 75.2%에 그쳤다. 장애 유형별로 보면 장애인 가운데 시각장애인이 가장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낮았다.

이준범 세종점자도서관 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려면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이 관장은 “아파트 월패드(주로 신축 아파트에 설치된 홈 네트워크 기기로서 집 내에서 방문객 출입 통제, 가전제품 제어 등의 역할)를 보면 시각장애인이 직접 작동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음성지원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장애인 디지털 문해력을 교육하는 김지혜 다사리학교 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이 디지털 서비스를 다루기 어려워 실생활에서 겪는 소외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용 방법을 몰라 배달앱으로 식사를 주문해놓고 업체 사정으로 배달 취소가 됐는데도 확인할 줄을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봤다”며 “최근 배달앱 업체가 누구나 쉽게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도록 안내책자를 낸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여전히 발달장애인에게는 앱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장벽 낮추기도 필요

최근 복지관과 노인대학, 동주민센터 등에서 고령층을 대상으로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 열리기도 한다. 인천 한 주민센터에서 키오스크 강좌를 들은 이희경(가명·71)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계를 다뤘지만 노인들은 그렇지 않아 배워야 한다”며 “무료로 알려주는 이런 수업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그는 “키오스크 강좌가 도움이 됐다”면서도 “가게마다 키오스크 화면이 달라 여전히 당황하는 일이 있고, 뒤에 사람들이 있으면 중간에 포기할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취약계층의 역량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디지털 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준범 관장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을 비롯한 디지털 취약계층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디지털 기술표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음성지원을 하는 전자책이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일부”라며 “이러한 배려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을 위해서도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혜 활동가도 “누구나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웹 접근성’이 법률로 의무화돼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웹사이트가 많다”며 개선책을 촉구했다. 그는 “디지털 격차가 곧 생활 수준의 격차로 이어지는 만큼 적절한 폰트,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등 디지털 공간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는 것이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당부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직장인들의 고독감, 고립감 해소를 고민하는 일본 기업들에 최근 부쩍 주목을 받는 것이 가상공간이다. 특히 온라인 사무실에 자신의 아바타(온라인에서 개인을 대신하는 캐릭터)를 설정해 두고 일을 하거나, 동료들 간에 소통하는 메타버스(metaverse)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을 대표하는 인쇄업체인 톱판은 신입사원 교류의 장으로 메타버스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아바타를 통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업무를 배우기도 한다. 신입사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이라고 한다.

가상 오피스서 동료 일정 확인까지…  일본 히타치솔루션·크리에이트의 가상 오피스 개념도. 직원들의 자리를 사진으로 표시(사진 왼쪽)하고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의 기분을 아이콘이나 간단한 코멘트로 표시할 수 있는 기능(오른쪽 위 빨간 숫자)을 갖춰 동료 간 소통을 돕는다.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직원의 일정(오른쪽 아래)도 확인할 수 있다. 히타치솔루션· 크리에이트 홈페이지 캡처

업무용 시스템을 개발하는 슬랙은 잡담전용 채널을 만들어 선후배들 간의 소통 수단으로 삼고 있다. 자료 작성법을 알고 싶다는 요청이 있으면 선배들이 바로바로 추천 책을 소개하는 등 신속한 반응이 특징이다.

시스템 개발사인 히타치솔루션·크리에이트는 이런 기업들이 활용할 가상 오피스 서비스를 출시했다. 사용자들이 심리적 안정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온천 여관, 캠핑장 같은 디자인을 적용하고 직원들의 얼굴 사진에 ‘아, 바쁘다’, ‘배고프다’ 등 농담 같은 코멘트를 달아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원격근무가 늘면서 동료 사이 접촉기회가 줄고, 폐쇄감마저 느끼는 사례가 늘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아사히는 “원격근무 경험자의 59.6%가 원격근무 도입 전에는 없었던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조사가 있다”며 “(동료들 간에)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와인, 게임 등 다양한 테마를 즐기는 직원들의 온라인 모임을 적극 지원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화장품 회사 랭크업은 모임 활동을 회사에 보고하면 1인당 월 2000엔(약 2만원)을 지원한다. 와인, 빵 만들기 등을 즐기는 11개의 모임이 활동 중이다.

온라인거래 플랫폼 회사인 메루카리에는 육아 정보를 교환하는 아빠·엄마 모임, 보드게임 모임 등 800개가량의 모임이 있다. 직원의 90% 정도가 원격근무를 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 온라인 모임은 직원 간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중) 더욱 외로워지는 일터

“뜨릉뜨릉.”

매일 아침 7시면 예외 없이 울리는 알람에 사무직 직원 강모(34)씨는 눈을 뜬다.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양치할 때를 빼고는 입을 떼지조차 않지만,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쯤이 되면 이미 온갖 곳에서 강씨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뉴스레터 서비스로 받은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 카카오톡으로 온 ‘놓칠 수 없는 4월의 혜택’,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받은 ‘고수들이 택한 국내외 종목’, 대학교 선후배가 모인 단체채팅방에 누군가가 여전히 퍼 나르는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안전안내 문자에 대출광고 문자까지. 아침에 쌓이는 문자와 카톡만 수십 개다. 이 중에 강씨가 늦잠이라도 자지 않았는지 안부를 묻는 연락은 단 하나도 없다.

회사에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강씨의 비자발적 묵언수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로 앞에 앉은 직장 상사와 후배도 굳이 찾아와 말을 걸지 않는다. 강씨도 그렇다. 서로 채팅 앱으로 묻고 답한다. 1인 가구 강씨는 퇴근 후 맞아줄 사람도 없다. 집으로 돌아오면 “한국이랑 일본이랑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겨?”, “손차박(손흥민·차범근·박지성) 중 누가 한국에서 역대 최고 축구선수야?”, “랩 해봐” 등 챗GPT를 켜고 시답잖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강씨는 “잠들기 전까지 카톡이 쌓이고 업무 관련 얘기나 단체채팅방에서 수다는 이어지지만, 그 친구들과 실제로 연결됐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허전하고 공허해 이런 기분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떻게 위로받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사람이 없을 때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건 디지털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메일, 채팅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얽히고설킨 ‘초연결사회’에서 현대 직장인은 대면 상태에서도 비대면 소통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카톡, 메신저 등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업무 환경에서 손을 내밀면 닿는 가까운 거리지만 좁힐 수 없는 심리적 거리감에 고독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비대면 소통으로 업무 중 고립감 심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고립의 사회적 비용과 사회정책에의 함의’에 따르면 타인과 유의미한 교류가 없는 국내 사회적 고립 인구는 2021년 기준 인구의 6.0% 정도인 약 280만명으로 추산된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친구·친지가 없다’고 답한 국내 사회적 지지체계가 없는 인구는 2019년 기준 2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지지체계의 부족이 행복 수준 저하로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고립감은 1인 가구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된 물리적 거리두기, 디지털 전환 등으로 커졌다.

업무 특성상 홀로 일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도 매 순간 외롭진 않아도, 전혀 외롭지 않은 날은 없다. 음식점 배달 요청과 손님의 실시간 후기 사이에서 배달라이더는 디지털 감시를 당하는 수준이다. 배달기사가 모인 인터넷포털 카페에서는 외로움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와도 집에 반기는 사람이 없다‘, ‘길바닥에서 혼잣말하는 자신에게 현타(현실자각 시간) 온다’, ‘배달의 유일한 낙이던 신곡 재생도 질린다’는 내용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중앙집행위원은 “라이더 중 다른 지역에서 (배달 수요가 높은) 강남에 온 분들도 많은데 이들은 고시원 등에 혼자 살며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 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높았다”며 “올해 노조 자체적으로 정신건강 관련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위험군은 심리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립된 업무 환경… 다시 SNS

‘업무 효율화’라는 명분은 ‘고립의 굴레’로 변질되기도 한다. 기술 발전이 업무 시간과 장소 제약을 느슨하게 만들며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면서, 직장인들이 도리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하는 ‘디지털 속박‘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직장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SNS 속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웹툰작가이자 웹소설가인 A(33)씨는 최장 20일까지 집에서만 보낸 적이 있다. 한때는 사무실로 출근했지만, 컴퓨터 작업이 많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일이 가능해 전면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다. 그날 분량을 채워야 일이 끝나는 특성상 집에서 자유롭게 성과를 내란 취지인데, 창작의 고통이 길어질수록 퇴근은 지연된다. A씨는 “종종 새벽까지 일하니 점점 낮밤이 뒤바뀌며 주변 사람과 단절됐다“며 “남은 건 우울감과 수면제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김모(32)씨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심할 때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가는데 고립감이 굉장히 심해진다”며 “SNS로 인해 원치 않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무 자르듯 끊어내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는 “메신저로 주고받는 업무 톡으로 소통의 양은 늘었지만,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며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소통에 지쳐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쉬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방에만 있으면 다시 또 사람을 찾아 SNS를 켜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과잉이 만들어낸 둔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대인들이 인간관계 욕구를 디지털 미디어로 많이 충족시킨다”면서 “(하지만 충족 욕구가) 과도해지면서 만족감이 오래 가지 못하고 오히려 결핍을 느끼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치 알코올 중독 금단현상처럼 사용장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다수 젊은이가 쓸쓸하고 외롭지만 오프라인에서 관계를 만들 역량은 떨어지는 게 고독감의 원인”이라며 “결국 해법은 아날로그성 회복”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취미활동을 하고 동호인 모임에 나가거나 일상 속 소소한 목표를 갖고 본인이 채울 재미를 찾아야 의미 있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며 “지자체가 제도적, 재정적으로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초연결을 지향한다고 약속해온 디지털 혁신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역할을 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는 자신의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우리 사회가 외로워지고 원자화한 이유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지목했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초연결사회에서 타인과 비대면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만, 대면 접촉의 기회가 줄면서 오히려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지적인 셈이다. 초연결 사회의 역설인 새로운 ‘단절’의 시작이다.

2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외로움 관련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온라인 소통보다 오프라인 만남을 원한다는 응답(20대 58.8%, 30대 60.8%, 40대 63.2%, 50대 66.0%)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온라인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초연결사회라고 해도 정서적인 교류 측면에서는 ‘온라인 접촉’보다는 ‘대면 접촉’을 원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온라인 네트워킹에 적극적일수록 외로움 체감도가 높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가 2018년 4월 발표한 ‘한국인의 외로움 인식 보고서’(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 중 35%가 외로움을 실감한다고 답했지만, 참여하지 않는 층에서는 23%에 그쳤다. 또 외로움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무력감을 6.5배 높게 느꼈다. 뒤이어 분노(5배), 걱정(3.7배), 짜증(3.6배) 순으로 외로움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됐다.

특히 최근에는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온라인상에서 고립된 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해소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심리학회지’에 지난달 실린 한 연구를 보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1년여간 게시된 자해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트위터 게시물은 1320개에 달했다. 트위터의 운영 방침에 따라 삭제된 게시물을 제하고도 이 정도였다.

지난 1년6개월 SNS에서 심리상담 계정을 운영한 박가람(가명·25)씨는 그동안 1만개에 육박하는 상담 요청을 받았다.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주로 학생들이었다. 그는 “죽고 싶다며 칼로 손목을 그었다든지,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하는 학생이 많았다”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자해와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 외로움과 고독감을 표출하는 이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나 심리적 특징은 근본적으로 같다”며 “(병리적 현상을) 별종처럼 치부하면 (그들과 사회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리 전주대 상담심리학과 석사도 “(자해 게시물을 올리는) 그들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개입할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윤준호·김나현 기자

<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상) 열린 가상공간에 갇힌 사람들

이지호(27·가명)씨는 스스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중독자’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뜨면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마치 시험대에 서듯 자신이 간밤에 올린 ‘스토리’를 몇 명이 보았는지, ‘좋아요’를 의미하는 하트를 몇 개나 받았는지 셈한다. 하트 수가 기대에 못 미치면 기분이 상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에게 하트 수는 게시물에 대한 단순 선호를 넘어 ‘인간관계를 확인받는 수단’에 가깝다.

이씨는 또 SNS를 통해 자신의 삶을 중계한다. 그날 입은 옷, 먹은 음식, 출퇴근길, 산책이나 운동 시간 등. 특히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기 힘든 친구들과는 SNS를 통해 교감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새로 올린 게시물에 친구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이내 섭섭해지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 자신과 비교해 더 비싼 옷을 입고, 화려한 음식을 먹는 친구의 게시물을 마주하면 공허함이 찾아온다. 모처럼 친구를 만났지만, 근황보다 대형 거울 앞에서 함께 찍는 사진에 더 신경이 쏠린다.

하트 수에 심취할수록 이씨는 원본 사진이 성에 차지 않는다. ‘셀카’를 찍을 때 피부톤부터 눈 크기와 턱 길이까지 보정해주는 필터는 기본이고, 사후 보정도 필수다. 사진 보정 앱에 접속한 이씨는 얼굴형을 갸름하게 줄이다가 배경 화면 속 식당 간판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그의 눈에는 보정 사진이 더 예뻐 보인다. 하지만 ‘좋아요’ 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바로 게시물을 삭제했다.

모르는 사람과 ‘좋아요’와 ‘구독’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인간관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기분에 흐뭇할 때도 있다. 며칠 전 팔로어 수 7000명이 넘는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팔로우했다. 설렘이 차올라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인사를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괘씸한 마음에 즉시 팔로어를 끊었다.

밤 12시 잠들기 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이씨는 온라인 세상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30분만 보고 잠에 들리라는 결심과 달리, 이씨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파도를 탔다. 인생 맛집 추천, 뷰티 가성비템, 주식·부동산 꿀팁까지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어느새 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섰다.

다음 날 아침, 이씨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다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찾는다. 이미 엄지손가락은 인스타그램 아이콘 위로 향하고 있다. 끝이 없는 굴레다.

손바닥 위 휴대기기 작은 화면 속에서 현대인들은 한층 더 촘촘히 연결됐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카카오톡 대화방과 익명 채팅앱, 대학생 소셜 플랫폼과 직장인 전용 플랫폼 등을 바쁘게 오가며 시시각각 일상을 나눌 수 있다. 가족과 친구, 지인은 물론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나 멀리 떨어진 외국의 인사와 교감도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열린 디지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했지만, 오히려 ‘고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양산하는 초연결사회의 역설을 낳았다.

 

◆초연결사회 역설, ‘고독의 늪’ 양산

5년 전, 최주원(30·가명)씨는 당시 취업 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외로움도 달랠 겸 온라인 커뮤니티에 발을 들였다. 최씨는 축구와 게임에 대한 관심사를 나눌 수 있고, 기발한 ‘짤’(이미지)도 끝없이 올라오는 커뮤니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같은 이들의 ‘나만 잉여가 아니다’, ‘이만하면 정상’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직장인이 된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제 일상의 동반자다. 최씨는 하루를 보내면서 커뮤니티 댓글 창을 수시로 확인한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화장실 갈 때, 회사 근무 중에도 습관적으로 댓글을 본다. 그는 자신이 게시글에 ‘추천’과 ‘댓글’이 늘어갈 때 희열을 느낀다. 반면 ‘악플’에는 분노가, ‘무(無)플’에는 고독감과 외로움이 밀려든다. 최씨는 속마음과 달리 커뮤니티 분위기에 맞춰 욕설과 조롱을 섞어 쓰기도 한다.

온라인 세상은 외로움을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씨처럼 온라인 세계 속에 심취할수록 집착과 외로움이 심화하기도 한다. ‘외로움 대피소’에서 도리어 외로움이 커지고, 무기력, 분노 등 부정적 감정까지 강화되는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온라인에서는 자신을 과장하거나 거짓말로 꾸밀 수 있다. 직접 만나는 감정의 교류에 비해 한계가 있다”며 “온라인에 중독되는 것도 마약 중독처럼 의존성과 금단 증상이 점점 커지면서 불안·우울로 연결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유튜브처럼 일방적인 정보 전달성이 강한 소셜미디어의 경우에는 되레 외로움이 커질 수도 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의 ‘코로나19 확산 후 소셜미디어 이용과 무력감·외로움 체감 연구’(2020)에 따르면 단순히 ‘시간 보내기’ 용도로 유튜브를 장시간 시청하면 오히려 무력감과 외로움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보고 싶은 세상만, 양극화 심화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선호하는 정보를 우선 노출시키는 ‘추천 알고리즘’이 외로움의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플랫폼은 이용자 취향이나 시청 내역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플랫폼에 중독되어 떠나지 못하게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이다. 이러한 알고리즘 작동 방식은 보고 싶어 할 정보에만 노출시켜 편향성을 띠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만의 거품에 갇힌 ‘필터버블’(Filter Bubble)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터버블 속에서는 허위·조작 정보를 접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고립감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남재영(27)씨는 최근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졌다. 아버지가 정치유튜브 채널에서 본 것을 강요하다시피 이야기해서다. 남씨는 “아버지께서 정치유튜브 영상을 보며 본인의 화를 해소하는 것 같다”며 “본인의 생각과 성향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21년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소셜미디어 이용자 3000명을 조사한 결과, 63.2%는 견해가 같은 게시물을 보면 ‘추천’이나 ‘좋아요’를 누른다고 답했다. 견해가 다른 경우 ‘비추천’(45.9%)하거나 ‘구독 취소’(40.0%)를 눌렀다.

제21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0년 3월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팀이 진보 성향 유튜브 3개 채널(알릴레오, 김용민TV,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 보수 성향의 3개 채널(홍카콜라, 신의한수, 펜앤마이크) 구독자(1532명)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각 채널 구독자들이 상대 진영에 속하는 정당이 이념적으로 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인식하고, 높은 수준의 반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문화적으로 취향이 같아서 즐기는 건 괜찮지만, 정치처럼 세상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사안에서 자신의 취향에만 맞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계했다.

김나현·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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