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승자독식 한국 사회에서는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신의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사교육 과잉투자로 이어지죠. 사교육은 계층 대물림을 작동시키는 원리가 되고 있고요.”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 노동시장 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티모 플렉켄슈타인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사회정책학)는 한국의 경직된 사회이동의 주 요인으로 ‘과잉교육’을 꼽았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끈끈한 바닥(sticky floor)’과 ‘끈끈한 천장(sticky ceil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최상층부와 최하층부에서 사회이동이 일어나기 힘든 불평등 사회를 조장하는 데 있어 한국에서는 사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평등·양극화 문제 해소에 천착해온 박현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사회학)는 이른바 ‘개천용 담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박 교수는 “절대적으로 개천용이 줄어든 것은 직업구조 변화 등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보다는 파이가 성장하며 늘어난 기회를 저소득층이 얼마나 잡을 수 있었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층이동의 양적 측면보다는 분배의 질적인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미국 뉴욕대 공공지식연구소장도 불평등이나 사회 갈등, 양극화 문제를 구조(환경)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저서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폭염사회’ 등을 통해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사람들이 대면해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 현대적 도시를 설계했기 때문에 계층 간 분열과 고립이 심화했다”고 진단한다. 훌륭한 공간들이 민간에 의해서만 제공되는 것은 부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접근성의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끊어진 계층사다리를 주제로 연중 기획물을 연재하고 있는 세계일보는 이달 19∼22일 박 교수와 플렉켄슈타인 교수, 클라이넨버그 소장과 각각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현준 美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왼쪽부터), 티모 플렉켄슈타인 런던정경대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공공지식연구소장

이들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엘리트 시스템, 경제적 불평등 심화, 분배와 평등에 대한 소극적 인식 등이 사회의 공정함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낮은 사회이동성으로 나타났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인터뷰는 사회이동성 최상위 국가인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3국에 대한 현장 취재를 앞두고 이뤄졌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처음 발표한 ‘전 세계 사회이동성 지수(Global Social Mobility Index)’에 따르면 사회이동성 최상위 4개국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 82개국 중 25위로 경제력(12위)과 비교해 사회이동성 지수가 낮은 나라 중 하나였다.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사회이동성 지수는 한국보다 더 낮은 27위에 그쳤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은 공통적으로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고 평등, 사회적 재분배를 높은 가치로 두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사회 불평등 해소에 나서고, 포용적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은 이들 ‘공정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개천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한국과 미국에서 사회이동, 교육불평등, 사회계층, 노동시장 등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박현준 교수는 ‘개천용 담론’으로 사회 개방성을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이 점점 줄고 더 어려워진 것은 직업구조 변화와 경제 발전 등에 따른 측면이 크며, 이 자체로 사회가 이전보다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진단이다.

박 교수는 단순히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높은 계층으로 옮겨갈 수 있느냐는 ‘절대적 이동’보다는 계층별로 상위 계층에 도달하거나 유지하는 정도를 비교하는 ‘상대적 이동’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계층 간의 절대적인 이동이 이전 세대에 비해 현재 세대에 피자 크기가 얼마나 커졌는지 혹은 작아졌는지를 분석하는 문제라면 상대적 이동은 크거나 작아진 피자를 어떤 계층 출신이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유동성 혹은 기회의 불평등을 가리키는 지표는 절대적 이동이 아닌 상대적 이동 수준을 평가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사회이동을 늘리기 위해서는 ‘파이’를 키우는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평등 또는 격차 줄이기가 공정사회를 만드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직업구조가 농민 위주인 사회가 화이트칼라층 중심인 사회로 변해가면서 사회 전반의 절대적 이동이 늘어났듯이 4차 산업혁명 등을 계기로 다시 절대적 이동은 늘어날 수 있다”며 “하지만 늘어난 파이를 상층부가 먼저 가져가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러면 절대 이동이 늘더라도 개방된 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계층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불만이 나오는 데 대해 박 교수는 “올라가고 내려오는 정도는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다리 간의 높이 차가 더욱 커진 데서 기인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층부와 하층부의 격차는 계속 커지는데 기회가 열리면 상층부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를 먼저 포착해 버리니 박탈감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 이슈와도 연결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선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기회의 공정’이 양극화나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계층 세습화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고 반문했던 ‘능력주의 신화’의 문제점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논의의 초점을 보다 근본적으로 상대적 이동 기회를 늘리는 것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진 파이를 저소득층이 얼마나 더 가져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노동자 계층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을 높여 이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박 교수는 “기득권층이 개혁을 주도하기는 힘들 것 같고 결국 정치와 정책의 영역”이라며 “불평등 구조를 바꾸려면 분배 측면에서 굉장히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위정자들에게 먼저 당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보다 북유럽 모델 참고해야”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한국의 과잉교육 현상에 주목하는 사회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국제적 기준으로 봐도 극심한 수준인 한국의 사교육 열풍이 사회의 기존 계층 질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한국의 사교육은 당신이 어떤 계층에 속해 있든 간에 이를 유산처럼 다음 세대로 내려보내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며 “불평등을 조장하고,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의 투자에 따라 계층 세습화를 용이하게 만드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계층 대물림을 위해 가장 큰 공을 들이는 부분 중 하나는 교육, 구체적으로는 ‘학벌’이다. 한국의 대학교 시스템은 명문대 중심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고 그 간판을 따기 위한 주요 방법은 엘리트 교육에 있다. ‘SKY’, ‘인서울’을 위해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열에 집착해 과도한 경쟁을 벌인다. 이러한 불안은 계층 고착화와 과잉교육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게 만든다.

플렉켄슈타인 교수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수직적 엘리트 시스템에 의존하고 사회보장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사회이동성 지수에서도 한국(25위)과 미국(27위)은 ‘도긴개긴’이다. 특히 한국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에 지출하는 비용이 너무 적고 세금도 매우 적게 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시스템이나 공정함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탓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기 힘든 악순환도 발견된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는 문항에 10명 중 6명이 ‘그렇지 않다’(60.4%)고 답했다. ‘자신의 계층상승이 힘들 것 같다’고 답한 서울 청년은 10명 중 7명(69.5%)에 달했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는 사회적 이동성을 약화시킨다”며 “사회적 계층이 낮을수록 사다리를 점점 더 올라가기 힘들고,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사회이동성 측면에서 실패한 미국보다는 유럽의 사회·교육정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도덕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도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플렉켄슈타인 교수는 “평등한 사회일수록 경제성장률도 높은 경향이 있다”며 “더 많이 가진 강한 사람이 더 큰 짐을 지고, 취약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자원의 공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자원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대표적 나라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회적 인프라의 중요성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 사회적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이제 ‘사회정의’의 문제가 됐다”며 “이는 사회이동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대표적 수단으로 도서관을 든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이와 같은 ‘모두를 위한 궁전’이 늘어나는 것이 불평등 해소와 사회이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같은 계급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배타적 성격의 공간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량적 사회 인프라’를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사회의 주된 원칙”이라며 “통합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이들은 늘 존재하지만 그런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모든 사람은 모든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클라이넨버그 소장은 “현대 사회에서는 서로 분리된 삶을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다양하고 개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만 더 나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지혜, 안승진, 배소영 기자 wisdom@segye.com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5년 사회부장 시절 부원들과 함께 제주도 백록담 등반에 나섰다. 제주 둘레길이나 걷고 올까 했는데 편집부 등반 모임에서 백록담을 갔다 왔다는 말에 혹한 것이다. 어느 블로그에도 백록담은 그렇게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는 글이 있어서 청바지 차림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부원들과 백록담 인증샷을 찍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정상을 밟지 못했을 것이다. 고생한만큼 일생의 추억으로 남았다. 나중에 다녀와서 그 블로그를 다시 찾아가 보니 등산 동아리 블로그였다. 물론 내려온 다음에는 전날 술을 마시고도 백록담을 성큼 다녀왔다고 두고 두고 자랑하고 다닌다.  

이걸 보려고 그 고생을 하고 올라왔나 싶을 정도인 백록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돌입하면서 인수·합병(M&A)을 통한 산업계 지각변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항공업계와 건설업계 등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의 과정으로 M&A가 불가피해졌다. 반면 시장 패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은 위기를 기회 삼아 몸집을 불리는 데 열중하는 모양새다. M&A가 단숨에 시장 지배력을 손에 넣는 과감한 투자가 될 수 있지만, 자칫 부실기업을 떠안는 과정에서 큰 출혈을 겪으며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여파로 급성장한 M&A 시장

14일 글로벌 금융정보 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업 M&A 규모는 1조7400억달러(약 1966조8960억원)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5117억9000만달러)와 비교하면 3배가 넘는 수치다.

국내 M&A 시장도 뜨겁긴 마찬가지다. 금융정보 업체 딜로직이 올해 상반기 중 금액이 공개된 국내 경영권 거래 규모를 합산한 결과, 43조8605억원(296건)으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했다.

M&A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기업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과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 방식이 맞물려 기업의 유동성이 늘어난 점도 M&A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대한항공은 최근 산업은행과 협의를 거쳐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인수 후 통합 전략’(PMI·Post Merger Integration)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019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매각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HDC현대산업개발과의 M&A 협상이 좌초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대한항공이 새로운 인수자로 나섰다. 현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의 기업결합심사를 기다리며 막판 인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터키·대만·태국 등 3개국에서는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상태다. 저비용항공사(LCC) 업계도 M&A 절차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해 제주항공으로 인수되는 작업이 불발됐던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24일 골프장 관리·부동산 임대업체인 성정과 M&A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모회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결합으로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도 통합 작업을 앞둔 상황이다. 여기에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등의 추가 M&A 성사 가능성도 거론된다.

◆M&A로 미래 먹거리 찾는 대기업

신세계그룹은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삼고 되레 공격적으로 M&A를 시도한 케이스다. 지난 2월 야구단 SK와이번스를 인수한 데 이어 5월에는 SSG닷컴을 통해 여성 쇼핑몰 W컨셉을 사들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5일에는 이마트를 통해 이베이코리아 지분 80%를 인수하면서 온라인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지분 매입에 들어간 금액은 3조4400억원으로, 올해 성사된 국내 기업의 M&A 거래 중 최대 규모다.

정보기술(IT) 업계도 M&A를 무기로 신사업을 개척하는 데 공을 들였다. 나란히 시가총액 3, 4위를 달리는 카카오와 네이버는 콘텐츠와 지식재산권(IP)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먼저 네이버가 지난 5월 9000만명의 글로벌 독자를 갖고 있는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 업체 왓패드와 국내 웹소설 업체인 문피아를 차례로 인수했다. 이에 질세라 카카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북미 웹툰 플랫폼인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사들였다.

호반건설을 주축으로 한 호반그룹은 국내 2위 전선업체인 대한전선을 인수했고, 현대차그룹은 첨단 로봇 기술을 보유한 미국 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대한 인수 절차를 최근 마무리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는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속한 미국 대형 미디어 그룹 이타카홀딩스를 품었다. 이들 모두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진출하거나 더 넓은 해외 시장을 겨냥하기 위한 발판으로 M&A를 활용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하반기도 M&A 활발하겠지만, 과열경쟁 ‘주의’

하반기에도 M&A 시장에서는 거물급 매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 점유율 2위인 요기요는 다음달까지 주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 앱 1위 사업자인 배달의민족을 인수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M&A 허용 조건으로 요기요 매각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한때 몸값이 2조원 안팎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최근 매각을 희망하는 사모펀드들은 1조원 안팎을 제시하면서 M&A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에어컨 등 공조기 전문업체인 한온시스템은 하반기 M&A 시장 최대어로 꼽힌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일본 도요타의 자회사 덴소에 이어 글로벌 점유율 2위를 기록하는 한온시스템의 지분 가치가 7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전기자동차가 각광을 받는 가운데 한온시스템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히트 펌프와 전동 컴프레서 등의 열 관리 부품의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 40위권이며, 건설사 중 시공능력평가 6위권인 대우건설의 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중흥건설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했다. 중흥건설은 국내 시공능력평가 순위로는 35위의 중견업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대우건설 M&A를 위해 우선협상대상자가 지정된 것은 2018년 호반건설 이후 3년 만이다. 당시 호반건설은 실사과정에서 해외 공사와 관련한 대규모 부실 정황이 확인되자,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지 8일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이밖에 국내 보톡스 1위 업체인 휴젤과 국내 1세대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 가구·인테리어 업계 한샘이 시장에 나와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가 나빠지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정리하려는 움직임과 성장 기업이 사업영역을 확장하려는 산업재편 흐름이 맞물리면서 앞으로도 M&A 딜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기술력이 있더라도 코로나19로 자금 동원에 어려움을 겪어 매물로 나오게 되는 기업도 늘고 있다”며 “최근 인터파크가 매각을 추진하는 것도 코로나19로 공연업계에 타격을 입은 상황이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여행업계나 호텔 등 숙박업계도 지각변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M&A 시장이 과열되면서 매각 대금이 지나치게 늘어난 상황에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M&A 과정에서 과도한 인수비용,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타격을 입을 경우 M&A에는 성공했더라도 결국 후발주자에 밀리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SK, 하이닉스 인수해 그룹 간판기업으로 키워

인수·합병(M&A)은 하나의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두 기업이 하나로 합병하는 과정을 아우르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M&A는 두 기업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경영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기업의 몸집을 불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다.

우리나라는 현행 상법을 통해 기업 간 M&A 계약과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흡수하는 일반적인 합병 형태 외에도 상법 절차에 따라 합병 회사를 모두 없애고 새로운 회사가 이어받는 형태의 신설합병도 있다.

국내 대기업은 일찍부터 M&A를 발판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경영 방식을 활용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SK그룹이다. SK그룹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해 지금의 SK하이닉스를 키워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글로벌 D램 시장 2위, 국내 시가총액 2위를 유지하며, SK그룹의 간판 계열사로 우뚝 섰다. 최태원 회장은 이후에도 동양매직과 LG실트론을 사들여 각각 SK실트론과 SK매직으로 재편한 뒤 꾸준히 실적 성장세를 이뤄내고 있다.

삼성은 취약한 분야를 M&A로 보완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신설 회사를 세우는 것보다 일정 부분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단숨에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효율적이란 판단에서다. 삼성은 2015년 모바일 결제 전문업체 루프페이를 사들인 덕분에 삼성전자의 휴대폰에 삼성페이를 탑재할 수 있게 됐다. 삼성페이는 국내 모바일 결제시장을 접수한 데 이어 유럽과 중국, 동남아시아, 호주 등에도 진출한 성공적인 M&A 사례로 평가된다. 2016년에는 미국의 하만을 인수해 전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계기로 삼았다.

한화그룹의 경우에도 한화케미칼, 한화생명, 한화큐셀, 한화토탈 등 그룹의 핵심으로 꼽히는 화학과 보험, 방위산업 분야 계열사들이 모두 M&A를 통해 이룬 결실이다.

M&A의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이듬해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순식간에 재계 서열 7위까지 오를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곧이어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두 회사를 다시 헐값에 내놔야 했다. 그럼에도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 등을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인 전략경영실 폐지를 발표하는 등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재계 관계자는 “M&A로 기업을 단숨에 키우려는 생각은 도박이나 마찬가지”라며 “SK도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업을 매각하고, 자산을 처분하는 등 다양한 구조조정으로 착실하게 실탄을 마련한 것과 달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오너가의 방만한 경영과 임원들의 비리가 겹치면서 M&A 성과를 발로 차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 지난달 22일,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실내악 공연이 열렸다. 공연장에 모인 관람객은 모두 5∼12세 어린이. ‘아기상어’ ‘멋쟁이 토마토’ ‘할아버지의 시계’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연과 함께 율동과 타악기 연주 체험도 이어졌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경험한 아이들은 공연 후에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연주회 같지만, 사실 이날 공연은 경제적인 이유로 문화 관람이 어려운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특별 무료 공연이었다.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이런 ‘예술·문화’ 경험은 누구나 손쉽게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자본력에 따라 예술 향유의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클래식 공연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공연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무료 공연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문화 경험의 ‘빈익빈 부익부’는 또 다른 계층화를 빚어내고 있다.


◆소득 낮을 수록 문화 관람도 낮아

‘문화 양극화’는 정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0만원 이상 최고 소득과 100만원 미만 최저 소득의 문화예술 관람률 격차는 50.6%포인트로 전년에 비해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모든 가구의 관람률이 감소했지만 저소득 가구의 관람률 감소폭이 더 커진 탓이다. 2016년 58.6%였던 가구소득별 문화예술 관람률 격차는 2018년 49.4%포인트, 2019년 40.8%포인트로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50.6%로 다시 확대됐다.

예술 접근성을 방해하는 것은 자본 격차뿐만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지난해 읍·면 지역의 문화예술 관람률(46.5%)은 도시 지역(63.5%)보다 현저히 낮아 대도시와 읍면 지역의 문화예술 관람률 격차 역시 전년(12.7%)에 비해 17.0%포인트로 벌어졌다.

대도시에 살고 소득이 높을수록 다양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많은 반면 소도시에 살면서 소득이 적을 수록 그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런 자본력에 따른 문화 경험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각 지자체는 문화누리카드와 ‘찾아가는 공연’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누리카드는 저소득층이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공연, 영화, 여행,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쓸 수 있도록 한 카드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누리카드로 50∼80% 할인된 나눔티켓을 구매하면 클래식, 뮤지컬 등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문화누리카드 사용처는 도서와 영화 분야에 쏠렸다. 지난해 문화누리카드 사용처는 문화분야 71.4%, 관광 분야 26.5%, 체육분야 2.1%를 차지했다. 문화 분야 중에서도 도서 분야 사용액이 849억원으로 전체 사용액의 60%를 차지했다. 영화 비중도 7.6%로 비교적 높았지만 공연은 0.4%에 불과했다. 도서의 경우 참고서와 학습교재, 실용서를 구매하는, 사실상 여가와 문화의 개념보다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됐다.

◆소외계층 품는 문화생태계 구축해야

‘카드깡’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문화누리카드 홈페이지에서는 카드를 양도하거나 카드를 사용해 구입한 나눔티켓을 양도하는 부정행위에 대해서 자격 박탈을 경고하고 있지만 중고물품 판매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문화누리카드 7만원에 팔아요” 등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배가 고픈데 무슨 문화생활이냐”는 비아냥과 함께 일부에서는 최근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한 실황 중계가 늘어난 만큼 디지털이 ‘문화적 평등’을 이뤄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혜택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지털로 재생되는 ‘복제’와 현장 ‘직관’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정서적 울림은 복제품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자체의 ‘찾아가는 공연’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굳이 돈을 내고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향이 서울시와 함께 ‘우리동네 음악회’와 ‘우리 아이 첫 콘서트’ 등의 무료 공연을 개최하고, 민간 오케스트라 심포니 송이 대형 트럭을 오케스트라 홀로 개조한 ‘윙트럭’으로 지방 소도시 등을 찾아가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여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연주 서울시향 제1바이올린 단원은 “아이들과 음악회를 통한 만남은 연주자에게도 힐링이 된다. 음악과 문화는 차별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돼야 한다”며 ‘문화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중문화와 실용서에 편향된 문화누리카드에 과감하게 분야별 쿼터제를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더욱 커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현 문화평론가는 “인터넷 등 ‘복제’ 공연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울림은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비교할 수도 없다”며 “특히 공연수익 등 상업성보다는 다양한 창의력과 실험을 시도하는 클래식, 연극, 본격 문학 등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기회 제공이 확대돼야 그 뼈대 위에 또다시 예술의 경계가 확대되고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인 10명 중 4명 ‘투잡’… 한국판 조앤 롤링 요원하나

지난 2001년 전세계는 ‘해리포터’의 마법에 걸렸다. 해리포터의 작가는 이제 전 세계인이 아는 조앤 K 롤링. 오랜 시간 생활보조금을 받고 근근이 살아가던 가난한 예술인은 책 판매만으로만 3조원, 영화 등으로 300조원으로 추산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후, 한국에서는 독립영화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젊은 작가가 지병에 영양결핍이 겹치면서 사망했다. 촉망 받는 젊은 작가의 ‘아사’ 소식에 사회는 들끓었고, 작가 이름을 딴 일명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하면서 가난한 예술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술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창작준비금 지원, 생활안정자금 융자, 예술인 파견지원 등의 혜택이 생겨났다. 1년에 300만원이 지원되는 창작준비금은 창작활동이 중단된 공백기간에 ‘실업급여’처럼 생활비로 쓸 수 있다. 또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통해 은행 문턱이 높은 예술인들이 낮은 금리로 전세자금 등을 마련하고,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예술활동과 관련된 부업으로 재능을 활용하면서도 활동비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술인복지법 이후에도 심심찮게 예술인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이 들리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지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투잡’을 뛰는 예술인은 42.6%에 이르렀다. 겸업 예술인의 70% 이상은 불규칙하고 낮은 소득으로 예술활동에 전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예술인의 가구 총 수입은 평균 4225만원. 배우자의 소득과 ‘부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합한 것으로, 예술활동으로 인한 개인 수입만 놓고보면 평균 1281만원을 벌어들인다. 분야별로는 문학과 사진 분야가 각각 550만원, 329만원으로 적은 소득을 기록했다. 건축과 방송연예 분야는 각각 5808만원, 2065만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왔다.

창작준비금 지원도 지난해 신청자가 3만명이 넘었지만 실제 지원이 이뤄진 것은 1만5260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그나마 코로나19로 지원이 대폭 늘어난 것이 이 정도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창작준비금이 큰돈은 아니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지원금을 받고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이후 영화제나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예술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불공정 계약이나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등의 상황을 방지하고 정당한 보상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탄탄히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일반 대기를 통해 전염되는 공기감염병이다/몸이 닿기만 해도 감염된다/눈을 바라만 봐도 감염될 수 있다/모기가 코로나19를 전파한다/중국산 김치, 식재료로 감염될 위험이 있다/비타민C가 코로나19를 퇴치한다/중국 당국이 공문을 통해 마늘이 예방책이라고 권고했다/특정 업체 가글액을 쓰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헤어드라이어를 쐬어주면 바이러스가 죽는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말들이지만, 한때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를 믿고 실천하기까지 했던 코로나19 관련 대표적인 ‘가짜뉴스’다. 잘못된 정보는 바이러스 확산으로 이어지는 등 피해도 왕왕 발생했다. 2020년 3월 국내 모 교회에서 코로나 소독을 이유로 분무기를 이용해 교인들의 구강에 소금물을 분사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집단감염으로 이어져 국가방역체계를 흔들어놨다.

여기에 방역을 위한 정부의 관리·감시체계가 강화되면서 개인정보유출·인권침해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비정부기구 국제앰네스티는 감염병이 침해하는 권리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건강권이지만, 인권침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열과 감시, 통제, 차별, 혐오, 국경통제 등 코로나19 관련한 각종 분야 대처에서 침해사례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와중에도 ‘인포데믹’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허위 정보들이 퍼지며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백신 포비아(공포증)’가 극성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진 ‘화이자와 모더나 등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 백신을 맞으면 유전자가 변한다’는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최근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백신 관련 정책 위반으로 삭제된 게시물이 160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뉴스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당국의 대처를 어렵게 한다. 거기에 개인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정보가 중요한 시대에 거짓정보가 가진 위험성은 감염병 못지않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할 우리에게는 가짜뉴스에 대한 ‘백신’도 필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져도 가짜뉴스는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디지털 뉴스 신뢰도 세계 최하위권

디지털 시대에 정보 전파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SNS, 메신저앱,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 등 정보의 유통 창구도 다양해졌다. 이를 통해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역시 확산 속도에 날개를 날았다. 워낙 넓고 빠르게 퍼지는 탓에 출처를 찾아내기도 힘들고 검증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 시대 우리나라 뉴스는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3일 발간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수행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에 따르면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신뢰한다는 응답률이 32%로 46개국 가운데 38위를 기록했다. 46개국 평균은 38%다. 한국은 조사에 참여한 2016년 이후로 매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번 조사는 세계 주요 46개국 9만2372명(한국 2006명)을 대상으로 올해 1월13일부터 2월9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허위정보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접하는 정보의 진위에 대해 한국은 65%가 우려한다고 답했다. 지난 한 주 동안 어떠한 주제의 허위정보를 접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 응답자들은 정치(51%), 코로나19(46%), 유명인(38%), 기후변화·환경(15%) 순으로 응답했다.

김대중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 25일 이메일을 통해 “가짜뉴스가 생성·확산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수용자들의 듣고자 하는, 혹은 듣고 싶어하는, 이른바 확증편향 정보 욕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정보욕구 대상의 대부분은 정치 및 정치현상에 쏠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론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이러한 수용자의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언론사의 정치적 편향성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기 때문”이라며 “언론수용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맞지 않은 기사를 가짜뉴스로 취급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강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짜뉴스 온상 ‘유튜브’

유튜브는 우리나라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됐다. 보고서에서 허위정보 경로로 우려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한국인들은 압도적으로 유튜브(34%)를 꼽았다. 특히 정치·사회이슈·사건·사고 등을 다루는 유튜버들이 몇 년 사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와 관련한 가짜뉴스, 음모론, 비방, 명예훼손 등 사회문제의 가짓수도 늘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월 발표한 ‘유튜브 이용자들의 유튜버에 대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는 유튜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 가운데 ‘매우 심각’한 문제로 가짜뉴스 전파를 꼽았다. 허위사실임을 알고도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유포하는 행동에 대해 ‘약간 심각’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1.1%로 집계돼 ‘가짜뉴스 전파’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98.1%에 이른다.

게다가 일명 ‘사이버렉카’(인터넷상에서 이슈가 된 각종 사건·사고들을 짜깁기한 영상이나 비판하는 영상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를 부르는 멸칭)라 불리는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발언 등이 조명받으면서 별다른 제재수단이 없는 유튜브에 대한 비판여론도 거센 상황이다. 유튜브 측은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유해성 콘텐츠에 세 번 경고, 계정 일시정지, 영구폐쇄 등을 하지만, 가이드라인 자체가 광범위하고 모호해 실질적인 규제는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주류 언론들이 유튜브나 커뮤니티를 ‘받아쓰기’하는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지난 2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류 언론이 유튜브 등을 뉴스로 재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화제가 된다고 해서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언론이 필터링해 주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무시해도 될 만한 정보들은 무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환경 안에서 개인 미디어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단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통제수단이 필요하다”며 “포털 등도 책임이 있다. 언론사들의 경쟁을 조장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에 균형 필요

최근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국가가 개인 건강정보 등을 수집·활용하는 일이 잦아지며 민감정보 사용에 대한 경고등도 켜졌다.

지난해 12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NHS 산하의 NHSX는 ‘Covid-19 데이터스토어’를 구축하고 공중보건 현황 및 건강 서비스와 관련한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는 정부 주도의 ‘SI-DEP’ 시스템을 통해 코로나19 진단 결과 등을 기록·관리한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CBTS(지역기반검진장소)에서 이뤄지는 환자 건강정보의 수집 및 보호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중국은 치료 목적 등을 이유로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대대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은 정보 연동을 통한 침해사례를 만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수집된 개인 건강정보가 쿠키 및 온라인 추적 기술과 결합할 경우 표적광고나 마케팅 목적으로 개인정보가 이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데이터 유출 사고도 잇따랐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인 웨일스 주민 전체의 개인정보가, 뉴질랜드에서는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세부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인도에서는 정부 서버에 저장된 8만건 이상의 코로나19 환자의 의료기록을 탈취했다는 해커들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건강정보는 가장 대표적인 민감정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앞서 이런 민감정보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의 원칙과 정보주체의 기본 권리를 희생하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중이다. 지난 18일 폐막한 ‘제55차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인정보 감독기관장 회의(APPA) 포럼’에서 아·태 지역 12개국 19개 개인정보 감독기관장과 산업계 관계자 등 450여명은 코로나19 사태로 개인 건강정보 등 민감정보 이용이 불가피하지만, 정보 최소수집, 보관 기간 제한 등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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