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물러나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시대가 열렸다. 스가 시대의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2020년 10월 한국언론재단 '국제뉴스연구회' 포럼 연사로 나온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스가 총리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기회의 창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아베가 역대 최장 총리라고 하는데 기억해야 할 것은 스가 역시 역대 최장(7년 9개월) 관방장관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스가 총리와 뭘 하고 싶다면 다음달 초가 지나기 전에 뭔가를 던져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가 총리의 국정 추진 동력인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전에 일본 정부가 딜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정부도 내년으로 가면 레임덕이 오고 대선이 다가오기 때문에 지금 밖에는 기회가 없다"면서 "이걸 못하면 한일 교착 국면이 계속된다"고 관측했다.

박 교수는 대표적인 한일관계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1998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조교수와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를, 미국 컬럼비아대, 일본 게이오대, 일본 고베대에서 객원 교수를 지냈다. 2012~2016년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2017년 현대일본학회 회장, 2016~2018년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스가 시대 한일관계를 전망하는 서울대 박철희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 박철희 교수를 초청해 진행된 한국언론재단 '국제뉴스연구회' 포럼.

 

-일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런 농담이 있다. 미국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멕시코 밖에 없고 중국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베트남 밖에 없고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증상이 가장 심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농담이다. 이런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은 일본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서면서 우리 언론은 세계 열강 순위를 과거 미일중러에서 미중일, 이제는 미중이라는 양강 프레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G2'(주요 2개국인 미국과 중국)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사실 일본은 1968년부터 2009년까지 42년간 세계 2위 경제대국(명목 GDP 기준)의 자리를 지켰다. 우리는 그걸 잊고 있고 지금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일본의 힘은 세계 제1의 기술을 가진 중소, 중견 기업에서 나온다. 이런 기업들은 자신만의 뛰어난 기술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못 따라 온다.   

일본은 노벨상은 24명이나 받았다. 1명(1974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이 평화상이고 문학상 2명, 나머지는 기초 학문이다. 경제는 과학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노벨상 수상자 중 민간기업의 기술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평생 R&D만 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일본의 저력이다. 

일본 군사력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자위대 전체 병력은 24만5000명(한국군은 총 병력 56만명)으로 우리 절반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해,공군이 강하다. 해군은 세계 5위 정도이고 공군은 세계 3위 정도다. 국방 예산은 세계 6위 정도 한다. 특히 일본은 군사장비가 굉장히 좋다. 우리가 독도 문제 열을 내곤 하지만 한일이 맞붙는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면 우리가 백전백패다. 일본 문제를 다룰 때 '군사 대국화'의 길을 간다고 표현하지만 이미 '군사 대국'이다. 일본은 1943년 '야마토(大和)'라는 세계 최대 전함(길이 263m, 배수량 7만2000톤, 주포 460mm)을 만든 나라다. 일본은 현재 45톤이 넘는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다. 핵무기 6000~1만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작도 가능하다. 미국의 위성 발사체에도 일본 부품이 들어간다. 유엔 외교력도 한일간 차이가 크다. 유엔 회의에서 한일이 맞붙으면 20표 정도 차이가 난다는 말이 있다. 

일본은 한국에게만 무시당하는 나라다. 일본은 우습게 보는 나라는 우리빼고 단 한 곳도 없다. 정신 승리만으론 안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죽창을 들자"고 했을 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죽창 가지고 일본과 싸울 수 있나, 라고 생각했다. 시대감각이 19세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런 태도로는 절대 일본은 이길 수 없다. 우리는 닥치고 반일(反日)하면 본전은 한다. 일단 반일해서 손해볼 것은 없다. '보통의 일본'을 얘기하면 친일 분자라고 한다. 여론 조사해보면 70~75%는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국민의 정서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과거사'와 '영토 문제'가 먼저 오기 때문에 거기에 눈이 가려서 다른 부분을 못 본다. 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은 이런 말을 자주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볼 때 3가지 안경을 쓰고 본다. 하나는 '색안경', 또 하나는 '굴절 안경', 마지막으로 '확대경'(일본에서는 큰일도 아닌데 우리만 침소봉대해서 크게 보는 경향)이다."

일본은 바라볼 대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예 없어질 수는 없다고 해도 굴절되는 각도를 조금 줄이고 너무 확대해서 보지 않고 색깔을 너무 진하게 넣지 말자."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나.

"일본이 바뀌고 있다. 과거 일본의 전전(戰前) 세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 일본의 우위에 대한 확신으로 한국은 한 수 아래니 봐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전후 세대가 주류가 된 지금은 '혐한', '반한'이 주류가 됐다. 옛날에는 없던 말이다. 지난해 일본 내 최대 부수(발행 부수 70만)를 자랑하는 월간종합지 '문예춘추'에 특집기사 3개가 실렸는데 '한국과 단교하자'는 내용이었다. 1년에 이런 반한 관련 특집이 세번이나 다뤄졌다. 그만큼 혐한, 반한 내용이 팔린다는 방증이다. 반한 기사를 실은 일본 주간지도 잘 팔린다.

이런 혐한, 반한 분위기가 정치적 이슈나 위안부 이슈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류'가 촉발했다. (이런 주장이 정설은 아님. 여전히 역사 갈등과 한국의 경제 급부상이 일본 내 혐한, 반한 분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 다수임) 일본 여성들이 나이를 떠나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 아베 신조 총리에게 물어봤더니 부인 아케에 여사가 한국 팬인데 자기도 '제5공화국' 드라마를 다 봤다고 했다. 한번은 '겨울연가'에 출연한 한국 박용하씨와 아베 부부가 골프를 치고 셋이 사진을 찍었는데 아키에 여사가 중간에 있던 자기를 오려내고 두 사람이 찍은 것으로 짜집기 해놨다고 하더라. 일본 내에서 여성들이 한국 문화에 빠지니까 거꾸로 치고 올라온 게 혐한이다. 과거엔 주로 타블로이드 잡지에서만 혐한을 얘기했는데 이제는 너무 퍼져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우파 총리가 나와서 툭툭 치니까 혐한이 더욱 확대됐다. 

지금 일본 분위기는 한국에 대한 '체념'과 '불신'이다. 체념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된다. 불신은 한국에서 상황이 바뀌면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불신이 점점 더 커져갔다. 사죄,배상,파기,사죄의 도돌이표 순환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협상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지만 일본은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한국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몇 번이나 사과해야하느냐고 물을 정도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혐한, 반한 정서를 가장 잘 이용하는 정치인이고 문제인정부는 반일 감정을 가장 잘 활용하는 정부라서 한일관계가 매우 힘들다. 잘 될수 없는 구조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역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 역사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을 타개해나가기가 무척 어렵다. 한일 문제는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역사는 역사대로 해결하되, 경제나 사회, 문화같은 다른 이슈들에서는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

-스가 시대의 한일 관계는 변화할 수 있나.

"스가 총리가 역대 최장 관방장관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 관방장관은 사실상 넘버2다. 우리나라로 보면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청와대 대변인 역할을 동시에 한다. 외교를 포함해 모든 정보는 관방장관을 통해 총리에게 전달된다. 관방장관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 두번씩 브리핑을 한다. 이슈가 없어도 한다. 일본의 시스템이 그렇다. 브리핑 도중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권이 끝장날 수도 있다. 이런 관방장관을 7년 넘게 한 스가 총리는 한일 관계를 깨알같이 알고 있다. 

스가 총리는 (한국 대법원 판결로 한일의 핵심 현안으로 등장한) 강제 징용 문제는 1965년 수교할 때 한일 청구권 조약을 통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이 것을 바꾸면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이야기해왔다. 스가 총리는 취임 연설에서 미일 동맹을 중시하고 중러 양국은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북한과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언급했는데 한국은 언급도 안했다. 스가 총리가 한국을 무시했다기보다는 한국과의 문제를 풀고싶은 속마음이 언급을 안하는 것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한국과의 문제가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꺼내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박근혜정부가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깨버렸다. 그런데 깨는 것까지만 하고 그 다음은 없다. 징용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법원 입장을 존중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태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는 꼴이다. 이걸 풀려면 정치적 리스크를 걸어야 하는데 우리 정부가 이걸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어정쩡하게 가는 상태가 계속 될 것이다."

-한일 관계의 출구는 있는가.

"스가 총리와 뭘 하고 싶으면 다음달 초가 지나기 전에 뭔가를 던져줘야 한다. 스가가 총리됐을 때 지지율이 74%였다. 하지만 지지율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총리가 취임할 때 70%대 지지율을 보여도 2,3개월만 지나가면 50%대로 내려온다. 30%대로 내려오면 위험 수위다. 20%대가 되면 슬슬 내려올 준비를 해야한다. 10%대가 되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 아베 총리는 재직 시절 안보 문제로 2번 정도 위험 수위에 다다른 적이 있는데 리스크를 무릅쓰고 도박을 걸어서 살아났다. 스가 총리 지지율이 내려가기 전에 딜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런데 한일 이슈 자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치고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문 대통령 스타일상 힘들다. 스가 정부는 1+3년 가능성이 높다. 경쟁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내년가면 레임덕 오고 대선 다가오기 때문에 지금 밖에는 기회가 없다. 지금 못하면 이런 상태가 계속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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