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7월 31일 새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래 비전을 갖추고 결기 있게 임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대미 관세협상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안보 현안은 조만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 남산 자락에 있는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한·미 동맹은 전환점에 서 있다”며 “미래 비전을 갖추고 정상회담에 결기 있게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이라고 부르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연 100억 달러(약 14조원)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내년도 분담금(1조5192억원)의 9배가 넘는다.

“100억 달러는 주한미군 주둔으로 발생하는 비용만이 아니다.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상 정해지는 주둔 비용은 이미 대부분을 우리가 부담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한반도와 주변에서 군사 작전을 할 때 소요되는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그런데 군사 장비 등 작전 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하면 미군은 동맹군이 아니라 ‘용병(傭兵)’이 되는 것이다. ‘용병’이라고 하면 미국은 불쾌하겠지만, 100억 달러든 10억 달러든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킴으로써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현지 발생 비용’) 이상을 요구하면 그런 성격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런 점을 솔직하게 전하면서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주는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주한미군 현지 발생 비용을 우리가 100% 부담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방안이다.”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는 정치적 레토릭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도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는 공식적이고 구체적이다. 올해 기준으로 GDP 2.3% 수준인 국방비를 ‘5% 룰’에 맞추려면 70조원 정도를 더 늘려야 한다.

“GDP 4~5% 수준의 국방비는 미국처럼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는 나라의 이야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5% 룰’을 수용했다지만 유럽은 냉전 종식 후 평균적으로 GDP 2% 미만의 낮은 국방비를 지출해 왔다. 한국은 지속해서 2.5~3%를 지출해 왔다.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유럽도 순수 국방비를 5%까지 늘린다는 게 아니다. 도로·통신 등 인프라 지출도 포함시켰다. 한국은 기존의 높은 국방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미 미국의 3대 무기 수입국임도 강조해야 한다. 한국이 추가로 수입할 무기와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려는 무기 목록도 함께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

―이재명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양국은 ‘동맹의 현대화’에 의견을 같이했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한반도 밖 전개(전략적 유연성), 역할 변경 등 민감한 사안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주한 미 육군 2사단의 핵심인 스트라이커 여단은 순환 배치 형태로 한국 밖으로 오가고 있다. 주한 미 7공군은 한국에서 출격하면 새처럼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나. 미군 주력 부대는 이미 휴전선에서 후방인 평택으로 재배치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 범지역적 역할을 한다는 자세다. 한마디로 이미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전임 바이든 정부 때 나온 ‘핵·재래식 통합’(Conventional and Nuclear Integration·CNI)이 ‘전략적 유연성’의 바탕이다.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묶어서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는 재래식 전력을 굳이 한국에 많이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지 않았나.

“그건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의 합의다. 한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약속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으로 움직이면 한국과 협의한다는 수준이다.”

―미국 의회의 국방수권법에는 주한미군을 현 수준(2만8500명)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주한미군을 감축할 수 있나.

“국방수권법은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운용하기 위해 돈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일 뿐이다. 유효기간 1년짜리다. 아닌 말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예산을 안 쓰면 그만이다.”

―트럼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를 꺼내 들 경우에 대비해서 대응 카드를 준비해두고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 카드는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고도의 전략적 사고, 정치적 결단, 그리고 국내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 방위에서 중국 견제로 전환하자는 요구를 할 수 있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최근 일본과 호주에 ‘미·중이 전쟁을 벌이면 어떤 역할을 할 거냐’고 물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미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국이다. 조약 3조에 보면 태평양 지역에서 어느 일방이 제3의 세력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으면 자기 나라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을 취한다고 돼 있다. 대만이 독립 선언을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그래도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개입된다. 한국이 군대를 보낸다는 게 아니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발진(發進) 기지로 하면 그 자체로 (대만 사태에) 개입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해서 어떤 행동을 취한다는 입장을 내서는 안 된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대만을 돕겠느냐’는 질문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할 때 그 답을 생각해 보겠다”고 한 답변,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 ‘셰셰(고맙습니다)’하면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 발언은 두고두고 발목이 잡힌다. 이제 대통령으로서의 어법을 써야 한다. 앞으로 그런 문제가 나오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지지한다’고 일관해야 한다.”

―미·일 사이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 집단 방위 조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제안했다.

“아시아에 이미 몇 가지의 안보협력체가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와 미국·일본·호주·필리핀 4개국 안보협의체인 ‘스쿼드(Squad)’,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등이다.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 등과 이런 협력체를 유기적으로 어떻게 연결할 거냐는 논의를 하고 있지만 나토 식으로 체계화하는 건 어렵다.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하면 유라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밀착시키는 접착제가 된다. 미국에게는 악몽이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스탠스는 한·미·일 협력을 국익에 맞게 운용하는 것이다. 한·미·일 협력은 북한 억지와 중국 견제라는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전자에, 미·일은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데, 합목적적으로 운용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행사하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한국이 되찾아오는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도 쟁점이다. 국내에선 반대론도 거세다.

“미국은 1991년 냉전 종식 후 ‘동아시아전략구상’(East Asia Strategic Initiative, EASI)에 따라 일차적으로 평시 작전권을 1994년에 넘기고 전시작전권은 3~4년 후에 한국에 넘겨주려 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한·미는 2012년 4월 17일 작전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전환 시점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박근혜정부 때 합의한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은 언제까지도 맞출 수가 없는 조건들을 붙였다. 역내 안보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역내 안보 환경 조성 조건을 어떻게 맞추나. 미국은 지금 한·미동맹의 운전대를 한국에 넘기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겠다는 것이다. 국내 일각에서 걱정하듯이 미국이 차에서 내리는 게 아니다.”

―트럼프 정부도 전작권 전환에 긍정적인가.

“지금 거론되는 ‘동맹 현대화’엔 작전권 전환이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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