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2007년 7월3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법이 통과될 때만 해도 이 같은 기대가 현실로 이뤄질 것이란 장밋빛 희망이 있었다. 2009년 로스쿨 체제가 본격 출범하고 11년이 지난 현재, 로스쿨은 다양성 함양 대신 ‘현대판 음서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9일 세계일보 조사 결과 올해 6대 로펌 신입 변호사 10명 중 7명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출신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출신 학부 역시 SKY 일색이었다. ‘SKY 학부→SKY 로스쿨→대형 로펌 취업’이 공식처럼 굳어진 것이다. 대학별 전문분야를 키우고, 학생은 원하는 분야에 특화된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 인력을 다양화한다는 이상적 로스쿨 모델은 온데간데없고 고질적인 ‘대학 줄세우기’와 학벌주의만 악화된 모양새다.

법조계에선 “로스쿨의 존재 의의를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들린다. 전문가들은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대 로펌 신입, SKY 로스쿨 출신이 77%

로스쿨 제도는 법조 현장의 학벌 장벽을 오히려 공고히 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진학 때부터 SKY를 포함한 서울권 주요 대학에 입성하지 못하면 이후 로스쿨 진학·취업 과정에서 법조계 주류에 안착할 확률은 극히 낮아졌다.

올해 6대 로펌(김앤장·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에 입사한 187명의 신입 변호사 중 SKY 로스쿨 출신은 143명이나 됐다. 사법연수원 출신 2명을 제외하면 전체 신입 변호사 10명 중 약 7명(77.3%)이 SKY 출신이었다. 학교별로는 서울대가 72명(38.9%)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36명·19.4%), 고려대(35명·19%)가 뒤를 이었다. 대형 로펌은 검사·로클럭(재판연구원)과 함께 로스쿨생이 가장 원하는 취업지다.

SKY가 아닌 신입 변호사 역시 대부분 서울권 로스쿨 출신이었다. 비 SKY 중에선 성균관대가 14명(7.5%)으로 가장 많았고, 한양대(6명·3.2%), 중앙대(4명·2.1%), 이화여대(4명·2.1%), 서강대(3명·1.6%) 순이었다. SKY 출신과 비 SKY 서울지역 출신 입사자를 합치면 94.6%나 됐다. 사실상 서울 지역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하면 6대 로펌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 셈이다.

지방 로스쿨 중에선 경북대와 부산대, 인하대가 2명씩 6대 로펌 입사자를 배출했고, 전북대와 전남대, 아주대, 충남대에서 1명씩 6대 로펌에 취업했다. 올해 6대 로펌 입사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로스쿨은 9개교(강원대·건국대·경희대·동아대·제주대·동아대·충북대·영남대·원광대)다.

지방 로스쿨에 재학 중인 A씨는 “회계사 등 전문자격증이 있거나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드문 경우가 아니면 대형 로펌에 들어간 경우는 주변에서 거의 없다”며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들은 리트(LEET·법학적성시험) 몇 수를 해서라도 SKY 로스쿨을 간다”고 했다.

◆공식화된 ‘SKY 학부→SKY 로스쿨→대형로펌 취업’

대형 로펌 취업자가 SKY 로스쿨 일색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SKY 로스쿨 입학자 대다수가 SKY 학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20살 안팎에 SKY에 입학하지 못하면, 대형 로펌 취업길이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계층사다리를 늘리기 위해 만든 로스쿨이 오히려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다양한 진로 모색이나 인생 역전을 꿈꾸기 힘들게 만드는 형국이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올해 전국 24개 로스쿨(인하대 제외)을 상대로 ‘2021학년도 입학생의 출신대학 자료’를 받은 결과, SKY 로스쿨에 입학한 SKY 대학 출신은 87.1%였다. 학교별로 보면 서울대 로스쿨 신입생 153명 중 138명(90.2%), 연세대 신입생 126명 중 108명(85.7%), 고려대 신입생 124명 중 105명(84.7%)이 SKY 학부 출신이다. 자연히 대형 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출신 학부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올해 대형 로펌 5곳(김앤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입사자 중 80.6%는 SKY를 졸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범위를 서울 지역 로스쿨로 넓히면 SKY 학부 출신이 싹쓸이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지역 로스쿨 중 SKY 학부 출신 비율은 90.2%였다. 서울 지역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는 비SKY 출신은 10명 중 1명뿐이라는 얘기다. 지방대 로스쿨의 경우 SKY 학부 출신은 28.8%였다.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등 확 바뀌어야”

법조계에선 로스쿨 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법조인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등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변호사시험은 암기 위주에다 합격률이 정해져 있어, 로스쿨에 다니는 3년 내내 시험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를 자격시험화하면 학생들이 관심 있는 전문분야를 3년 동안 파고들 여유가 그나마 늘어날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기대한다. 각자 전문분야를 기르면 출신 학부·로스쿨의 ‘서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질 수 있다.

방효경 변호사(법무법인 피앤케이)는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 되면, 학교에서 변호사 시험공부는 최소화로 하고 남는 시간에 전문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SKY 로스쿨이 아니어도) 대형 로펌 내 전문팀에 가는 게 가능해진다”고 했다.

교사 출신의 박은선 변호사도 “변호사시험의 합격률 통제가 (현 상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변호사시험만 붙자’는 생각으로 공부하다 보니 전문성에 대한 중요성이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잠깐 타올랐던 ‘방통대 로스쿨’ 논의도 대안 중 하나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방송통신대학교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법학 학점 12점 이상만 이수하면 방통대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현재까진 통과 가능성이 낮지만, 방통대 로스쿨이 실현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변호사로 유입될 길이 늘어난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다양한 법조인 양성’을 내세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오히려 학벌주의를 공고화하는 현상에 대해서 현직 로스쿨 교수들은 제도 설계부터가 불공정했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자격 시험화’로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외대 로스쿨 이창현 교수는 29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의 지원이 많고 또 SKY로스쿨의 선발 인원이 서울대 150명, 연세대·고려대 각각 120명으로 다른 로스쿨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SKY 출신이) 대형로펌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수한 자원이 몰리고 환경이 좋다 보니 SKY 로스쿨에서는 상승작용이 일어나고 반대로 지방의 로스쿨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로스쿨 제도 설계 자체가 불공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사법시험의 합격자 배출자 수를 토대로 로스쿨 정원이 정해진 것 자체가 지방과 서울 소재 로스쿨의 가장 큰 격차”라고 꼬집었다. 이어 “서울대 로스쿨은 일부 필수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꿔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준비 부담을 덜어줬지만 정작 엄격한 학사 관리에 책임이 있는 로스쿨 협의회나 교육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로스쿨) 1학년들이 반수해서라도 SKY, 서울대 로스쿨을 진학하려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 소재의 한 로스쿨 교수는 “대형 로펌을 목표로 한다면 애당초 지방의 로스쿨을 선택하지도 않는다”며 “학생 수도 적은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는 서울에 빼앗기고 (지방대 로스쿨 출신의) 변시 합격률도 갈수록 떨어지면서 악재만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로스쿨 도입 당시 제도 연구에 참여했던 건국대 로스쿨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은 ‘변호사시험 자격 시험화’를 전제로 만들었다”며 “변시를 상대평가에 의한 선발시험처럼 운영하면서 제도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변시 합격에 목매게 되면서 로스쿨 교육은 황폐해지고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됐다”며 “결국 로스쿨도 변시 합격을 위해 학벌로 대표되는 ‘범생이’를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로서의 성공 여부는 자격시험 통과 후에 결정될 내용”이라며 “로스쿨 교육을 충실히 받았다면 변호사 자격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1. “좌절의 연속이었죠.”

울산 동구에서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살고 있는 40대 후반 A씨의 자존감은 최근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를 잃으면서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학생 수가 줄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다른 피아노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는 것도 잠시뿐. 일자리는 다시 사라졌다.

A씨는 어렵사리 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이용해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이 분야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휩쓸었고, 적응도 잘 되지 않았다. A씨에게 주어지는 일은 호텔 하우스키퍼 등 단기 일자리뿐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A씨는 이혼한 전 남편과의 재결합을 선택했다. A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은 구할 수 없고, 일자리 질은 점점 낮아지니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참담했다”고 토로했다.

#2. 60대 방문 요양보호사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B씨와 같이 살고 있는 딸은 2019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딸의 실직 상태는 길어졌고, B씨마저 지난해 2월말 ‘감염 우려’를 이유로 일이 줄었다. 한 달에 약 130만원이던 소득은 반토막이 됐다. 월세·보험료·생활비 등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그대로였고, B씨 소득만으론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어렵게 취업한 딸은 직업훈련생계비 1000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코로나19를 벗어나도 모녀가 갚아야 할 다른 빚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성에 더 큰 충격파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1년6개월 정도 지났다. 코로나19를 겪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일자리 측면에서는 여성들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16일 한국은행의 ‘코로나19와 여성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올해 1월 남성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해 2월에 비해 2.4% 줄었지만, 여성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1년 동안 여성고용률은 남성보다 0.9%포인트 떨어졌고, 실업률은 남성보다 1.7%포인트 올랐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코로나19가 내 직업에 미친 영향’에서도 고용시장에서의 남녀 간 충격파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직업종사자 1만62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임금·소득이 감소했다는 답변은 전체의 35.8%였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34.0%)보다는 여성(39.9%)이 상대적으로 소득 감소의 타격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는 남성 고용률이 여성보다 1.5%포인트 더 하락하고, 남성 실업률이 1.7%포인트 더 상승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은 건설업과 제조업이었다.

경기침체기 나타나는 ‘추가근로자 효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주 수입원인 남편의 소득이 줄면서 이를 메꾸기 위해 직업이 없던 아내가 고용시장에 뛰어든다. 보건·사회복지, 교육, 숙박·음식, 도·소매 등은 경기침체 상황에도 영향이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 모두 여성 비중이 높은 산업들이다. 우리나라 여성 취업자 비중은 일반적으로 보건·사회복지(81%), 교육(67%), 숙박·음식(63%), 기타서비스(50%) 등에서 높게 나타난다.

맹점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이 같은 대면 서비스 산업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코로나19 1년 - 여성의 일·돌봄 변화와 전망’을 보면 여성 노동자 3007명 중 퇴직자의 46.1%는 회사의 휴·폐업, 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답했다. 업종별로는 교육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의 비중이 높았다. 퇴직 여성이 일을 그만둔 시점은 지난해 3월이 19.9%로 가장 많고, 4·8·11월이 각각 11%대로 나타났다. 8월과 11월은 코로나19 2차, 3차 대유행이 시작돼 권역별 거리두기가 상향된 시기다.

◆‘직장인 엄마’ 돌봄 부담 증가로 일 중단

코로나19는 특히 ‘직장인 엄마’에게 더 가혹했다. 팬데믹 1년간 30∼45세 여성의 취업자 수가 감소한 가운데 기혼여성 비중이 95.4%인데, 미혼여성은 4.6%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일을 관둔 여성 대부분은 기혼여성이었던 것이다. 또 미혼여성 취업자는 코로나 확산 초기에 6% 내외 감소한 이후 6개월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육아 등의 부담이 있는 기혼여성 취업자는 코로나19 초반 약 10% 줄어든 이후 거의 1년 동안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자녀 수가 많거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기혼여성의 고용률이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점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성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돌봄과 가사노동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분담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와 어린이집, 학원이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여성들의 돌봄 부담이 크게 늘었고 기혼 여성의 고용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재취업한 여성의 일자리의 질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코로나 시기 퇴직 후 재취업한 여성은 이전보다 더 일시적인 일자리에 취업했을 가능성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퇴직한 여성 3명 중 1명은 재취업했지만, 2명은 여전히 실직상태에 놓여있다. 20대, 저학력, 임시·일용직일수록 실직 상태가 길거나 일시적 취업-퇴직을 반복하고 있다.

재취업 여성의 코로나19 이전 일자리는 상용직 비중이 60.4%였으나 코로나19 이후 재취업한 일자리는 임시·일용직 비중이 57.1%였다. 상용직 비중은 42.9%에 불과했다. 시간제 비중도 코로나 이전엔 43.0%였지만 이후엔 49.3%로 증가했다.

여성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남성보다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2021년 1분기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여성의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1.81점(10점 만점)으로 남성(1.61점)보다 높았고, 불안(4.97점)도 남성(4.27점)보다 더 많이 느낀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직업·사회·가정생활 등 일상생활에 방해된다고 느끼는 정도는 4.57점으로 역시 남성(4.27점)보다 더 점수가 많았다. 특히 어린 연령대의 자녀를 둔 경우가 많은 30대 여성의 경우 우울위험군 비중이 30.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아이 돌봄 부담 증가, 세 끼 식사를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가사업무 가중 등의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성고용 안전망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고용시장의 성별 양극화를 촉진시킨다며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중장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정 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고용조정 사업장의 상당수가 여성·임산부, 육아휴직 사용자를 우선 대상으로 했다는 조사 결과는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과거 경제위기 시 성별 불평등 양상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정책연구팀장은 “여성의 경제활동 시작 단계에서부터 전문성을 키워가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가족돌봄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고용시장이 불안해지거나 가족돌봄을 위한 인력이 필요한 경우 여성은 언제든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박 팀장은 이어 “중장기적으론 산업 다각화를 대비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진행해 여성을 산업이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에 고용 안정화 측면에 가점을 주는 등 여성고용 안정화를 위한 기업과 정부의 합의가 필요하다. 가족돌봄의 역할이 여성에게 한정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중에서도 20대 ‘직격탄’… 극단적 선택 급증

20대 여성은 코로나19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일자리 위기를 더 많이 경험했다. 일자리를 잃으면서 우울감은 커졌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대 여성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한 전국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온 자살시도자는 2만2572명이다. 이 중 20대 여성이 4607명으로 전체의 20.4%를 차지한다.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비율이 높다. 증가율도 가장 가팔랐다. 전체 자살시도자가 최근 1년 사이 2만1545명에서 2만2572명으로, 4.7% 증가할 때 20대 여성의 증가율은 33.5%(3449→4607명)로 늘었다.

복지부의 최근 ‘2021년 1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도 적신호가 켜진 20대 여성의 정신건강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전체 우울위험군 비율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 3.8%에서 올해 22.8%로 6배 증가한 가운데 20대 여성의 우울위험군 비율은 30.4%로 나타났다. 이는 30대 여성(31.6%)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20대 여성은 지난해 3월 4.6점(10점 만점)으로 우울감이 가장 낮았으나 급격하게 증가해 최근 조사에서는 7.1점으로 1년 만에 점수가 크게 높아졌다. 주로 숙박음식점업과 서비스·판매직 등에 종사하는 20대 여성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 안정성이 악화하면서 정신적 압박을 더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가운데 특히 저학력 여성에게 일자리 위기가 집중됐다. 고졸 이하 20대 여성의 절반가량(44.8%)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퇴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퇴직·실직 비율은 높았지만 대부분은 당국의 고용위기 대응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대 여성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6.4%로 다른 연령대 여성(24.0%)보다 낮았고, 고졸 이하 여성 수급률은 7%로 이보다 더 낮았다. 비필수인력, 재택근무 불가 일자리를 관둔 비중 역시 20대 여성이 다른 연령대 여성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의 경우 미래 준비에 대한 불확실성과 취업 및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 감소, 사회적 관계 위축으로 코로나19 충격파가 더 클 것으로 진단했다. 배은희 울산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사업팀장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사회적 지원 서비스가 줄어들고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기에 우울, 자살 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안, 공포, 스트레스 등은 코로나19라는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이것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울, 불안장애, 중독문제, 심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대입 수시전형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서울의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25일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에서 당부한 말이다. 당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입 선발 비중이 높은 수시 전형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시전형 확대를 주문한 것이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 사교육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교육의 공정성을 확보하라는 취지가 담겼다. 그만큼 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은 상당하다. 계층 이동의 주요 사다리로 여겨졌던 교육과 입시가 사다리는커녕 빈부 격차에 따라 대물림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고임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시대다. 고학력에 재산이 많은 부모를 둔 학생일수록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매우 높아서다. 이는 다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학벌 프리미엄

1일 한국노동연구원의 ‘대학서열과 생애임금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좋은 대학으로 불리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근로자들은 그러지 못한 졸업자들에 비해 14.0%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대학서열을 매길 수 있는 4년제 대학을 5~1분위로 나눠 출신학교에 따른 급여차이를 분석했다. 조사결과 최상위권인 5분위 대학을 졸업한 취업자들의 평균 연봉은 3766만원이었고, 최하위권인 1분위 대학 출신은 2912만원을 받았다. 두 그룹의 임금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져 40~44세일 때 연봉차이는 46.5%나 됐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즉 학벌 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고등교육 노동시장 성과와 서열구조 분석’ 보고서에서 “대학 백분위 서열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시간당 임금은 0.5% 늘어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적자본의 영향이 커서 학벌 프리미엄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인적자본은 교육 등으로 그 경제가치나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배경을 의미한다.

이지영 KDI 전문연구원은 “좋은 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연봉이 높은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대학교육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획득하거나, 재학 중 동료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 더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선배나 동료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모습을 보고 이와 유사한 수준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교육 불평등 심화 지적받은 수시전형

대입이 학력고사 체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로 바뀐 후 수시전형은 1997학년도 입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1.4%에 그쳤던 수시 선발 비율은 2002학년도 입시 때부터 급증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한 가지 특기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수시 선발 비중을 30% 가까이 확대한 것이다. 학생들이 입시 부담을 벗고 다양한 개성을 발휘하면서 대학에 쉽게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취지는 살리지 못했지만 수시 비중은 계속 증가했고, 2007학년도에서는 처음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이 역전됐다. 수시 전형의 모습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엄청 복잡해져 사교육 시장 의존도를 키웠다. 2008학년도에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도 학교생활기록부와 교내외 활동까지 모두 반영해 외부 스펙 경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학년도에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도입돼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등 교내 활동 자료를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했고, 학종은 곧 수시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기자 전형도 신설됐다. 내신은 우수하지 않아도 어학이나 과학 등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은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부모의 능력 경쟁된 수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 수시전형의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시행 과정에서 부작용이 상당했다. 대학은 학생들의 평소 학교생활을 평가하기 위해 스펙을 참조했고, 부모의 지원 사격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좋은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고등학교를 들어간 뒤 논문 작성이나 인턴 경험 등 화려한 스펙을 뽐내며 수시 관문을 수월하게 통과했다. 학생 본인의 역량이나 노력 외에 부모 능력과 고교 유형 등 외부 환경이 입시 당락에 큰 영향을 주고 그 기준마저 명확하지 않아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특기자 전형만 해도 과학고와 외국어고, 국제고 등 사실상 특수목적고 학생들을 위한 제도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고교서열화 논란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 사태가 수시전형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문 대통령의 주문 이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불신받는 학종의 비율이 높은 대학은 불가피하게 정시와 학종의 비율을 적정하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뒤늦게 정시 확대방안을 내놨지만 그런다고 교육의 공정성과 사다리 역할이 회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홍세화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가 “이젠 부모의 배경 없이는 학벌을 갖기도 어렵고, 가지더라도 당대의 노력으로 부모의 격차를 메울 수 없는 정도가 됐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시’ 확대로 돌아섰지만… ‘사다리 재건’ 역할엔 의문

정부가 수시전형 비중을 축소하고 정시전형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것은 교육 기회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다. 취지와 다르게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 대물림을 가속화한다는 비판 여론을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임기응변식의 잦은 정책 변경에 따라 일선 교육 현장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우려와 함께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과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정시확대에 대해 “정치권에 떠밀려 정책을 급조했다”고 비판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육정책에 대해 찬반이 엇갈릴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교육정책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우려한다”며 “잦은 정책 수정이 이뤄질 경우 정보에 가까운 쪽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은 수정됐다. 이번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8월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은 여론의 반발에 1년간 유예됐다. 유치원 방과 후 수업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됐지만 역풍을 맞아 중단되기도 했다.

정시확대가 교육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를 두고도 의견은 갈린다. 정소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상황에서 정시확대는 이를 옹호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취지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수능에 서술형을 도입하거나 논술형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한 토론회에서 “사고능력과 논증능력은 오지선다 시험인 수능으로 알아볼 수 없다”며 “선진국에서 입시를 논술형으로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캐나다와 노르웨이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표준화된 대입 시험이 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호주, 이탈리아, 덴마크 등에서는 대입 시험을 논술형으로 치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주입식 교육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서술형 문항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맞다”며 “논술이 도입됐을 때 채점 등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고교학점제 등 변화하는 제도에 맞춰 수능제도에 맞춰 논술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문이과 통합수능이 치러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수능제도에 변화를 주겠다고 하면 교육 소비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전국 고등학교에 학점제가 도입되는 만큼 새로운 대입 평가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2028학년도 수능부터 논술이나 서술형 시험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세계 주요 국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역장벽을 더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자국 경제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과감한 재정과 부양책을 동원하는 한편 수입규제 조치도 속속 도입하는 모양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통상 전반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술개발 등의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정부도 각국과 통상협력 강화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역장벽 높이는 선진국·신흥국

2일 산업·통상계에 따르면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선진국 중심의 저성장과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빚어진 공급과잉 문제 등의 영향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중국과 대립하는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며 글로벌 시장엔 혼란이 가중됐다.

올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 우선구매)’을 기치로 한 이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계승하는 모양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특히 미국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배제한 핵심 제품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도 단기간에 마무리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역시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면서 내수 확대 및 자국 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반도체 등의 중간재를 수입하는 대신 자국에서 생산하는 자체 공급망인 홍색공급망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 터키를 비롯한 신흥국들도 자국 제조업 육성을 위한 중간재에 대한 수입규제에 나서는가 하면 수입면허와 강제인증 대상 품목 확대 등 비관세장벽도 강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럽연합(EU)과 미국이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 또는 기업 제품에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무역장벽이 등장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겨냥 수입규제 역대 최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는 우리나라를 겨냥한 각국의 수입규제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트라가 지난 2월 발간한 ‘2020년 하반기 대(對)한국 수입규제 동향과 2021년 상반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는 26개국에서 총 228건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에 대한 수입규제는 2011년 117건에서 2013년 127건, 2015년 166건, 2017년 187건, 2019년 210건, 2020년 228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수입규제 형태별로는 반덤핑 164건(72%), 세이프가드 54건(24%), 상계관세 10건(4%) 순이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4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인도 33건, 중국 16건, 터키 14건, 캐나다 13건, 인도네시아 10건, 태국 9건 등의 순이었다. 이 중 인도, 필리핀, 태국 등 신흥국의 규제 건수가 151건으로 전체의 66%나 차지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수입규제를 비롯한 무역장벽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수출 1·2위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위험이다. 미국 정부는 오는 4일 반도체·배터리·바이오의약품·희토류 등 4개 핵심 품목에 대상으로 실시한 공급망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 계획을 내놓는다면 우리나라로서는 양국 사이에서 또다시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정부, 국제통상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나서야”

전문가들은 백신 공급 등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누그러지더라도 세계경제가 이전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도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다자주의 원칙과 입장을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양자 차원의 FTA(자유무역협정)를 비롯해 지역 차원, 글로벌 차원에서 다른 정부들과 무역협정을 맺으며, 수출시장 확보와 과거 수출시장의 회복은 물론 수출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미·중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 모두 이에 빠르게 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우리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영역에서는 미국 내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고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공급망에 합류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메시지를 지속해서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우리 기업이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와 가격 경쟁력 등을 갖춘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서도 이원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배터리와 같이 이미 우리가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에서는 미국과 어떤 부분에서 협력할 수 있을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반복되는 보호무역·무역전쟁 역사

2018년부터 계속된 미·중 무역분쟁과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탈세계화 노선이 최근 국제 정세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 됐다. 18세기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제시한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이후 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보호무역과 무역전쟁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2일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분쟁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패권을 쥔 지난 한 세기 동안 280건의 무역분쟁에 휘말렸다.

미국은 1929년 맞은 대공황의 해법으로 보호무역을 시작했다. 이듬해 미국 의회가 농업·공업 등의 제품 전반에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 할리(Smoot-Hawley)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2만여종의 제품에 평균 59%의 세금을 물리고, 일부 품목에는 무려 400%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사실상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WTO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조치에 교역국들 보복관세로 대응에 나서면서 이후 5년간 세계 교역량이 3분의 1토막 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7년 미국 주도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출범하고 나서야 보호무역시대가 막을 내렸다.

196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이 ‘치킨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닭고기를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다. 저렴한 미국산 닭고기가 유럽에 풀리자 1962년 유럽경제공동체(ECC)가 닭고기 수입 관세를 올렸고, 이듬해 미국은 유럽산 브랜디, 감자전분, 소형 트럭 등에 대한 관세로 맞받아치면서 무역갈등이 확산됐다.

1980년대에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견제에 시달렸다.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와 철강제품에 고강도 관세를 매겼고, 1985년에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 절상을 유도했다. 큰 폭의 무역흑자로 호황을 거듭하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게 된 원인 중 하나를 미·일 무역갈등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미·중 무역분쟁은 2018년 7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340억달러 규모의 800여개 중국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발발했다. 중국은 즉시 농산물과 자동차 등에 보복관세 조치를 시행하면서 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양국이 몇 차례 경쟁적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대상 제품이 2000억달러 규모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양국은 1단계 무역 합의를 체결했지만, 합의한 분량만큼의 수입 절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언제든 무역분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무역전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8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으로 일본과 외교·정치적 갈등이 커졌고, 이듬해 일본이 우리나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치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등 무역제재로 대응에 나섰고 국민적 차원의 불매운동이 확산하기도 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결혼 3년차 A씨 부부는 지난 3월부터 거의 매주 휴일 때면 서울 근교와 인근 전원도시로 땅이나 주택 탐방을 다닌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관련 기업과 광고 회사에 각각 근무하는 이들 부부는 지난해부터 늘어난 재택근무 시스템 때문에 비싸고 좁은 도심 아파트에 살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됐다. A씨는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근무형태가 계속되거나 반복된다면 아파트 전세금을 빼서 넓고 쾌적한 서울 근교 단독주택 등을 사거나 지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무자녀인 이들에게 학군 등 교육 여건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들은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다고 했다.

본인 소유 서울의 소형 아파트를 비워 두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지방의 한 혁신도시로 거처를 옮겼던 프리랜서 디자이너 B씨는 아파트 처분을 고심 중이다. 2019년 결혼 이후 지금까지는 일이 생길 때만 서울 집에서 출퇴근을 했지만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면서 굳이 빈 집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B씨는 “언택트(비대면) 근무가 더 늘어날 텐데 값이 오른 서울 아파트를 팔아 혁신도시 전세 아파트를 자가로 바꿔 ‘탈서울’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가 사회에 많은 변화를 부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재택근무와 비대면 업무의 활성화다. 당연히 회사 책상에 앉아야만 근무하는 것으로 보였던 시대가 가고 ‘연결’만 되고, 성과만 낼 수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시대가 됐다.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도 늘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은 쉬이 다시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다소 성급해 보이지만, 회사 소재지에 아등바등 집을 구해 거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일 관련업계와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HSBC는 지난해 콜센터 직원의 영구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이 은행은 재택근무 때 늘어날 직원 집의 전기요금까지 급여에 챙겨주기로 해 화제가 됐다. 일본의 게임사 스퀘어에닉스도 영구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스포티파이는 직원의 절반 또는 희망자에 한한 영구재택을 채택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 사례는 아직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각각의 상황에 맞춰 부분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또한 이러한 수시 재택·비대면 업무 처리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기업 실적에 큰 영향은 없는 것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일부 우려의 목소리는 나온다. 한 대기업 팀장급 직원은 “대면 회의와 토론을 다른 직원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고 배우는 등의 상호작용에 따른 시너지가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한 임원급 인사는 “직원들이 인성과 평상시 근무 태도 등도 승진 평가 등의 중요한 요소인데 그런 과정은 모두 생략되고 성과라는 결과물로만 인간을 판단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비대면 사회의 확장은 이밖에도 여러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현재까지 영구재택을 도입한 회사는 대부분 IT와 그 유관 업무를 처리하는 업종으로 한정된다. 현장에 반드시 근로자가 출근해서 직접 작업을 해야 하는 완성차, 철강, 조선업 등 제조업계에서는 불가능한 업무 형태다. 이런 근로형태의 차이 확산이 근로자 간 갈등과 불필요한 계층 차별 등의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세계 디지털경제 판도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로 성큼 다가온 비대면시대에 우리 IT기업들이 앞다퉈 비대면 배송과 협업툴 시장, 인공지능(AI) 등 각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벤처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벤처기업가들의 도전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이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재벌기업의 지배를 위한 편법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와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위한 필수 정책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도입이 코로나19와 함께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하나

19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표면적으로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증권시장이 세계 유니콘기업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야놀자,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는 이미 미국 나스닥 상장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비단 우리 기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 기업 가운데 자국 증시에 상장하지 않고 다른 나라 증시에 상장한 사례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다.

2013년 홍콩 거래소에 상장하려 했지만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아서 뉴욕으로 선회했다가, 2018년 홍콩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자 재입성했다. 바이두도 차등의결권주식을 허용하는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미래 성장성을 더 높게 평가해 사업이익·매출·자기자본 등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미국 증시의 특성도 있지만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 나서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보유 주식 수가 적어도 의결권한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차등의결권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M&A를 막고 기업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은 말 그대로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다르게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상법 369조는 의결권을 주식 1주마다 1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차등의결권은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선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한다.

최근 차등의결권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이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행을 택한 이유가 바로 이 차등의결권이 국내에는 없어서란 분석이 내놨는데 실제 쿠팡의 미국 뉴욕증시 상장이 현실화하면서 김범석 쿠팡 의장은 1주당 29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갖게 됐다. 지분율은 2%에 불과하지만 의결권은 58%에 달하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분석 따르면 특정 구간에서 벤처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이 1%포인트 오르면 연구개발투자액이 최대 500만원 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차등의결권 도입이 벤처기업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미국과 일본 등 17개 나라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상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위 150개 혁신기업 가운데서는 차등의결권 도입률이 해마다 늘며 현재 13%에 달한다.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각 국가에서는 차등의결권을 포함해 기존 주주에게 신주 저가 인수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 1주만으로 특정 주총 안건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황금주 등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마땅한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차등의결권이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자사주 매입 정도 외에는 적대적 M&A에 대응하기 위한 뚜렷한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재벌세습 악용 반대의견도…정부안은 실효성 논란

하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내 재벌의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차등의결권 도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차등의결권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등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증대시키는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실련 재벌개혁본부 권오인 국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차등의결권이 도입될 경우 재벌 4세 경영인들이 벤처기업을 설립해 일감 몰아주기라든지 자체적 증자로 기업을 키울 수 있다. 이후 기업 가치가 커지면 그걸로 모회사 지분을 사버리면 바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에서 허용하는 주주평등제를 위반해 재벌들을 위해 차등의결권이 악용될 수 있고 시장정의가 흐려질 수 있다는 게 권 국장의 이야기다.

정부도 이러한 시민단체의 우려를 감안해 주당 10개까지, 상장 후 3년 동안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의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2개 이상 최대 10개까지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자금력이 달려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벤처기업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투자를 받아 성장하는 벤처기업의 창업주가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외부자본에 휘둘리는 등의 상황을 막고, 아이디어를 안정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1개의 의결권만 갖는 보통주로 전환된다는 개정안의 내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의 정부안은 실효성이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안은 차등의결권 도입 대상을 현재 벤처 인증을 받은 비(非)상장 기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국내 약 360만개의 중소기업 중 3만9000개(약 1%) 정도만이 차등의결권 도입 대상이다. 특히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최대 10년까지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해야 하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유럽이 각 기업의 업종과 성격에 맞게 자율적으로 소멸기간을 정한 것과 달리 정부안이 일률적으로 3년의 기간을 정한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제한 규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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