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독사 위험에 노출돼 있는가. 20일 보건복지부와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대국민 의견수렴 조사 결과(정순둘 외·1833명 대상)’를 살펴보면 고독사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반인보다 사회적 고립도와 가구취약성이 높았다. 그중에서도 가구취약성보다는 사회적 고립이 고독사 고위험군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독사로 연결될 수 있는 ‘외로움’은 전 국민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국민 네명 중 한명은 외로움을 호소했으며, 특히 고독사 고위험군에서는 ‘혼자라고 느껴져 외로움을 느낀다’는 설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가 전체의 7,8할이었다.

◆사회적 고립, 경제·건강 문제 겪어

고독사 고위험군은 어떤 특성을 보일까. 보통 고독사 사례를 살펴보면 이웃이나, 친구, 가족, 사회복지사 등과의 접촉을 스스로 차단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된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고독사 고위험군은 외출이나 주변인과의 만남을 꺼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필품 구입, 관공서, 병원진료 등 필수목적이 아닌 외출 횟수가 2주 1회 이하’인지 묻자 전체 응답자의 11.1%가 ‘예’라고 답한 반면 고독사 고위험군은 34.3∼39.6%(위험기준1·2)가 ‘그렇다’고 했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 친구나 지역사회(이웃/기관포함)가 찾아오겠다는 뜻을 나타내도 거부한 경험이 있다는 이가 국민 전체에선 19.7%였지만 고위험군에선 58.9∼65.8%로 확인됐다.

고독사 고위험군은 이같은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 위기상황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대화를 나눌 이가 없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돈이 필요할 때 빌려줄 사람이 없다’는 질문에 ‘예’라는 응답은 전체 21.6%, 고위험군은 76.3∼86.5%였다. ‘몸이 아플 때 돌봐 줄 사람이 없다’(전체 21.5%, 고위험군 67.1∼76.6%), ‘낙심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대화 나눌 사람이 없다’(전체 17.9%, 고위험군 66.2∼77.5%) 등에서도 고위험군이 크게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고독사 위험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겪을 때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신체적 질병(만성질환 등)이 있으며, 질병관리 의지가 결여되거나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 6.0%, 고위험군 40.6∼55.9%로, ‘심한 우울감이나 자살 생각(시도), 알코올 및 약물중독 등 정신적 건강(질환)에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 7.1%, 고위험군 44.9∼52.3%로 조사됐다.

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해 가구취약성이 높은 경우도 고독사 고위험군에 해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근로 능력도 없고, 소득취득 수단도 없다’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9.6%가 ‘예’라고 답한 가운데, 고위험군은 53.6∼67.6%가 그렇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은 ‘주거문제(임대료 체납, 퇴거위기, 주거환경 불량 등)를 겪고 있다’(전체 6.2%, 고위험군 39.6∼54.1%), ‘공과금(수도, 전기, 가스요금 등) 등 미납이 지속되고 있다’(전체 2.5%, 고위험군 17.4∼27.0%) 등 물음에서도 확인됐다.

다만 연구팀은 “가구취약성은 사회적 고립에 비하면 고독사 고위험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편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누가 더 외로움을 느끼나

고독사는 외로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 교수는 “외로움은 개인적 문제이지만 결국 사회적 고립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사회적 고립은 고독사 위험을 높이는 큰 특성”이라고 밝혔다.

‘나는 혼자라고 느껴져 외롭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24.3%였는데, 고독사 고위험군에서 이 비율은 73.2∼80.2%로 3배로 뛴다.

고독사 고위험군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은 1인 가구, 고령, 경제 취약층 등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 역시 관련군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1인 가구에서는 36.2%가 ‘외롭다’고 답했다. 그 외 가구(13.5%)의 3배 가까운 숫자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외로움 비율은 20대부터 60대까지 21.2%∼25.6%로 비슷하다. 특히 20대의 22%, 30대의 22.5%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해 2030 젊은층의 외로움도 중장년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 고위험군 범위를 넓게 설정(고위험군1)했을 때의 결과를 보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의 고위험군 비율이 11.5%로 하지 않는 사람(3.6%)보다 높았고, 생계급여 수급자의 고위험군 비율(12%)은 비수급자(32.4%)보다 낮았다.

또 주관적 경제수준 상, 중, 하 중에서도 중(8.8%)이라고 대답한 군의 고위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교수는 “고독사 위험군의 주요 축을 ‘가구취약성’과 ‘사회적 고립’ 두 가지로 보고 살펴봤는데, 가구취약성보다는 외로움과 고립이 더 큰 설명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며, 향후 고독사 정책에서 사회적 고립 해소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외롭다는 응답은 70대에서 갑자기 35.4%로 치솟는다. 혼인상태로 보면 ‘사별’(51.2%)에서 외롭다는 응답이 유일하게 절반을 넘었는데, 이는 사별이 많은 70대에서 외로움 비율이 급증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학력별로는 고졸의 27.7%, 대졸의 22.9%, 대학원졸의 17.0%에서 외롭다고 응답해 차이를 보였다. 

외롭다는 응답은 거주형태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났다. 자가 거주자의 18.5%, 전세 거주자의 26.2%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반면 월세 거주자는 36.2%로 자가 거주자의 2배에 달했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실시한 이번 설문은 고독사 위험이 높은 국민의 특성을 연구하고, 고독사로 연결될 수 있는 전 국민의 고립감, 외로움 수준을 유형별로 살펴볼 수 있는 첫 조사다.

연구에 참여한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는 1인 가구, 고령층만이 아닌 다인 가구, 젊은층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임이 확인됐다”면서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춘 고독사 정책 범위를 넓히고 전 연령을 대상으로 고립 해소를 위한 지원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주거불안이 사회적 고립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월세보다는 장기임대나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고립 해소를 위한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번 조사에서 고독사 위험군은 사회적 고립도 7문항, 가구취약성 7문항을 기준으로 고위험군, 중위험군1, 중위험 군2, 저위험군으로 구분했으며 위험기준을 1과 2로 나눴다.

위험기준1에서 고위험군은 사회적 고립와 가구취약성 모두 2문항 이상 ‘예’라고 답한 경우다. 위험기준2에서 고위험군은 사회적 고립도와 가구취약성이 3문항 이상 ‘예’인 경우로, 위험기준 1보다 범위를 좁게 규정했다.

김희원·조성민 기자

<1부> 아무도 모르는 죽음 ‘고독사’
(중) 고독사 고위험군 비상

“아이고, 아이고….”

지난달 말 경기 고양시에 자리잡은 서울시립승화원 2층. 여느 장례식처럼 고인을 떠나보내는 곡소리가 빈소를 채웠다. 다만 빈소는 여느 상가와 달리 2평 정도로 매우 좁았다. 아무도 장례 치러줄 이 없는 서울시 무연고자를 위한 공영장례식장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지난 1월15일 사망한 고인은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이승에서 좁으나마 마지막 자리를 잠시 차지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말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2층 무연고자 장례식장 앞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근조기가 놓여 있다.

그나마 고인과 함께 쪽방촌에서 살았던 지인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모했다. 고인을 알고 지낸 지 20년 넘은 한 지인은 가족이나 친척이 고인을 찾아오는 걸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결국 외로움이 문제인 거야. 이 양반은 술을 좋아했어. 종종 같이 어울려서 술 마시고 놀았지. 그런데 말이야. 만나서 술 마시고 놀 때는 좋지만 헤어진 뒤 방에 들어가면 공허하다고. 그땐 주위에 아무도 없잖아. 텔레비전을 틀면 가족끼리 나와서 행복해하는 프로그램이 나와. 그런데 내 상태는 안 그런 거야. 그러니까 우울한 거지.”

그는 “그래도 고인이 심성이 착하고 좋았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만인이 연결됐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이가 고독을 느끼는 사회. 전 국민 10명 중 1명이 고독사 고위험군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우리 공동체 속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은 깊어지고 있다. 어느 한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2021년 고독사 통계를 보면, 50대와 60대가 58.6%로 대다수를 차지하나 20~30대(6.4%)와 70대 이상(18.4%)도 적지 않다. 고독사 고위험군을 돌볼 이는 결국 이웃뿐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발굴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혼자 집에 있으면 눈물나”

20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독사 고위험군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 어느 정도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생계급여수급자며 △건강문제가 있고 △월세에 살고 있을수록 고독사 고위험군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과 고립감이다. 청주복지재단이 지난해 청주시 장년층 1인가구 고독사 고위험군을 심층 면담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대화의 빈도수가 줄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을 주로 느꼈다. 혼자 산 기간이 27년인 A(53)씨는 “지금 많이 외롭고 우울하고 그냥 혼자 집에 있으면 눈물이 나고 그렇다”고 했고, 혼자 산지 20년이 넘은 B(58)씨도 “몸이 아프면 정신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며 “그러다 보면 거기서 오는 제1순위가 소외감이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대화 기회가 없다 보니 모처럼 얼굴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서 낯선 이와 대화를 반기기도 했다. C(50)씨는 “대화하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대화 상대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달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아 인터뷰한 노인들도 하나같이 외로움을 호소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탑골공원에 나온다는 윤모(81)씨 역시 “매일, 매순간이 외롭고 고독하다”며 “그래도 여기 나와 노인들 이야기도 엿듣고 하면 그나마 낫기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밖에 나가려 노력하기도…지자체 도움 절실

건강 문제도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신체건강의 어려움은 물론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D(64)씨는 “심장이 약하고 혈액 순환이 안 돼서 검사를 했는데, 속된 말로 화병(이었다)”며 “원래 있던 우울증이 (심장이) 아프면서 부쩍 더 심해졌다”고 했다. A씨 역시 “틀니다 보니까 먹는 게 겁이 난다”며 “밥은 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고 말했다.

고독사 고위험군은 주로 집에서만 생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는 건 아니다. 일부는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고 공원을 가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자체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이들을 저위험군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방증이다.

E(61)씨는 “집 옆에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카센터가 있는데 (낮에는) 거기서 주로 생활한다”며 “집에서 혼자 가만히 있으니까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 했다. C씨 역시 “많이 걸으려고 한다”며 “아무래도 걸어야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했다.

일주일에 다섯번 정도 서울 도봉구와 탑골공원을 오가는 남모(75)씨는 “2년 전까지 일을 하다 퇴직하고 요즘은 할 일이 없으면 탑골공원에 나온다”며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만 보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80대 중반의 김모씨 역시 “영감을 1년 전에 보낸 뒤엔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다”며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외로워서 괜히 밖에 나와 무료급식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한 노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뒷짐을 진 채 걸어가고 있다.  최상수 기자

 

◆“고고(孤孤)케어에 구직 지원 있었으면…”

고독한 이들이 가장 원하는 도움은 무엇일까.

우선,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눈에 띄었다. B씨는 “텔레비전을 보면 부러운 게 있다. 시골에 가면 경로당에 모여서, 같이 밥 해먹고 거기서 자고 그런다고 하지 않느냐”며 “나이 먹으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살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고 했다. C씨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1인가구끼리 모여서 서로 교류한다든가 한다면 참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직 의지가 있는 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이모(80)씨는 “작년까진 시에서 만든 어른 일자리에 합격해 매달 27만원씩 받았는데 올해는 떨어졌다”며 “먹고 살기 쉽지 않은데, 그런 일자리를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A씨 역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간단한 일을 할 수 있게끔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며 “솔직히 60만원 갖고는 살 수 없다. 하루에 2~3시간 정도라도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유대 문제 2가지에 초점을 두고 각 세대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정책의 혜택을 받는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욕구조사 등을 해서 정책을 설계하는 게 좋다”며 “청장년층의 경우 경제활동 지원, 노년층의 경우 공동체 생활 지원 등이 적합할 수 있다”고 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항상 술을 끼고 살았다. 알코올중독자가 됐고 이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원래 서울 출신이지만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장애가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다. 이십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충청도에 정착했고, 중독의 삶을 벗어던지기 위해 복지센터를 찾았다. 삶의 희망을 이어가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다. 고마웠다. 누군가 나를 도와준다는 게 마냥 좋았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술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6개월 정도 술을 끊었다. 매일 술을 마시던 과거의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변화였다. 집에 혼자 있으면 술의 유혹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되는 센터에 일부러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책을 읽고 차를 마셨다. 평일 낮엔 그렇게 술을 참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또다시 술의 유혹이 시작됐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움이란 감정을 이기기 쉽지 않았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한 채 집에 있는데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다. 연락이 안 돼서 왔다고 했다. 죄송하고 민망했다. 처음으로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이렇게 중독이 심해질 때면 다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정도를 단주했지만, 다시 술을 마시기를 반복했다.”

고독사 취재 과정에서 사회복지사 A씨로부터 전해 들은 담당 복지 대상자의 삶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내용이다. 알코올중독과 싸우던 그는 결국 60년 남짓의 삶을 외롭게 마감했다.

 

고독사한 이들은 보통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단정하기 쉽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이들은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놓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고립된 개인이 사회와 연결되도록 도와줄 지방자치단체 등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씨 역시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고인에 대해 “변화의 의지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대부분의) 복지 대상자들이 사회복지사와 자주 접촉하며 감정을 나누다 보면 삶에 대한 변화의 의지가 생긴다”며 “다만 사회복지사가 맡아야 하는 대상자가 많다 보니 각각의 개인에게 에너지를 충분히 쏟기가 어려운 건 현실적인 한계”라고 했다.

고독사 현장을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41) 대표도 자주 현장에서 고인이 지녔던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흔적을 발견한다고 했다. 자신의 재정 상황을 분석해둔 메모라든지 사업계획서 등이 대표적이다.

2022년 여름 서울 중랑구에서 고독사한 채로 발견된 50대 후반 남성 A씨가 지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김 대표는 “현장을 청소하다 보면 열 번 중 여덟아홉 번은 삶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 나온다”며 “이들은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단지 이를 실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번은 배달업에 종사했던 고인의 집을 청소했는데, 새롭게 장비를 구매하고 이에 대해 공부했던 흔적을 본 게 기억에 남는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고립된 이들을 사회로 끌어오기 위해 지역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동네에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음식을 공유할 공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독사 문제를 생각할 때 ‘죽음’을 막는 데 골몰하기보단 ‘고립’에 초점을 맞춰 고립된 이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와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지역사회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러서 쉬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 즉 익명의 오픈 커뮤니티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유품정리업체 에버그린 김현섭 대표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 대표.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41·사진) 대표는 2020년부터 유품정리사로서 일하는 중이다. 스무 살 무렵 일본에 8개월가량 살았던 터라, 유품정리사란 직업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2019년 회사를 그만두고 유품정리사가 됐다. 김 대표는 “남이 못하는 걸 하고 싶었다”며 “비전이 있다는 생각에 1년 정도 공부한 뒤 2020년부터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독사 현장을 누구보다 많이 접하는 김 대표는 고독사를 줄이기 위해선 고립된 이들이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이혼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삶의 부침(浮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경제 활동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럴 때 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고독사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50∼60대가 58.6%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보통 사망자는 고연령자일수록 많은데 고독사는 그 형태가 다른 셈이다.

김 대표가 거의 매일 찾아가는 고독사 정리 현장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주거 환경’을 언급했다. 그는 “반지하나 원룸 등 주거 환경이 좋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동네에서 이 같은 일이 잦다”고 했다. 이어 김 대표는 “연체된 세금이 있다거나 주식 투자에 실패한 일지가 있는 등 금전적인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매우 많다”고도 덧붙였다.

죽은 이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게 너무 멀리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는 거죠.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고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어요. 죽음 이후에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내가 남긴 금전적인 문제들로 지인들이 손해를 입진 않을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봤어요. 준비는 못해도 생각은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김 대표는 결국 ‘단절’이 사라져야 고독사도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혼자 살다 보면 무기력해질 수 있고 교류가 없어지면 결국 나락에 빠질 수 있다”며 “그때 한 번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지역 사회나 주변 사람이 있으면 안 좋은 상황에 부닥치지 않는다. 그런 게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1부> 아무도 모르는 죽음 ‘고독사’
(상) 고독사 현장 동행 르포

지난 15일 서울 한 임대아파트에서 예순아홉 살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상을 떠난 지 적어도 열흘은 넘었을 것이라는 게 경찰 추정이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쓸쓸한 죽음이 공지되는 복지부 e-장사정보시스템의 무연고 게시판은 연일 새 부고로 채워진다. 지난 17일 하루에만 9건의 부고가 추가됐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초연결시대에 외로움은 역설적으로 더 깊어지고 있다. 전 세대를 망라한 현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계기로 대면 접촉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고립의 문제는 우울증 등 개인의 병리적 차원을 넘어 고독사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고독사 문제를 시작으로 초연결시대의 단절, 비혼 세태가 낳은 80대 부모와 50대 자녀의 동거 실태, 세대별 고독의 문제를 ‘2023년 대한민국 孤(고)리포트’를 통해 짚어본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가족과 사회의 배려 속에서 떠나가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홀로 죽어 뒤늦게 발견되는 외로운 죽음도 있다. ‘고독사(孤獨死)’다. 우리 법 시스템은 이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이 문제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처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고독사는 3378명. 2017년 2412명에 비해 40%나 늘었다. 한 해 사망자가 30여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사망자 100명 중 1명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 관계자가 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고독사 현장에서 나온 짐을 봉고차에 싣고 있다. 이씨는 &ldquo;짐을 차곡차곡 잘 쌓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rdquo;이라고 설명했다. 쓰레기는 폐기물처리장으로 간다. 이날 한 번으로는 부족해 봉고차로 폐기물처리장을 두 번 오갔다.

 

◆외로운 삶의 흔적이 남은 고독사 현장

지난달 18일 오전 8시, 서울 강북의 반지하 다세대주택. 주택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보통 2~3명이 일을 진행합니다.”

에버그린 현장팀장 이모(35)씨의 말이다. 에버그린은 사망자의 거주 공간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다. 이날 청소에 투입된 인원은 기자를 포함해 총 4명. 통상 이런 일은 3명이 맡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반지하에 위치한 방 2개짜리 다세대주택 실내에서 며칠 전 60대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에버그린 김현섭(41) 대표는 “냄새 등으로 미뤄볼 때 죽은 뒤 2주 정도 방치된 것 같다”고 했다. 집 앞에서부터 풍겨나오던 냄새는 시신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시취(屍臭)였다. 영원히 잊기 힘들 것 같은 냄새는 열어둔 창문을 통해 바람을 타고 밖으로 새어 나온다. 이씨는 “이 정도는 보통”이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안방에 고독사한 고인 흔적이 남아있다. 1000원짜리 지폐, 약봉지 등이 눈에 띈다.

 

라텍스 장갑 위로 목장갑까지 끼고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자 시취가 확 풍겨왔다. 고독사 청소에서는 냄새 빼기가 중요하다. 이씨는 계피가 가득 든 스테인리스 원형 통을 안방에 놨다. 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전원을 켜자 물이 끓기 시작했다.

이씨는 “일종의 탈취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계피향과 시취가 섞이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냄새로 변했다.

냉장고를 열자 먹고 남은 생삼겹살 한 줄이 눈에 띄었다. 유통기한은 지난 1월28일까지였고 갈변된 상태였다. 녹용액도 여러 팩 들어 있었다. 냉장실에 있는 반찬 등을 마대에 쓸어 담고 냉동실을 열자 냉동굴비 20여팩이 보였다. 문득 고인이 굴비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어 고독사 청소의 핵심인 물품 빼기 작업이 시작됐다. 텅 빈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빼냈다. 계단 폭이 좁다 보니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르내리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영상 4도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차상대(55)씨가 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고독사 현장에서 벽지를 뜯어내고 있다. 방 중간에 놓인 스테인리스 원형 통 안엔 계피가 들어 있다. 관계자는 “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방으로 이동했다. 고인이 생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공간이다. 안방에 있는 1인용 밥상엔 딱딱하게 굳은 삼겹살과 말라비틀어진 상추, 마늘이 놓여 있었다. 주방 가스레인지 위 냄비엔 김치찌개가 들어 있었다. 파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집에서는 삼겹살이나 김치찌개를 즐겨 먹은 듯했다.

방바닥에는 약봉지와 로또, 영수증, 1000원짜리 지폐 등이 흩어져 있었다. 영수증에는 서울 서초구 한 식당 이름이 선명했다. ‘떡라면 6000원’, ‘아침식사 7000원’… 일용노동자였던 고인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떡라면 등으로 배를 채운 흔적이었다. 영수증 날짜는 지난 1월27일이 마지막이었다. 고인은 올 1월 말에서 2월 초에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고인은 2019년 가을 이 집을 3500만원에 매입했다. 지난해 10월 폭행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고인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취하해 약식기소에서 확정된 벌금형을 부과받았다. 그는 법원에 사회봉사허가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남긴 미납 벌금은 50만원이었다.

 

◆“우리 모두 고독, 앞으로 고독사 더 많아지겠죠”

집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뺀 후 옷장과 수납장 등을 망치로 부수고 장판을 뜯어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장판에는 오래 방치된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스며들어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장판들이 냄새의 원인”이라며 “원인을 모두 찾아 제거해야만 냄새가 없어진다”고 했다. 벽지를 뜯고 나면 청소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냄새를 빼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락스에 물을 섞은 뒤 수세미로 안방 바닥을 닦았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작업을 해도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냄새가 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며칠 간격을 두고 2~3번 추가 탈취작업을 한다”며 “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적외선 카메라를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는 비용은 집주인이 낸다. 이날 현장의 경우 고인이 집주인이었기에 유족이 돈을 냈다.

현장팀장 이씨는 “여기는 전쟁터”라고 말했다. 2021년 넷플릭스에 유품정리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방영됐다. 그 뒤로 일을 배우겠다며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씨는 “일을 배우러 왔다가 본인 생각보다 현장이 더럽고 힘들다 보니 도망가는 사람이 정말 많다”며 “이 직업이 어찌 보면 3D(기피업종)라 적성에 맞아야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고독사한 이들의 집을 청소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씨는 “정말 사람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함께 일하며 현장에서 반장 역할을 한 차상대(55)씨도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건데 이런 현장을 청소할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차씨에게 ‘고독사 청소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잠깐 생각을 하던 차씨는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고독하다.’ 그게 정의죠. 여기 살다가 죽은 사람도, 여기 있는 우리도 다 고독한 거죠. 앞으로 이런 죽음이 훨씬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고독사 키워드는 ‘50대’, ‘60대’, ‘남성’

취재진은 지난달 16일에도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부부 고독사 현장을 목격했다. 김 대표는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9년 2949명이었던 고독사는 2020년 3279명, 2021년 3378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더 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2021년 통계를 성별로 나눠보면, 남자가 2817명으로 여자(529명)에 비해 5.3배 많다. 연령별로 보면 50대(29.6%)와 60대(29%)가 58.6%를 차지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보건복지부는 “50대와 60대 중·장년 남성에 대한 고독사 예방 서비스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50대와 60대 남성이 주로 고독사하는 이유로는 이들이 건강 관리 및 가사노동에 익숙하지 못한 데다 실직이나 이혼 등 사회적 실패를 겪고 나면 삶의 의지가 꺾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주택(50.3%)이었다. 주택엔 단독과 다세대, 연립, 빌라가 포함돼 있다. 취약계층이 고독사에 쉽게 노출돼 있단 의미다. 아파트와 원룸도 각각 22.3%, 13%를 차지했다.

고독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시신을 발견하면 경찰이 출동한다. 검안의를 불러 사인을 확인한 뒤 타살 의혹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유족을 찾는다. 유족이 있고 유족이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히면 통상의 장례 절차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유족이 없거나 유족이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자로 분류돼 공영 장례를 치른다.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업체가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후 유골을 봉안한다. 5년간 봉안 사실을 고지하고 5년 뒤에도 유족의 연락이 없으면 장사시설 내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리거나 자연장한다. ‘고독한 죽음’이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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