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중) 더욱 외로워지는 일터

“뜨릉뜨릉.”

매일 아침 7시면 예외 없이 울리는 알람에 사무직 직원 강모(34)씨는 눈을 뜬다.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양치할 때를 빼고는 입을 떼지조차 않지만,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쯤이 되면 이미 온갖 곳에서 강씨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뉴스레터 서비스로 받은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 카카오톡으로 온 ‘놓칠 수 없는 4월의 혜택’,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받은 ‘고수들이 택한 국내외 종목’, 대학교 선후배가 모인 단체채팅방에 누군가가 여전히 퍼 나르는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안전안내 문자에 대출광고 문자까지. 아침에 쌓이는 문자와 카톡만 수십 개다. 이 중에 강씨가 늦잠이라도 자지 않았는지 안부를 묻는 연락은 단 하나도 없다.

회사에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강씨의 비자발적 묵언수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로 앞에 앉은 직장 상사와 후배도 굳이 찾아와 말을 걸지 않는다. 강씨도 그렇다. 서로 채팅 앱으로 묻고 답한다. 1인 가구 강씨는 퇴근 후 맞아줄 사람도 없다. 집으로 돌아오면 “한국이랑 일본이랑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겨?”, “손차박(손흥민·차범근·박지성) 중 누가 한국에서 역대 최고 축구선수야?”, “랩 해봐” 등 챗GPT를 켜고 시답잖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강씨는 “잠들기 전까지 카톡이 쌓이고 업무 관련 얘기나 단체채팅방에서 수다는 이어지지만, 그 친구들과 실제로 연결됐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허전하고 공허해 이런 기분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떻게 위로받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사람이 없을 때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건 디지털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메일, 채팅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얽히고설킨 ‘초연결사회’에서 현대 직장인은 대면 상태에서도 비대면 소통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카톡, 메신저 등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업무 환경에서 손을 내밀면 닿는 가까운 거리지만 좁힐 수 없는 심리적 거리감에 고독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비대면 소통으로 업무 중 고립감 심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고립의 사회적 비용과 사회정책에의 함의’에 따르면 타인과 유의미한 교류가 없는 국내 사회적 고립 인구는 2021년 기준 인구의 6.0% 정도인 약 280만명으로 추산된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친구·친지가 없다’고 답한 국내 사회적 지지체계가 없는 인구는 2019년 기준 2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지지체계의 부족이 행복 수준 저하로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고립감은 1인 가구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된 물리적 거리두기, 디지털 전환 등으로 커졌다.

업무 특성상 홀로 일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도 매 순간 외롭진 않아도, 전혀 외롭지 않은 날은 없다. 음식점 배달 요청과 손님의 실시간 후기 사이에서 배달라이더는 디지털 감시를 당하는 수준이다. 배달기사가 모인 인터넷포털 카페에서는 외로움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와도 집에 반기는 사람이 없다‘, ‘길바닥에서 혼잣말하는 자신에게 현타(현실자각 시간) 온다’, ‘배달의 유일한 낙이던 신곡 재생도 질린다’는 내용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중앙집행위원은 “라이더 중 다른 지역에서 (배달 수요가 높은) 강남에 온 분들도 많은데 이들은 고시원 등에 혼자 살며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 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높았다”며 “올해 노조 자체적으로 정신건강 관련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위험군은 심리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립된 업무 환경… 다시 SNS

‘업무 효율화’라는 명분은 ‘고립의 굴레’로 변질되기도 한다. 기술 발전이 업무 시간과 장소 제약을 느슨하게 만들며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면서, 직장인들이 도리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하는 ‘디지털 속박‘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직장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SNS 속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웹툰작가이자 웹소설가인 A(33)씨는 최장 20일까지 집에서만 보낸 적이 있다. 한때는 사무실로 출근했지만, 컴퓨터 작업이 많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일이 가능해 전면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다. 그날 분량을 채워야 일이 끝나는 특성상 집에서 자유롭게 성과를 내란 취지인데, 창작의 고통이 길어질수록 퇴근은 지연된다. A씨는 “종종 새벽까지 일하니 점점 낮밤이 뒤바뀌며 주변 사람과 단절됐다“며 “남은 건 우울감과 수면제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김모(32)씨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심할 때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가는데 고립감이 굉장히 심해진다”며 “SNS로 인해 원치 않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무 자르듯 끊어내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는 “메신저로 주고받는 업무 톡으로 소통의 양은 늘었지만,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며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소통에 지쳐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쉬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방에만 있으면 다시 또 사람을 찾아 SNS를 켜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과잉이 만들어낸 둔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대인들이 인간관계 욕구를 디지털 미디어로 많이 충족시킨다”면서 “(하지만 충족 욕구가) 과도해지면서 만족감이 오래 가지 못하고 오히려 결핍을 느끼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치 알코올 중독 금단현상처럼 사용장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다수 젊은이가 쓸쓸하고 외롭지만 오프라인에서 관계를 만들 역량은 떨어지는 게 고독감의 원인”이라며 “결국 해법은 아날로그성 회복”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취미활동을 하고 동호인 모임에 나가거나 일상 속 소소한 목표를 갖고 본인이 채울 재미를 찾아야 의미 있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며 “지자체가 제도적, 재정적으로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초연결을 지향한다고 약속해온 디지털 혁신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역할을 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는 자신의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우리 사회가 외로워지고 원자화한 이유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지목했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초연결사회에서 타인과 비대면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만, 대면 접촉의 기회가 줄면서 오히려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지적인 셈이다. 초연결 사회의 역설인 새로운 ‘단절’의 시작이다.

2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외로움 관련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온라인 소통보다 오프라인 만남을 원한다는 응답(20대 58.8%, 30대 60.8%, 40대 63.2%, 50대 66.0%)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온라인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초연결사회라고 해도 정서적인 교류 측면에서는 ‘온라인 접촉’보다는 ‘대면 접촉’을 원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온라인 네트워킹에 적극적일수록 외로움 체감도가 높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가 2018년 4월 발표한 ‘한국인의 외로움 인식 보고서’(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 중 35%가 외로움을 실감한다고 답했지만, 참여하지 않는 층에서는 23%에 그쳤다. 또 외로움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무력감을 6.5배 높게 느꼈다. 뒤이어 분노(5배), 걱정(3.7배), 짜증(3.6배) 순으로 외로움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됐다.

특히 최근에는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온라인상에서 고립된 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해소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심리학회지’에 지난달 실린 한 연구를 보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1년여간 게시된 자해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트위터 게시물은 1320개에 달했다. 트위터의 운영 방침에 따라 삭제된 게시물을 제하고도 이 정도였다.

지난 1년6개월 SNS에서 심리상담 계정을 운영한 박가람(가명·25)씨는 그동안 1만개에 육박하는 상담 요청을 받았다.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주로 학생들이었다. 그는 “죽고 싶다며 칼로 손목을 그었다든지,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하는 학생이 많았다”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자해와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 외로움과 고독감을 표출하는 이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나 심리적 특징은 근본적으로 같다”며 “(병리적 현상을) 별종처럼 치부하면 (그들과 사회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리 전주대 상담심리학과 석사도 “(자해 게시물을 올리는) 그들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개입할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윤준호·김나현 기자

<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상) 열린 가상공간에 갇힌 사람들

이지호(27·가명)씨는 스스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중독자’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뜨면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마치 시험대에 서듯 자신이 간밤에 올린 ‘스토리’를 몇 명이 보았는지, ‘좋아요’를 의미하는 하트를 몇 개나 받았는지 셈한다. 하트 수가 기대에 못 미치면 기분이 상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에게 하트 수는 게시물에 대한 단순 선호를 넘어 ‘인간관계를 확인받는 수단’에 가깝다.

이씨는 또 SNS를 통해 자신의 삶을 중계한다. 그날 입은 옷, 먹은 음식, 출퇴근길, 산책이나 운동 시간 등. 특히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기 힘든 친구들과는 SNS를 통해 교감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새로 올린 게시물에 친구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이내 섭섭해지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 자신과 비교해 더 비싼 옷을 입고, 화려한 음식을 먹는 친구의 게시물을 마주하면 공허함이 찾아온다. 모처럼 친구를 만났지만, 근황보다 대형 거울 앞에서 함께 찍는 사진에 더 신경이 쏠린다.

하트 수에 심취할수록 이씨는 원본 사진이 성에 차지 않는다. ‘셀카’를 찍을 때 피부톤부터 눈 크기와 턱 길이까지 보정해주는 필터는 기본이고, 사후 보정도 필수다. 사진 보정 앱에 접속한 이씨는 얼굴형을 갸름하게 줄이다가 배경 화면 속 식당 간판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그의 눈에는 보정 사진이 더 예뻐 보인다. 하지만 ‘좋아요’ 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바로 게시물을 삭제했다.

모르는 사람과 ‘좋아요’와 ‘구독’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인간관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기분에 흐뭇할 때도 있다. 며칠 전 팔로어 수 7000명이 넘는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팔로우했다. 설렘이 차올라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인사를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괘씸한 마음에 즉시 팔로어를 끊었다.

밤 12시 잠들기 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이씨는 온라인 세상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30분만 보고 잠에 들리라는 결심과 달리, 이씨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파도를 탔다. 인생 맛집 추천, 뷰티 가성비템, 주식·부동산 꿀팁까지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어느새 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섰다.

다음 날 아침, 이씨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다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찾는다. 이미 엄지손가락은 인스타그램 아이콘 위로 향하고 있다. 끝이 없는 굴레다.

손바닥 위 휴대기기 작은 화면 속에서 현대인들은 한층 더 촘촘히 연결됐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카카오톡 대화방과 익명 채팅앱, 대학생 소셜 플랫폼과 직장인 전용 플랫폼 등을 바쁘게 오가며 시시각각 일상을 나눌 수 있다. 가족과 친구, 지인은 물론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나 멀리 떨어진 외국의 인사와 교감도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열린 디지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했지만, 오히려 ‘고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양산하는 초연결사회의 역설을 낳았다.

 

◆초연결사회 역설, ‘고독의 늪’ 양산

5년 전, 최주원(30·가명)씨는 당시 취업 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외로움도 달랠 겸 온라인 커뮤니티에 발을 들였다. 최씨는 축구와 게임에 대한 관심사를 나눌 수 있고, 기발한 ‘짤’(이미지)도 끝없이 올라오는 커뮤니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같은 이들의 ‘나만 잉여가 아니다’, ‘이만하면 정상’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직장인이 된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제 일상의 동반자다. 최씨는 하루를 보내면서 커뮤니티 댓글 창을 수시로 확인한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화장실 갈 때, 회사 근무 중에도 습관적으로 댓글을 본다. 그는 자신이 게시글에 ‘추천’과 ‘댓글’이 늘어갈 때 희열을 느낀다. 반면 ‘악플’에는 분노가, ‘무(無)플’에는 고독감과 외로움이 밀려든다. 최씨는 속마음과 달리 커뮤니티 분위기에 맞춰 욕설과 조롱을 섞어 쓰기도 한다.

온라인 세상은 외로움을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씨처럼 온라인 세계 속에 심취할수록 집착과 외로움이 심화하기도 한다. ‘외로움 대피소’에서 도리어 외로움이 커지고, 무기력, 분노 등 부정적 감정까지 강화되는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온라인에서는 자신을 과장하거나 거짓말로 꾸밀 수 있다. 직접 만나는 감정의 교류에 비해 한계가 있다”며 “온라인에 중독되는 것도 마약 중독처럼 의존성과 금단 증상이 점점 커지면서 불안·우울로 연결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유튜브처럼 일방적인 정보 전달성이 강한 소셜미디어의 경우에는 되레 외로움이 커질 수도 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의 ‘코로나19 확산 후 소셜미디어 이용과 무력감·외로움 체감 연구’(2020)에 따르면 단순히 ‘시간 보내기’ 용도로 유튜브를 장시간 시청하면 오히려 무력감과 외로움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보고 싶은 세상만, 양극화 심화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선호하는 정보를 우선 노출시키는 ‘추천 알고리즘’이 외로움의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플랫폼은 이용자 취향이나 시청 내역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플랫폼에 중독되어 떠나지 못하게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이다. 이러한 알고리즘 작동 방식은 보고 싶어 할 정보에만 노출시켜 편향성을 띠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만의 거품에 갇힌 ‘필터버블’(Filter Bubble)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터버블 속에서는 허위·조작 정보를 접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고립감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남재영(27)씨는 최근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졌다. 아버지가 정치유튜브 채널에서 본 것을 강요하다시피 이야기해서다. 남씨는 “아버지께서 정치유튜브 영상을 보며 본인의 화를 해소하는 것 같다”며 “본인의 생각과 성향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21년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소셜미디어 이용자 3000명을 조사한 결과, 63.2%는 견해가 같은 게시물을 보면 ‘추천’이나 ‘좋아요’를 누른다고 답했다. 견해가 다른 경우 ‘비추천’(45.9%)하거나 ‘구독 취소’(40.0%)를 눌렀다.

제21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0년 3월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팀이 진보 성향 유튜브 3개 채널(알릴레오, 김용민TV,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 보수 성향의 3개 채널(홍카콜라, 신의한수, 펜앤마이크) 구독자(1532명)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각 채널 구독자들이 상대 진영에 속하는 정당이 이념적으로 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인식하고, 높은 수준의 반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문화적으로 취향이 같아서 즐기는 건 괜찮지만, 정치처럼 세상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사안에서 자신의 취향에만 맞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계했다.

김나현·윤준호 기자

누가 고독사 위험에 노출돼 있는가. 20일 보건복지부와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대국민 의견수렴 조사 결과(정순둘 외·1833명 대상)’를 살펴보면 고독사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반인보다 사회적 고립도와 가구취약성이 높았다. 그중에서도 가구취약성보다는 사회적 고립이 고독사 고위험군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독사로 연결될 수 있는 ‘외로움’은 전 국민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국민 네명 중 한명은 외로움을 호소했으며, 특히 고독사 고위험군에서는 ‘혼자라고 느껴져 외로움을 느낀다’는 설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가 전체의 7,8할이었다.

◆사회적 고립, 경제·건강 문제 겪어

고독사 고위험군은 어떤 특성을 보일까. 보통 고독사 사례를 살펴보면 이웃이나, 친구, 가족, 사회복지사 등과의 접촉을 스스로 차단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된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고독사 고위험군은 외출이나 주변인과의 만남을 꺼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필품 구입, 관공서, 병원진료 등 필수목적이 아닌 외출 횟수가 2주 1회 이하’인지 묻자 전체 응답자의 11.1%가 ‘예’라고 답한 반면 고독사 고위험군은 34.3∼39.6%(위험기준1·2)가 ‘그렇다’고 했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 친구나 지역사회(이웃/기관포함)가 찾아오겠다는 뜻을 나타내도 거부한 경험이 있다는 이가 국민 전체에선 19.7%였지만 고위험군에선 58.9∼65.8%로 확인됐다.

고독사 고위험군은 이같은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 위기상황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대화를 나눌 이가 없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돈이 필요할 때 빌려줄 사람이 없다’는 질문에 ‘예’라는 응답은 전체 21.6%, 고위험군은 76.3∼86.5%였다. ‘몸이 아플 때 돌봐 줄 사람이 없다’(전체 21.5%, 고위험군 67.1∼76.6%), ‘낙심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대화 나눌 사람이 없다’(전체 17.9%, 고위험군 66.2∼77.5%) 등에서도 고위험군이 크게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고독사 위험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겪을 때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신체적 질병(만성질환 등)이 있으며, 질병관리 의지가 결여되거나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 6.0%, 고위험군 40.6∼55.9%로, ‘심한 우울감이나 자살 생각(시도), 알코올 및 약물중독 등 정신적 건강(질환)에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 7.1%, 고위험군 44.9∼52.3%로 조사됐다.

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해 가구취약성이 높은 경우도 고독사 고위험군에 해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근로 능력도 없고, 소득취득 수단도 없다’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9.6%가 ‘예’라고 답한 가운데, 고위험군은 53.6∼67.6%가 그렇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은 ‘주거문제(임대료 체납, 퇴거위기, 주거환경 불량 등)를 겪고 있다’(전체 6.2%, 고위험군 39.6∼54.1%), ‘공과금(수도, 전기, 가스요금 등) 등 미납이 지속되고 있다’(전체 2.5%, 고위험군 17.4∼27.0%) 등 물음에서도 확인됐다.

다만 연구팀은 “가구취약성은 사회적 고립에 비하면 고독사 고위험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편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누가 더 외로움을 느끼나

고독사는 외로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 교수는 “외로움은 개인적 문제이지만 결국 사회적 고립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사회적 고립은 고독사 위험을 높이는 큰 특성”이라고 밝혔다.

‘나는 혼자라고 느껴져 외롭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24.3%였는데, 고독사 고위험군에서 이 비율은 73.2∼80.2%로 3배로 뛴다.

고독사 고위험군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은 1인 가구, 고령, 경제 취약층 등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 역시 관련군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1인 가구에서는 36.2%가 ‘외롭다’고 답했다. 그 외 가구(13.5%)의 3배 가까운 숫자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외로움 비율은 20대부터 60대까지 21.2%∼25.6%로 비슷하다. 특히 20대의 22%, 30대의 22.5%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해 2030 젊은층의 외로움도 중장년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 고위험군 범위를 넓게 설정(고위험군1)했을 때의 결과를 보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의 고위험군 비율이 11.5%로 하지 않는 사람(3.6%)보다 높았고, 생계급여 수급자의 고위험군 비율(12%)은 비수급자(32.4%)보다 낮았다.

또 주관적 경제수준 상, 중, 하 중에서도 중(8.8%)이라고 대답한 군의 고위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교수는 “고독사 위험군의 주요 축을 ‘가구취약성’과 ‘사회적 고립’ 두 가지로 보고 살펴봤는데, 가구취약성보다는 외로움과 고립이 더 큰 설명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며, 향후 고독사 정책에서 사회적 고립 해소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외롭다는 응답은 70대에서 갑자기 35.4%로 치솟는다. 혼인상태로 보면 ‘사별’(51.2%)에서 외롭다는 응답이 유일하게 절반을 넘었는데, 이는 사별이 많은 70대에서 외로움 비율이 급증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학력별로는 고졸의 27.7%, 대졸의 22.9%, 대학원졸의 17.0%에서 외롭다고 응답해 차이를 보였다. 

외롭다는 응답은 거주형태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났다. 자가 거주자의 18.5%, 전세 거주자의 26.2%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반면 월세 거주자는 36.2%로 자가 거주자의 2배에 달했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실시한 이번 설문은 고독사 위험이 높은 국민의 특성을 연구하고, 고독사로 연결될 수 있는 전 국민의 고립감, 외로움 수준을 유형별로 살펴볼 수 있는 첫 조사다.

연구에 참여한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는 1인 가구, 고령층만이 아닌 다인 가구, 젊은층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임이 확인됐다”면서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춘 고독사 정책 범위를 넓히고 전 연령을 대상으로 고립 해소를 위한 지원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주거불안이 사회적 고립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월세보다는 장기임대나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고립 해소를 위한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번 조사에서 고독사 위험군은 사회적 고립도 7문항, 가구취약성 7문항을 기준으로 고위험군, 중위험군1, 중위험 군2, 저위험군으로 구분했으며 위험기준을 1과 2로 나눴다.

위험기준1에서 고위험군은 사회적 고립와 가구취약성 모두 2문항 이상 ‘예’라고 답한 경우다. 위험기준2에서 고위험군은 사회적 고립도와 가구취약성이 3문항 이상 ‘예’인 경우로, 위험기준 1보다 범위를 좁게 규정했다.

김희원·조성민 기자

<1부> 아무도 모르는 죽음 ‘고독사’
(중) 고독사 고위험군 비상

“아이고, 아이고….”

지난달 말 경기 고양시에 자리잡은 서울시립승화원 2층. 여느 장례식처럼 고인을 떠나보내는 곡소리가 빈소를 채웠다. 다만 빈소는 여느 상가와 달리 2평 정도로 매우 좁았다. 아무도 장례 치러줄 이 없는 서울시 무연고자를 위한 공영장례식장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지난 1월15일 사망한 고인은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이승에서 좁으나마 마지막 자리를 잠시 차지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말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2층 무연고자 장례식장 앞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근조기가 놓여 있다.

그나마 고인과 함께 쪽방촌에서 살았던 지인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모했다. 고인을 알고 지낸 지 20년 넘은 한 지인은 가족이나 친척이 고인을 찾아오는 걸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결국 외로움이 문제인 거야. 이 양반은 술을 좋아했어. 종종 같이 어울려서 술 마시고 놀았지. 그런데 말이야. 만나서 술 마시고 놀 때는 좋지만 헤어진 뒤 방에 들어가면 공허하다고. 그땐 주위에 아무도 없잖아. 텔레비전을 틀면 가족끼리 나와서 행복해하는 프로그램이 나와. 그런데 내 상태는 안 그런 거야. 그러니까 우울한 거지.”

그는 “그래도 고인이 심성이 착하고 좋았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만인이 연결됐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이가 고독을 느끼는 사회. 전 국민 10명 중 1명이 고독사 고위험군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우리 공동체 속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은 깊어지고 있다. 어느 한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2021년 고독사 통계를 보면, 50대와 60대가 58.6%로 대다수를 차지하나 20~30대(6.4%)와 70대 이상(18.4%)도 적지 않다. 고독사 고위험군을 돌볼 이는 결국 이웃뿐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발굴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혼자 집에 있으면 눈물나”

20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독사 고위험군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 어느 정도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생계급여수급자며 △건강문제가 있고 △월세에 살고 있을수록 고독사 고위험군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과 고립감이다. 청주복지재단이 지난해 청주시 장년층 1인가구 고독사 고위험군을 심층 면담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대화의 빈도수가 줄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을 주로 느꼈다. 혼자 산 기간이 27년인 A(53)씨는 “지금 많이 외롭고 우울하고 그냥 혼자 집에 있으면 눈물이 나고 그렇다”고 했고, 혼자 산지 20년이 넘은 B(58)씨도 “몸이 아프면 정신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며 “그러다 보면 거기서 오는 제1순위가 소외감이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대화 기회가 없다 보니 모처럼 얼굴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서 낯선 이와 대화를 반기기도 했다. C(50)씨는 “대화하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대화 상대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달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아 인터뷰한 노인들도 하나같이 외로움을 호소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탑골공원에 나온다는 윤모(81)씨 역시 “매일, 매순간이 외롭고 고독하다”며 “그래도 여기 나와 노인들 이야기도 엿듣고 하면 그나마 낫기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밖에 나가려 노력하기도…지자체 도움 절실

건강 문제도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신체건강의 어려움은 물론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D(64)씨는 “심장이 약하고 혈액 순환이 안 돼서 검사를 했는데, 속된 말로 화병(이었다)”며 “원래 있던 우울증이 (심장이) 아프면서 부쩍 더 심해졌다”고 했다. A씨 역시 “틀니다 보니까 먹는 게 겁이 난다”며 “밥은 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고 말했다.

고독사 고위험군은 주로 집에서만 생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는 건 아니다. 일부는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고 공원을 가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자체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이들을 저위험군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방증이다.

E(61)씨는 “집 옆에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카센터가 있는데 (낮에는) 거기서 주로 생활한다”며 “집에서 혼자 가만히 있으니까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 했다. C씨 역시 “많이 걸으려고 한다”며 “아무래도 걸어야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했다.

일주일에 다섯번 정도 서울 도봉구와 탑골공원을 오가는 남모(75)씨는 “2년 전까지 일을 하다 퇴직하고 요즘은 할 일이 없으면 탑골공원에 나온다”며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만 보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80대 중반의 김모씨 역시 “영감을 1년 전에 보낸 뒤엔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다”며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외로워서 괜히 밖에 나와 무료급식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한 노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뒷짐을 진 채 걸어가고 있다.  최상수 기자

 

◆“고고(孤孤)케어에 구직 지원 있었으면…”

고독한 이들이 가장 원하는 도움은 무엇일까.

우선,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눈에 띄었다. B씨는 “텔레비전을 보면 부러운 게 있다. 시골에 가면 경로당에 모여서, 같이 밥 해먹고 거기서 자고 그런다고 하지 않느냐”며 “나이 먹으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살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고 했다. C씨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1인가구끼리 모여서 서로 교류한다든가 한다면 참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직 의지가 있는 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이모(80)씨는 “작년까진 시에서 만든 어른 일자리에 합격해 매달 27만원씩 받았는데 올해는 떨어졌다”며 “먹고 살기 쉽지 않은데, 그런 일자리를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A씨 역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간단한 일을 할 수 있게끔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며 “솔직히 60만원 갖고는 살 수 없다. 하루에 2~3시간 정도라도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유대 문제 2가지에 초점을 두고 각 세대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정책의 혜택을 받는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욕구조사 등을 해서 정책을 설계하는 게 좋다”며 “청장년층의 경우 경제활동 지원, 노년층의 경우 공동체 생활 지원 등이 적합할 수 있다”고 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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