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업체 에버그린 김현섭 대표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 대표.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41·사진) 대표는 2020년부터 유품정리사로서 일하는 중이다. 스무 살 무렵 일본에 8개월가량 살았던 터라, 유품정리사란 직업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2019년 회사를 그만두고 유품정리사가 됐다. 김 대표는 “남이 못하는 걸 하고 싶었다”며 “비전이 있다는 생각에 1년 정도 공부한 뒤 2020년부터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독사 현장을 누구보다 많이 접하는 김 대표는 고독사를 줄이기 위해선 고립된 이들이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이혼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삶의 부침(浮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경제 활동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럴 때 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고독사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50∼60대가 58.6%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보통 사망자는 고연령자일수록 많은데 고독사는 그 형태가 다른 셈이다.

김 대표가 거의 매일 찾아가는 고독사 정리 현장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주거 환경’을 언급했다. 그는 “반지하나 원룸 등 주거 환경이 좋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동네에서 이 같은 일이 잦다”고 했다. 이어 김 대표는 “연체된 세금이 있다거나 주식 투자에 실패한 일지가 있는 등 금전적인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매우 많다”고도 덧붙였다.

죽은 이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게 너무 멀리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는 거죠.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고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어요. 죽음 이후에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내가 남긴 금전적인 문제들로 지인들이 손해를 입진 않을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봤어요. 준비는 못해도 생각은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김 대표는 결국 ‘단절’이 사라져야 고독사도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혼자 살다 보면 무기력해질 수 있고 교류가 없어지면 결국 나락에 빠질 수 있다”며 “그때 한 번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지역 사회나 주변 사람이 있으면 안 좋은 상황에 부닥치지 않는다. 그런 게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2023년 기획한 시리즈물

<1부> 아무도 모르는 죽음 ‘고독사’
(상) 고독사 현장 동행 르포

지난 15일 서울 한 임대아파트에서 예순아홉 살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상을 떠난 지 적어도 열흘은 넘었을 것이라는 게 경찰 추정이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쓸쓸한 죽음이 공지되는 복지부 e-장사정보시스템의 무연고 게시판은 연일 새 부고로 채워진다. 지난 17일 하루에만 9건의 부고가 추가됐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초연결시대에 외로움은 역설적으로 더 깊어지고 있다. 전 세대를 망라한 현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계기로 대면 접촉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고립의 문제는 우울증 등 개인의 병리적 차원을 넘어 고독사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고독사 문제를 시작으로 초연결시대의 단절, 비혼 세태가 낳은 80대 부모와 50대 자녀의 동거 실태, 세대별 고독의 문제를 ‘2023년 대한민국 孤(고)리포트’를 통해 짚어본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가족과 사회의 배려 속에서 떠나가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홀로 죽어 뒤늦게 발견되는 외로운 죽음도 있다. ‘고독사(孤獨死)’다. 우리 법 시스템은 이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이 문제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처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고독사는 3378명. 2017년 2412명에 비해 40%나 늘었다. 한 해 사망자가 30여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사망자 100명 중 1명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 관계자가 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고독사 현장에서 나온 짐을 봉고차에 싣고 있다. 이씨는 &ldquo;짐을 차곡차곡 잘 쌓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rdquo;이라고 설명했다. 쓰레기는 폐기물처리장으로 간다. 이날 한 번으로는 부족해 봉고차로 폐기물처리장을 두 번 오갔다.

 

◆외로운 삶의 흔적이 남은 고독사 현장

지난달 18일 오전 8시, 서울 강북의 반지하 다세대주택. 주택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보통 2~3명이 일을 진행합니다.”

에버그린 현장팀장 이모(35)씨의 말이다. 에버그린은 사망자의 거주 공간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다. 이날 청소에 투입된 인원은 기자를 포함해 총 4명. 통상 이런 일은 3명이 맡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반지하에 위치한 방 2개짜리 다세대주택 실내에서 며칠 전 60대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에버그린 김현섭(41) 대표는 “냄새 등으로 미뤄볼 때 죽은 뒤 2주 정도 방치된 것 같다”고 했다. 집 앞에서부터 풍겨나오던 냄새는 시신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시취(屍臭)였다. 영원히 잊기 힘들 것 같은 냄새는 열어둔 창문을 통해 바람을 타고 밖으로 새어 나온다. 이씨는 “이 정도는 보통”이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안방에 고독사한 고인 흔적이 남아있다. 1000원짜리 지폐, 약봉지 등이 눈에 띈다.

 

라텍스 장갑 위로 목장갑까지 끼고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자 시취가 확 풍겨왔다. 고독사 청소에서는 냄새 빼기가 중요하다. 이씨는 계피가 가득 든 스테인리스 원형 통을 안방에 놨다. 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전원을 켜자 물이 끓기 시작했다.

이씨는 “일종의 탈취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계피향과 시취가 섞이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냄새로 변했다.

냉장고를 열자 먹고 남은 생삼겹살 한 줄이 눈에 띄었다. 유통기한은 지난 1월28일까지였고 갈변된 상태였다. 녹용액도 여러 팩 들어 있었다. 냉장실에 있는 반찬 등을 마대에 쓸어 담고 냉동실을 열자 냉동굴비 20여팩이 보였다. 문득 고인이 굴비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어 고독사 청소의 핵심인 물품 빼기 작업이 시작됐다. 텅 빈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빼냈다. 계단 폭이 좁다 보니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르내리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영상 4도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차상대(55)씨가 지난 2월 18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고독사 현장에서 벽지를 뜯어내고 있다. 방 중간에 놓인 스테인리스 원형 통 안엔 계피가 들어 있다. 관계자는 “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방으로 이동했다. 고인이 생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공간이다. 안방에 있는 1인용 밥상엔 딱딱하게 굳은 삼겹살과 말라비틀어진 상추, 마늘이 놓여 있었다. 주방 가스레인지 위 냄비엔 김치찌개가 들어 있었다. 파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집에서는 삼겹살이나 김치찌개를 즐겨 먹은 듯했다.

방바닥에는 약봉지와 로또, 영수증, 1000원짜리 지폐 등이 흩어져 있었다. 영수증에는 서울 서초구 한 식당 이름이 선명했다. ‘떡라면 6000원’, ‘아침식사 7000원’… 일용노동자였던 고인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떡라면 등으로 배를 채운 흔적이었다. 영수증 날짜는 지난 1월27일이 마지막이었다. 고인은 올 1월 말에서 2월 초에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고인은 2019년 가을 이 집을 3500만원에 매입했다. 지난해 10월 폭행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고인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취하해 약식기소에서 확정된 벌금형을 부과받았다. 그는 법원에 사회봉사허가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남긴 미납 벌금은 50만원이었다.

 

◆“우리 모두 고독, 앞으로 고독사 더 많아지겠죠”

집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뺀 후 옷장과 수납장 등을 망치로 부수고 장판을 뜯어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장판에는 오래 방치된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스며들어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장판들이 냄새의 원인”이라며 “원인을 모두 찾아 제거해야만 냄새가 없어진다”고 했다. 벽지를 뜯고 나면 청소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냄새를 빼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락스에 물을 섞은 뒤 수세미로 안방 바닥을 닦았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작업을 해도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냄새가 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며칠 간격을 두고 2~3번 추가 탈취작업을 한다”며 “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적외선 카메라를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는 비용은 집주인이 낸다. 이날 현장의 경우 고인이 집주인이었기에 유족이 돈을 냈다.

현장팀장 이씨는 “여기는 전쟁터”라고 말했다. 2021년 넷플릭스에 유품정리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방영됐다. 그 뒤로 일을 배우겠다며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씨는 “일을 배우러 왔다가 본인 생각보다 현장이 더럽고 힘들다 보니 도망가는 사람이 정말 많다”며 “이 직업이 어찌 보면 3D(기피업종)라 적성에 맞아야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고독사한 이들의 집을 청소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씨는 “정말 사람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함께 일하며 현장에서 반장 역할을 한 차상대(55)씨도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건데 이런 현장을 청소할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차씨에게 ‘고독사 청소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잠깐 생각을 하던 차씨는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고독하다.’ 그게 정의죠. 여기 살다가 죽은 사람도, 여기 있는 우리도 다 고독한 거죠. 앞으로 이런 죽음이 훨씬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고독사 키워드는 ‘50대’, ‘60대’, ‘남성’

취재진은 지난달 16일에도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부부 고독사 현장을 목격했다. 김 대표는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9년 2949명이었던 고독사는 2020년 3279명, 2021년 3378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더 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2021년 통계를 성별로 나눠보면, 남자가 2817명으로 여자(529명)에 비해 5.3배 많다. 연령별로 보면 50대(29.6%)와 60대(29%)가 58.6%를 차지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보건복지부는 “50대와 60대 중·장년 남성에 대한 고독사 예방 서비스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50대와 60대 남성이 주로 고독사하는 이유로는 이들이 건강 관리 및 가사노동에 익숙하지 못한 데다 실직이나 이혼 등 사회적 실패를 겪고 나면 삶의 의지가 꺾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주택(50.3%)이었다. 주택엔 단독과 다세대, 연립, 빌라가 포함돼 있다. 취약계층이 고독사에 쉽게 노출돼 있단 의미다. 아파트와 원룸도 각각 22.3%, 13%를 차지했다.

고독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시신을 발견하면 경찰이 출동한다. 검안의를 불러 사인을 확인한 뒤 타살 의혹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유족을 찾는다. 유족이 있고 유족이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히면 통상의 장례 절차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유족이 없거나 유족이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자로 분류돼 공영 장례를 치른다.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업체가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후 유골을 봉안한다. 5년간 봉안 사실을 고지하고 5년 뒤에도 유족의 연락이 없으면 장사시설 내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리거나 자연장한다. ‘고독한 죽음’이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허리가 굽나 봐. 누가 그러는데 내가 걸을 때 엉덩이가 뒤로 나온대.” “안 좋은 신호네요. 처음 그렇게 시작되거든요.”

지난 7일 찾은 강원 춘천시 동면 신이리의 한 농가. 김순금(70·여)씨와 거실에 마주 앉은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이 건강 상담을 시작했다.

안부까지 물으며 &lsquo;따뜻한 진료&rsquo;&nbsp; 강원 춘천시 유일의 왕진 의사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가운데)과 최희선 간호사(왼쪽)가 7일 동면 신이리 소양강댐 수몰지역 한금자(80)씨 집 거실에서 한씨의 혈당과 혈압을 확인하며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 비교적 간단한 무릎 관절염 치료만 진행된 한씨 진료에는 30여분이 걸렸다. 다른 아픈 곳은 없는지, 못 만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묻고 답하며 이들은 이날 일반 한국 병원 진료실에서 좀체 경험할 수 없는 의료 서비스를 보여줬다.&nbsp;춘천=남정탁 기자

 

양 원장은 그에게 “농사일을 하루 몇 시간이나 하느냐. 어제는 무슨 작업을 했느냐”고 물으며 노트북 컴퓨터를 뒤져 영상 하나를 띄웠다. 운동치료 영상이었다. 그는 “허리 굽는 건 금방이라서 지금부터 예방 운동을 해야 한다”며 영상에서 김씨에게 맞는 3가지 운동법을 소개했다.

옆에서는 최희선 간호사가 김씨 남편 민제근(77)씨의 혈당을 체크하고 있었다. 당 수치가 조금 높게 나오자 “점심을 몇 시에 뭘로 드셨느냐”고 물었다. 진료 전에 커피와 탄산음료를 섭취했다는 말에 “그러면 당이 높아진다”고 타박했다. “관절도 좋지 않은데 주변 친구나 가족들 불러 하는 식사 자리도 좀 그만 만들라”는 말도 했다. 이번이 열여섯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이들은 이 집 사정을 매우 잘 아는 눈치였다.

최희선 간호사

 

다시 김씨가 양 원장에게 “손가락이 안 구부러진다. 마디가 부어 있다”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양 원장은 “‘방아쇠 손’이라고 한다. 손을 많이 쓰니까 이렇다. 아무리 주사를 맞아도 일 안 하는 것보단 못하다. 농사를 줄여야 하는데 안 되면 호미질할 때 손잡이가 두꺼운 호미를 써라”고 조언했다.

이날 양 원장은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부부에 시술하기 위해 왔다. 병원 같았으면 바로 관련 증상에 관한 짧은 대화가 이어진 뒤 처방이나 치료가 시작됐겠지만 이곳 분위기는 달랐다. 양 원장은 우선 환자의 말을 들었다. 대화가 농담 등으로 이리저리 튀는데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음’, ‘음’ 하며 호응하며 계속해서 더 많은 말을 꺼내게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처음 피웠다는 난로에서 퍼지는 훈기에 나른함마저 느껴졌다. 일반 병원 진료실의 차가운 긴장감은 없었다.

한참 대화 뒤 진료 기록을 다시 확인한 양 원장은 “허리 치료한 지 오래되셨네. 오늘 주사 맞으셔야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네”라고 김씨가 답하자 “알겠다”고 하며 주사 놓을 준비를 했다. 치료에 대한 결정권도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 있었다.

양 원장은 이어 민씨 손을 잡고 “손 시린 건 어떠냐”고 했다. “여전하다”는 그에게 “병원 가보시라는데 1년이 다 되도록 왜 안 가시냐”고 물었다. “이상한 소리 할까 무서워서…”라며 민씨가 말끝을 흐렸다. 양 원장은 “그런 건 나도 무섭다. 그래도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안심시켰다. “혈류가 안 통하는 게 문제”라며 금연치료도 권했다.

이후로도 동네 주민들 이야기와 최근 근처 산에서 불난 이야기 등 대화가 이어졌고 그제야 부부는 안방에서 허리주사를 맞았다. 부부 진료에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양 원장이 이 일을 하기 전 시내 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했을 때 재본 환자 1인 진료시간이 6분이었다고 했다. 병원 측으로부터 그 시간도 줄여달라는 압력을 받았단다.

컨베이어벨트 같은 이 진료 시스템을 그는 ‘마치 오디션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짧은 순간 환자는 지난번 진료와 이번 진료 두 달 사이 있었던 것을 다 전해야 하고 의사 역시 그 짧은 시간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오디션 장면은 이날 동행 취재 현장에 없었다.

민씨는 방문진료가 “좋다”고 했다. “한번 나가려면 배 타고 차 타고 하루를 다 써야 하는데 그 먼 길을 역으로 찾아와 주는 의사가 세상에 어딨느냐”면서 말이다.

이 마을은 수몰지구에 있다. 50년 전 소양강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아래가 물에 잠겼다. 그때 길이 끊겼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자동차로 한적한 산길을 40여분을 달려 와 보니 정말 길이 뚝 끊겨 있었다. 원래는 마을까지 들어오는 길이 있다. 댐은 보통 장마철부터 겨울 농한기까지 물을 채운 뒤 봄이 되면 방류해 다시 물그릇을 키우는 패턴을 반복한다. 마을로 연결되는 길은 방류 기간 잠깐 드러난다. 다른 때에는 물이 찬 곳이 선착장이 되어 주민들은 각자 가진 소형 FRP보트로 이동한다.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왼쪽 세번째)과 최희선 간호사(왼쪽), 최재희 케어 매니저(오른쪽)가 7일 강원 춘천시 동면 신이리 뱃길에서 소양강댐 수몰지역 마을로 방문진료를 가기 위해 진료도구 등이 담긴 큼지막한 왕진가방을 들고 보트에 오르고 있다. 춘천=남정탁 기자

호호센터는 수몰지구에 있는 춘천시 5개면, 30개리에서 방문진료를 한다. 수몰지구는 댐에서 반경 5㎞ 이내다. 언뜻 계산해보니 주민 3만여명, 그중 노령인구가 6000여명이라고 센터 측은 전했다. 이들 중 센터가 서비스를 제공한 이는 연간 150여명 정도다.

이어 방문한 한금자(80)씨 집. 양 원장 일행은 문을 열고 제집인 양 들어가며 주인을 찾았다. 양 원장을 보자마자 한씨는 14일 동안 앓았다고 하소연했다. 독감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혼자 아프다 혼자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수몰 전부터 이곳에서 산 한씨는 남편과 사별했고 자녀는 도시로 나가 혼자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양 원장이 최근 병원을 다녀온 한씨에게 처방전 목록을 보여달라고 했다. 모르는 약은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약전을 뒤져 성능을 확인했다. 약 대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양 원장은 “혈압약은 양을 좀 줄여도 될 것 같은데 다음에 병원에 가면 물어보라”고 한씨에게 말했다. 양 원장이 특히 신경 쓰는 게 약이다. 한국에 중복·과잉 처방이 많아서다.

 

한씨는 거동에 큰 문제가 없었다. 8월에 허리에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른쪽 무릎이 부어 있었다. 무릎을 만져본 양 원장은 “조그마한 주사를 놓겠다”고 했다. 의사는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 불편한 자세로 주사를 놨다.

뒤에서 “어머니 냉장고 좀 열어볼게요”라고 말한 최재희 케어 매니저가 집안 살림살이를 들여다봤다. 최 매니저는 진료 일정을 잡는 게 주 업무지만 필요시 생활환경 개선과 요양보호사 연결 등의 업무도 지원한다. 최근 공들이는 일은 주거개선 사업이다. 미끄러운 욕실 바닥 타일 보수, 안전 손잡이 설치, 턱 난간 제거 작업 등이다.

오전에 찾은 집 상황이 가장 열악했다. 무릎이 아파 1년 넘게 거동을 못 하는 80대 노모가 아픈 아들과 살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가장 큰 문제는 이동이었다. 무릎을 펼 수 없어 잠도 제대로 못 자지만 여성 요양보호사와 아픈 아들 도움만으로는 대처 병원에 가는 게 큰일이다. 올해 병원을 마지막으로 간 게 지난봄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은 수많은 약 중에 진통제가 상당하다고 양 원장은 말했다. 진통제로 참으면서 버티는 것이다.

이날 동행취재는 지역의료의 문제, 그중에서도 최악 상태인 방문진료·간호의 실태를 간접 경험하기 위해 진행됐다. 오지에 사는 이들이 도시에 있는 병원이나 보건소 등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에게 방문진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양 원장에 따르면 현재 방문진료를 하는 의사는 한국 전체 의사의 0.4% 정도밖에 안 된다. 춘천에도 양 원장 외에 없다.

시골에선 이동할 수 있어도 병원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의사인력 중 농촌지역 의사 수는 3.9%에 불과했다. 춘천이 속한 강원도의 경우 같은 해 국토교통부가 분석한 결과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도로 이동거리가 22.73㎞로 서울 1.97㎞의 20배가량 됐다.

양 원장이 올해까지 4년째 방문진료를 할 수 있는 건 센터가 속한 강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한국수자원공사의 도움 덕이다. 조합이 이 사업을 기획했고, 수자원공사는 필요한 경비를 댄다. 소양강댐이 수자원공사 관할이라서다. 하지만 3명의 인건비와 사무실임대료, 차량유지비, 약제비 등 모든 비용을 포함한 센터 1년 운영비는 지난해 한국 의사 1인 평균소득보다 적다. 센터는 방문진료 시 어떠한 돈도 받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 조합과 공기업이 대신하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다. 양 원장은 “왕진 수가를 높이는 것만으로 방문진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보다 중요한 것은 왕진의 주체가 민간 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방문진료 전담 기관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천=나기천 기자 na@segye.com
 
인지도·수익성 낮아… 정착까진 먼 길
장기요양 재택의료 시범사업도 저조
 

정부가 왕진으로 불리는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 4년이 다 돼 가는데 의료기관 참여율은 2%대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정기적으로 환자를 찾아가는 재택의료센터도 문을 열었으나 환자와 의료진 모두 참여가 저조하다. 인지도와 수가가 낮아 참여 동력이 떨어진다는 게 주요 이유로 꼽힌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12월 시행된 1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원은 지난 6월 기준 853곳(한의원 제외)이다. 지난해 전체 동네의원 3만4958곳의 2.44%다. 지난 5월까지 환자 1만1067명이 방문진료를 이용했다.

정부는 진료와 간호를 연계해 환자를 정기적으로 찾는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도 시행하고 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참여 의원은 28곳이다. 지역별로도 서울(7곳)과 경기(10곳), 충북(2곳)을 제외하면 다른 시·도는 1곳씩만 참여하고 있다. 부산과 대구, 울산, 세종, 경북에는 참여 의원이 없다.

의사들은 인지도와 수익성이 낮아 방문진료나 재택의료 사업에 뛰어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한의사협회가 1차 의료기관 의사 339명을 조사해 지난 1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4명(41.0%)은 방문진료 사업을 알지 못했다.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는 외래환자 진료시간이 줄어드는 ‘기회비용’이 22.6%로 가장 많았다.

왕진료는 혈당 체크, 욕창 관리 등을 모두 포함해 12만6900원(환자부담 30%)이다. 초진의 경우 진료와 이동시간을 합해 1시간가량 소요된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 5∼6명을 받는 게 소득 측면에서는 더 나을 수 있다.

재택의료 사업의 경우 왕진료에다 재택의료기본료(14만원)가 추가된다. 추가 방문이나 지속 방문(6개월) 여부에 따라 수가가 더 붙는다. 방문진료보다 수가가 높지만 최소 3명이 팀을 이뤄야 해 유지비용이 크다. 의협이 관련 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 6곳을 심층 조사한 결과 사업을 유지하려면 환자 약 50∼70명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한국 의료체계상 왕진이 정착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주치의 제도가 아닌 한국에선 누구든 원하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는다. 의료전달체계가 다르고 여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왕진을 집중 지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대학 시절부터 좋아했던 가수 김수철. 문화부 이강은 선임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했다. 언제 또 볼까 싶지만 이런 기회에 팬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한컷. 이런 만남은 기자 생활의 묘미 중 하나다. 

아래는 이강은 선임기자의 인터뷰 글.

 

“그냥 ‘음악 천재’다.”, “음악에 진심인 천재”, “이 시대 천재”, “천재 뮤지션이라 부르고 싶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 ‘천년학’(영화 ‘서편제’ OST) 등 김수철(66)이 만든 명곡들이 소개된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각 영상의 댓글에서는 시대를 앞서간 가수(음악가)란 평가와 함께 ‘천재’라는 존경어린 수식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울러 대중에게 잊히다시피 한 김수철과 ‘작은 거인’의 음악을 다시 보고 듣고 싶다는 그리움과 소망이 가득하다. 

데뷔 45주년을 기념한 첫 공연 무대를 앞두고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을 찾은 김수철이 익살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허정호 기자

록과 발라드, 국악, 클래식, 동요, 영화음악 등 다양한 음악 장르에서 뛰어난 작사·작곡·편곡·연주·노래 실력을 입증한 김수철은 “에이, 천재는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방송 토크쇼에 나가거나 책을 쓰거나 연기하거나 빌딩(건물)을 사려 하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음악에만 집중하고 공부했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랬다. 김수철은 대학(광운대) 1학년 때 만든 ‘퀘스천’이란 밴드 멤버로 1977년 KBS 라디오 프로그램 ‘젊음의 찬가’에서 데뷔한 후 음악에만 매진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등의 노래로 1980년대 중반 ‘가왕’ 조용필에 버금가는 스타가 됐을 때도 돈과 인기를 좇지 않았다. 그즈음 확 꽂힌 국악 공부에 전념하느라 방송 무대 외의 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돈을 만지지 못했고, 돈 안 되는 국악을 하다 빈털터리가 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행복의 의미가 저마다 다를 텐데, 저는 음악만 하는 게 행복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돈 벌어) 빌딩을 살 때 저는 계속 ‘음악 빌딩’만 지은 거죠.”

그렇게 45년 동안 ‘음악 빌딩’만 세운 그가 오랜 꿈 하나를 꽃피운다. 1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40여년 심혈을 기울인 국악 현대화 작업의 결실을 풀어놓는 것이다. 데뷔 45주년을 기념한 무대는 그동안 가요 앨범 12장과 국악 앨범 25장을 낸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공연이라 의미를 더한다. 

지난달 27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김수철은 “우리나라 청소년과 청년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려고 40년 이상 준비했다. 이 공연이 세계 진출을 위한 스타트(시작)가 될 것”이라며 “미지의 세계로 가는 거라 정말 쉽지 않고 성공할지도 불투명하지만 나는 간다. 안 돼도(도전에 실패해도) 계속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악 현대화의 선구자다웠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공연이라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15년 전부터 계획해 온 꿈의 무대다. 내 국악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려주고 싶었는데 후원사를 못 구해 번번이 좌절됐다. 찾아간 기업마다 ‘그게 되겠어?’ 하면서 난색을 표하더라. 결국 자비를 털어 일을 벌이기로 했고, 세종문화회관 측과 협의해 공동기획으로 공연하게 됐다.(김수철은 그동안 들인 10억원가량의 제작비 대부분을 자비로 충당했다.) 국악이 중심인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은 아마 국내외에서 최초일 거다. 여기서 안 끝난다. 처음부터 세계 무대에 들고 나가려 만든 장르인 만큼 내년에 도전해 보려 한다.” 

11일 공연 1부에선 김수철이 지휘하는 100인조 동서양 오케스트라가 ‘팔만대장경’과 영화 ‘서편제’ 주제가인 ‘천년학’·‘소리길’, 88서울올림픽 주제곡 ‘도약’,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음악 등 김수철이 작곡한 대표적인 국악곡들을 들려준다. 2부에서는 양희은, 백지영, 이적, 성시경, 화사 등 친한 선후배 가수가 우정 출연해 ‘정녕 그대를’, ‘왜 모르시나’, ‘정신차려’, ‘내일’ 등 김수철의 인기가요를 부르는 무대도 마련된다.  

“나의 국악 음악은 물론 (가요)히트곡을 모아 공연하는 게 처음이다. 돈!돈!돈! 하는 세상이지만 우정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양희은 누나 빼고 다 후배들인데 전화로 부탁했더니 모두 기쁜 마음으로 (무료) 출연해주기로 했다. 덕분에 제작비를 아껴 감사하다.”(웃음)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TV에서 본 밴드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중2 때 부모님 몰래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면서 작곡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가서도 취미로 록 밴드 활동을 했다. 부모님이 ‘딴따라’ 하면 안 된다고 음악하는 걸 너무 싫어하셔서 취직이 잘 된다는 전기통신공학과에 들어갔는데,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또 권위주의 시대라 표현의 자유가 제한돼 친구들하고 철학과 문화예술에 심취했고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당시 철학적 질문과 고민을 많이 한 게 (내 음악 인생의) 밑거름이 됐다. 돈이나 인기, 대중을 좇는 대신 내 갈 길로 가는 거 말이다. ‘못다 핀 꽃 한 송이’도 사랑 노래 같지만, 사실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위인들을 뒤따라 그들이 못다 피운 꽃을 내가 피우겠다고 말하는 곡이다. 내가 못 피우면 후배가 또 피우면 되는 거고. 어쨌든 내가 쓴 모든 가사의 기본은 ‘한눈 팔지 말고 한 호흡으로 한길만 죽 가자’는 것이다.” 

―‘작은 거인’이란 이름은 어떻게.

“데뷔 이듬해인 1978년, 다른 대학 친구들과 4인조 록밴드를 꾸렸는데 한 선배가 ‘네 명이 합쳐서 큰 힘을 발휘해라’라는 뜻을 담아 그렇게 지어줬다. 1979년 TBC(동양방송)에서 개최한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 나가 ‘일곱 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받는 등 대학가에선 나름 유명했다. 그러다 멤버들이 입대·결혼·이민 이유로 떠나면서 1983년 자동 해체되고 나만 남았다. 나도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터라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 ‘별리’ 등 차분한 노래들로만 고별 앨범 형식의 솔로 1집(‘작은 거인 김수철’)을 냈는데 아무도 몰라줘 망했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1집은 망하고 대학원 다니던 중 영화 ‘고래사냥’에 우연히 ‘병태’역으로 캐스팅됐다. 다들 내가 가수로 인기 얻어 그 영화에 출연한 줄 아는데 아니다. 배창호 감독이 키가 작고 어리버리한 대학생을 찾았는데 알고 지내던 안성기 형이 나를 추천했다. 배 감독이 보자마자 ‘진짜 어리버리하게 생겼네’라며 낙점하더라.(웃음)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나는 전문 배우가 아니니 영화 음악을 맡겨달라’고. 그해 연말 촬영이 끝날 때쯤 ‘방송국마다 김수철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뒤늦게 대히트를 친 것이다. 1984년 3, 4월쯤 방송에 나가 1집에 있는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 ‘별리’, ‘정녕 그대를’ 4개를 연달아 불렀는데 모두 히트했다. 이어 10월에 낸 2집 앨범의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왜 모르시나’도 히트를 쳤다.”

김수철은 그해 KBS 가요대상에서 조용필을 누르고 대상까지 차지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 중 직접 가사를 쓰지 않은 곡은 세 개뿐이다. ‘젊은 그대’(안양자), ‘모두 다 사랑하리’(김정선), ‘바라본다’(한영애)인데 모두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금방 지었다고 한다. 

―가요계 정상에 오르며 인기 절정이었는데, 왜 국악으로 발길을 돌렸나.

“대학교 4학년이던 1980년, 영화음악 공부하려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친구들과 단편영화(독립영화) ‘탈’을 만들었다. 한국 젊은이들의 한 단면을 그린 영화라 우리나라 음악을 넣고 싶었는데 아는 게 없으니 무작정 초중고 음악교과서들을 뒤졌다. 그런데 ‘아리랑’ 정도 외엔 거의 서양음악이었다. 일단 대충 국악의 기본을 배운 다음 기타를 가야금처럼 쳐서 ‘탈’ 음악을 만든 뒤 가야금 산조, 가야금 병창, 판소리 등 국악 음반을 찾아들으며 국악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3년 동안은 재미도 없고 듣다가 졸리면 잤다. 어느 날 갑자기 거문고 소리가 확 귀에 들어왔다. 이처럼 감동적이고 훌륭한 우리 소리를 듣는 데 내가 3년이 걸렸다면 일반인은 오죽할까 싶어서 대중에게 자주 들려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그 결심의 하나로 1집에 담은 ‘별리’가 국악 가요다.)

그래서 1984년 인기 절정일 때도 낮에 7∼8개 방송 출연하고 밤에 국악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했다. 이후 레코드사에는 ‘돈은 다른 가수로 벌고, 나는 내버려 둬라. 대신 국악으로 잘 되면 의리를 지키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내 돈으로 국악 공부와 앨범 제작에 전념했다. 국악 곡을 만들려면 다양한 국악기와 지역별로 다른 장단 등 배워야 할 게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국악의 길에 들어서 쓴맛을 많이 봤는데.

“1987년 국악 1집 ‘영의 세계’를 냈는데 안 팔려서 폐기처분되고 그 당시 빚만 1억원에 달했다. 레코드사가 ‘대중적인 가요 음반을 내라’고 압박하자 고민하다가 ‘어차피 마지막인데 대중적인 거보다 차라리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고 결심했다. 작사·작곡·편곡·노래는 물론 드럼·베이스·기타 등 연주도 직접 혼자 다해 만든 ‘원맨 밴드’ 음반(8집)을 1989년 냈는데 또 망했다. 몇 개월 지나 피디 친구의 부탁을 받고 MBC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 8집의 ‘정신차려’를 불렀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덕에 빚도 다 갚고 2000만원을 더 받았다. 그 돈으로 국악 2집 ‘황천길’을 냈는데 또 망했다.” 

그가 지금까지 낸 국악 음반 25개 중 상업적인 성공작은 100만장 넘게 팔린 ‘서편제’ 음반이 유일하다. 그는 영화·드라마·어린이 만화·광고 음악 등의 작곡료나 국가행사 음악감독 등의 일로 돈을 벌면 대부분 음악 장비 구입과 국악 공부 및 앨범 제작에 썼다고 한다.

―TV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곡의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이 정서에 맞지도 않는 성인 가요를 부르는 걸 안 좋아한다. 1989년쯤 문득 ‘그런데 나는 어린이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하니 별로 없더라. 그래서 1년에 한두 곡은 동요를 만들기로 하고 어린이 드라마와 만화 주제곡도 여러 개 만들었는데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로 시작하는) ‘날아라 슈퍼보드’ 노래가 크게 히트했다.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들에게도 메시지를 주려고 ‘나쁜 일을 하면은/ 우리에게 들키지/ 어려운 세상이지만/ 사랑하며 살아요/ 사랑하고 살면은/ 평화는 올거야’를 가사에 넣었다.”

―국악 현대화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것 같다.

“사명감보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거다. 나라마다 있는 전통을 문화라고 하면 안 된다. 전통을 뿌리로 한 절대적인 문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전통은 보존 못지않게 계승·발전이 중요하다. 국악도 젊은 세대가 고리타분하게 여기지 않고 재미를 느끼도록 다가갈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계승·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기타 산조’를 개척한 것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젊은이가 다 아는 기타(서양 악기)로 우리 가락과 리듬을 현대화시킨 기법으로 연주하면 괜찮겠다 해서 만들었는데 잘 먹혔다. 수십억 인구가 지켜본 2002년 한일월드컵 조 추첨식과 개막식 때도 기타 산조 등 현대화한 국악을 들려주니 반응이 좋았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든다.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후원도 필요하다.”

―앞으로 목표는.

“음악 말고 할 게 없는데 무슨 목표가 있겠나. 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음악작업을 열심히 할 것이다. 내 시대에 모든 국악의 현대화를 완성할 수도 없고, 국악이 계승·발전하도록 다리가 돼주는 역할까지가 내 몫이다. 그다음엔 의식 있는 젊은 후배들이 나타나 나의 못다 핀 꽃 한송이를 피우지 않을까.”

―요즘 살아가기 힘든 ‘젊은 그대’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힘들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끝까지 하면 반드시 빛 볼 때가 올 것이다. 중간에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내가 그 흔적이지 않나. 망해서도 몇 년 굶주리며 갔더니 또 일이 들어오고, 지금 이 나이에도 작곡 의뢰가 들어오는 건 잔재주 안 부리고 음악만 해왔기 때문이다. 청년 여러분도 좋아하는 것을 찾아 꾸준히 노력하면 100%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사진=허정호 사진부장
 

2022년 10월18일

 

박민(사회, 문화일보 논설위원): 지금부터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초청 관훈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69대 총무 박민입니다. 먼저 초청에 응해주신 골드버그 대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내외빈 여러분, 그리고 취재기자 여러분께도 감사 드립니다. 최근 국제정세는 위기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 의 우크라이나 침략, 그리고 지난주 북한은 대규모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월 16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오늘 아침 보도에 따르면 핵전력 현대화와 대미 과학기술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동 북아는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이 전면 대립하는 양상을 보 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문제를 포함한 국제문제에 정통한 대사님을 모시고 개최하는 토론회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요한 인사 이트(insight)를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늘 토론은 11시 50분까지 80분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순서는 골드버그 대사님의 인사 말씀을 듣고 패널 토론을 진행하고 이어 플로어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대사님의 마지막 인사로 순서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늘 현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순차 통역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먼저 골드버그 대사님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대사님은 미 국무부 최고위 직인 경력 대사(Career Ambassador)로 주콜롬비아 대사를 지내다가 지난 2월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돼 7월 부임했습니다. 경력 대사는 군대로 치면 4성 급 장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제도가 도입된 1955년 이후로 경력 대사 에 임명된 분은 예순세 분밖에 없다고 합니다. 골드버그 대사님은 보스턴 대에서 라틴아메리카학을 전공했고, 볼리비아 대사, 국무부 유엔 대북 제 재 이행 담당 조정관, 필리핀 대사, 쿠바 대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어 토론에 나설 패널리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제일 오른쪽이 강민수 KBS 재난미디어센터 기자입니다. 그다음이 이정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입 니다. 그리고 제 왼쪽으로 조남규 세계일보 취재 담당 부국장입니다. 그리 고 이치동 연합뉴스 영문북한뉴스부장입니다. 그러면 골드버그 대사님의 모두발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필립 골드버그(주한 미국대사): 박민 총무님, 그리고 패널 및 귀빈 여러분, 오늘 이처럼 중요한 토론회에 참석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한미 양자관계 140년 역사에 대해서, 내지는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기원과 앞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향방에 대한 발표를 기대하고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언론인이기에 이미 이에 대해서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 다. 그래서 아마 질의응답 시간에 저를 당황하게 할 질문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저널리즘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러분의 핵심적 인 역할을 존경하고 또한 감사한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께서는 ‘사람들이 매일 나에게 안 좋은 별명들을 붙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권리를 늘 옹호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같은 연설에서 말씀하신 그다음 내용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견해, 심지어 우리 미국인들이 동의하지 않은 견해까지도 표현할 수 있 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인들은 싸웠고 목숨을 희생했다’고 같은 연설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를 제가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40년 우정이 좋은 것은, 양국관계 가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돼 왔기 때문에 몇 가지 의견 불일치가 있어도 우리 관계는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몇 분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양국 군사동맹은 깨뜨릴 수 없는 철통과 같고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흔 들림이 없습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해리스 부통령도 몇 주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여러분께서도 최근 로널드 레이건호 항모전단의 한국 방문, 양군 합동 훈련의 지속적인 확대를 통해서도 보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적들도 자유와 법치가 다스리는 현재 세계 질서를 바꾸기 위해 똑같이 의지를 발휘하고 있고, 그들에게 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같은 생각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정학과 경제관계를 분리할 수 있다면, 그래서 금전적인 손해 없이 우리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우리 모두 공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돌아가지 않습니다. 좋든 싫든 이 시대에는 안보·번영·민주주의가 서로 얽혀 있고, 각각에 대한 전례 없는 도전이 있습니다. 전략적 자원을 통제하는 권위주의적 국가들은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이익을 위해 이를 이용할 것입니다. 러시아가 잔혹하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 러시아산 가스가 제한적으로만 접근되는 상황에서 올겨울 난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 중인 유럽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이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한 이후 경제적 보복을 견뎌야 했습니다. 또 한편 유엔안보리 결의안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제재 회피 노력을 막지 못한 중국은 이 같은 위협을 줄이기 위해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제지당하지 않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반복적인 제안을 점점 공격적인 도발로 응하면서 북한은 평화, 특히 비핵화를 대가로 한 평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세계 무대에 서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책임 있는 행위자가 될 것을 계속 압박하겠지만, 지역 및 글로벌 도전 과제의 해결에 있어 중국이 계속 이러한 태도를 견 지한다면 그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해 야 합니다. 러시아·중국과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는 민주주의적 국가 간의 불화를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분열은 그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막는 능력을 제한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분열의 씨앗을 심을 기회를 우리가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국민과 삶에 실질적인 영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깊고 지속적인 관계가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믿고 있습 니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일본 등과의 동맹관계가 전 세계 안보·평화·번영 증진의 핵심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이러한 동맹관계가 더 중 요합니다. 동맹의 능력과 범위가 우리의 집단적 이해관계에 부합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공급망이 국가안보 사안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깨닫게 됐습니다. 안보와 번영을 위해 같은 생각을 지닌 파트너국 간의 무역과 투 자를 확대해 시장을 더욱더 탄력 있게 만들고, 규칙 기반의 질서를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에게 돌아서서 이 같은 상호 의존성을 무기화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로 그렇 게 하고 있습니다. 핵심 부문 및 공급망 등 한미 양자 무역은 계속해 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자동차, 이를 위한 부품에 있어서 한국에 의지합니다. 우리가 한국에 의지할 수 있으며, 한국도 미국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공통의 가치관을 지닌 오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이 이기면 한국 기업이 진다는 제로섬 게임으로 양자 경제관계를 규정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국, 미국 기업들이 함께 일하면서 경제 모든 부문에서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견해입니다. 종종 양측의 무역 분쟁이 있기도 하지만 해결 의지가 있고 해결을 위한 메커니즘도 있습니다. 무역 사안을 두고 동맹 혹은 포괄적 글로벌전략 파트너십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약해졌다는 조짐으로 삼는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해 법안에 나온 전기차 인센티브에 대해 한국은 진지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다룰 방법을 지속적으로 논의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기업이 이 법안의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로 인해 혜택을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특정 국내 조항을 예외로 하고 이 법안의 실질적 대상은 기후변화와 공급망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하고 싶습니다. 이 법안은 미국이 탈탄소화를 위한 글로벌 노력을 주도한다는 약속을 지키도록 해줄 것입니다. IRA 조항들은 너무 늦기 전에 미국이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합니다.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공통의 가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다양성은 장점이고, 이를 포용하는 것은 전략적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에게 확 실한 장점이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여성과 사회 소외계층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올바른 일이자 국가 안보적 의무이며, 우리는 그러한 맥락에서 양국의 정책을 생 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어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잠재력에 도달하고 의미 있게 기여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이해에 부합합니다. 같은 이유 에서, 우리는 우리 국경 밖의 사람들, 이들이 사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도 번창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자유를 다른 사람들도 누릴 때 세상은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곳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앞서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동맹관계가 더 중요하고 동맹의 능력과 범위가 우리의 집단적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만든 위대한 한미 군사 동맹은 우리가 오늘 누리는 폭넓은 글로벌전략 파트너십의 기초를 제공했 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의 영향력은 세상의 일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한국은 이러한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양자 협력의) 일례로, 지난달 미국 국제개발처와 한국 외교부가 개발에 관한 양자 협력 관계를 심화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양국은 태평양 섬 지역의 기후변화 퇴치, 동남아시아의 사이버 안보 강화, 아프리카 보건 시스템 강화 등 전 세계 다양한 구상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모든 노력에서 중요하고 동등하며 능력 있는 미국의 파트너입니다.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선을 위한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같이 갑시다. 감사합니다.

사회: 골드버그 대사님의 모두발언을 잘 들었습니다. 모두발언을 오늘 아침까지 수정을 거듭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많은 통찰력(insight)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안보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가 함께 얽혀 있는 그런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내용이라든지, 권위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불화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분열의 씨앗을 심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명 같은 것들이 대사님이 한국에 부임하면서 가진 생 각도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패널들의 질문을 들어 보겠습니다. 역시 지금 동북아에서 가장 핵심적 인 이슈이자 또 한국의 가장 중요한 이슈인 북핵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먼저 이치동 부장께서 북핵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토론을 시작하도록 하겠 습니다.

이치동(연합뉴스 영문북한뉴스부장): 대사님, 바로 질문드리겠습니다.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 그리고 국지도발 우려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도발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려면 아무래도 예측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대사님께서는 저희보다 정보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까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 연내에 핵 단추를 누를 것으 로 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북한, 가까운 시일 내 7차 핵실험할 듯 필립 골드버그: 제가 7차 핵실험의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만, 많은 관리가 말을 해왔고 저 자신도 말을 해왔습니다만 가까운 시일에 핵실험을 할 것을 우리가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언제 할지 그 정확한 날짜는 예 측할 수 없습니다만 모든 조짐을 봤을 때 북한이나 김정은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조치를 한다면 그것은 무책임의 증거가 될 것이며, 이 지역에서 남북관계, 미국 그리고 일본까지도 긴장이 상승하는 도발과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설정한 목표의 방향이 나 경로를 우리는 그쪽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탄도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은 불법적이며 안정을 와해시키는 것이고, 그래서 파트너 국가들 및 동맹국들의 안보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 는 그런 반응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쪽에서는 조건 없는 협상, 코로나19 관 련 지원, 인도주의적 지원 등을 제안, 제시했습니다만 이에 대한 응답이 없 었습니다. 받은 반응이라는 것은 미사일 실험 혹은 핵실험 내지는 핵실험 을 위한 준비, 그리고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말들만 평양으로부터 나왔습니 다. 한국 쪽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구상을 제시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서도 그런 적대적인 수사(rhetoric)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구상에는 협상을 위한 인센티브나 비핵화를 위한 해결을 담고 있 었지만, 여기에 대한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실험이 아니라 긴장을 낮 추고 결의를 보여주며 비핵화라는 목표를 갖고 우리가 이러한 위협이나 도 발에 대응, 대답한다는 것에 관해 우리의 파트너 국가들, 동맹국들과 정책 을 조율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치동: 세간에서는 한미 간의 비핵화 목표와 접근법이 과연 실행가능 (workable)하냐, 지속 가능하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10월 10일자 파이낸셜타 임스 보도에서, 아마 대사님도 보셨을 것 같은데 이제는 미국이 북핵 문제 에 접근해 패배(defeat)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실패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새 로운 목표와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비중 있 게 다뤘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답을 주시겠습니까?

필립 골드버그: 미국이 설정한 목표라는 것은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과 도발 과 위협에 조율해서 대응한다는 정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NPT(핵확산금 지조약)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NPT는 핵무기의 확산이나 개발을 막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꽤 튼튼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간 의 말들이나 분석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자유언론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는 있습니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 요한 사안이 현재 핵 장치나 미사일을 실험하는 체제이며, 이 체제는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우리는 초점을 두고 있 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건 없는 논의나 협상을 이미 우리가 제시했습니다만 답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도발에 동맹국들이 어떻게 응답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를 현실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치동: 또 다른 의구심은 과연 한미 간 확장억제전략이 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 대사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얼마 전에 로널드 레이건 미 항공모함이 동해에서 훈련하는 와중에도 북한이 연속적으로 미 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동해로…. 가끔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하고 이런 정도의 확장억제전략으로 과연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느냐는 의구 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필립 골드버그: 안보나 평화에 대한 도발과 위협에 우리는 결의를 다 갖고 대응해야 하고 확장억제로 맞서야 합니다. 확장억제에는 미국이 보유한 모 든 자산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이나 한국 국민, 한국의 안보에 대 한 의지를 갖고 있고, 그런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줄 겁니다. 또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 하는 이런 모든 행동이 불법적이고 유엔 결의안을 위반 하는 것이며, 심지어 스스로 한 약속조차 위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국제규범이나 국제법의 틀 안에 있고 합법적인 겁니다. 양자, 그리고 삼자가 같이 훈련하고 있고 우리가 하 는 일은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보여주 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임 있는 정부들에 의한 합법적인 행동인 반면, 북한이 하는 것은 안정을 와해하는 그런 정권, 그리고 힘을 보여주고 자 하는 정권이 자신의 주민들을 돕는 대신 이런 행동을 하는 정권에 직면해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치동: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지난달 한미 간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 의체(EDSCG)를 재가동했습니다. 관건은 계획에서 실행 단계까지 한국의 참여와 역할을 보장·강화하는 것이라고 보는데요. 이를 위해서 예컨대 현 재 차관급인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장관급으로 격상한다든가, 아니면 상 설 실무 기구를 구성해 가동한다든가 하는 아이디어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필립 골드버그: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EDSCG라는 것이 합의된 것을 근간으로 규칙적으로 만난다는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위협과 도발에 직면해 나아갈 것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점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장관급 회의에 대해서는 항상 양국의 외교부 장관이나 국방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워싱턴에서도 아마 장관들께서 만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통령들, 정상들도 이에 대해 대화 했고, 얼마 전에 부통령도 방한했으며, 의원들은 수시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직급(level)에서 이러한 사안을 놓고 대화가 늘 이뤄 지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조남규(세계일보 취재 담당 부국장): 대사님, 제가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요.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에 확장억제를 보다 강화하자는 요청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예컨대 항모전단이나 핵 추진 잠수함 같은 전략자산을 한반도 인근 수역에 상시 순환 배치하는 방안이 거론됐는데, 한국 정부의 요청이 있었나요?

필립 골드버그: 그러한 특별한 요청에 대해 저는 아는 바 없습니다. 지난 5~6주 정도 거쳐 미국과 한국은 대규모 훈련으로 준비 태세와 상호운용성 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F35가 동원되는 공중 훈련도 있었고, 3국 간 미사일 훈련과 여러 미사일 관련 훈련도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 국에는 3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하 는 노력, 그리고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의지와 약속을 보여주 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략적인 훈련이 몇 가지 더 추가될 수 있습 니다만 그 누구도 미국의 의지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은 철통같고 깨뜨릴 수 없는 의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몇 가지 전 략 훈련을 더 추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적이고 지속가능한 노력을 보여주는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위협이 있더라도 양군이 합동해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각각의 도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한다 는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노력으로 한국과 한국 국민과 모두의 안보, 안전 에 대해 우리가 함께 대응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조남규: 여권 내에서는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데 몇 가지 주장에 대한 미국 정부 또는 대사님의 입장을 묻고 싶습니다. 대사님께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대한 의지를 매우 강하게 피력하셨기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 개발을 하는 방안을 제의하겠습니다. 첫 번째가 과거 주한미군에 배치됐던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방안입니다. 이에 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필립 골드버그: 윤 대통령께서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NPT에 대한 한 국의 의지를 말씀하셨고, 이 문제를 다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 리는 전술핵이든 아니든 간에 위협을 증가하는 핵무기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오히려 긴장을 늦추기 위해 이런 핵무기를 제거할 필요에 좀 더 초 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장억제와 관련해서는 핵전력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미국이 가진 것을 총동원해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통같은 의지를 갖고 있고, 여기에 대해 아무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및 일본과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노력은 위협 및 도발에 대 응하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 결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가 대응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확장억제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그 누구도 의심 해서는 안 됩니다. 전술핵 이야기가 푸틴에서 시작됐든, 김정은에서 시작 됐든 간에 그런 이야기는 아주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 니다. 그리고 긴장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남규: 대사님의 답변을 들어보니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나토식 핵 공유협정 같은 것도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필립 골드버그: 제가 말씀드린 것은 핵 능력을 포함한 확장억제에 대한 미 국의 의지였습니다.

조남규: 이것은 다른 차원인데요. 한국 정부는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핵 추진 잠수함은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미국의 허가가 필요한 부분 인데, 이와 관련한 한미원자력협정을 전향적으로 개정할 의향은 없는 것인가요?

필립 골드버그: 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잠수함과 관련해서는 예산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제가 잘 못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만 여하튼 그런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논의할 준 비가 전혀 돼 있지 않습니다. 대신 양국 간 민수용 핵 원자력 부문 협력에 는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양국이 항상 대화하고 있습 니다.

조남규: 한국 국민 가운데에는 이런 우려가 있습니다. 과연 미국이, 워싱턴 이나 뉴욕이 북한 핵에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을 보호할 것인가. 혹시 미 본토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북핵을 용인하지 않을까. 가령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수단을 막는 선에서 미 국이 북한과 핵 군축 협상에 나서지 않을까, 이런 우려들입니다. 이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필립 골드버그: 제가 거기에 대해서는 명백히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장기적인 조약 동맹을 통한 진지한 의지를 갖고 있고, 우리가 가진 자산엔 핵 능력도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억지 능력에는 핵 위협에 대응한 핵 능력, 미국의 핵 능력도 포함돼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 리가 지금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주위 상황이나 대화를 어떻게 하면 북한의 위협을 끝낼 수 있는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만약 이렇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든지, 핵을 가진 북한이 정상인 것처럼 여겨 지는 가설적인 상황에는 우리가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회: 북핵 문제, 심각한 문제인데 거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 태세, 또 최근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문제에 대해 대사님께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첫째는 그런 위 협에 대응해 핵무기 등을 추가로 배치하거나 보강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기존 핵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 그리고 미국은 가 용가능한 모든 전략적 자산 등을 동원해 동맹을 보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 를 갖고 있고, 그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계속되고 지속가능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마 이것이 많이 논의된 미국의 입장을 포괄적으로 정리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로 질문을 이어갈까 합니다. 오늘 아침에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많은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한·미·일 간의 군사 협력 문제, 또 한일 간의 외교 문 제가 중요한 외교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강민수 기자께서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강민수(KBS 재난미디어센터 기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 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타이완(대만)에 대해서는 통일을 위해 무력 사용 가 능성까지 시사한 상황입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도 있다고 했는데, 미국과 중국 간 무력 충돌 발생 시 주한미군의 일방적인 차출 가능성이 있는지 대사께 여쭙고 싶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타이완 사안에 대해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무력이나 위협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사령관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사실 그분 스스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주한미군과 미국의 의지는 한반도에 집중돼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이 지역, 한반도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나머지는 추측일 뿐이고 어떤 사람의 의견일 뿐입니다.

강민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력 충돌 시에 한반도의 안 보 공백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 유지에 최우선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대사께서 외교관으로서 하신 말씀은 알겠는데, 한국의 동의 없는 주한미군 차출은 없느냐는 조금 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외교적 이상의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필립 골드버그: 미국 대통령이 아니어서 그러한 종류의 결정은 제가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강민수: 주한 미 대사라는 자리가 전임자들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국민의 정서를 헤아리고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 리고 주한 미 대사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나 독 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북·중·러에 맞서는 한·미·일 협력체계 구축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오바마 정부는 이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중재를 시도하기도 했습니 다. 다시 미국 바이든 민주당 정부인데, 다시 한일 협력을 위해 미국이 중재 에 나설 생각이 있습니까?

필립 골드버그: 3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미국이 노력해왔고, 이것은 함께 안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북한의 위협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에 있어 여러 사안에 대해 함께 일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쪽에서는 3자 협력에 주로 초점을 맞춰 왔는데 이를 위해 동해에서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훈련 등을 실시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협력은 계속될 것이고, 모든 급에서 정기적으로 만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마드리드에서 양 정상과 장관들이 만났고, 일본의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이 있었을 때 해 리스 부통령께서 방문했을 당시 각각의 한국 관료 그리고 일본의 관료들과 만났습니다. 한덕수 총리와도 만났고요. 물론 그 자리에서는 3자 회의가 없 었습니다만…. 또한 양국의 국무장관, 외교부 장관들이 만났고, 3국 간 장 관급 회담, 차관급 회담 등이 있었으며, 이런 3자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미 국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일 양국 간 역사 문제가 있 고 이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미국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해결되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안보와 같은 시급한 사안에 관해서는 3국이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양자관 계에서는 각 레벨에서 대화하고 있어 함께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고, 미국이 이런 부분에 기 여할 수 있다면 기여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양국이 양자 사안은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미국은 3자 협력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 습니다. 대만과 한국 국민의 정서를 언급하셨는데, 말씀드리자면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가진 의지는 70년 동안의 동맹을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정례적으로 양국 간 훈련과 그런 협력이 있으며, 이 것이 동맹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속이 철통같고, 다 른 지역에서의 일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국 국민께서 안심하시기 바 랍니다.

강민수: 이 질문부터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최근에 동해 독도 밖 185 킬로미터 공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일 군사훈련, 한·미·일 대잠훈련에 일 해상자위대가 욱일기를 꽂고 나왔습니다. 욱일기는 전범의 깃발이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한국 등 아시아인에게 어느 정도의 트라우 마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을 동맹으로 존중한다면 최소한 이 깃발은 걸고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는 여론이 한국 내에 있습니다. 미국 인도태평 양함대 사령부의 초기 발표에서 훈련 장소를 일본해로 명기했다가 나중에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이라고 정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배 려가 조금 부족한 것 아니냐는 한국 내의 여론이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시지요.

필립 골드버그: 역사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고,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 대 통령의 성명을 우리가 지지했던 것이고, 이것은 한일관계의 개선과 역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지했던 겁니다. 이 지역에는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 이 두 나라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함께 일했으면 좋겠고, 그래서 21세기 의 도전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에 대해 이해하는 한편, 동시에 협력에 대한 시급한 필요성도 우리 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현대적이고 기술적 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국인 국가 간의 협력은 자연스러운 것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국가들이 다 미국의 파트너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조금 더 독려하려는 부분입니다. 사회: 강민수 기자께서 미국 대통령이 답변할 질문까지 해주셔서 대사님을 아주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은데, 질문을 외교·안보에서 조금 벗어나는 다 른 부문으로 가보고자 합니다. 대사님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과 미국 기업간의 경쟁이 제로섬 경쟁이 아니다, 또 경제적 갈등(conflict)이 있기는 하지만 집단적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이런 입장을 이미 밝히셨기는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국내에서나 IRA를 포함한 여러 경제적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정은 위원께서 IRA를 포함한 경제·안보 분야 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정은(동아일보 논설위원): 미국의 IRA를 놓고 한국 내에는 반발과 비판이 거셌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이 법이 세계무역기구(WTO)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위배하는 부분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미 재계에서, 예를 들면 미 상공회의소의 찰스 프리먼 부회장도 FTA와 WTO에 IRA 가 부합하지 않는 것이 명확해 보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대사님은 이런 미 재계의 지적에 동의하십니까?

필립 골드버그: 일단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제기하는 우려에 대해 미국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 결할지 우리가 논의 중입니다. IRA의 주요 목적은 녹색 경제를 만들기 위 한 것이고, COP26(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과 여러 다른 공약 에 따라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것이 목 적입니다. 이 법안 없이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로 는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기차를 위한 배터리 생산이 무척 중요하지요. 우리는 미네랄을 확보하는 것이나, 미네랄을 처리하면서 경제적인 강압에 의해 이 두 가지가 인질로 잡히는 것을 원치 않 습니다. 법에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항목들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한국 기 업들도 앞으로는 할 수 있는 역할이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배터리를 생산 하는 한국 기업은 IRA를 통해 즉각적이고, 또한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IRA의 조항과 또한 언제 이러한 인센티브가 실질적으로 제공되는지 그 시차는 있습니다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논의 중입니다.

이정은: 그런 미국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피해가 큰 것이 사실입니 다. 이런 식은 동맹의 등에 칼을 꽂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미국) 재무부가 지금 준비 중인 IRA 세부시행규정 마련을 비롯해 구체적으로 언제쯤 어떤 대안이 가능한 것인지, 입법 아니고 행정 조치로 할 수 있 는 부분은 없는지, 구체적으로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미국은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배터리와 전기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일부 한국 기업은 시차 없이 즉각적인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생산과 조지아주에 설립될 공장의 완공 사이에 생길 시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금 논의 중이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법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고 있으며, 내용은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정은: 전기차·배터리뿐만이 아닙니다. 반도체·바이오 같은 핵심 전략 품 목에서 이미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 규제 방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도 미국은 중국을 가장 큰 도전이자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했는데요. 이렇게 하면 IRA와 같은 유사한 정책이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입법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이것이 또 다른 제2의 IRA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추가로 나올 수 있는 관련 핵심 품목에 대한 법안 준비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방향은 어떻게 될지 행정부 내의 분위기를 전해주실 수 있으면, 그리고 그 것이 앞으로 이번 사태와 유사하게 동맹에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나 피해를 야기할지, 그럴 가능성이 없도록 미국은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반도체에 관한 행정 명령 같은 경우에는 공중요격장비(AIE) 나 군사 용도에서 사용되는 칩을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파운더리 장비도 여기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적인 안보 사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이나 동맹국들을 포함해 모든 책임 있는 국가들은 어쨌건 우리가 무엇을 공유하고 무엇을 판매하는 데는 일정 정도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들 인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제한이 없다면 나중에 가서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국가 안보적 인 의미를 갖고 있어 꼭 경제적 혹은 비즈니스적 결정은 아닙니다.

사회: 오늘 동북아 현안이 워낙 많다 보니까 대사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못 드린 것이 있어서 마무리로 간단한 질문을 제가 추가로 해볼까 합니 다. 사실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 주한 미국대사가 편한 자리는 아닌 것 같습 니다. 대사님 지명을 받은 게 2월 초순이고 부임한 것이 7월인데, 중간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건 미 행정부의 여러 가지 절차 문제이기는 합니다. 대사님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대사직을 제의받았을 때 즉각 수락했다’ 이런 답변을 하신 적 있습니다. 한국에 어떤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하고 요. 대사직을 수행하고 떠날 때 어떤 대사로 한국 국민에게 기억되고 싶은 지 그것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필립 골드버그: 즉각적으로 수락했던 이유는 한미관계의 중요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난 몇십 년 동안 한국이 이뤄낸 것들을 보면 큰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1950~1960년대에 궁핍에서 2020년에 현대의 기적을 일궈 낸 국가로 섰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서 비즈니스에서 크나큰 발전을 이 뤘고, 게다가 미국에는 아시아의 중요성도 점점 커졌습니다. 이 모든 이유 에 덧붙여, 또한 최근에 한국이 누리고 있는 인기도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나 TV나 K-POP 등으로 인해 정말 한국이 인기 있는 나라가 됐지요. 그래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미국이 한국의 정말 좋은 동맹국 이자 파트너 국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계속해서 그러한 나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것이 굉 장히 재미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여러 아름다운 지역을 보기를 원하 고, 동시에 미국의 대표로서 미국을 한국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사회: 원래 예정된 토론시간에서 2분이 초과됐습니다. 플로어에서 좋은 질 문들이 왔습니다. 임종건 서울경제신문 전 사장님,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 대 대표님 그리고 정중규 더프리덤타임즈 칼럼니스트께서 좋은 질문을 주 셨는데 시간 관계상 이 질문을 대사관에 보내 답신을 받아 개인적으로 전달하고 《관훈저널》에도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대사님의 인사말로 관훈토론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질문이 아주 진지했습니다. 제일 마지막 질문조차 가벼운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이 매우 즐거웠고,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 그리 고 민주주의의 큰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 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여러분을 3~4년 뒤에 다시 한 번 이런 자리를 통해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부분은 농담입니다. 다시 곧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

사회: 오늘 큰 인사이트를 주신 골드버그 대사님, 그리고 끝까지 진지한 질 문을 해주신 패널리스트 여러분, 경청해주신 내외빈 여러분, 그리고 취재 오신 기자님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으로 골드버그 미 국대사 초청 관훈토론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관훈클럽은 토론회 때 나온 언론인 세 분의 플로어 질문을 미국대사관 쪽에 전 달해 답신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미국대사관 측이 논의 끝에 서면 답신을 보내 지 않겠다고 알려와 부득이 싣지 못하게 됐습니다. 서면질의를 하신 분들께 양해 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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