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2023년 기획한 시리즈물
<1부> 아무도 모르는 죽음 ‘고독사’
(상) 고독사 현장 동행 르포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가족과 사회의 배려 속에서 떠나가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홀로 죽어 뒤늦게 발견되는 외로운 죽음도 있다. ‘고독사(孤獨死)’다. 우리 법 시스템은 이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이 문제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처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고독사는 3378명. 2017년 2412명에 비해 40%나 늘었다. 한 해 사망자가 30여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사망자 100명 중 1명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외로운 삶의 흔적이 남은 고독사 현장
지난달 18일 오전 8시, 서울 강북의 반지하 다세대주택. 주택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보통 2~3명이 일을 진행합니다.”
에버그린 현장팀장 이모(35)씨의 말이다. 에버그린은 사망자의 거주 공간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다. 이날 청소에 투입된 인원은 기자를 포함해 총 4명. 통상 이런 일은 3명이 맡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반지하에 위치한 방 2개짜리 다세대주택 실내에서 며칠 전 60대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에버그린 김현섭(41) 대표는 “냄새 등으로 미뤄볼 때 죽은 뒤 2주 정도 방치된 것 같다”고 했다. 집 앞에서부터 풍겨나오던 냄새는 시신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시취(屍臭)였다. 영원히 잊기 힘들 것 같은 냄새는 열어둔 창문을 통해 바람을 타고 밖으로 새어 나온다. 이씨는 “이 정도는 보통”이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텍스 장갑 위로 목장갑까지 끼고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자 시취가 확 풍겨왔다. 고독사 청소에서는 냄새 빼기가 중요하다. 이씨는 계피가 가득 든 스테인리스 원형 통을 안방에 놨다. 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전원을 켜자 물이 끓기 시작했다.
이씨는 “일종의 탈취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계피향과 시취가 섞이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냄새로 변했다.
냉장고를 열자 먹고 남은 생삼겹살 한 줄이 눈에 띄었다. 유통기한은 지난 1월28일까지였고 갈변된 상태였다. 녹용액도 여러 팩 들어 있었다. 냉장실에 있는 반찬 등을 마대에 쓸어 담고 냉동실을 열자 냉동굴비 20여팩이 보였다. 문득 고인이 굴비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어 고독사 청소의 핵심인 물품 빼기 작업이 시작됐다. 텅 빈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빼냈다. 계단 폭이 좁다 보니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르내리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영상 4도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안방으로 이동했다. 고인이 생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공간이다. 안방에 있는 1인용 밥상엔 딱딱하게 굳은 삼겹살과 말라비틀어진 상추, 마늘이 놓여 있었다. 주방 가스레인지 위 냄비엔 김치찌개가 들어 있었다. 파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집에서는 삼겹살이나 김치찌개를 즐겨 먹은 듯했다.
방바닥에는 약봉지와 로또, 영수증, 1000원짜리 지폐 등이 흩어져 있었다. 영수증에는 서울 서초구 한 식당 이름이 선명했다. ‘떡라면 6000원’, ‘아침식사 7000원’… 일용노동자였던 고인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떡라면 등으로 배를 채운 흔적이었다. 영수증 날짜는 지난 1월27일이 마지막이었다. 고인은 올 1월 말에서 2월 초에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고인은 2019년 가을 이 집을 3500만원에 매입했다. 지난해 10월 폭행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고인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취하해 약식기소에서 확정된 벌금형을 부과받았다. 그는 법원에 사회봉사허가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남긴 미납 벌금은 50만원이었다.
◆“우리 모두 고독, 앞으로 고독사 더 많아지겠죠”
집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뺀 후 옷장과 수납장 등을 망치로 부수고 장판을 뜯어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장판에는 오래 방치된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스며들어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장판들이 냄새의 원인”이라며 “원인을 모두 찾아 제거해야만 냄새가 없어진다”고 했다. 벽지를 뜯고 나면 청소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냄새를 빼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락스에 물을 섞은 뒤 수세미로 안방 바닥을 닦았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작업을 해도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김 대표는 “냄새가 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며칠 간격을 두고 2~3번 추가 탈취작업을 한다”며 “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적외선 카메라를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고독사한 집을 청소하는 비용은 집주인이 낸다. 이날 현장의 경우 고인이 집주인이었기에 유족이 돈을 냈다.
현장팀장 이씨는 “여기는 전쟁터”라고 말했다. 2021년 넷플릭스에 유품정리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방영됐다. 그 뒤로 일을 배우겠다며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씨는 “일을 배우러 왔다가 본인 생각보다 현장이 더럽고 힘들다 보니 도망가는 사람이 정말 많다”며 “이 직업이 어찌 보면 3D(기피업종)라 적성에 맞아야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고독사한 이들의 집을 청소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씨는 “정말 사람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함께 일하며 현장에서 반장 역할을 한 차상대(55)씨도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건데 이런 현장을 청소할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차씨에게 ‘고독사 청소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잠깐 생각을 하던 차씨는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고독하다.’ 그게 정의죠. 여기 살다가 죽은 사람도, 여기 있는 우리도 다 고독한 거죠. 앞으로 이런 죽음이 훨씬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고독사 키워드는 ‘50대’, ‘60대’, ‘남성’
취재진은 지난달 16일에도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부부 고독사 현장을 목격했다. 김 대표는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9년 2949명이었던 고독사는 2020년 3279명, 2021년 3378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더 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2021년 통계를 성별로 나눠보면, 남자가 2817명으로 여자(529명)에 비해 5.3배 많다. 연령별로 보면 50대(29.6%)와 60대(29%)가 58.6%를 차지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보건복지부는 “50대와 60대 중·장년 남성에 대한 고독사 예방 서비스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50대와 60대 남성이 주로 고독사하는 이유로는 이들이 건강 관리 및 가사노동에 익숙하지 못한 데다 실직이나 이혼 등 사회적 실패를 겪고 나면 삶의 의지가 꺾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주택(50.3%)이었다. 주택엔 단독과 다세대, 연립, 빌라가 포함돼 있다. 취약계층이 고독사에 쉽게 노출돼 있단 의미다. 아파트와 원룸도 각각 22.3%, 13%를 차지했다.
고독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시신을 발견하면 경찰이 출동한다. 검안의를 불러 사인을 확인한 뒤 타살 의혹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유족을 찾는다. 유족이 있고 유족이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히면 통상의 장례 절차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유족이 없거나 유족이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자로 분류돼 공영 장례를 치른다.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업체가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후 유골을 봉안한다. 5년간 봉안 사실을 고지하고 5년 뒤에도 유족의 연락이 없으면 장사시설 내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리거나 자연장한다. ‘고독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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