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무도 모르는 죽음 ‘고독사’
(중) 고독사 고위험군 비상
“아이고, 아이고….”
지난달 말 경기 고양시에 자리잡은 서울시립승화원 2층. 여느 장례식처럼 고인을 떠나보내는 곡소리가 빈소를 채웠다. 다만 빈소는 여느 상가와 달리 2평 정도로 매우 좁았다. 아무도 장례 치러줄 이 없는 서울시 무연고자를 위한 공영장례식장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지난 1월15일 사망한 고인은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이승에서 좁으나마 마지막 자리를 잠시 차지할 수 있었다.
그나마 고인과 함께 쪽방촌에서 살았던 지인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모했다. 고인을 알고 지낸 지 20년 넘은 한 지인은 가족이나 친척이 고인을 찾아오는 걸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결국 외로움이 문제인 거야. 이 양반은 술을 좋아했어. 종종 같이 어울려서 술 마시고 놀았지. 그런데 말이야. 만나서 술 마시고 놀 때는 좋지만 헤어진 뒤 방에 들어가면 공허하다고. 그땐 주위에 아무도 없잖아. 텔레비전을 틀면 가족끼리 나와서 행복해하는 프로그램이 나와. 그런데 내 상태는 안 그런 거야. 그러니까 우울한 거지.”
그는 “그래도 고인이 심성이 착하고 좋았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만인이 연결됐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이가 고독을 느끼는 사회. 전 국민 10명 중 1명이 고독사 고위험군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우리 공동체 속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은 깊어지고 있다. 어느 한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2021년 고독사 통계를 보면, 50대와 60대가 58.6%로 대다수를 차지하나 20~30대(6.4%)와 70대 이상(18.4%)도 적지 않다. 고독사 고위험군을 돌볼 이는 결국 이웃뿐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발굴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혼자 집에 있으면 눈물나”
20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고독사 고위험군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 어느 정도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생계급여수급자며 △건강문제가 있고 △월세에 살고 있을수록 고독사 고위험군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과 고립감이다. 청주복지재단이 지난해 청주시 장년층 1인가구 고독사 고위험군을 심층 면담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대화의 빈도수가 줄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을 주로 느꼈다. 혼자 산 기간이 27년인 A(53)씨는 “지금 많이 외롭고 우울하고 그냥 혼자 집에 있으면 눈물이 나고 그렇다”고 했고, 혼자 산지 20년이 넘은 B(58)씨도 “몸이 아프면 정신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며 “그러다 보면 거기서 오는 제1순위가 소외감이고 (그래서)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대화 기회가 없다 보니 모처럼 얼굴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서 낯선 이와 대화를 반기기도 했다. C(50)씨는 “대화하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대화 상대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달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아 인터뷰한 노인들도 하나같이 외로움을 호소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탑골공원에 나온다는 윤모(81)씨 역시 “매일, 매순간이 외롭고 고독하다”며 “그래도 여기 나와 노인들 이야기도 엿듣고 하면 그나마 낫기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밖에 나가려 노력하기도…지자체 도움 절실
건강 문제도 이들에게 치명적이다. 신체건강의 어려움은 물론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D(64)씨는 “심장이 약하고 혈액 순환이 안 돼서 검사를 했는데, 속된 말로 화병(이었다)”며 “원래 있던 우울증이 (심장이) 아프면서 부쩍 더 심해졌다”고 했다. A씨 역시 “틀니다 보니까 먹는 게 겁이 난다”며 “밥은 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고 말했다.
고독사 고위험군은 주로 집에서만 생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는 건 아니다. 일부는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고 공원을 가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자체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이들을 저위험군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방증이다.
E(61)씨는 “집 옆에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카센터가 있는데 (낮에는) 거기서 주로 생활한다”며 “집에서 혼자 가만히 있으니까 (상태가 말이) 아니더라”고 했다. C씨 역시 “많이 걸으려고 한다”며 “아무래도 걸어야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했다.
일주일에 다섯번 정도 서울 도봉구와 탑골공원을 오가는 남모(75)씨는 “2년 전까지 일을 하다 퇴직하고 요즘은 할 일이 없으면 탑골공원에 나온다”며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만 보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80대 중반의 김모씨 역시 “영감을 1년 전에 보낸 뒤엔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다”며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외로워서 괜히 밖에 나와 무료급식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고고(孤孤)케어에 구직 지원 있었으면…”
고독한 이들이 가장 원하는 도움은 무엇일까.
우선,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눈에 띄었다. B씨는 “텔레비전을 보면 부러운 게 있다. 시골에 가면 경로당에 모여서, 같이 밥 해먹고 거기서 자고 그런다고 하지 않느냐”며 “나이 먹으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살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고 했다. C씨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1인가구끼리 모여서 서로 교류한다든가 한다면 참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직 의지가 있는 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이모(80)씨는 “작년까진 시에서 만든 어른 일자리에 합격해 매달 27만원씩 받았는데 올해는 떨어졌다”며 “먹고 살기 쉽지 않은데, 그런 일자리를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A씨 역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간단한 일을 할 수 있게끔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며 “솔직히 60만원 갖고는 살 수 없다. 하루에 2~3시간 정도라도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유대 문제 2가지에 초점을 두고 각 세대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정책의 혜택을 받는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욕구조사 등을 해서 정책을 설계하는 게 좋다”며 “청장년층의 경우 경제활동 지원, 노년층의 경우 공동체 생활 지원 등이 적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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