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상) 열린 가상공간에 갇힌 사람들

이지호(27·가명)씨는 스스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중독자’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뜨면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마치 시험대에 서듯 자신이 간밤에 올린 ‘스토리’를 몇 명이 보았는지, ‘좋아요’를 의미하는 하트를 몇 개나 받았는지 셈한다. 하트 수가 기대에 못 미치면 기분이 상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에게 하트 수는 게시물에 대한 단순 선호를 넘어 ‘인간관계를 확인받는 수단’에 가깝다.

이씨는 또 SNS를 통해 자신의 삶을 중계한다. 그날 입은 옷, 먹은 음식, 출퇴근길, 산책이나 운동 시간 등. 특히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기 힘든 친구들과는 SNS를 통해 교감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새로 올린 게시물에 친구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이내 섭섭해지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 자신과 비교해 더 비싼 옷을 입고, 화려한 음식을 먹는 친구의 게시물을 마주하면 공허함이 찾아온다. 모처럼 친구를 만났지만, 근황보다 대형 거울 앞에서 함께 찍는 사진에 더 신경이 쏠린다.

하트 수에 심취할수록 이씨는 원본 사진이 성에 차지 않는다. ‘셀카’를 찍을 때 피부톤부터 눈 크기와 턱 길이까지 보정해주는 필터는 기본이고, 사후 보정도 필수다. 사진 보정 앱에 접속한 이씨는 얼굴형을 갸름하게 줄이다가 배경 화면 속 식당 간판이 찌그러진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그의 눈에는 보정 사진이 더 예뻐 보인다. 하지만 ‘좋아요’ 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바로 게시물을 삭제했다.

모르는 사람과 ‘좋아요’와 ‘구독’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인간관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기분에 흐뭇할 때도 있다. 며칠 전 팔로어 수 7000명이 넘는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팔로우했다. 설렘이 차올라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인사를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괘씸한 마음에 즉시 팔로어를 끊었다.

밤 12시 잠들기 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이씨는 온라인 세상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30분만 보고 잠에 들리라는 결심과 달리, 이씨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파도를 탔다. 인생 맛집 추천, 뷰티 가성비템, 주식·부동산 꿀팁까지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어느새 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섰다.

다음 날 아침, 이씨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다시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찾는다. 이미 엄지손가락은 인스타그램 아이콘 위로 향하고 있다. 끝이 없는 굴레다.

손바닥 위 휴대기기 작은 화면 속에서 현대인들은 한층 더 촘촘히 연결됐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카카오톡 대화방과 익명 채팅앱, 대학생 소셜 플랫폼과 직장인 전용 플랫폼 등을 바쁘게 오가며 시시각각 일상을 나눌 수 있다. 가족과 친구, 지인은 물론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나 멀리 떨어진 외국의 인사와 교감도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열린 디지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했지만, 오히려 ‘고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양산하는 초연결사회의 역설을 낳았다.

 

◆초연결사회 역설, ‘고독의 늪’ 양산

5년 전, 최주원(30·가명)씨는 당시 취업 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외로움도 달랠 겸 온라인 커뮤니티에 발을 들였다. 최씨는 축구와 게임에 대한 관심사를 나눌 수 있고, 기발한 ‘짤’(이미지)도 끝없이 올라오는 커뮤니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같은 이들의 ‘나만 잉여가 아니다’, ‘이만하면 정상’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직장인이 된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제 일상의 동반자다. 최씨는 하루를 보내면서 커뮤니티 댓글 창을 수시로 확인한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화장실 갈 때, 회사 근무 중에도 습관적으로 댓글을 본다. 그는 자신이 게시글에 ‘추천’과 ‘댓글’이 늘어갈 때 희열을 느낀다. 반면 ‘악플’에는 분노가, ‘무(無)플’에는 고독감과 외로움이 밀려든다. 최씨는 속마음과 달리 커뮤니티 분위기에 맞춰 욕설과 조롱을 섞어 쓰기도 한다.

온라인 세상은 외로움을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씨처럼 온라인 세계 속에 심취할수록 집착과 외로움이 심화하기도 한다. ‘외로움 대피소’에서 도리어 외로움이 커지고, 무기력, 분노 등 부정적 감정까지 강화되는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온라인에서는 자신을 과장하거나 거짓말로 꾸밀 수 있다. 직접 만나는 감정의 교류에 비해 한계가 있다”며 “온라인에 중독되는 것도 마약 중독처럼 의존성과 금단 증상이 점점 커지면서 불안·우울로 연결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유튜브처럼 일방적인 정보 전달성이 강한 소셜미디어의 경우에는 되레 외로움이 커질 수도 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의 ‘코로나19 확산 후 소셜미디어 이용과 무력감·외로움 체감 연구’(2020)에 따르면 단순히 ‘시간 보내기’ 용도로 유튜브를 장시간 시청하면 오히려 무력감과 외로움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보고 싶은 세상만, 양극화 심화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선호하는 정보를 우선 노출시키는 ‘추천 알고리즘’이 외로움의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플랫폼은 이용자 취향이나 시청 내역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플랫폼에 중독되어 떠나지 못하게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이다. 이러한 알고리즘 작동 방식은 보고 싶어 할 정보에만 노출시켜 편향성을 띠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만의 거품에 갇힌 ‘필터버블’(Filter Bubble)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터버블 속에서는 허위·조작 정보를 접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고립감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남재영(27)씨는 최근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졌다. 아버지가 정치유튜브 채널에서 본 것을 강요하다시피 이야기해서다. 남씨는 “아버지께서 정치유튜브 영상을 보며 본인의 화를 해소하는 것 같다”며 “본인의 생각과 성향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21년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소셜미디어 이용자 3000명을 조사한 결과, 63.2%는 견해가 같은 게시물을 보면 ‘추천’이나 ‘좋아요’를 누른다고 답했다. 견해가 다른 경우 ‘비추천’(45.9%)하거나 ‘구독 취소’(40.0%)를 눌렀다.

제21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20년 3월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팀이 진보 성향 유튜브 3개 채널(알릴레오, 김용민TV,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 보수 성향의 3개 채널(홍카콜라, 신의한수, 펜앤마이크) 구독자(1532명)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각 채널 구독자들이 상대 진영에 속하는 정당이 이념적으로 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인식하고, 높은 수준의 반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문화적으로 취향이 같아서 즐기는 건 괜찮지만, 정치처럼 세상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사안에서 자신의 취향에만 맞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계했다.

김나현·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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