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초연결 사회의 역설 ‘단절’
(중) 더욱 외로워지는 일터

“뜨릉뜨릉.”

매일 아침 7시면 예외 없이 울리는 알람에 사무직 직원 강모(34)씨는 눈을 뜬다.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양치할 때를 빼고는 입을 떼지조차 않지만,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쯤이 되면 이미 온갖 곳에서 강씨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뉴스레터 서비스로 받은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 카카오톡으로 온 ‘놓칠 수 없는 4월의 혜택’,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받은 ‘고수들이 택한 국내외 종목’, 대학교 선후배가 모인 단체채팅방에 누군가가 여전히 퍼 나르는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안전안내 문자에 대출광고 문자까지. 아침에 쌓이는 문자와 카톡만 수십 개다. 이 중에 강씨가 늦잠이라도 자지 않았는지 안부를 묻는 연락은 단 하나도 없다.

회사에 출근해 자리에 앉으면 강씨의 비자발적 묵언수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로 앞에 앉은 직장 상사와 후배도 굳이 찾아와 말을 걸지 않는다. 강씨도 그렇다. 서로 채팅 앱으로 묻고 답한다. 1인 가구 강씨는 퇴근 후 맞아줄 사람도 없다. 집으로 돌아오면 “한국이랑 일본이랑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겨?”, “손차박(손흥민·차범근·박지성) 중 누가 한국에서 역대 최고 축구선수야?”, “랩 해봐” 등 챗GPT를 켜고 시답잖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강씨는 “잠들기 전까지 카톡이 쌓이고 업무 관련 얘기나 단체채팅방에서 수다는 이어지지만, 그 친구들과 실제로 연결됐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허전하고 공허해 이런 기분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떻게 위로받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사람이 없을 때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건 디지털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메일, 채팅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얽히고설킨 ‘초연결사회’에서 현대 직장인은 대면 상태에서도 비대면 소통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카톡, 메신저 등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업무 환경에서 손을 내밀면 닿는 가까운 거리지만 좁힐 수 없는 심리적 거리감에 고독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비대면 소통으로 업무 중 고립감 심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고립의 사회적 비용과 사회정책에의 함의’에 따르면 타인과 유의미한 교류가 없는 국내 사회적 고립 인구는 2021년 기준 인구의 6.0% 정도인 약 280만명으로 추산된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친구·친지가 없다’고 답한 국내 사회적 지지체계가 없는 인구는 2019년 기준 2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지지체계의 부족이 행복 수준 저하로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고립감은 1인 가구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된 물리적 거리두기, 디지털 전환 등으로 커졌다.

업무 특성상 홀로 일할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도 매 순간 외롭진 않아도, 전혀 외롭지 않은 날은 없다. 음식점 배달 요청과 손님의 실시간 후기 사이에서 배달라이더는 디지털 감시를 당하는 수준이다. 배달기사가 모인 인터넷포털 카페에서는 외로움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와도 집에 반기는 사람이 없다‘, ‘길바닥에서 혼잣말하는 자신에게 현타(현실자각 시간) 온다’, ‘배달의 유일한 낙이던 신곡 재생도 질린다’는 내용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중앙집행위원은 “라이더 중 다른 지역에서 (배달 수요가 높은) 강남에 온 분들도 많은데 이들은 고시원 등에 혼자 살며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 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높았다”며 “올해 노조 자체적으로 정신건강 관련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위험군은 심리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립된 업무 환경… 다시 SNS

‘업무 효율화’라는 명분은 ‘고립의 굴레’로 변질되기도 한다. 기술 발전이 업무 시간과 장소 제약을 느슨하게 만들며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면서, 직장인들이 도리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하는 ‘디지털 속박‘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직장인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SNS 속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웹툰작가이자 웹소설가인 A(33)씨는 최장 20일까지 집에서만 보낸 적이 있다. 한때는 사무실로 출근했지만, 컴퓨터 작업이 많고 직접 만나지 않아도 일이 가능해 전면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다. 그날 분량을 채워야 일이 끝나는 특성상 집에서 자유롭게 성과를 내란 취지인데, 창작의 고통이 길어질수록 퇴근은 지연된다. A씨는 “종종 새벽까지 일하니 점점 낮밤이 뒤바뀌며 주변 사람과 단절됐다“며 “남은 건 우울감과 수면제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김모(32)씨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심할 때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가는데 고립감이 굉장히 심해진다”며 “SNS로 인해 원치 않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무 자르듯 끊어내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는 “메신저로 주고받는 업무 톡으로 소통의 양은 늘었지만,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며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소통에 지쳐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쉬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방에만 있으면 다시 또 사람을 찾아 SNS를 켜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과잉이 만들어낸 둔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대인들이 인간관계 욕구를 디지털 미디어로 많이 충족시킨다”면서 “(하지만 충족 욕구가) 과도해지면서 만족감이 오래 가지 못하고 오히려 결핍을 느끼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치 알코올 중독 금단현상처럼 사용장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다수 젊은이가 쓸쓸하고 외롭지만 오프라인에서 관계를 만들 역량은 떨어지는 게 고독감의 원인”이라며 “결국 해법은 아날로그성 회복”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취미활동을 하고 동호인 모임에 나가거나 일상 속 소소한 목표를 갖고 본인이 채울 재미를 찾아야 의미 있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며 “지자체가 제도적, 재정적으로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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