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가정파괴 부르는 ‘보호의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기억이 있다. 16년 전이지만 이정하(53)에겐 37살의 6월20일이 그렇다. 새벽 5시 무렵 어렴풋이 눈을 뜨니 언니, 오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 정신병원 보내자.” 이내 짙은 곤색 상의를 맞춰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2명이 나타났다.
“이정하님? 가시죠.” “누구신데요?” “가보시면 압니다.” 의문의 남성들이 정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155cm에 47kg의 왜소한 체격의 정하가 사정없이 끌려갔다.
정하의 형제들은 환자복 차림으로 사정없이 끌려가는 동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1층엔 구급차 모양의 사설이송단 차량이 서 있었다. 뒷좌석에 밀려들어 간 정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눈앞엔 철창과 방탄유리. 손목엔 남성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빨갛게 부어올랐다. 두려움, 모멸감, 수치심.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1시간을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의 한 정신병원. 정하는 영문을 모른 채 안으로 끌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정실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 무렵 정하는 “죽음으로 널 증명해봐”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입원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정하는 이 같은 강제입원을 2000년부터 총 8차례 겪었다. “매번 개처럼 끌려갔어요.” 가족에 대한 원망감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왜 날 버리느냐. 다시 한 번 그러면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겠다.” 가족에게 상처란 걸 알면서도 비수를 꽂았다. 끝내는 가족과 의절을 택했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과거를 떠올리는 정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족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건 알아요. 전 통제불능이었고 가족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국가가 모든 걸 보호자에게 맡겨 놨으니깐. 그래도 강제입원은 학대예요. 한 번이라도 겪으면 죽을 때까지 못 잊어요.”
정하의 사례와 같이 정신질환 당사자의 동의 없는 입원이 매해 약 3만 건씩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신 의료기관에 비자의입원 환자 수는 3만1459명에 달했다.
29일 세계일보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그들의 곁을 지키고 사는 가족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당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입원 과정에서 맛본 굴욕감과 공포감을 털어놨다. 가족을 향한 원망이 짙게 묻어났다.
그렇다면 비자의입원(강제입원) 결정을 내린 그들의 가족은 악마였던 걸까. 가족들은 강제입원이 막다른 길에 놓인 마지막 선택지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가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긴 탓이다.
◆‘악마’가 될 수밖에 없던 가족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최성희(가명·60)의 눈에 훤했다. 7월 초 성희의 아들 김지훈(가명·30)은 온종일 우두커니 서서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두고 “이게 쓰레기지. 음식이냐”며 국그릇을 엎는 것은 기본이고, 행인과 시비가 붙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날도 잦았다.
모두 아들 지훈이 약을 끊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다. 6년 전 조현정동장애가 발병한 지훈은 약을 먹으면 일상을 잘 살다가도, 약을 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드러났다. 183㎝ 키에 100㎏이 넘는 거구의 지훈이 날뛰기 시작하면 성희와 그녀의 남편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지훈에게도 약을 끊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약이 독극물 같아.” 약을 처음 먹기 시작했던 때, 지훈은 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손목이 뒤로 꼬인 채 흔들렸고, 눈코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지훈은 참아냈다. 꼬박 5년,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약을 한주먹씩 먹으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4월 퇴원 뒤엔 매주 약을 50mg씩 줄이더니 결국 완전히 약을 끊었다.
단약은 비상 신호였다. “아들을 범죄자 만들고 싶지 않으면 따로 사세요.” 지훈이 집안 물건을 부숴 경찰을 부른 날, 출동한 경찰관은 생활공간을 분리하라고 조언했다. 성희는 지훈의 손에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혼자 남은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게 걱정됐다.
20여 번의 입원 과정을 거치며 성희는 알게 됐다. 증상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치료해야 했다. 아들에게 입원을 얘기하면 그 큰 덩치의 지훈은 “입원시키지 말라”며 애원했다. 그때마다 성희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지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성희는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이 원치 않는 입원을 반복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요. 그래도 치료를 받아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잖아요.”
정하와 성희처럼 가족이 강제입원을 둘러싸고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건 국가 탓이 크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비자의입원(타인이 결정한 입원)은 행정입원과 보호입원으로 나뉜다. 행정입원은 자·타해 위험이 의심되는 대상자에 대해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해 전문의 진단을 거쳐 진행된다. 보호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하에 소속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 가능하다. 이때 보호입원을 결정하는 ‘보호의무자’란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또는 후견인, 즉 가족을 의미한다.
증상이 악화한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자체장 혹은 가족이 입원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자체가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행정입원을 진행한 공무원에 대한 민원과 고소·고발 등을 우려해서다. 2022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비자의입원(2만9195건) 중 보호입원이 2만2906건(85%)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보호의무자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가족에게 입원·치료의 책임을 모두 떠맡긴 셈이다.
◆‘미완의 해결책’ 사법입원제
국가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정신질환과 연관성을 보인 흉악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입원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보건복지부를 필두로 법무부·경찰청·소방청이 참여한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개선 TF’는 지난해 8월부터 비자의입원 제도 개선안을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복지부 TF 논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TF는 단기적으론 현행 지자체장·가족으로 국한된 ‘입원신청권자’에 정신건강복지센터장과 의사 등을 포함해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족이 떠안고 있던 입원신청의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해외에선 입원신청 권한을 모든 의사는 물론 공무원, 교사, 사회복지사 등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며 “입원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보호의무자로 한정한 부담을 완화할 필요는 있다”고 평가했다.
TF는 중장기 계획으론 사법기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입원 과정에서 국가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결정주체 변경 및 입원요건 유연화 △재판청구권자 별도 규정 △공공이송체계 구축 △입원·연장·퇴원 결정에서의 환자 권익보호 강화 등 크게 4가지를 검토했다.
복지부는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입적심)의 심사기능을 ‘법원에 이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입적심이 강제로 입원된 환자를 우선 조사해 입원 연장이 합당한 경우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고, 법원이 ‘입원적합성을 최종 판단’하는 식이다.
이는 환자의 치료를 위한 인신구속 여부를 ‘공식 절차’를 통해 결정받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입원 여부를 가족이 일차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병식(병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당사자들은 가족을 원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TF는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절차조력인이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만 TF는 법관 부족 문제 등의 현실을 고려해 ‘심판원’ 등 정신건강 전문성을 갖춘 준사법기관을 도입하는 방안 역시 대안으로 검토한다.
논의 방향은 좋지만, 진척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입원제는 2018년 ‘임세원 교수 살해 사건’, 2019년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정신질환자 치료 사각지대가 드러날 때마다 논의가 급물살이 타는 듯했으나, 판사 증원 한계 등 현실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이번에도 TF 결과 보고선엔 10월 중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전문위)를 구성해 TF 결과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10월이 다 가도록 전문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남 의원은 “비자의 입원에 대해 환자가 입원과정에서 권리를 인지하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절차조력인제도를 확대해야 하고, 환자 인권 차원에서 사법입원제 도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며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회복과 재활이 가능하도록 동료지원과 가족지원을 늘리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 옥죄는 ‘보호의무자’ 법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사법입원제 도입을 반기면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족의 보호의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보호의무자의 의무)에 따르면,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 및 요양과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은 가족에게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인지하고 병원에 데려갈 책임을 넘어, 환자가 타인에게 가하는 물리적, 재산적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부여한다.
실제로 재판부는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그들의 보호의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있다. 2021년 대법원은 양극성정동장애가 있는 아들이 인천에서 낸 화재사건에 대해 보호의무자인 아버지가 155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는 A의 보호의무자로서 A의 동태를 잘 살펴 방화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우발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후로 장애계나 학계에선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가 논의됐지만, 변한 건 없었다. 가족에게 전적으로 돌봄 책임을 떠맡기는 현실이 관련 조항이 제정된 1995년부터 29년째 지속돼 온 것이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국가는 정신질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의무자 제도’를 뒀겠지만, 한편으론 가족을 옥죄는 하나의 쇠사슬이 됐다”고 꼬집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보호의무자의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한다”며 “향후 입원제도 개선 등 국가책임 강화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 돌봄 가족 38% 우울장애
#. 조현병이 있는 31살 아들을 돌보고 있는 유숙희(가명·61)씨는 아들의 입원과 동시에 수학 교사 일을 관뒀다. 숙희씨는 “항상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스트레스는 곧 신체 이상도 불러왔다. 그는 “처음엔 주부습진이었는데 점점 심해져 지금은 손발이 다 갈라졌다”고 했다.
#. 김은순(가명·50대)씨는 20대 딸의 조현병 발병 후 미술 활동을 접었다. 그는 “20~30대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대개 50~60대”라며 “한창 사회생활할 나이지만 아이에게 언제 투입될지 몰라 정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성취감을 포기하고 남은 건 고립감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증 정신질환자 가족은 오늘도 입·퇴원, 복약관리 등 ‘보호자의 굴레’ 속에서 노심초사 환자 곁을 맴돌고 있다. 2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한 정신질환 당사자의 부모 13명과 형제 2명은 쳇바퀴 같은 돌봄노동 속에서 일도, 삶도 사치가 돼 버렸다고 고백했다. 이들에 대한 정서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가 4월 발간한 ‘정신질환자 및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족 995명 중 61.7%는 환자를 돌보는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가족 절반 이상(57.5%)이 환자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을 고백했고, 10명 중 4명(38%)꼴로 우울장애를 보였다. 이는 일반 국민의 우울장애 유병률(남성 3.9%, 여성 6.1%)보다 6~1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또 정신질환자를 돌보느라 일상을 포기하거나(39%) 구직 활동을 단념한 이들(38.6%)도 다수였다.
가족들은 ‘가족지원가’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지원가는 상담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 가족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이들이다. 이들 또한 정신질환 당사자 가족인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받은 양성교육과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조현정동장애 10년 차 30대 딸이 있는 노은영(64)씨는 2년여 전 가족지원가를 만나고 삶이 180도 달라졌다. 2015년 딸이 처음 발병한 후, 병식(병에 대한 자각) 없는 딸을 입원시키려 사설 구급차도 불러보고, 안 먹겠다는 약도 억지로 먹이며 24시간을 딸에게 쏟았다. 운영하던 약국도 접었다. 은영씨는 이 시간을 회상하며 “모든 게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지원가를 만난 뒤, 은영씨는 딸과 소소한 대화도 나누고 자조모임도 함께 가며 일상을 회복하게 됐다. 가족지원가가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정신장애인 등록’을 하는 것도 알려줘 필요한 정보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서울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지원가’로 활동하며 한 달에 두 번씩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족을 돕고 있다.
문제는 가족지원가 사업이 수년째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2021년부터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가족지원가 양성에 나섰지만, 여전히 25개 자치구 중 6개(강서·금천·성동·은평·종로·중)구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활동 중인 가족지원가는 11명뿐이다. 가족지원가 보상은 최저시급 수준으로, 사실상 자원봉사처럼 운영되는 탓에 지원자가 적다. 은영씨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가족지원의 핵심”이라며 “가족지원가 예산 확대가 간절하다”고 말했다.
김나현·조희연·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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