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2024년 기획한 시리즈물
(1회) 아무도 몰랐던 시그널
“아빠 사망보험금 10억 내놔!” 2023년 11월27일 한밤의 평온을 깨는 난데없는 고함이 날아들었다. “아빠가 죽었어? 뭔소리야.” 박미정(가명·52)은 잠을 떨치며 대답했다. “아빠 죽었을 때 받은 10억 달라고!” 문밖에 선 이현우(가명·27)가 외쳤다. “엄마 내일 일찍 일 간다니까 왜 그래.” 미정은 고단한 몸을 일으켜 앉았다.
‘휙’. 둔탁한 마찰음이 허공을 스쳤다. ‘퍽’ 소리와 함께 미정은 천천히 이마를 타고 흐르는 검붉은 피의 감촉을 느꼈다. 귓속에선 골이 웅웅대는 소리가 났다. 미정은 직감했다. ‘아,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미정은 현지(가명·26)를 밀쳐 깨웠다. 대학생이 돼서도 항상 제 엄마 곁에서 자는 딸이었다. “현지야, 도망쳐.” 뒤이어 현우의 팔이 두 차례 더 허공을 갈랐다. 30㎝ 크기의 망치 뒤편 못 뽑는 용도로 갈라진 쇠지레가 미정의 머리로 턱, 턱 내리꽂혔다. 미정은 흐려지는 정신을 붙들었다. 침대 곁 현우를 부둥켜안아 봤지만 173㎝ 체격에 몸무게 80㎏ 중반을 육박하는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깬 현지가 오빠 현우를 힘껏 밀었다. 툭, 망치가 떨어졌고, 이내 미정과 현지, 현우가 뒤엉킨 심야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래, 10억 줄게. 가자.” 미정과 현지가 현우를 거실로 떠밀었다. 재차 덤벼드는 현우에 맞서 미정이 외쳤다. “현지야 급소를 쳐!” 거센 저항에 현우가 떠밀리듯 문밖으로 도망쳤다. 곧장 현지가 경찰을 불렀다. “살려주세요. 엄마가 피범벅이에요.”
불을 켜자 피로 붉게 물든 미정의 얼굴이 드러났다. 당장이라도 혼절할 듯 정신이 아득해지던 미정은, 엉엉 우는 현지를 보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미정이 피를 씻으며 수없이 되뇌었다. 군데군데 파인 이마를 지혈하는 수건 실올 가닥을 타고 새빨간 피가 빠르게 번졌다.
이내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장 경찰은 “근처 골목에 현우씨가 있었습니다. 현우씨도 본인이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신고를 했네요”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병원에 실려간 미정의 이마는 부분부분 5곳이 찢어져 있어 도합 14바늘을 꿰매야 했다.
‘사망보험금? 그게 무슨 소리지.’ 현우, 현지의 아빠는 죽지 않았다. 10여년 전 아이들이 초등생이던 시절 그의 고약한 술버릇에 못 이겨 도망치듯 이혼하고 나온 뒤 마주친 적은 없지만, 경찰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했다.
현우는 며칠 뒤 구속돼 유치장에 수감됐다. 재판 중 국립법무병원에서 한 달가량 이뤄진 정신감정 결과, 현우는 ‘조현병’(망상, 환각, 인지 저하 등의 특성이 나타나는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 모든 건 미정이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비극을 맞닥뜨린 건 미정의 가정뿐일까. 그렇지 않다. 전국에서 매년 20건이 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자신을 돌봐온 부모를 해하는 사건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27일 세계일보가 지난 10년간(2014∼2023년) 있었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1심 판결문 386건을 전수 분석해 확인한 결과다. 이 중 재판부가 정신질환의 영향을 인정한 경우가 211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부모나 조부모 등을 살해했거나 살해하려 한 범인 중 54.7%가 정신질환자였다는 의미다.
몇 달이 지나도 미정에게 그날의 기억은 지난밤 악몽처럼 생생했다. ‘내가 악마라도 낳은 걸까.’ 하지만 미정의 기억엔 현우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여전히 또렷했다.
현우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엔 늘상 ‘성실하고 예절 바름’, ‘공공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착한 아이’란 평가들로 빼곡했다. 함박눈이 내리면 현우는 “엄마 앉아봐”라며 미정 머리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고사리손으로 털어주곤 했다. 장바구니도 꼭 나눠 들어야 직성이 풀렸던 아이, 술에 절은 제 아빠가 화장대 물건을 모조리 집어 던지는 날엔 “엄마한테 그러지 마라”며 제 한몸 던지던 아이, 중학교 반 친구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곤 무작정 덤벼 상대 코피를 내곤 “걔 많이 아팠을까” 되물으며 다신 폭력을 쓰지 못하던 아이, 그게 현우였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수록 미정의 혼란은 커졌다.
◆그가 보낸 신호, 담임교사도 엄마도 몰랐다
“조현병이요? 우리 애는 그런 거 아닌데요.”
그날 밤 소동의 풀리지 않던 의문은 사건 후 9개월가량 흐른 8월 우연찮게 풀렸다. 조현병 환자의 존속살인미수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며 찾아온 기자에게 미정은 의아하다는 듯 답했다.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없어요.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6월20일, 현우는 1심 재판에서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징역 3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미정이 제출한 선처탄원서가 감경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동생 현지의 용서는 받지 못한 점이 고려됐다. 정신감정 결과 조현병 진단을 받은 점도 헤아려졌다.
현우의 국선 변호사는 미정에게 이 같은 내용의 판결문을 보내줬지만, 미정은 첫 줄의 형량만 보고 판결문을 덮은 터였다. 3년6개월이 너무 길다는 아득함을 느낄 뿐, 조현병 진단 내용은 보지 못했다. 판결이 나고 두 달 뒤에야 미정은 기자를 통해 현우가 조현병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시간여의 설득 끝에 미정이 고운 원피스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이후 10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미정은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었다.
“현우가 이상한 말을 하던데요. 엄마가 주는 밥을 먹으면 몸이 이상해진다고.” 현우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사춘기가 왔나, 별생각 없이 넘긴 말이었다. 담임교사도 “상담 한 번 받아보세요”라며 가볍게 조언했다.
한 번 물꼬가 트인 기억의 파고는 삽시간에 미정을 덮쳤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생 시절 현우는 종종 속내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다. 미정이 사온 빵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본다거나 잘 끓여준 찌개를 엎기도 했다. 마치 독이라도 든 게 아니냐는 듯. 집밖을 나가기 전 사방을 두리번대기 일쑤였다. “밖에 누구 있어?” 물어도 현우는 대답이 없었다. 가만히 서 허공을 향해 중얼중얼거린다거나 미정을 가만히 보며 “내 엄마 맞아?”라고 묻던 날도 떠올랐다. ‘한참 반항할 때지’ 생각하며 넘긴 미정이었다.
“이제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네요.” 미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특히 현우는 사건 한 달여 전부터 해석되지 않는 행동들을 자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전선을 끊어놔 집안을 정전되게 만들거나 물을 틀어두고 나가는 일도 잦았다. 미정은 누굴 골탕먹이려 저러나 생각하며 가볍게 꾸짖고 넘겼다. 당시 미정은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현우가 보인 행동은 중증 정신질환의 대표적 증상인 ‘망상’이다. 지난 10년간 정신질환 영향으로 벌어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 중 피고인의 망상 증세가 명확히 확인된 경우는 139건으로 65.9%를 차지했다. 정신질환자가 적절히 치료받지 못할 경우, 망상이 심해져 현우의 경우처럼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기자가 돌아간 그 밤, 미정은 밤새도록 조현병 관련 정보를 찾아 읽었다.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행동, 정서적 둔마 등’. 현우의 행동들이 하나둘 설명됐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조기진단과 치료가 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정보였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조현병은 전 세계 인구 중 0.5∼1%가 앓고 있을 정도로 많다. 국내에만 약 25만∼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0∼200명 중 1명꼴로 발병하는 꽤 흔한 질환이란 의미다. 하지만 미정처럼 가족 등 주변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국내에만 약 50만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지만, 치료를 받는 환자는 약 17만명에 불과하다”며 “조현병은 치료받으면 관리가 가능하지만,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조차 질환을 인지하지 못해 위태롭게 지낸다”고 말했다.
◆막을 수 있던 그날의 비극
“조현병이란 건 정말 미친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인 줄 알았어요.” 미정은 현우의 질환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성인이 돼서 아르바이트도 한 현우였다. 하지만 병에 대해 알게 될수록 명징한 징조는 많았다.
2020년 10월 현우는 경북의 한 신병교육대에 들어갔다. 2주여 뒤, 현우는 내쫓기듯 집으로 돌아왔다. 녹음기를 들고 와 이해되지 않는 말을 반복했다고 했다. 현우가 돌아온 저녁 미정은 소고기를 구웠다. 현우는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라고 챙겨주네.”
몇 달 뒤 현우는 말없이 충남 논산 훈련소에 재입대했지만, 이내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매일 밤 우두커니 앉아 볼펜을 딸깍거려요.” 2주 만에 훈련소 앞에서 다시 만난 현우는 팔뚝에 뜻 모를 날짜와 시간을 빼곡히 적어놓은 채 불안에 떨고 있었다. 군에서 괴롭힘당한 순간들이라고 했다. 군은 모든 조사를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해 11월11일 현우는 한층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누구라도 알아챘더라면 그를 돌려세울 수 있었을까. 비극의 결말로 향하는 길이 또 한 번 이어졌다.
‘빼빼로데이’를 기념해 현지와 초콜릿을 나눠먹고 있는데 현우가 왔다. “현우야, 아∼ 하나 먹어봐.” 미정은 동그란 모양에 아몬드가 오돌토돌 박힌 초콜릿을 반 입 베 먹고 나머지 반 입을 현우 입에 넣어줬다. 몇 번 씹은 현우가 갑자기 캑캑거리며 뛰쳐나갔다. “숨을 못 쉬겠어요.” 우연히 녹화 버튼이 눌렸는지 그날 거리를 배회하는 현우의 모습이 담긴 휴대폰 영상이 경찰 조사 중 발견됐다. 영상 속 현우는 목에 가시라도 박힌 듯 고통을 호소했다. 급히 들어간 한 병원에선 정확히 증상을 말하지 못하고 우물대는 현우를 “그냥 쫓아내”라며 차갑게 내보냈다. 거리를 떠돌던 현우는 경찰과 구급대원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을 가보기도 했지만, 당시 짧은 진단 후 나온 병명은 ‘경도 지적장애’였다. 미정은 의아했다. 현우가 유달리 영특한 편은 아니었지만, 지능이 떨어진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미정이 제 배로 낳고 키운 시간이 27년이었다. 다만 병원 소견서엔 “현재도 의심과 피해사고가 지속되고 있으나, 증상을 부인하며 병식(병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약물 치료적 개입과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하겠음”이라고 적혔다.
6개월의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현우의 입원생활은 2개월에 그쳤다. 성급한 퇴원이 화근이었을까. 집에 돌아온 현우가 약을 먹는지 마는지 미정은 알 길이 없었다. 약을 꾸준히 처방받는지 궁금해 병원에도 전화도 해봤지만 “본인 아니면 말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현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여유도 부족했다. 이혼 후 차디찬 겨울에 1000원 한 장 없이 아이 둘 손을 이끌고 거리로 나온 미정에게 일은 곧 생존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미정이 도움을 청할 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악몽 같은 그날 밤은 기어이 찾아왔다.
◆애달픔과 두려움, 충돌하는 마음들
‘현우는 줄곧 신호를 보내고 있었구나.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뒤늦은 애처로움이 미정을 뒤덮었다. 동시에 미정은 무서웠다. 현우는 교도소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독방에 갇혔다. 홀로 갇힌 현우가 제대로 치료받고 나올 리 만무했다. 사고가 다시 안 일어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미정은 시종일관 인내와 체념이 뒤섞인 말을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그래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교도소에서 나오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제 삶이 거기까지인 거겠죠.”
현우에게 필요한 건 교화보다는 치료였다. 2심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사는 안타까운 듯 기자에게 말했다.
“이현우씨 망상 증세는 지금도 개선된 것 같지 않아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하다가 ‘엄마를 해치려 한 게 아니고 동생을 때리려 했다’고 말하는 식이죠.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요.”
미정이 지난달 교도소 면회장에서 만난 현우는 확실히 불안정했다. 안경도 잃어버리고, 앞머리는 길어 눈을 찌를 듯했다. 어떤 날엔 구멍 난 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와 속옷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미정은 눈이 흐리다는 현우에게 안경을 맞추라며 영치금을 보냈다.
9월26일 녹색 수의 차림으로 2심 재판정에 들어선 현우는 여전히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긴 앞머리 사이로 허공을 응시하다 다음 재판 일정을 알리는 판사의 말에 느릿하게 일어설 뿐이었다. 법원보안관의 안내를 받아 피고인석을 일어난 현우는 하얗고 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두어 차례 만난 자신의 변호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서류 더미에서 다음 재판 기록을 뒤적이느라 변호사는 정신이 없었다.
2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미정은 요즘 한 달에 두어번 현우를 찾아간다. 그가 교도소에서 약을 먹긴 하는지, 독방에서 마비가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서면서도 그날 밤 현우의 살기가 잊히지 않아 흠칫하기도 한다. 오늘도 미정의 머릿속은 이해와 후회 사이를 바삐 오간다.
“이번 일을 겪고 ‘왜 하필 나야’라는 말보다 공허한 게 없더라고요. 살다 보면 누구에게라도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괜찮았을까요.”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부모를 죽이려 한 이들은 누구인가.
세계일보는 27일 최근 10년(2014~2023년)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년간 벌어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386건(1심 기준) 중 54.7%(211건)는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었다. 재판부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거나, 질환과 범행의 관련성을 분명히 언급한 경우다. 망상에 의해 엄마를 죽이려 한 이현우(가명·27)씨와 같은 사건이 해마다 최소 20여건씩 발생한 셈이다. 국내 언론에서 10년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을 전수 분석해 정신질환과 관계를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의료진과 전문가 84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5개 사건 가해자 5명과 피해자 3명, 사건 주변인 5명을 직접 만났다. 사건을 수사해 재판에 넘긴 경찰과 검찰 7명, 피고인의 변호사 16명과 재판을 맡았던 판사도 취재했다.
사건의 공통점은 크게 3가지였다. 이 고리를 끊어내면 비슷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타나는 일을 막기 위해, 이들의 사연을 전한다.
첫 번째 공통점은 피고인의 정신질환 치료가 중단됐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자는 다른 환자와 다르게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없어 약물 복용 등 치료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10일 오전 11시15분 울산지법 301호 대법정에서 부친을 존속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윤희(가명·27)씨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올 1월12일 울산에서 조현병을 앓던 김씨는 도청기가 설치돼 있다며 집 안 거실에 있던 의자를 부쉈다. 이를 본 김씨 부친이 ‘이런 식으로 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정신을 차리라’는 취지로 나무랐다. 아빠가 가짜라고 생각해 온 김씨는 이젠 자신을 병원에 가두려 한다고 생각하곤 부친을 흉기로 찔렀다.
김씨의 국선 변호사는 “피고인이 상당 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었으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내면에서 정말 ‘가짜 아빠’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1심 사건 211건 가운데 35.6%(75건)에서 피고인은 ‘단약(약물복용 중단)’ 중 범행을 저질렀다. 약을 복용하던 중 벌어진 사건은 12건(5.7%)에 불과했다. 약 복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123건을 제외하면, 단약 중 발생한 사건의 비율은 84.3%로 훨씬 커진다.
대부분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약을 먹으면 망상 증상이 완화된다. 환청이나 환시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14년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조현병이 폭력성과 연관될 때는 오직 치료가 결여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망상은 순식간에 커졌다. 김씨와 같이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을 가짜라고 여기는 증상을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됐다고 믿는다.
1심 판결문 211건을 보면 80.1%(169건)의 사건에서 재판부는 정신질환에 의한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부모의 모습을 한 식인종이나 외계인, 악마로 보이거나, 부모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김씨 변호사는 재판부에 ‘법리오해’를 주장했다. 그는 “피고인은 2022년부터 아빠가 가짜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며 “범행 당시 피해자를 자신의 법률상 존속(혈족)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아빠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존속살해가 아닌 살인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존속인 점은 양형에서 가중요소로 간주한다.
변호인의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피고인석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따금 교도소에서 써 온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들춰 봤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입을 열었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사회적으로 격리하길 원한다고 했어요. 인정 못 하겠어요.” 김씨는 ‘부모님’을 언급했다. 여전히 아빠가 아닌 가짜를 죽였다고 믿는 듯 보였다.
두 번째 공통점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조차 치료로 병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지 못한다. 이 탓에 방치하다 증상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입원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7월 강원도 강릉 한 다세대주택에서 함께 살던 친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정병태(가명·26)씨는 ‘파괴적기분조절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선 지능’ 등으로 병원에서 입원 및 외래 진료를 받았지만 사건 발생 약 1년 전부터 약을 끊었다.
같은 건물에 정씨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이웃들은 정씨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이 벌어진 마을 이장으로 동네 사정에 밝은 한 60대 남성은 “(정씨 부친이) 내 고등학교 후배인데, (정씨를) 거의 포기하면서 내놓다시피 했다”며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고 (정씨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피해자와 친구로 지내왔다는 앞집 이웃 김유동(76)씨도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평소에 손자가 할머니를 때리고 난동을 피워도 이웃에게 알려질까 걱정만 하더니 이 사달이 났네. 할머니가 바보같이 애만 너무 좋아했어.”
이씨와 같이 범행 이전 자살시도나 난폭한 행동 등의 ‘전조증상’을 보인 경우는 211건의 판결문 중 절반(46.9%·99건)이나 됐다.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정신병원 입원이 필요하지만, 전조증상을 보인 이들 중 64.6%(64건)만 입원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병원에서 진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경우도 10건 중 1건꼴(10.4%·22건)로 나타났다. 증상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도록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다.
2019년 6월 울산에서 엄마를 살해한 박정빈(가명·27)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씨는 범행 이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다. 당시 경찰에 “엄마를 찔러 피가 나니 구급차를 불러달라”며 “엄마가 저를 죽이려고 약을 먹이고 이상한 짓을 한다.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그는 “(두려움에) 죽고 싶어서 (자신의) 목을 찔렀다”고도 했다. 피 묻은 흉기를 든 채 경찰에게 문을 열어준 그의 목에는 자해로 추정되는 베인 상처가 있었다.
박씨는 사건 이후에야 국립법무병원 정신감정을 통해 조현병을 진단받았다. 앞서 박씨는 2017년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4급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으로 분류되면서 병무청으로부터 정신과적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족은 이를 간과했다. 진단을 받으려면 한 달간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는데, 왠지 께름칙했다.
박씨 부친은 재판부에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였다”고 했다. 그는 “아들은 어릴 때 항상 밝고 부모님 말 잘 듣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며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말도 잘 하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당시는 단지 공부하기 싫어 투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시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정신질환 자녀를 나이 든 부모가 수십 년간 돌보다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11건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230명이다. 이들 대다수는 피고인과 ‘동거’(84.4%·194명)하던 ‘60대’(32.6%·75명) ‘엄마’(53%·122명)였고, ‘집(집앞·87%·200명)’에서 변을 당했다.
이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존속살해 범죄 경향성과도 일치한다.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해외 연구를 보면, 존속살해 살인범의 60~90%가 정신질환이 있으며 이들은 어머니를 주로 살해하고, 가족과 동거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일부 연구에서는 이들 중 62.5%는 범행 전 단약을 한 상태에서 약복용과 관련된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70대 이상 고령의 피해자도 36.1%(83명)에 달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 정신질환이 주로 20대 전후를 기점으로 발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돌봄 기간은 상당히 길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전북 전주에선 24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은 아들이 81세 어머니를 살해했다. 그는 약 부작용으로 목이 돌아가는 ‘사경’ 증세가 발생하자 약 복용을 권하는 어머니를 원망해 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망상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한집에서 지켜보며 치료를 권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계속 약을 먹지 않자 어머니는 “왜 약을 먹지 않고 모아 뒀냐”고 잔소리를 했고, 이에 반감을 가진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백종우 교수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중증정신질환의 부담을 고령의 부모가 모두 떠받치고 있는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발병에서 치료까지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부가 나온다. 김성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런 불행한 사고들은 피고인이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의 정신건강 정책은 자타해 위험 발생 이후의 응급입원 강화에 비중을 둬 왔는데, 앞으로는 더 이른 시기에 당사자와 가족을 부드럽고 정중하게 조력하는 방식의 조기 개입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더 좋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100명 중 1명 중증 정신질환… 우린 이웃이 될 수 있을까 (2) | 2024.11.05 |
---|---|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장기입원자 ‘집’이 된 정신병원… 급성기 환자는 갈 곳 없어 (7) | 2024.11.05 |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강제로 끌려가” “살리려 입원”… 가족 간 비수 꽂는 ‘보호의무’ (1) | 2024.10.30 |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정신질환자 보호관찰 유명무실… 출소 후 관리 가족 몫 (0) | 2024.10.30 |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방치된 디지털 약자… 노트북·배달앱 있어도 ‘무용지물’ (0) | 2023.12.27 |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메타버스서 수다 떨고 업무 배우는 日 기업 (0) | 2023.12.27 |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사무실서 종일 SNS로 소통… 혼자가 아닌데 커지는 쓸쓸함 (0) | 2023.12.27 |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성인 10명 중 6명 “오프라인 소통 선호”… 극단선택 암시 게시물로 고독 표출 늘어 (0) | 202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