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치료 없이 돌아온 가해자
“징역 3년6개월의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다.”
17일 수원고등법원 801호 법정. 아내 정명주(60대·가명)씨와 함께 방청석에 앉아 있던 강태진(가명)씨의 아버지 강용석(60대·가명)씨는 판사의 선고에 침통한 표정이었다.
‘감형을 원한 게 아닌데….’
용석씨가 충혈된 눈으로 검사를 한참 주시했다. 명주씨는 말 없이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를 훔쳤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감형을 기뻐할 텐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용석씨와 명주씨는 이날 선고에 앞서 치료감호를 청구해 달라며 2심 재판부와 검사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치료감호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교도소에서 약물치료가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형기 동안 강제로라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감호를 청구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공판 내내 ‘치료감호’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태진씨는 2014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데, 약을 잘 먹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무기력해지고 잠이 쏟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명주씨가 타이르면 마지못해 약을 먹다가도 환청 증상이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약을 끊는 일이 10년 동안 반복됐다. 약을 끊은 지 한 달 무렵인 5월15일 새벽, 태진씨는 느닷없이 칼로 명주씨를 찔렀다. 그날 명주씨는 아들이 휘두른 칼에 목숨을 잃을 뻔했고, 태진씨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명주씨는 다친 자신보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들이 항상 더 걱정이다. 태진씨는 면회할 때마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상한 말을 했고, 환청이 들린다고 했다. 약도 전혀 먹지 않고 있었다. “약 색깔이 바뀌었다”거나 “엄마가 약으로 날 죽이려고 한다”고 했다.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태진씨의 경우처럼 자녀가 부모를 해한 사건에서 정신병력 진단이 나와도 법원이나 검찰은 치료감호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28일 세계일보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이 중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1심 기준)을 살펴본 결과 상급심까지 치료감호가 청구된 경우는 59.7%(126건)에 그쳤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치료받을 여건이 안 된다면 국가가 보호하고 치료할 필요성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치료감호는 심신장애 상태, 마약류·알코올 등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 상태 등에서 범죄행위를 한 경우, 검사가 청구해 법원이 보호·치료를 명령하는 조치다. 치료감호 대상자는 교도소가 아닌 국립법무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을 받게 된다. 망상 등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의료진이 수용자를 관리·감독하며 약물 복용을 확인해 강제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추가 조처를 할 법적 권한이 있다.
반면 교도소에서는 수감자가 약을 먹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 의사가 아닌 교도관이 이들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악화한 수감자는 다른 수감자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태진씨 역시 망상이 심해지면서 다른 수감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한 번은 용석씨와 명주씨가 면회를 신청하고 교도소에 찾아갔는데, 태진씨는 독방에서 징계받고 있어 만날 수 없었다. 수감 이후 지금까지 그가 받은 징계는 가족이 확인한 것만 최소 2번이다.
또 교도소는 일부 정신질환 약물 반입이 금지돼 치료에 제약이 있다. 명주씨와 용석씨는 경찰 입회 아래 정신과 병원에서 아들이 먹던 약을 대신 처방받아 넣어주려 했는데, 일부 향정신성 약은 반입이 되질 않았다.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립법무병원에서 근무했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치료 없이 교도소만 다녀오면 정신병적 증상은 이전과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료감호 청구, 솔직히 귀찮다”
치료감호가 내려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검사가 이를 청구하지 않아서다. 현행법상 재판부가 검사에게 치료감호를 청구 요청할 순 있지만, 검사의 청구 없이 직권으로 명령할 수는 없다.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 똑 부러진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태진씨 사건의 치료감호 불청구 사유에 대해 2심 공판검사는 “피해자가 치료감호를 요구했다고 하지만, 어차피 다 (피고인의) 가족”이라며 “통상적인 범죄 피해자라고 보기 어려워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조처를 요청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검사는 “치료는 앞으로 받으면 되는 것이고 치료감호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자의 심신미약 인정에 대해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검사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인 이유로 꼽힌다. 수도권 한 지방검찰청 소속 공판검사는 “솔직히 귀찮다”며 “치료감호 청구는 청구 전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오래 걸리고 심신미약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어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국립법무병원이 교도소보다 나을 거란 인식 탓에 치료감호 명령이 마치 정신질환을 이유로 피고인을 봐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가 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치료감호를 청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상급심에서라도 치료감호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판단은 잘 바뀌지 않는다.
최근 10년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1심 사건 211건 중 항소심이 있는 146건을 살펴본 결과, 원심에서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가 2심에서 청구한 경우는 93건 중 14건으로, 비율로 따지면 15.1%다. 법률심인 3심에서 청구된 경우는 없다.
조현병 약을 먹지 않다가 망상에 의해 모친을 살해한 피고인 변호를 맡았던 이종진 법무법인 트리니티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치료감호 청구를 요청했음에도, 검사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심에서도 치료감호 명령을 주장했지만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 자체가 치료를 받으라는 부모와 다투다 벌어진 사건인데,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 것은 법원의 명령으로 강제 치료가 가능한 기회를 날리게 되는 것”이라며 “치료감호를 받으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다른 수감자나 출소 후 가족의 안전도 보호될 수 있는데, 국가가 범죄 예방을 위한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범죄 전체를 놓고 봐도 검찰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이다. ‘2023년 검찰연감’을 보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건수는 2020년 65건, 2021년 78건, 2022년 93건에 그쳤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신장애’가 있는 전체 범죄자는 연간 5000∼9000명 수준이다.
◆치료 뒷받침할 시설도 부족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감호 명령을 검사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것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치료감호가 적극적으로 청구되지 않는 까닭으로 박주영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은 ‘자리 부족’을 꼽았다. 그는 “형사사법 종사자들의 치료감호나 치료 사법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이견도 큰 요인”이라면서도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 사건이 아니면 검찰이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고, 법원도 치료감호 명령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국립법무병원 자리가 부족한 이유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교도소에서도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환자의 회복을 돕는 양질의 치료를 위해서는 치료감호소 인력의 적극적 확충이 있어야 한다”며 “당장 인력 확충이 어렵다면 교도소 내 위탁 의사를 늘리고 필요한 경우 교도소에서 일반 병원으로 연계전환 하는 등 교도소에서도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정신질환이 있는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인식 탓에 공감대가 모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재범 방지를 위해서라도 국립법무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이뤄지는 정신질환자 치료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주씨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교도소 내 치료다. 검사의 치료감호 불청구는 상고 이유에 해당하지 않아 더 이상 법원의 판단은 기대하기 어렵다.
2심 선고 이후 명주씨네 시간은 멈춰 있다. 명주씨는 그리운 아들의 옷을 방문에 걸어놓고 냄새를 맡는다. 최근 혼잣말도 늘었다.
“치료받고 나와라, 제발 낫고 돌아온나, 낫고 오면 우리 재미있게 살자. 너를 위해서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나는 괜찮은데 어떻게 하면 좋니, 어떻게 하면 좋니.”
치료감호 받아도 60% 다시 병원 입원
“관찰관 확충해 日처럼 적극 관리해야”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출소 이후 치료 관리가 사실상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세계일보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이 중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1심 기준)을 살펴본 결과 상급심에서까지 보호관찰이 청구되지 않은 경우가 82.5%(174건)에 달했다.
보호관찰은 피고인의 재범 방지를 위해 보호관찰관이 치료 기록을 확인하거나 위험한 물건 소지 여부를 감시하는 등 관리·감독하는 제도다. 징역 형기를 마친 출소자가 지속해서 치료받도록 법원이 명령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원이 보호관찰을 내리지 않는다면 피고인에 대한 치료관리의 책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된다.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해자인 가족이 다시 피고인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2021년 인천에서는 한 남성이 과거 중증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범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도 출소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다가 엄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이전에도 엄마를 폭행해 특수존속상해죄와 존속상해죄로 불구속기소된 상태였다. 그는 피해망상이 심해진 상태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함께 살던 엄마를 때려 숨지게 했다.
가족들은 치료관리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피고인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법무부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치료감호가 종료된 수용자의 60%는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가족이 피고인을 돌볼 수 없다고 판단돼 정신병원에 행정입원된 비율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신질환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경우 출소자의 치료를 지역사회에서 보호관찰관이 적극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범행에 이른 만큼 가족에게만 맡겨둘 순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영렬 국립법무병원장은 “일본은 출소한 정신질환자를 가족에게 맡겨 놨다가 효과가 없어 바꾼 것인데, 한국도 가족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보호관찰관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호관찰관이 부족한 점은 법원이 보호관찰을 명령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관찰이 내려진 사건은 17만7540건을 기록했다. 보호관찰관(1861명)이 1인당 담당하는 사건은 95건에 달했다.
나아가 보호관찰관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원의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지더라도 보호관찰관이 관리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70대 정모씨는 아들을 집에 두고 외출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들은 5개월 넘게 약을 먹지 않고 있다. 기자가 만난 정씨는 약을 먹지 않아 망상 증상이 시달리던 아들이 흉기를 휘두른 그날의 악몽이 재연될까 불안해 했다. 법원은 징역형과 함께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 및 상담을 받으라며 보호관찰을 명령했지만, 나이 든 정씨가 이를 지키지 않는 40대 아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법무부는 보호관찰관 인력이 부족한 건 맞지만 출소 후 보호관찰에 대해선 최우선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기적 진료 및 상담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 매월 진료확인서를 제출받는다”며 “약물 복용을 강제할 필요가 있을 땐 법원에 특별준수사항 추가변경을 신청해 정기적으로 복용 여부를 검사한다”고 밝혔다.
윤준호·김나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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