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술을 끼고 살았다. 알코올중독자가 됐고 이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원래 서울 출신이지만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장애가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다. 이십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충청도에 정착했고, 중독의 삶을 벗어던지기 위해 복지센터를 찾았다. 삶의 희망을 이어가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다. 고마웠다. 누군가 나를 도와준다는 게 마냥 좋았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술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6개월 정도 술을 끊었다. 매일 술을 마시던 과거의 나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변화였다. 집에 혼자 있으면 술의 유혹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되는 센터에 일부러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책을 읽고 차를 마셨다. 평일 낮엔 그렇게 술을 참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또다시 술의 유혹이 시작됐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움이란 감정을 이기기 쉽지 않았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한 채 집에 있는데 사회복지사가 찾아왔다. 연락이 안 돼서 왔다고 했다. 죄송하고 민망했다. 처음으로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이렇게 중독이 심해질 때면 다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정도를 단주했지만, 다시 술을 마시기를 반복했다.”
고독사 취재 과정에서 사회복지사 A씨로부터 전해 들은 담당 복지 대상자의 삶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내용이다. 알코올중독과 싸우던 그는 결국 60년 남짓의 삶을 외롭게 마감했다.
고독사한 이들은 보통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단정하기 쉽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이들은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놓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고립된 개인이 사회와 연결되도록 도와줄 지방자치단체 등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씨 역시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고인에 대해 “변화의 의지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대부분의) 복지 대상자들이 사회복지사와 자주 접촉하며 감정을 나누다 보면 삶에 대한 변화의 의지가 생긴다”며 “다만 사회복지사가 맡아야 하는 대상자가 많다 보니 각각의 개인에게 에너지를 충분히 쏟기가 어려운 건 현실적인 한계”라고 했다.
고독사 현장을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41) 대표도 자주 현장에서 고인이 지녔던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흔적을 발견한다고 했다. 자신의 재정 상황을 분석해둔 메모라든지 사업계획서 등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현장을 청소하다 보면 열 번 중 여덟아홉 번은 삶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 나온다”며 “이들은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단지 이를 실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번은 배달업에 종사했던 고인의 집을 청소했는데, 새롭게 장비를 구매하고 이에 대해 공부했던 흔적을 본 게 기억에 남는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고립된 이들을 사회로 끌어오기 위해 지역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동네에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음식을 공유할 공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독사 문제를 생각할 때 ‘죽음’을 막는 데 골몰하기보단 ‘고립’에 초점을 맞춰 고립된 이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와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지역사회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러서 쉬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 즉 익명의 오픈 커뮤니티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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