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명.’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OECD 회원국 평균치(2019년 기준 1.61명)와 비교해봐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가파른 저출산·고령화 속도다. 2006년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한 뒤 수백조원의 재원을 투입했지만, 이 기간 합계출산율은 1.13명에서 0.81명으로 낮아지고 출생아 수는 45만명에서 26만명으로 줄어드는 등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연금·복지재정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이에 따른 세대 간 갈등 요소도 곳곳에 포진돼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인한 비용만 늘고 대책 효과는 미진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대책을 복지 문제가 아닌 사회·경제적 구조 개혁 차원으로 전환하고, 저출산 완화 정책과 함께 ‘적응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19일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2020∼2070년’에 따르면, 2070년 출생아 수는 2020년(27만5000명)보다 8만명 가까이 줄어든 19만6000명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출산율 등 인구변동요인별 중위(중간 수준) 추계 기준으로, 저위 추계 시 출생아 수는 12만명으로까지 줄어든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면서 총인구는 2020년 5184만명에서 2070년 3766만명(중위 추계) 수준으로, 생산연령인구는 1737만명(2020년 3738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노동공급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에 형성된 교육·국방·산업 등 사회·경제 시스템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15년간 380조원 투입… “근본적 변화 필요”

여태껏 정부가 이 문제를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투입한 예산은 380조2000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예산 투입에 5년마다 새로운 대책을 추진했음에도 출산율 감소를 막아내지 못한 만큼,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인구 전문가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다스리기에는 굉장히 제한적인 효과밖에 없다”면서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의제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출산유인책과 같은 일시적 현금성 지원이나 복지서비스보다는 교육·주택·산업·고용 등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구조개혁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20년 30대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저출산인식조사에서 정부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 정책에 관해 묻자 절반 가까이(45.4%)가 ‘출산 장려 위주의 정책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위주의 정책으로 느낀다’는 응답은 20.9%에 불과했다. 전 교수는 “복지에서 경제로, 출산에서 생애 전체로의 접근 방식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당연히 구조개혁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4차 계획, 추상적 패러다임 아래 세부 과제 망라”

2020년 말 마련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도 방향의 변화는 보여줬다. 4차 기본계획은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비전 아래 개인의 삶의 질 향상 등의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 일자리·주거 등 저출산을 불러일으키는 사회·경제적 요인에 대한 세부 과제가 부재하고, 가족지원 예산 등도 미흡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선권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지난 5월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제4차 기본계획은) OECD 주요국의 보편적인 정책 방향인 가족지원 확대, 최근의 국제적인 합계출산율 동향에서 분명해지고 있는 경제적 불확실성 요인에 대한 대책 등과는 괴리돼 있다”며 “‘모든 세대의 삶의 질 제고’라는 추상적 패러다임하에서 부처별 관련 세부 과제들을 망라해 제시하는 방식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저출산 정책은 핵심과제에 집중하는 동시에 정책 수단의 합목적성과 관리 효과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며 “저출산 대응 재정사업 추진 시 수혜자 입장에서 정책의 효용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저출산·고령화 ‘적응 정책’도 병행돼야

저출산 현상을 완화하는 대책과 동시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우리 사회가 잘 대응하도록 하는 ‘적응 정책’이 병행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단기간 내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변화하는 인구구조에 따라 파생될 혼란들을 미리 방지하고,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지 않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책 변화를 주도할 거버넌스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미래의 이야기를 공무원들이 하기 힘들다. 아직 안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예산을 배정받을 수도 없고, 그 사건들은 대부분 갈등적 요소가 많다”면서 “그런 것을 하게끔 하는 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인구정책)기본법이기도 하고 거버넌스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대통령실에서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지방소멸은 저출산의 결과인 동시에 인구 감소를 심화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청년층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소멸위험지역이 증가하는 가운데 수도권 역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하기 때문이다.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등 장기적인 국가균형발전 전략이 저출산 위기 극복의 첫 단추가 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19일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센터장에 따르면 2022년 3월 현재 전국 228개의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113개(49.6%)로 나타났다. 소멸위험지역은 20~39세 여성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0.5 미만) 지역을 말한다. 소멸위험지역은 2005년 33곳에 불과했지만 2015년 80곳으로 증가한 뒤 2020년 102곳으로 집계돼 100곳을 넘었다.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고령인구의 5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소멸고위험지역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20년 소멸고위험지역은 23곳이었는데 지난 3월 현재 45곳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과거 제조업이 활발했던 통영시, 군산시 등은 물론 포천시, 동두천시 등 수도권 외곽도시도 새롭게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되는 등 범위가 점점 확산하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초저출산 현상(합계출산율 0.98명)이 지속될 경우 2047년부터 전국 모든 시군구가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실태I(지역)’ 보고서를 통해 2047년 158개 시군구는 인구가 감소하지만 수도권 집중화의 경향으로 경기도 내 20곳을 포함한 71개 시군구의 인구는 오히려 증가해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권을 향한 청년층의 이주는 수도권의 활력을 높이기보다는 인구를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높은 인구밀도가 사회적 경쟁을 심화시켜 만혼, 저출산 현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임보영 감사원 청구조사4과장은 ‘우리나라 초저출산과 지역불균형의 관계에 관한 실태분석’을 통해 “청년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을 선호해 수도권으로 이동한다”면서 “초저출산과 수도권 인구이동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의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를 육성해 심각한 지역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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