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에 재정의 역할이 컸고, 향후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을 비축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3월 공개된 한국 연례협의 결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코로나19 위기를 ‘인상적으로 극복했다’(recovered impressively)면서 재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IMF의 분석대로 재정은 방역지원금, 손실보전금 등 다양한 공적 이전을 통해 코로나19 위기를 경감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는 코로나19 위기 이전인 2019년 기준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7.6%에 불과할 정도로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재정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문재인정부가 7차례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국가채무가 급증한 데다 윤석열정부 역시 지난달 사상 최대(62조원) 추경 편성에도 국채상환에는 7조5000억원 정도만 쓰면서 올해 말 국가채무는 1068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전 정부보다 더욱 엄격하게 재정을 관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병사 월급 인상처럼 포퓰리즘성(대중영합성) 국정 과제 이행에만 209조원가량이 들어 난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제2의 코로나19 발생,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복지재원 마련 등 미래에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한국 국가신용도 평가에 있어 재정건전성이 ‘방패’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재정준칙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 2000만원 임박… 문재인정부 때 급증

국회예산정책처가 제공하는 국가채무시계를 보면 7일 현재 국가채무는 1024조773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주민등록인구(5161만1000명) 기준으로 1인당 국가채무는 1985만5828원을 기록했다. 올해 말 국가채무 예상액이 1068조8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초에 약 245만원씩 국가채무가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채무의 이런 증가세는 문재인정부 들어 본격화됐다. 2017년 일자리 창출 등을 목표로 11조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됐고 2018년과 2019년에도 청년일자리 대책, 미세먼지 대응 등을 위해 각각 3조8000억원, 5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됐다. 박근혜정부 5년간 39조9000억원의 추경이 편성된 것을 감안하면 문재인정부가 코로나19 발생 전부터 재정에 의존해 공약 추진에 나섰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국가채무는 급격히 불어났다. 2018년 680조5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19년 723조2000억원, 2020년 846조6000억원, 2021년 965조3000억원으로 매년 앞자리 숫자가 바뀌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올해도 1차 추경(16조9000억원), 2차 추경(62조원)이 차례로 편성되면서 국가채무는 1068조8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선진국과 비교해 절대적인 기준에서 과도한 수준은 아니다. IMF가 지난해 10월 펴낸 재정점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51.3%)은 주요 35개국 평균인 121.6%와 비교해 낮았다. 이탈리아(154%)와 미국(133%), 스페인(120%), 영국(107%) 등이 100%를 넘긴 것을 고려하면 아직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닌 셈이다.

문제는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8년 35.9%에 불과했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에 58.1%로 급증한다. 특히 한국은 달러 등 기축통화를 쓰지 않는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약점’도 안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예산정책처 토론회에서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의 경우 기축통화국들에 비해 국채 수요가 훨씬 적어 기축통화국에 비해 더 낮은 국가채무 수준에 도달했을 때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IMF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23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 비율은 평균 80.4%였고, 나머지 14개 비기축통화국은 41.8%였는데 한국은 41.9%였다. 비기축통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국가채무 수준이 결코 낮지 않은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정부채무 기준 2020∼2026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증가폭은 18.8%로 OECD 비기축통화국 17개국 중 가장 높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재정준칙 논의 시급

주요국들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늘어난 부채를 줄이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영국은 2020년 GDP 대비 13.3%였던 재정적자를 2023년 1.7%로 낮춘 뒤 2025년에는 균형재정을 회복하는 중기 재정운용 방향을 지난해 제시했고, 독일도 재정수지 적자 상한을 GDP 대비 0.5%로 설정하고 2023년부터 채무제한법 규정을 재적용해 국가채무를 점진적으로 감축시키기로 했다.

제2의 코로나19 등 예상치 못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장기적으로도 재정 압박이 심하다는 점에서 재정건전성 논의는 시급한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문재인정부가 설정한 한국형 재정준칙이 현실성이 없다면서 좀 더 엄격한 수준으로 책임 있는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말하는데, 국회 논의가 실종되면서 문재인정부에서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새 정부 역시 올해 53조3000억원의 역대급 초과 세수 전망에도 국채 상환에는 7조5000억원 정도만 사용하는 데 그쳤다. 여기에 향후 5년간 병장 월급 205만원 인상, 0∼11개월 영아 둔 부모에게 매달 100만원 지급 등 각종 현금 지급 위주의 복지 공약이 예정된 점도 향후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제라도 포퓰리즘 대선 공약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복지지출 증가세를 유지하고, 경기 회복을 제약하지 않는 선에서 최적의 재정준칙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GDP 대비 채무비율이 100%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한국은 채무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기존에 정부가 제시한 2025년 적용 방안 말고 좀 더 수용 가능하고 엄격한 재정준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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