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원전이냐 태양광이냐는 보수·진보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 됐고, 여기에 따라 언론과 여론,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집단도 나뉜다. 에너지가 이념의 틀에 갇힌 상태에서는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세우기 어렵다. 탈원전 정책 기조가 5년 만에 단명한 게 그 증거다. 에너지 정책의 ‘탈정치화’가 시급한 이유다. 세계일보는 에너지 분야의 대척점에서 주장을 펼쳐 온 전문가들로부터 상대편에 묻고 싶은 질문을 받아 릴레이식으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지난 5년간 각각 보수와 진보·중도 언론에서 인용 순위 1∼2위를 차지한 전문가들이다. <세계일보 4월18일자 8면 참조>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그 벌어진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12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문재인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그대로 추진할 경우 2050년까지 매년 4∼6%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많이 늘리면 전기요금 오른다’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전기요금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국제사회 흐름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얘기다. 전기요금은 어떻게든 오를 수밖에 없다. 국제 원자재난으로 우라늄 가격도 올랐고, 전선용 구리 가격도 올랐다. 원전의 전력 공급 비중이 70%에 달하는 프랑스에서도 지난 1월 전기위원회(CRE)가 주택용 전기요금 45% 인상을 권고했다.

전기요금이 싸냐, 비싸냐가 초점이 돼선 안 된다. 전기요금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수요조절 기능이 있다. 그걸 죽이지 않아야 한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개인 수준에선 절약을 할 것이고, 산업체는 고효율 기술에 투자를 할 것이다. 전기요금을 무조건 낮게 가져간다면, 그 혜택은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에게 집중된다. 많이 쓰면 많이 할인받기 때문에 역진성 문제가 생긴다. 원전을 이념적으로 접근해 ‘원전으로 요금 할인해 준다’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

(석 전문위원의 질문)“재생에너지가 늘면 대형 원전은 출력감발(발전소의 출력을 낮추는 것)을 해야 한다. 영국은 2020년 재생에너지가 40%에 육박해 대형 원전을 5개월 동안 출력감발해 7300만파운드(약 1200억원) 손실이 났다. 재생에너지가 늘면 원전도 좌초자산이 될 위험이 큰데 이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원전의 출력감발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일조량, 풍속에 따라 전력 생산이 달라지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서 전체 전기 공급이 수요보다 늘면 정전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원전의 출력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의해 초래되는 교란은 원인 제공자인 재생에너지가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보하든, 어떻게 하든 스스로 단점을 극복하고 (전력망에) 들어와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20∼30%까지 늘리려거든 ESS 쪽 연구를 해서 싸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재생에너지부터 늘리고 원전은 꺼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맞는다. 이게 내 대답이자 질문이다.

(이 정책위원 질문)“사용후핵연료나 주민 수용성, 원전 비리 등에 대해서 문제없는 것처럼 하지 말고 핵산업계 스스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가 얽혀 있는 상태로 원전을 짓겠다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의 가장 큰 화두는 안전성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쟁점은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이다. 수명연장을 계속했을 때 과연 최신 기술을 반영하고서 진행하겠다는 것인가?”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원전의 정량적인 안전 목표는 ‘원전 건설·운영으로 인한 위험도(risk) 증가를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위험도의 1000분의 1로 한다’는 것이다. 즉 교통사고나 범죄, 사건사고로 인해 사망할 확률의 1000분의 1로 하겠다는 것이다. 원전이 늘어나면 총량적인 안전기준을 넘어설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규로 짓는 원전은 위험도가 기존 원전의 10분의 1이 되도록 더 강화한다. ‘원전 수명연장 시 최신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에는 오해가 있다. 물론 기존 원전의 위험도를 신규 원전 수준으로 낮출 수 있으면 좋겠지만, 위험도의 총량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사회 전체적인 리스크는 동일하다. 선진국도 이런 식으로 계속 운전을 하고, 이미 입증된 기술이다. 이미 안전한 것을 더 안전하게 하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위험한 것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쓰는 게 정상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재생에너지와 핵발전, 어떤 게 중심이 될 건지에 관한 충돌은 앞으로 격화할 거라고 본다. 에너지 전환을 하게 된 것은 과거 환경파괴나 핵발전으로 문제가 생겨서다.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대규모 발전은 없어지는 게 맞다. 사실 역설적으로 원자력계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주장하는 것도 ‘미래 에너지는 분산형으로 바뀐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큰 틀에서 보면 전력산업은 소규모 분산형으로 가는 게 대세다. SMR도 그런 전략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기존) 핵산업도 달라질 상황에 적응해야 하지 않겠나.

 

인수위 탄소중립 전략 짜는 김상협 상임기획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후·에너지팀에서 탄소중립 전략을 짜고 있는 김상협 상임기획위원(팀장·사진)이 “화석연료는 좌초자산이다. 탈석탄 기조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더 줄이는 방안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김 팀장과 최흥진 서울시립대 교수 등 기후·에너지팀과 자문그룹은 18일 오후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김 팀장은 회의를 마친 뒤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화석연료는 어떻게 조기 퇴출할 것인가가 고민거리”라며 “(새 정부에서) 원전을 늘리는데 화석연료를 계속 가져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기존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보다 화석연료를 추가로 감축할 계획도 있느냐는 물음에는 “지금 바로 화석연료를 더 줄인다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재생에너지에 집착하다 에너지 수급불안을 겪게 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가격변동이 심한 것은 화석연료”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믹스를 잘 가져가 이런 불안요소를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NDC 하향 가능성’이 흘러나오는 것을 두고는 “그런 말은 한 적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원자력계는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정책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해 왔다. 제20대 인수위는 반대로 환경부문 시민사회단체 인사 없이 꾸려져 에너지 정책이 일방통행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 팀장은 “시민사회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설령 시민단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보완해 가면서 정책을 만들 것”이라며 “에너지위원회 같은 곳은 인원이 한정돼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의견을 반영할 시스템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감투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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