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은 흔히 ‘코끼리 옮기기’로 불린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덩치가 큰 데다 다양한 구조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수식을 푸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 연금제도는 제도 목적인 ‘노후 소득보장’에 있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재정안정성’은 한참 전부터 ‘빨간불’이 켜졌지만 방치됐다.

육중한 코끼리를 옮기려면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야 하지만 개혁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역대 정부도 모두 연금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개혁’ 수준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배경이다.

윤석열정부는 공적연금 개혁을 국정과제로 내걸고 ‘시대적 과제’인 연금개혁을 향한 첫발을 간신히 뗐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국민이 명령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2023년도 5차 재정 계산에도 본격 착수했다. 내년 3월까지 재정 추계 결과를 발표하고 내년 7월까지 연금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연금개혁 방식에는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이 있는데, 정부는 모수개혁을 우선 추진할 계획이다. 모수개혁은 국민연금 제도의 틀은 바꾸지 않고 보험료율(월 소득의 9%)과 소득대체율(40%), 의무가입기간, 수급개시 연령(올해 기준 63세) 등을 조정하는 개혁 방식이다. 쉽게 말해 ‘더 내고 더 받을지’, ‘덜 내고 덜 받을지’ 등을 정하는 게 모수개혁의 핵심이다.

◆“60년 후엔 소득 30% 내고, 20%만 받을 수도”

윤석열정부에서 연금개혁은 ‘더 내고 덜 받는’ 재정안정론의 관점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다. 지금의 연금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적연금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사학·군인·별정우체국직원 등 특수직역연금으로 구성되는데, 국회예산정책처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을 보면 국민연금은 33년 후인 2055년이면 기금이 소진되고 2090년에는 적자가 17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연금은 2020년 이미 적자가 2조원이 넘었고, 군인연금도 같은 해 1조7000억원 적자였다. 사학연금은 2033년 적자로 전환돼 2048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국민연금의 기금 소진 시기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앞당겨지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도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30년 전체 인구의 20%를 넘고, 2070년에는 절반에 가까운 46.4%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인 인구는 늘어나는데 생산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재정 계산에서는 현재의 보험료율을 유지한다면 기금 소진 이후 2088년까지 누적적자가 1경7000조원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은 통화에서 “60∼70년 후면 가입자 1명이 수급자 1.4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기금이 고갈되면 노인들에게 평균 20%의 급여율만 보장한다고 해도 가입자는 소득의 약 30%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며 “미래 세대에게 30%를 내고 20%를 받으라고 하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대 간 약속’인 연금제도를 미래세대가 믿지 못하면 제도는 지속할 수 없다.

◆평균 57만원으로 노후 보장할 수 있나

그렇다면 재원이 모자란 만큼 연금이 노후 소득을 충분히 보장해주고 있을까. 지난 4월 기준 노령(국민)연금 평균 급여액은 57만6905원(특례노령·분할연금 제외)이다. 노후에 받는 50만원대 급여가 적정 소득을 보장해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해 OECD가 각국의 소득대체율을 비교한 조사에선 한국은 31.2%로 OECD 평균(47.4%)에 크게 못 미쳤다.

소득대체율 40%는 겉보기에는 연금이 노후소득을 상당 부분 책임지는 것 같지만 이는 40년 가입했을 경우다. 실제 소득대체율은 40%보다 크게 낮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20년 이상 가입자’는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483만명)의 15.4%(74만명)에 불과하다. 가입 기간이 10년 미만인 특례노령연금 수급자가 26.4%(127만명)를 차지한다. 물론 연금 가입 기간이 짧고 연금액도 낮은 데는 우리 연금제도의 역사가 짧아 미성숙한 탓이 크다.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가 은퇴하고 수급자가 될 때는 가입 기간과 수급액이 모두 늘어나게 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성숙하려면 가입자가 일찍 연금제도에 들어와 장기간 가입해 많은 수급액을 타도록 해야 하지만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 지난 5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3099만명 중 가입자는 2179만명이다. 60살까지 최소납입 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는 가입자들을 포함하면 사각지대는 더 늘어난다.

◆“보험료 올리되 노후소득 대책 마련해야”

‘재정안정성’과 ‘노후소득 보장’, 무게 추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연금개혁의 방향이 바뀐다. 재정안정성을 강조하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9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약 17%까지 인상하고 국민연금 내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 재분배 기능을 없애고 완전소득비례연금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윤 연구위원은 “정부의 낙관적인 재정 추계가 맞는지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아야 하고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미적립 부채, 누적적자 등을 공개해 지금의 제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연금제도가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해야 사람들이 돈을 더 낼 수 있다”며 “소득대체율을 45% 이상으로 올리고, 보험료 인상도 필요하지만 경제 위기를 고려해 먼저 다른 재원 마련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지난해 43.4%로 OECD 평균인 13.1%의 3배가 넘는다. 우리 전체 인구 빈곤율이 16.7%인 것을 고려하면 노인 빈곤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 교수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노인빈곤율이 10%를 넘지 않는다”며 “경제규모 10위권인 나라가 2000년대 중반부터 노인빈곤율이 40%에 계속 머문다는 건 자원배분이 아주 잘못돼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OECD 평균 연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7∼60% 되는데 우리는 모든 공적 이전소득을 다 포함해도 불과 25%”라며 “공적 이전소득 비중이 작다는 건,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빈곤도 심각하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2007년 이후 15년 동안 재정 안정화 조치가 전혀 없었다”며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지금도 충분치 않아서 급여를 내리는 건 적절치 않고 보험료율을 12%까진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위원장은 “있는 그대로의 재정 상태를 가입자에게 공유해서 보험료 인상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인상폭이 크지 않더라도 우리 세대가 지속가능성을 위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개혁 동력으로 특수직역까지 손봐야”

정부가 국민연금 모수개혁에 나섰지만 이것만으로는 당면한 연금제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돈을 적립해 장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노인빈곤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다. 기초연금이 그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다른 공적연금과 분리돼 발전하다 보니 국민연금·기초생활보장제도 등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겼다.

재정 문제도 이어진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과의 관계 재설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제도 개혁 등 구조개혁 없이 연금개혁은 완성될 수 없다.

윤석열정부는 기초연금을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기초연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40만원 정도를 임계점으로 본다. 기초연금이 40만원이 되면 노인 부부 가구가 부부 감액 20%를 받아도 월 64만원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월 57만원)보다 많다. 물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함께 받으면 혜택이 더 크다. 하지만 매달 납입하지 않아도 되는 기초연금 수령액이 올라가면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일부 저소득층에게는 국민연금 가입 동기가 떨어질 수 있다.

기초연금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을 강화해 저소득층을 확실히 보장하고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을 없애, 낸 만큼 받는 소득비례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중산층 이상은 연금수급액이 늘게 돼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이 도입된 뒤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과 중복된 측면이 있고,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앞으로도 제 기능을 못 할 것으로 본다.

고소득자는 일찍부터 연금에 가입해 수급액을 최대한으로 받고, 저소득자는 연금에 가입하지 않아 재분배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의 특성상 소득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데다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성숙하면 대부분의 노인이 수급자가 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중심에 두고 기초연금은 보조수단으로 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 당장의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이 필요하지만 세금으로 충당하는 기초연금의 경우 확대하더라도 미래에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국민연금 제도 안으로 들여오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구조개혁이 여러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지만 정부가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모수개혁 부분 개혁은 윤석열정부에서 완수하고, 더 나아가 다층연금체계를 정립하는 등 구조개혁 방향의 합의를 끌어내면 큰 성과”라고 말했다. 권문일 국민연금연구원장은 “특수직역연금 문제도 심각하다”며 “이미 적자여서 세금으로 보전해줘야 하는데, 이해관계자가 복잡해 정치적으로 다루기 쉽지 않다. 국민연금 개혁에서 동력을 얻어 특수직역연금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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