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보 2024년 12월11일자에 실린 글

12월 3일 밤 기자들은 출입처, 뉴스룸에서 숨 가쁘게 하루를 지새웠다. 아무런 예고 없이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이 맞닥뜨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엄군의 국회 진입, 군경찰의 기자실 퇴거 명령 등 혼돈의 연속이었다. 계엄 선포 이후 27시간 동안 국회 현장을 지킨 조성봉 뉴시스 기자는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로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뉴시스

그날 밤.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45년만에 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입처로, 회사로 내달렸다. 그렇게 국회, 대통령실, 국방부 등지에서 계엄선포 이후 혼돈의 상황이 독자·시청자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부터 계엄이 해제된 다음 날 새벽까지 기자들은 무엇을 보았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돌아갔던 취재 현장, 뉴스룸의 계엄 그날 밤을 재구성했다.

◇3일 오후 10시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조성봉 뉴시스 사진기자, 공병선 아시아경제 기자는 계엄선포 직후 비교적 초반부터 국회로 들어갈 수 있었다. 10시20분쯤 국회 인근에서 ‘꾸미’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공병선 기자는 동료들과 스마트폰으로 대통령 긴급담화 생중계를 지켜봤다.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나오는 순간, 저녁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가려다 공 기자는 국회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되면 가보라’는 말을 듣고선 곧장 국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국회 출입 기자니까, 관성대로 국회를 간 것도 있다.” 이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조성봉 기자는 ‘성봉아 계엄이다’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들을 척결해야 되고…’ 발언을 하는 순간, “머리도 감지 않고, 여하튼 바로 총알택시를 탔다.” 18분 만에 국회에 도착했다. 오후 10시45분~50분 두 기자가 경찰 기동대에 의해 가로막힌 국회 정문 앞에 도착한 시각이다.

◇3일 오후 9시20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그에 앞서 이날 오후 9시20분쯤부터 대통령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설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내용으로 왜 발표를 하는지는 대통령실 참모들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후 9시50분경 방송사들에 담화 내용을 알리지도 않은 채 생중계 연결을 바란다는 메시지만 공유됐다.

윤 대통령이 긴급담화를 진행하는 순간까지도 대통령실에선 출입기자들에게 아무런 예고가 없었다. 당시 대통령실에 있었던 김태영 JTBC 기자는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전날 밤 상황에 대해 “혼돈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당시 김 기자는 핵심 참모 중 한 명과 식사 중이었는데 이 참모 역시 그제야 서둘러 대통령실로 돌아갈 정도였다. 김 기자는 “저를 비롯한 상당수 기자들이 대통령실로 하나둘 복귀했고, 얼마 안 돼 경호처에서 출입을 막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10시23분, 결국 담화가 시작됐고 기자들도 방송을 보고서야 내용을 알게 됐다.

◇“용산 출입기자가 뭔가 이상하다 한다”… 계엄 전후 비상 걸린 언론사 뉴스룸
비상계엄 선포 직후 각 언론사 편집국, 보도국 분위기도 급박하게 흘러갔다. 박범수 MBC 보도국장은 집으로 돌아온 직후인 오후 10시40분쯤 야근 당직자로부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조건 밤샘 특보 준비, 부국장·부서장·팀장 전원 복귀” 지시를 내린 박 국장은 곧장 회사로 들어갔다. “MBC가 제1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언론사 봉쇄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전에 일단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박 국장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은 사건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내란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을 제시해선 절대 안 된다고, 불법적인 내란 행위라는 규정하에 특보나 뉴스를 내보내게 했다”고 말했다.

지면 강판 연기, 호외 제작으로 신문사 편집국도 밤을 지새웠다. 조남규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오후 9시50분쯤 정치부장을 통해 ‘용산 출입기자가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방송사에 생중계 요청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정치부 기자들 전부 현장 복귀를 지시했고, 조 국장 본인도 담화 내용을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조 국장은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발표가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없었다”며 “저희 같은 경우 5판(초판) 마감이 당초 10시30분까지다. 윤전기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5판 마감을 뒤로 미뤄 최종적으로 다음 날 오전 1시에 강판을 했다”고 말했다.

◇계엄군 본회의장 앞까지 진입, 군 국방부 기자단 퇴출… 위험한 상황 계속된 취재현장
다시 여의도. 시민들과 함께 몸싸움해가며, 경찰에게 따져가며 겨우 국회 정문을 통과한 조성봉, 공병선 기자는 곧바로 헬기 소리를 들었다. 오후 11시께, 두 기자는 국회 본청 뒤 운동장에 착륙한 헬기에서 공수부대가 내리는 모습을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군이 진입하기 전 국회 직원, 보좌진들이 국회 본청에 있는 의자나 책상을 뜯어서 문을 막는 모습, 계엄군과 보좌진의 격렬한 몸싸움도 눈앞에서 봤다. 정말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기자는 “헬기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운동장으로 뛰어가려다 공수부대가 본회의장을 점거할 거 같아 일단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 대표실 쪽에 있다가 예결위장으로 몸을 피신하려고 허겁지겁 가는 모습을 봤다”며 “계엄군을 처음 보니 어떤 두려움을 순간 느끼긴 했는데 저희 팀원 중엔 제가 처음 온 상황이라 일단은 찍어야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국방부 기자실에서도 위험한 상황이 일어났다. 권혁철 한겨레 기자가 6일 기사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3일 밤 11시20분께 전투복 차림의 군사경찰이 갑자기 기자실에 들어와 ‘국방부 청사 내부에 있는 민간인들은 모두 나가야 하니 기자들도 나가라’고 말했다. ‘안 나가면 테이저건(전기 충격용 권총)을 쏠 수도 있다’고 경고도 했다. 권 기자는 “이러다 테이저건에 맞거나 포승줄에 묶여 끌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밤 11시50분쯤 장교 한 명이 ‘기자실까지는 민간인 출입을 허용한다’고 말을 바꾸며 위험한 상황은 일단락됐다.

4일 0시30분에서 1시 사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직전 국회 본회의장 안에 있던 공 기자는 문밖에서 거칠게 대치하는 소리,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아 결국 군이 들어오는 건가’라는 어떤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결국 이날 새벽 1시1분, 계엄선포 직후 150분여 만에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통과됐다. 공 기자는 “이날 다들 몸 안 사리고 기자들은 기자 역할을 했고, 보좌진, 국회의원들도 그 역할을 다 했다”며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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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끝>

중증 정신질환자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상에서 정신질환자를 본 적이 없어서일 테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아는 듯, 알지 못한다. 자주 접하긴 하지만, 대부분 ‘범죄사건 가해자가 알고 보니 정신질환자였다’는 식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정신장애 범죄자’는 전체 범죄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1%가 정신질환자 전체를 과대대표했고,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다.

그 시선이 정신질환 당사자를 숨게 한다. 주변에 발병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증상에 대해 설명하길 꺼리게 한다. 갈등이 두려운 그들은 그렇게 학교에서, 회사에서, 동네에서 주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고립된 채 지내며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31일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중증도 우울장애 등의 ‘중증 정신질환’ 진료 이력이 있지만, 2023년 병원에서 진료받지 않은 사람은 15만2006명에 달했다. 중증 정신질환 특성상 꾸준히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데, 치료를 중단하고 숨어버린 경우가 적잖은 것이다.

숨는다고, 숨긴다고, 병이 사라지진 않는다. 치료를 늦추고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인은 그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어머니는 아직도 딸의 상태를 제대로 몰랐던 게 한이라고 했다. “그때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못 했어요. 딸이 조현병 환자라는 걸 믿기가 싫었어요. 제가 약사인데도 딸을 몰랐어요.”

사실 당사자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중증 정신질환 진단 혹은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은 63만6532명에 달한다. 국내 인구(5132만5329명)의 1.2%로, 100명 중 1명꼴이다.

우리가 거니는 길에, 식당과 카페에, 어쩌면 매일 향하는 일터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함께 있던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건, 이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정신질환은 몸이 아픈 병과 다르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이들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8개월간 823건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84명을 만난 건, 그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세계일보는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 2명을 한 달간 집중 관찰했다. 8월12일부터 9월8일까지 4주간 매일 저녁 통화하며 그날의 애환을 들었다. 이들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네 삶이 다 그렇듯 말이다.

◆필요한 건 ‘위로’ 아닌 ‘이해’

고유선씨는 매주 화요일 ‘회복의공간 난다’ 에서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은 강의 중인 유선씨. 고유선씨 제공

냉탕에 10분, 온탕에 10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냉온욕은 고유선(32)씨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일과를 마친 뒤 목욕탕에 들러 냉온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유선씨가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기까진 5년이 넘게 걸렸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유선씨는 10년 전 조현정동장애를 진단받고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자신을 두 명의 다른 사람으로 느끼던 때도 있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 얼굴에 침을 뱉은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모두 유선씨가 경험한 망상과 환각, 즉 조현병의 ‘양성 증상’이었다.

약을 먹으며 양성 증상은 나아졌지만, 무기력해지는 ‘음성 증상’이 찾아왔다.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누워 있게만 됐다. 양치나 샤워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봤자 뭐해. 일도 못 하고 돈도 못 버는데. 살아서 뭐해.”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음성 증상을 해결해준 건 ‘파도손’ 같은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정신질환자의 치료 과정을 돕는 ‘절차조력 지원사업’ 단체다. 정신질환자 당사자가 다른 정신질환자를 상담해주는 ‘동료지원’, 당사자와 가족이 함께 대화적 치료를 배우는 ‘오픈 다이얼로그’ 수업 등을 진행한다.

유선씨는 이곳에서 지지받고 지지하는 경험을 했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유선씨는 매주 화요일 난다에서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하고, 일주일에 5일 정도는 파도손에서 미술 작업을 한다. 오랜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다 보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깊은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까 봐, 이상하게 볼까 봐 하지 못하던 말도 그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유선씨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그들이 좋다”고 했다. 증상에 대해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잠들기 전 꼬박꼬박 약을 먹긴 하지만, 유선씨는 여전히 50% 정도의 증상이 남아 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는 식이다. 누구를 만나도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다수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유선씨를 이해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유선씨가 느끼는 망상, 불안, 죄책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위로가 아니라 이해를 해줬다. 그리고 유선씨와 비슷하게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들으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선씨는 이들 덕에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규칙적 생활이 꾸준한 약 복용 도와

전현진씨는 매주 금요일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한다. 사진은 조현병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자조모임을 진행 중인 현진씨(가운데). 전현진씨 제공

서울 강북구에 사는 전현진(41)씨에겐 때때로 원인 모를 불안감이 찾아 왔다. 8월12일이 그랬다. 동료상담 지원이 일정대로 흐르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불안감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현진씨는 기존에 먹던 조현병 치료약에 더해 안정제를 두 알 함께 삼켰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현진씨가 이렇게 약물과 휴식 등으로 증상을 관리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도 파도손 영향이 컸다. 현진씨는 “일을 하게 되며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되니 약도 거부감 없이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출근 안 하고 더 자고 싶다.’ 오전 7시30분 눈을 뜬 현진씨는 ‘더 잘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이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기지개를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약을 먹는 것.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밖을 나서는 8시쯤이면 현진씨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약을 먹었는지 묻는 어머니의 잔걱정 없이도, 현진은 누구보다 약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병에게 제 삶의 주도권을 뺏긴단 걸 저는 알아요.” 그는 몇번이고 강조했다.

현진씨에겐 8년 전 겨울 조현병이 찾아왔다. 보험설계사로 6개월째 일하며 숱한 거절과 실패를 맛보던 차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병에 현진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위태로운 현진씨를 본 어머니가 입원을 권했다. 1년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병원 밖으로 나온 현진씨는 동료지원가 활동 덕에 약을 먹는 습관을 얻었다. 매일 출퇴근길 규칙적으로 약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진씨는 파도손에서 주 2~3회 동료상담 일을 한다. 현진씨처럼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다. 현진씨는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앞으로 펼쳐질 일주일간의 계획을 짜고, 지난 일주일의 상담 내용을 공유하는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현진씨는 옥상으로 가 식물 물주기를 한다. 월요일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나머지 화~목요일 일과 중엔 협약을 맺은 정신병원으로 가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금요일엔 파도손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한다. 6시 무렵 퇴근하면 스팸,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을 만들어 먹고, 다시 꼭 약을 챙겨 먹는다.

현진씨는 꼭 하루를 ‘NBA 2k24’라는 농구 게임으로 끝낸다. 다른 사람과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항상 혼자 한다. 난이도는 가장 쉬운 버전으로. 현진씨에게 농구게임은 작은 성공을 매일 맛볼 기회이자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다.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현진씨는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일자리가 너무 소중하다”며 “일상이 무너진다면 다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집중된 지원…”전국 확대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해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가 한목소리를 냈다. 유선씨와 현진씨가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던 것도 정신질환자가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이 있었던 덕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2018년 서울, 경기, 부산에서 시행되다가 2021년부터는 서울, 경기로 축소됐다. 수도권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2024년부터 전국범위 사업 확대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추진이 언제 실현될진 알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정신병원과 연계해 진행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연계할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석 관악동료지원쉼터 부센터장은 “한국은 정신질환 치료가 병원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탓에 조금만 증상이 악화하면 병원에 보내버리고, 당사자는 치료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회복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 중증 정신질환자도 유선씨나 현진씨처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

‘망상, 가족을 삼키다’ 시리즈로 한국기자협회의 제410회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세계일보 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왼쪽부터)가 11월 27일 시상식이 열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410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기]

조희연 세계일보 기자 /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숨겨진 84명의 공동수상자가 있는 기사입니다. 8개월의 취재기간 중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취재할수록 지난한 문제라는 걸 체감했고, 자칫 잘못 보도할 경우 조현병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거나 잘못된 제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취재에 적극 응해준 84명의 취재원 덕에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 당사자,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인 이들은 기획 취지를 듣곤 “정말 중요한 문제”라며 각자의 경험을 상세히 풀어줬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장 잘 알고 있고, 개선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기에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절박함에 빚지며 취재를 이어갈 수록 취재팀 또한 절박해졌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는 더 이상 한국사회 어딘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저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대화한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들이 안전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기사가 보도된 5일간 정책 당국인 보건복지부가 아무런 개선책을 내놓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귀한 상을 주신 덕에 기사가 조금 더 주목 받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가 조금 더 알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4회) 입원하고 싶어도 병상이 없다

“나아지고 있는 게 맞나.”

2018년 5월, 이도현(40)씨는 일주일 만에 10㎏이 쪘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걷기는커녕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겨웠다. 눈을 뜨기가 어려웠고, 침이 입술을 타고 흘러 턱밑으로 떨어졌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이 겪는 약 부작용이었다. 증상이 악화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도현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 움직이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매점에서 커피를 사서 좁은 복도를 쉴 틈 없이 오갔다. 기상시간에 맞춰 오전 7시에 일어났고, 10시에 시작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성심성의껏 참여했다.

하루빨리 병원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였다. 서른넷 당시 도현씨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장롱면허 탈출’, ‘한자 1급 자격증’, ‘연애’. 입원 기간 동안 도현씨가 작성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는 37번까지 내려갔다.

이도현(40)씨가 2018년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쓴 일기장에 병원생활의 일과표와 퇴원 후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 적혀 있다. 이도현씨 제공

입원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도현씨와 달랐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도현씨 옆 병상을 쓰던 중년의 여성은 한 달이 넘도록 샤워를 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온 지 몇 년 됐을 거야.” 여성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이 그 세월을 증명하는 듯했다.

10년 넘도록 병원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한 50대 남성은 퇴원하면서 병원에 짐을 두고 나갔다. 나갈 때부터 돌아올 생각을 한 것이다. 병원 밖에 자신의 집이 없고 가족마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딱 병동 문앞까지였다.

도현씨는 기자에게 자신의 정신병원 경험담을 전하며, 장기입원 환자들을 안타까워했다. 정신병원 입원은 ‘단시간에’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사회와 단절되고, 장기화하면 사회 복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정신병원 ‘장기입원’의 나라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3개월 이상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한 환자는 1만9756명이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10만4849명)의 18.8%에 해당한다. 장기입원자가 많은 탓에 한국 정신병원 평균 재원기간은 186.6일(2021년 기준)에 달한다. 조현병 등 망상장애 환자만 놓고 보면 194.7일로 더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로, 2위인 스페인(81일)의 2배가 넘는다.

 

세계일보는 정신병원 입원을 경험한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가족 15명, 의료진 12명을 만나 정신질환자 치료의 현실을 들었다. 정신병원이 퇴원하지 못하는 장기입원자의 ‘집’이 된 사이, 정작 치료가 시급한 정신질환자는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집에 머물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급성기 환자는 입원 못해 불안

“병상이 없대요.”

고정훈(가명·60대)씨는 지난해 8월 밤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날 밤 그는 ‘턱’하는 둔탁한 낙하음을 듣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머리맡에는 따지 않은 참치캔이 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들 고준형(가명·33)씨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형씨가 조현병 치료약을 멋대로 끊은 지 몇 주쯤 지난 때였다. 준형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삽시간에 병세가 악화하곤 했다. 미국, 일본, 국가정보원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그럴 때면 골프채로 집안 물건을 부수고 폭언을 쏟아냈다. 더 심한 행동을 보이기 전에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켜야 했기에 정훈씨는 급히 경찰을 불렀다. 집에 도착한 경찰관은 정신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번번이 “병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훈씨는 환청에 시달리며 발버둥치는 준형씨와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 졸이길 2시간. 준형씨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은 뒤에야 정훈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최근 입원이 너무 어려워졌어요. 병원들이 다 병상이 없다면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해요. 외래진료를 갈 수 있을 정도의 환자는 애초 급성기가 아니어서 입원이 필요 없는데….”

고정훈(가명·60대)씨를 9월10일 서울 금천구 안양천변에서 만났다. 고씨는 “최근 정신병원 입원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준형씨처럼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급성기’ 환자는 의료진이 24시간 지켜보고 출입에 제한이 있는 보호병동(폐쇄병동)에 입원하는데, 병동 병상이 계속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보호병상은 5만4427개로, 2014년(6만3324개) 대비 8897개나 감소했다. 비율로는 14.1%, 즉 7개 중 1개꼴로 사라졌다. 특히 전공의들이 집단이탈한 2월 이후 보호병상 감소세가 심화했다. 전공의들이 수련받던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의 보호병상은 2월 796개에서 3월 759개로 줄었고, 6월에는 734개까지 감소했다. 병원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보호병상 수를 904개로 신고해 두고 암암리에 병상 가동을 줄였다.

◆돈 잡아먹는 보호병상… 폐쇄 1순위

“병원장은 정신과에 병상을 주고 싶지 않겠죠.”

손지훈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집행부는 경영이 악화하면 정신건강의학과부터 찾는다. 정신과가 ‘돈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원가보전율은 55%로 상급종합병원 진료과목 중 가장 낮다. 100원을 들여 환자를 치료했을 때 건강보험과 환자로부터 받는 돈은 55원에 그친다는 의미다.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정부가 올해 보호병동 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 등 수가를 올려주긴 했지만, 병원은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병상 간 이격거리를 늘리면서 수용 환자 자체가 줄어든 데다, 기존에 있던 입원료 가산을 폐지하면서 생긴 손실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서도 급성기 환자가 입원하는 보호병동은 특히나 골칫거리다. 법적 문제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서다. 증상이 심한 급성기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하는 일도 있고, 환자가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강박했다가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증상이 심각한 급성기 환자와 안정적 상태에 있는 만성기 환자의 진료수가 차이는 미미하다. 병원의 수익구조에도, 진료를 보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급성기 환자를 반길 이유가 없다.

의사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1곳은 아예 보호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 11곳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를 경험하지 못한 채 수련과정을 마치게 된다. 강등현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형정신응급의료센터장)는 “보호병동이 없는 수련병원에 있었던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의 입원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을 마친 뒤에도 보호병동이 있는 병원을 기피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급성기 수가 올리고, 만성기 환자 퇴원시켜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복지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난도가 높고 자원 투입량이 많은 급성기 진료 특성에 맞춰 진료수가를 개선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참여기관은 7월 기준 42곳에 불과했다. 전국에 있는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4곳만 참여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계속해서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평가 연구용역을 진행한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금 수준의 수가 인상으로는 적자를 면하지 못해서 그래요.”

수가 보상을 강화해 급성기 환자 입원을 받게 유도한다는 게 사업 취지인데, 병원은 수가 인상분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의 사업 참여 조건을 맞추려면 병원이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전문의를 환자 60명당 1명꼴로 두고 있는데, 사업에 참여하려면 전문의를 3배(환자 20명당 전문의 1명)로 늘려야 한다. 늘어나는 인건비에 비해 보상 수가가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선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급성기 환자 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급성기와 만성기 병동을 구분해, 급성기 환자의 입원료를 일반 입원료의 2.5배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권준수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도 급성기 수가를 조정해 보호병동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입원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만성기 환자가 조속히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다. 치료 의지를 갖고 증상을 관리하는 만성기 환자는 지역사회에 살며 외래진료를 받게 하고, 그들이 있던 병상을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자·타해 위험이 큰 급성기 환자가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병철 한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전체 병상 수는 절대 적지 않지만, 만성기 환자의 병상이 많다”면서 “이들이 퇴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급성기 환자 치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퇴원환자 재입원 않게 전문가가 점검… ‘사례관리’ 확대를

오석진(가명·20대)씨는 지난겨울 전남 한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피워 경찰에 의해 국립나주병원에 응급입원됐다. 상태가 호전돼 이내 퇴원했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부모는 석진씨가 가만히 집에 있는 모습을 두고 보지 못했다. 나가서 취직이라도 하라며 채근했다.

이때 국립나주병원 ‘사례관리’팀이 개입했다. 가정방문을 나온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부모를 설득했다. “약을 이전보다 잘 먹고 있는데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이릅니다. 아드님은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다.” 석진씨의 부모는 “그럼 나가서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하고 와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석진씨도 점점 약의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년 후, 석진씨는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례관리란 정신질환으로 인해 일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곁에서 외래방문점검, 투약관리, 가족교육 등을 진행하며 재입원을 막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신건강서비스다.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를 주로 담당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세가 안정돼 퇴원하더라도 스트레스 상황이나 약 부작용 등으로 약 먹기를 포기해 다시 입원하는 사례가 많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4명 중 1명(26.4%)은 2개월 내 다시 입원했다. 그들의 가족들과 의료계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유지’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이유다.

실제로 사례관리는 환자의 지역사회 복귀에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부에서 지난해 반년(6~11월)간 시행한 사례관리 기반의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시범사업 대상자는 한 달 내 재입원율이 10.8% 감소했고, 퇴원 후 3개월 내 외래치료유지율이 11.7% 상승했다.

문제는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거부하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이들을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52조는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사람이 퇴원할 때 이를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도록 규정했는데, 환자 본인 동의가 필수다.

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장애 등록자 수’는 10만4197명이었지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8만44명에 그쳤다.

당사자는 낙인을 걱정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을 돕는 ‘가족지원가’로 활동 중인 노은영(64)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면 정신질환 진단 사실이 동네에 알려질까 봐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시선이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의 ‘급성기 수가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병원에서도 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6개월간 사례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례관리 기간이 짧고, 수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원을 통한 사례관리가 더 긴 시간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처럼 퇴원 환자로 제한하지 말고 증세가 악화해 입원하기 전에 사례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 단기간 의료비 상승이 부담될 수 있겠지만, 재입원하는 환자들 돌보는 데 투입되는 의료비를 고려하면 장기적으론 경제적인 투자”라고 강조했다.

김나현·윤준호·조희연 기자

(3회) 가정파괴 부르는 ‘보호의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기억이 있다. 16년 전이지만 이정하(53)에겐 37살의 6월20일이 그렇다. 새벽 5시 무렵 어렴풋이 눈을 뜨니 언니, 오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 정신병원 보내자.” 이내 짙은 곤색 상의를 맞춰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2명이 나타났다.

“이정하님? 가시죠.” “누구신데요?” “가보시면 압니다.” 의문의 남성들이 정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155cm에 47kg의 왜소한 체격의 정하가 사정없이 끌려갔다.

정하의 형제들은 환자복 차림으로 사정없이 끌려가는 동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1층엔 구급차 모양의 사설이송단 차량이 서 있었다. 뒷좌석에 밀려들어 간 정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눈앞엔 철창과 방탄유리. 손목엔 남성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빨갛게 부어올랐다. 두려움, 모멸감, 수치심.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1시간을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의 한 정신병원. 정하는 영문을 모른 채 안으로 끌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정실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 무렵 정하는 “죽음으로 널 증명해봐”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입원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정하는 이 같은 강제입원을 2000년부터 총 8차례 겪었다. “매번 개처럼 끌려갔어요.” 가족에 대한 원망감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왜 날 버리느냐. 다시 한 번 그러면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겠다.” 가족에게 상처란 걸 알면서도 비수를 꽂았다. 끝내는 가족과 의절을 택했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과거를 떠올리는 정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족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건 알아요. 전 통제불능이었고 가족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국가가 모든 걸 보호자에게 맡겨 놨으니깐. 그래도 강제입원은 학대예요. 한 번이라도 겪으면 죽을 때까지 못 잊어요.”

정하의 사례와 같이 정신질환 당사자의 동의 없는 입원이 매해 약 3만 건씩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신 의료기관에 비자의입원 환자 수는 3만1459명에 달했다.

29일 세계일보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그들의 곁을 지키고 사는 가족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당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입원 과정에서 맛본 굴욕감과 공포감을 털어놨다. 가족을 향한 원망이 짙게 묻어났다.

그렇다면 비자의입원(강제입원) 결정을 내린 그들의 가족은 악마였던 걸까. 가족들은 강제입원이 막다른 길에 놓인 마지막 선택지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가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긴 탓이다.

◆‘악마’가 될 수밖에 없던 가족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최성희(가명·60)의 눈에 훤했다. 7월 초 성희의 아들 김지훈(가명·30)은 온종일 우두커니 서서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두고 “이게 쓰레기지. 음식이냐”며 국그릇을 엎는 것은 기본이고, 행인과 시비가 붙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날도 잦았다.

모두 아들 지훈이 약을 끊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다. 6년 전 조현정동장애가 발병한 지훈은 약을 먹으면 일상을 잘 살다가도, 약을 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드러났다. 183㎝ 키에 100㎏이 넘는 거구의 지훈이 날뛰기 시작하면 성희와 그녀의 남편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지훈에게도 약을 끊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약이 독극물 같아.” 약을 처음 먹기 시작했던 때, 지훈은 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손목이 뒤로 꼬인 채 흔들렸고, 눈코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지훈은 참아냈다. 꼬박 5년,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약을 한주먹씩 먹으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4월 퇴원 뒤엔 매주 약을 50mg씩 줄이더니 결국 완전히 약을 끊었다.

단약은 비상 신호였다. “아들을 범죄자 만들고 싶지 않으면 따로 사세요.” 지훈이 집안 물건을 부숴 경찰을 부른 날, 출동한 경찰관은 생활공간을 분리하라고 조언했다. 성희는 지훈의 손에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혼자 남은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게 걱정됐다.

20여 번의 입원 과정을 거치며 성희는 알게 됐다. 증상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치료해야 했다. 아들에게 입원을 얘기하면 그 큰 덩치의 지훈은 “입원시키지 말라”며 애원했다. 그때마다 성희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지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성희는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이 원치 않는 입원을 반복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요. 그래도 치료를 받아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잖아요.” 

정하와 성희처럼 가족이 강제입원을 둘러싸고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건 국가 탓이 크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비자의입원(타인이 결정한 입원)은 행정입원과 보호입원으로 나뉜다. 행정입원은 자·타해 위험이 의심되는 대상자에 대해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해 전문의 진단을 거쳐 진행된다. 보호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하에 소속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 가능하다. 이때 보호입원을 결정하는 ‘보호의무자’란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또는 후견인, 즉 가족을 의미한다. 

증상이 악화한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자체장 혹은 가족이 입원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자체가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행정입원을 진행한 공무원에 대한 민원과 고소·고발 등을 우려해서다. 2022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비자의입원(2만9195건) 중 보호입원이 2만2906건(85%)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보호의무자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가족에게 입원·치료의 책임을 모두 떠맡긴 셈이다. 

◆‘미완의 해결책’ 사법입원제

국가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정신질환과 연관성을 보인 흉악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입원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보건복지부를 필두로 법무부·경찰청·소방청이 참여한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개선 TF’는 지난해 8월부터 비자의입원 제도 개선안을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복지부 TF 논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TF는 단기적으론 현행 지자체장·가족으로 국한된 ‘입원신청권자’에 정신건강복지센터장과 의사 등을 포함해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족이 떠안고 있던 입원신청의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해외에선 입원신청 권한을 모든 의사는 물론 공무원, 교사, 사회복지사 등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며 “입원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보호의무자로 한정한 부담을 완화할 필요는 있다”고 평가했다.

TF는 중장기 계획으론 사법기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입원 과정에서 국가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결정주체 변경 및 입원요건 유연화 △재판청구권자 별도 규정 △공공이송체계 구축 △입원·연장·퇴원 결정에서의 환자 권익보호 강화 등 크게 4가지를 검토했다.

복지부는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입적심)의 심사기능을 ‘법원에 이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입적심이 강제로 입원된 환자를 우선 조사해 입원 연장이 합당한 경우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고, 법원이 ‘입원적합성을 최종 판단’하는 식이다.

이는 환자의 치료를 위한 인신구속 여부를 ‘공식 절차’를 통해 결정받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입원 여부를 가족이 일차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병식(병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당사자들은 가족을 원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TF는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절차조력인이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만 TF는 법관 부족 문제 등의 현실을 고려해 ‘심판원’ 등 정신건강 전문성을 갖춘 준사법기관을 도입하는 방안 역시 대안으로 검토한다.

논의 방향은 좋지만, 진척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입원제는 2018년 ‘임세원 교수 살해 사건’, 2019년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정신질환자 치료 사각지대가 드러날 때마다 논의가 급물살이 타는 듯했으나, 판사 증원 한계 등 현실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이번에도 TF 결과 보고선엔 10월 중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전문위)를 구성해 TF 결과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10월이 다 가도록 전문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남 의원은 “비자의 입원에 대해 환자가 입원과정에서 권리를 인지하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절차조력인제도를 확대해야 하고, 환자 인권 차원에서 사법입원제 도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며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회복과 재활이 가능하도록 동료지원과 가족지원을 늘리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 옥죄는 ‘보호의무자’ 법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사법입원제 도입을 반기면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족의 보호의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보호의무자의 의무)에 따르면,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 및 요양과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은 가족에게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인지하고 병원에 데려갈 책임을 넘어, 환자가 타인에게 가하는 물리적, 재산적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부여한다.

실제로 재판부는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그들의 보호의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있다. 2021년 대법원은 양극성정동장애가 있는 아들이 인천에서 낸 화재사건에 대해 보호의무자인 아버지가 155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는 A의 보호의무자로서 A의 동태를 잘 살펴 방화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우발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후로 장애계나 학계에선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가 논의됐지만, 변한 건 없었다. 가족에게 전적으로 돌봄 책임을 떠맡기는 현실이 관련 조항이 제정된 1995년부터 29년째 지속돼 온 것이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국가는 정신질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의무자 제도’를 뒀겠지만, 한편으론 가족을 옥죄는 하나의 쇠사슬이 됐다”고 꼬집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보호의무자의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한다”며 “향후 입원제도 개선 등 국가책임 강화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 돌봄 가족 38% 우울장애

#. 조현병이 있는 31살 아들을 돌보고 있는 유숙희(가명·61)씨는 아들의 입원과 동시에 수학 교사 일을 관뒀다. 숙희씨는 “항상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스트레스는 곧 신체 이상도 불러왔다. 그는 “처음엔 주부습진이었는데 점점 심해져 지금은 손발이 다 갈라졌다”고 했다.

#. 김은순(가명·50대)씨는 20대 딸의 조현병 발병 후 미술 활동을 접었다. 그는 “20~30대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대개 50~60대”라며 “한창 사회생활할 나이지만 아이에게 언제 투입될지 몰라 정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성취감을 포기하고 남은 건 고립감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증 정신질환자 가족은 오늘도 입·퇴원, 복약관리 등 ‘보호자의 굴레’ 속에서 노심초사 환자 곁을 맴돌고 있다. 2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한 정신질환 당사자의 부모 13명과 형제 2명은 쳇바퀴 같은 돌봄노동 속에서 일도, 삶도 사치가 돼 버렸다고 고백했다. 이들에 대한 정서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가 4월 발간한 ‘정신질환자 및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족 995명 중 61.7%는 환자를 돌보는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가족 절반 이상(57.5%)이 환자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을 고백했고, 10명 중 4명(38%)꼴로 우울장애를 보였다. 이는 일반 국민의 우울장애 유병률(남성 3.9%, 여성 6.1%)보다 6~1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또 정신질환자를 돌보느라 일상을 포기하거나(39%) 구직 활동을 단념한 이들(38.6%)도 다수였다.

가족들은 ‘가족지원가’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지원가는 상담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 가족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이들이다. 이들 또한 정신질환 당사자 가족인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받은 양성교육과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되찾은 미소  가족지원가 활동을 통해 조현병이 있는 딸 고유선(32·왼쪽)과의 관계를 회복한 노은영(64)씨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노은영씨 제공

조현정동장애 10년 차 30대 딸이 있는 노은영(64)씨는 2년여 전 가족지원가를 만나고 삶이 180도 달라졌다. 2015년 딸이 처음 발병한 후, 병식(병에 대한 자각) 없는 딸을 입원시키려 사설 구급차도 불러보고, 안 먹겠다는 약도 억지로 먹이며 24시간을 딸에게 쏟았다. 운영하던 약국도 접었다. 은영씨는 이 시간을 회상하며 “모든 게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지원가를 만난 뒤, 은영씨는 딸과 소소한 대화도 나누고 자조모임도 함께 가며 일상을 회복하게 됐다. 가족지원가가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정신장애인 등록’을 하는 것도 알려줘 필요한 정보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서울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지원가’로 활동하며 한 달에 두 번씩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족을 돕고 있다.

문제는 가족지원가 사업이 수년째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2021년부터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가족지원가 양성에 나섰지만, 여전히 25개 자치구 중 6개(강서·금천·성동·은평·종로·중)구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활동 중인 가족지원가는 11명뿐이다. 가족지원가 보상은 최저시급 수준으로, 사실상 자원봉사처럼 운영되는 탓에 지원자가 적다. 은영씨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가족지원의 핵심”이라며 “가족지원가 예산 확대가 간절하다”고 말했다.

김나현·조희연·윤준호 기자

(2회) 치료 없이 돌아온 가해자

“징역 3년6개월의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다.”

17일 수원고등법원 801호 법정. 아내 정명주(60대·가명)씨와 함께 방청석에 앉아 있던 강태진(가명)씨의 아버지 강용석(60대·가명)씨는 판사의 선고에 침통한 표정이었다.

‘감형을 원한 게 아닌데….’

용석씨가 충혈된 눈으로 검사를 한참 주시했다. 명주씨는 말 없이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를 훔쳤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감형을 기뻐할 텐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용석씨와 명주씨는 이날 선고에 앞서 치료감호를 청구해 달라며 2심 재판부와 검사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치료감호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교도소에서 약물치료가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형기 동안 강제로라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감호를 청구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공판 내내 ‘치료감호’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태진씨는 2014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데, 약을 잘 먹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무기력해지고 잠이 쏟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명주씨가 타이르면 마지못해 약을 먹다가도 환청 증상이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약을 끊는 일이 10년 동안 반복됐다. 약을 끊은 지 한 달 무렵인 5월15일 새벽, 태진씨는 느닷없이 칼로 명주씨를 찔렀다. 그날 명주씨는 아들이 휘두른 칼에 목숨을 잃을 뻔했고, 태진씨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명주씨는 다친 자신보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들이 항상 더 걱정이다. 태진씨는 면회할 때마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상한 말을 했고, 환청이 들린다고 했다. 약도 전혀 먹지 않고 있었다. “약 색깔이 바뀌었다”거나 “엄마가 약으로 날 죽이려고 한다”고 했다.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태진씨의 경우처럼 자녀가 부모를 해한 사건에서 정신병력 진단이 나와도 법원이나 검찰은 치료감호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28일 세계일보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이 중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1심 기준)을 살펴본 결과 상급심까지 치료감호가 청구된 경우는 59.7%(126건)에 그쳤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치료받을 여건이 안 된다면 국가가 보호하고 치료할 필요성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치료감호는 심신장애 상태, 마약류·알코올 등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 상태 등에서 범죄행위를 한 경우, 검사가 청구해 법원이 보호·치료를 명령하는 조치다. 치료감호 대상자는 교도소가 아닌 국립법무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을 받게 된다. 망상 등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의료진이 수용자를 관리·감독하며 약물 복용을 확인해 강제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추가 조처를 할 법적 권한이 있다.

반면 교도소에서는 수감자가 약을 먹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 의사가 아닌 교도관이 이들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악화한 수감자는 다른 수감자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태진씨 역시 망상이 심해지면서 다른 수감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한 번은 용석씨와 명주씨가 면회를 신청하고 교도소에 찾아갔는데, 태진씨는 독방에서 징계받고 있어 만날 수 없었다. 수감 이후 지금까지 그가 받은 징계는 가족이 확인한 것만 최소 2번이다.

또 교도소는 일부 정신질환 약물 반입이 금지돼 치료에 제약이 있다. 명주씨와 용석씨는 경찰 입회 아래 정신과 병원에서 아들이 먹던 약을 대신 처방받아 넣어주려 했는데, 일부 향정신성 약은 반입이 되질 않았다.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립법무병원에서 근무했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치료 없이 교도소만 다녀오면 정신병적 증상은 이전과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료감호 청구, 솔직히 귀찮다”

치료감호가 내려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검사가 이를 청구하지 않아서다. 현행법상 재판부가 검사에게 치료감호를 청구 요청할 순 있지만, 검사의 청구 없이 직권으로 명령할 수는 없다.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 똑 부러진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태진씨 사건의 치료감호 불청구 사유에 대해 2심 공판검사는 “피해자가 치료감호를 요구했다고 하지만, 어차피 다 (피고인의) 가족”이라며 “통상적인 범죄 피해자라고 보기 어려워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조처를 요청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검사는 “치료는 앞으로 받으면 되는 것이고 치료감호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자의 심신미약 인정에 대해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검사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인 이유로 꼽힌다. 수도권 한 지방검찰청 소속 공판검사는 “솔직히 귀찮다”며 “치료감호 청구는 청구 전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오래 걸리고 심신미약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어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국립법무병원이 교도소보다 나을 거란 인식 탓에 치료감호 명령이 마치 정신질환을 이유로 피고인을 봐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가 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치료감호를 청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상급심에서라도 치료감호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판단은 잘 바뀌지 않는다.

최근 10년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1심 사건 211건 중 항소심이 있는 146건을 살펴본 결과, 원심에서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가 2심에서 청구한 경우는 93건 중 14건으로, 비율로 따지면 15.1%다. 법률심인 3심에서 청구된 경우는 없다.

조현병 약을 먹지 않다가 망상에 의해 모친을 살해한 피고인 변호를 맡았던 이종진 법무법인 트리니티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치료감호 청구를 요청했음에도, 검사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심에서도 치료감호 명령을 주장했지만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 자체가 치료를 받으라는 부모와 다투다 벌어진 사건인데,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 것은 법원의 명령으로 강제 치료가 가능한 기회를 날리게 되는 것”이라며 “치료감호를 받으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다른 수감자나 출소 후 가족의 안전도 보호될 수 있는데, 국가가 범죄 예방을 위한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범죄 전체를 놓고 봐도 검찰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이다. ‘2023년 검찰연감’을 보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건수는 2020년 65건, 2021년 78건, 2022년 93건에 그쳤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신장애’가 있는 전체 범죄자는 연간 5000∼9000명 수준이다.

◆치료 뒷받침할 시설도 부족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감호 명령을 검사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것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치료감호가 적극적으로 청구되지 않는 까닭으로 박주영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은 ‘자리 부족’을 꼽았다. 그는 “형사사법 종사자들의 치료감호나 치료 사법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이견도 큰 요인”이라면서도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 사건이 아니면 검찰이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고, 법원도 치료감호 명령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국립법무병원 자리가 부족한 이유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교도소에서도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환자의 회복을 돕는 양질의 치료를 위해서는 치료감호소 인력의 적극적 확충이 있어야 한다”며 “당장 인력 확충이 어렵다면 교도소 내 위탁 의사를 늘리고 필요한 경우 교도소에서 일반 병원으로 연계전환 하는 등 교도소에서도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정신질환이 있는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인식 탓에 공감대가 모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재범 방지를 위해서라도 국립법무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이뤄지는 정신질환자 치료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주씨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교도소 내 치료다. 검사의 치료감호 불청구는 상고 이유에 해당하지 않아 더 이상 법원의 판단은 기대하기 어렵다.

2심 선고 이후 명주씨네 시간은 멈춰 있다. 명주씨는 그리운 아들의 옷을 방문에 걸어놓고 냄새를 맡는다. 최근 혼잣말도 늘었다.

“치료받고 나와라, 제발 낫고 돌아온나, 낫고 오면 우리 재미있게 살자. 너를 위해서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나는 괜찮은데 어떻게 하면 좋니, 어떻게 하면 좋니.”

존속살해·미수 보호관찰 명령 18%뿐
치료감호 받아도 60% 다시 병원 입원
“관찰관 확충해 日처럼 적극 관리해야”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출소 이후 치료 관리가 사실상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세계일보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이 중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1심 기준)을 살펴본 결과 상급심에서까지 보호관찰이 청구되지 않은 경우가 82.5%(174건)에 달했다.

보호관찰은 피고인의 재범 방지를 위해 보호관찰관이 치료 기록을 확인하거나 위험한 물건 소지 여부를 감시하는 등 관리·감독하는 제도다. 징역 형기를 마친 출소자가 지속해서 치료받도록 법원이 명령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원이 보호관찰을 내리지 않는다면 피고인에 대한 치료관리의 책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된다.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해자인 가족이 다시 피고인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2021년 인천에서는 한 남성이 과거 중증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범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도 출소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다가 엄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이전에도 엄마를 폭행해 특수존속상해죄와 존속상해죄로 불구속기소된 상태였다. 그는 피해망상이 심해진 상태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함께 살던 엄마를 때려 숨지게 했다.

가족들은 치료관리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피고인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법무부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치료감호가 종료된 수용자의 60%는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가족이 피고인을 돌볼 수 없다고 판단돼 정신병원에 행정입원된 비율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신질환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경우 출소자의 치료를 지역사회에서 보호관찰관이 적극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범행에 이른 만큼 가족에게만 맡겨둘 순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영렬 국립법무병원장은 “일본은 출소한 정신질환자를 가족에게 맡겨 놨다가 효과가 없어 바꾼 것인데, 한국도 가족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보호관찰관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호관찰관이 부족한 점은 법원이 보호관찰을 명령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관찰이 내려진 사건은 17만7540건을 기록했다. 보호관찰관(1861명)이 1인당 담당하는 사건은 95건에 달했다.

나아가 보호관찰관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원의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지더라도 보호관찰관이 관리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70대 정모씨는 아들을 집에 두고 외출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들은 5개월 넘게 약을 먹지 않고 있다. 기자가 만난 정씨는 약을 먹지 않아 망상 증상이 시달리던 아들이 흉기를 휘두른 그날의 악몽이 재연될까 불안해 했다. 법원은 징역형과 함께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 및 상담을 받으라며 보호관찰을 명령했지만, 나이 든 정씨가 이를 지키지 않는 40대 아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법무부는 보호관찰관 인력이 부족한 건 맞지만 출소 후 보호관찰에 대해선 최우선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기적 진료 및 상담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 매월 진료확인서를 제출받는다”며 “약물 복용을 강제할 필요가 있을 땐 법원에 특별준수사항 추가변경을 신청해 정기적으로 복용 여부를 검사한다”고 밝혔다.

윤준호·김나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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