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 2위에 올랐다는 세계일보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에 큰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 윤 총장은 단숨에 2위자리까지 올랐을까.
이번 조사결과 문항을 보면, 응답자가 주관식으로 윤 총장 이름을 적어낸 것이 아니라 세계일보가 윤 총장을 문항에 13명의 대선 후보 중 한명으로 포함시켰다. 세계일보는 왜 대선후보를 13명으로 정했고, 이 가운데 윤석열 총장을 포함시켰을까. 특히 윤 총장은 현직 검찰총장이며 정치적 중립과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수호해야 하는 법적 책무를 지녔다. 그런데도 현실정치의 최종 결과물이라 할 대통령 후보 명단에 넣는 것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내용 뿐 아니라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과정까지 의심받을 우려가 있다.
세계일보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을 꼽은 응답이 있어 예시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31일자 ‘윤석열, 새보수·무당층 지지 업고 급부상…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 “30일 세계일보 창간 31주년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후보군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급부상했다”며 “하지만 실제 윤 총장을 대선 후보로 평가하기보다는 청와대와 법무부에 맞서서 정권을 수사하는 검찰에 중도층이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썼다. 이 신문은 자사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8일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10.8%의 지지율을 받아 2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여러 언론사이 이 조사결과를 인용 보도했다.
세계일보 의뢰를 받아 문항을 작성한 리서치앤리서치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세계일보 창간기념 조사 보고서(2020. 1.29)’를 보면, 설문지 원본의 14번에 대선후보 질문이 나온다. 설문 문항은 ‘다음 거론되는 인물들 중 차기 대통령 감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이며, 답변은 13명의 대선후보 명단이 선택지로 나와있다. 윤석열 총장은 아래와 같이 13명 가운데 13번째로 포함돼 있다.
-답안 선택지 : 1. 김경수 2. 박원순 3. 심상정 4. 안철수 5. 오세훈 6. 원희룡 7. 유승민 8. 이낙연 9. 이재명 10. 정세균 11. 홍준표 12. 황교안 13. 윤석열 14 기타( ) 15. 적합한 인물 없음 16. 잘 모르겠다
리서치앤리서치는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을 이번에 처음 포함시켰고, 세계일보 의뢰로 넣었다고 밝혔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현직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 명단에 넣었다. 수사과정에서 청와대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아예 현실정치로 불러내 현 집권세력과 더욱 각을 세우도록 내몰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자칫 지금까지 검찰 수사 신뢰도조차 훼손할 우려도 있다.
이에 조남규 세계일보 정치부장은 3일 저녁 미디어오늘에 보낸 문자메시지 답변에서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꼽은 답변이 나온 바, 그 부분에 대한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윤 총장을 예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조사에서 대선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꼽은 결과가 있다. 윤 총장을 지목한 비율은 1%였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24%),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9%),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4%), 이재명 경기도지사(3%), 박원순 서울시장(2%),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2%)에 이어 윤 총장은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1%를 얻었다. 49%는 특정인을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갤럽 조사는 응답자들이 자유롭게 이름을 적어낸 주관식 답변을 받은 반면, 세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방법은 대선후보 명단 13명을 보여주고 그 중에 한 명을 고르라고 한 객관식 답변을 받았다.
-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 승인 2020.02.03 21:21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026
*결과적으로 윤석열 총장은 2022년 3월 대선에 뛰어들었고,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해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아래는 한겨레 신문 2022년 1월8일자에 실린 성한용 정치 선임기자의 기사.
‘잘못된 만남’ 윤석열의 운명은?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졌습니다.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대선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위원장을 내쫓았습니다. 후보와 의원들이 대표를 몰아내려 했습니다. 상처를 급히 꿰맸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국민의힘 사람들은 대부분 이준석 대표가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닙니다.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잘못 뽑은 것입니다. 제 평가가 가혹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윤석열 후보는 선대위를 해산시켰습니다. 당무우선권을 활용해 사무총장과 부총장도 바꿨습니다. 후보만 빼고 다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여론조사 지지도가 올라갈까요? 그럴 리가요. 문제는 선대위가 아니라 윤석열 후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민의힘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일을 차분히 복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를 도대체 누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만들었을까요?시작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뒤이어 벌어진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는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10년의 파산 절차였습니다. 파산한 기업이나 단체가 회생하려면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는 고통이 불가피합니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보수의 재건을 위해서는 2017년 대선 패배 뒤에 차라리 자유한국당을 해산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하지만 대구·경북에 지역 기반을 두고 60대 이상 고연령층에 세대 기반을 둔 보수 세력에게는 그만한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 탓으로 돌리며 2022년 3월 대선 승리를 노렸습니다.문제는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홍준표 의원은 보수 세력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한국갤럽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를 보면, 이낙연 26%, 황교안 13%, 이재명 9%, 안철수 6%, 심상정 5%, 유승민 5%, 박원순 5%, 오세훈 4%, 조국 4%, 홍준표 4%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황교안 대표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을 정도로 보수 성향 표심은 방황하고 있었습니다.그 빈 곳을 조국 사태로 유명해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치고 들어왔습니다. 2020년 1월 <세계일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10.8%로 황교안 대표를 누르고 2위를 차지한 일이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뒷날 고백했지만, 이 여론조사를 계기로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를 부추긴 사람으로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를 뺄 수 없습니다. 2020년 12월22일치 신문에 ‘윤석열을 주목한다’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2021년 7월13일 ‘문재인 5년을 지울 청소부를’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국가 경영 능력이 부족해도 문재인 정권을 청산할 사람이라면 대선 후보 자격이 충분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무리한 욕심도 한몫했습니다. 2021년 3월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치고 올라오자, 김종인 전 위원장은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고 논평했습니다. 그 뒤 밀고 당기기를 거쳐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별의 순간을 잡은 것은 어쩌면 윤석열 후보가 아니라 김종인 전 위원장이었습니다.김종인 전 위원장이 정치에서 은퇴한 상태였던 2020년 3월 <영원한 권력은 없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일이 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바람직한 권력자와 참모의 관계로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1세, 미국의 닉슨과 키신저 사례를 들었습니다. 최고 권력자의 절대 신임을 바탕으로 유능한 참모가 전권을 행사한 경우입니다.사실은 김종인 전 위원장 자신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일해 온 사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근로자재형저축과 의료보험을 도입했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개헌을 하면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비롯한 개혁 정책을 관철했습니다. 반대가 많았지만, 최고 권력자의 신임을 바탕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김종인 전 위원장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돕고, 2016년 총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도울 때는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전권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정당 내부의 기존 세력과 갈등을 빚은 것입니다.결국 박근혜 후보와는 재벌 순환출자 해소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는 바람에 대선 전에 결별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는 갈등을 빚다가 총선이 끝난 직후 결별했습니다.
이번에 윤석열 후보와 결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허수아비가 될 것을 우려한 윤석열 후보가 오히려 그를 쫓아냈습니다.어떻게 된 일일까요? 김종인 전 위원장은 왜 매번 전권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독선적이기 때문일까요? 혹시 박근혜 후보, 문재인 대표, 윤석열 후보가 김종인 전 위원장보다 나이가 적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가 이들을 ‘하수’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원인이 무엇이든 윤석열 후보와 김종인 전 위원장의 이번 결별은 애초에 윤석열 후보가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맡기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됐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물론이고 김종인 전 위원장도 체면을 단단히 구겼습니다.어쩌면 김종인 전 위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또다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번은 몰라도 두번이면 김종인 전 위원장이 사람을 보는 안목에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대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착각, 김대중 칼럼니스트 같은 보수 논객들의 부추김, 그리고 김종인 전 위원장의 개인적 욕심 등이 합쳐져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본질에서 저는 이른바 보수 세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선택한 것은 전략적 판단 착오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후보는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보수 세력 전체가 윤석열이라는 정치 아마추어의 허파에 바람을 불어넣어 대선 후보로 밀어 올리는 모험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 불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있었습니다. 보수의 혁신을 요구하는 민심에 힘입어 2021년 6·11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가 당선됐습니다. 대선 후보 경선 막판에는 2030의 지지를 등에 업은 홍준표 의원이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앞섰습니다.그런데도 국민의힘 의원들과 책임당원들은 민심을 거부하고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윤석열 후보 지지도 하락과 국민의힘 자중지란은 의원들과 책임당원들의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좀 힘들어도 국민의힘이 홍준표·유승민·원희룡 같은 내부 인사들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이제 관심사는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의 앞날입니다. 어떻게 될까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 됐습니다. 단일화 없이 이재명 후보를 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수 세력 전체가 나서서 후보 단일화를 압박할 것입니다.첫째, 윤석열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꺾고 그 탄력으로 본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이기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처럼 되는 것입니다.둘째,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본선에는 진출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하는 경우입니다. 윤석열 후보가 책임을 혼자 뒤집어써야 합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그랬습니다.셋째,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경쟁에서 패배해 장렬히 전사하는 경우입니다. 보수 야권의 불쏘시개로 역사책에 기록될 것입니다.단일화에 실패해 다자구도로 대선을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자구도에서 득표율이 저조하면 2017년 홍준표 후보, 2007년 정동영 후보처럼 될 것입니다. 다자구도에서 선전하면 1997년·2002년 이회창 후보처럼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다자구도에서 이재명 후보를 꺾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거나 새로운 비리 의혹으로 추락해야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윤석열 후보에 앞서 정치에 뛰어든 법조인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있었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초엘리트였지만, 정치인으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윤석열 후보는 이회창 총재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 이회창 총재의 길을 엇비슷하게 따라갈까요? 아니면 3월9일 선거 이후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까요? 윤석열의 운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래는 2023년 11월25일자 한겨레신문의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기사입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윤석열의 길을 따라가는지를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윤석열의 길’ 따라하는 한동훈…아직은 ‘메시지 없는 싸움꾼’
성한용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론조사에서 ‘차기 정치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2020년이었습니다. 한국갤럽 2020년 1월 셋째 주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1%로, 처음 이름을 올렸습니다. 응답자가 정치인의 이름을 말하는 자유 응답 방식이었습니다. 이낙연 24%, 황교안 9%, 안철수 4%, 이재명 3%, 박원순·홍준표 각각 2%, 유승민·윤석열·유시민 각각 1% 차례였습니다.
곧이어 세계일보가 1월31일치 신문에 창간 31주년 여론조사 결과를 실었습니다.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10.8%로, 이낙연 전 국무총리(32.2%)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0.1%였습니다. 윤석열·황교안 중에서 보수 성향 응답자들은 황교안 지지가 많았습니다. 중도 성향 응답자들은 윤석열 지지가 많았습니다. 오차범위 안이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황교안 대표를 따돌렸다는 상징성이 컸습니다. 이 여론조사를 계기로 보수층 여론이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로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1년여 뒤인 2021년 3월4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이어 6월29일 “정권을 교체하는 데 헌신하고 앞장서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다음날 국회 기자실을 방문했습니다. 세계일보 부스에서 기자들에게 “그때 그 조사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도 안 왔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일보 여론조사를 계기로 상승세를 탔고, 그 덕분에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대선주자 경쟁에서 여론조사의 위력은 이처럼 절대적입니다. 대통령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여론조사가 받쳐주지 않으면 출마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정치에 별로 뜻이 없던 사람도 여론조사 결과가 좋게 나오면 대통령을 꿈꾸게 됩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여론조사는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여론조사가 갑자기 잘 나오면 멀쩡했던 사람도 판단이 흐려집니다. “어쩌면 내가 바로 하늘이 내린 대통령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여론조사 수치 상승을 믿고 비정치인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승률이 매우 낮은 도박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물론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정주영, 조순, 문국현, 정운찬, 안철수, 반기문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윤 대통령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따라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입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의 질문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귀하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 즉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특정인을 답하지 않은 경우 재질문) 그럼,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는 인물은 누구입니까?(자유 응답)”올해 11월 둘째 주 조사 결과는 이재명 21%, 한동훈 13%, 오세훈 4%, 홍준표 4%, 이준석 3%, 김동연 2%, 안철수 2%, 이낙연 2%, 원희룡 1% 차례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여권에서는 한 장관이 오세훈·홍준표·이준석·안철수·원희룡을 밀어내고 가장 높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격차입니다.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보다 더 뛰어난 성적입니다. 흐름도 좋습니다. 지난해 6월 4%에서 시작해 9월 9%, 12월 10%로 올라선 뒤, 올해에는 3월 11%, 6월 11%, 9월 12%, 10월 14%, 11월 13%를 기록 중입니다. 무서운 상승세입니다.11월 둘째 주 조사 결과를 지역·연령별 등 조금 자세한 항목으로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세분하면 표본 수가 적기 때문에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대략의 윤곽은 알 수 있습니다. 지역별로는 서울(18%), 대전·세종·충청(15%), 대구·경북(14%), 부산·울산·경남(15%)이 평균보다 높습니다. 연령별로는 60대(24%)와 70대 이상(22%) 등 고연령층이 평균보다 확실히 높습니다.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자의 무려 31%가 한동훈 장관을 선택했습니다. 의견을 유보한 40%보다는 낮지만, 오세훈(9%), 홍준표(7%), 이준석(4%), 원희룡(3%), 안철수(1%)보다는 확실히 높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한 장관을 부추겼을까요? 한 장관은 지난 11월17일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강력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대구스마일센터’와 달성 산업단지였습니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대구 시민들을 대단히 깊이 존경해왔다. 대구 시민들이 6·25 전쟁 과정에서 단 한번도 적에게 이 도시를 내주지 않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대선주자급 정치인의 발언입니다.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의견은 많을 수 있다. 총선이 국민 삶에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범죄 피해자를 잘 보호하고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인 정책과 이민 정책을 잘 정비하는 게 국민께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출마와 불출마 양쪽 가능성을 다 열어놓은 발언입니다. 한 장관은 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구에 응하느라 애초 예매한 저녁 7시 서울행 기차표를 취소하고, 밤 10시께 서울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한 장관 대구 방문에는 ‘데자뷔’(기시감)가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3일 대구를 방문해서 “고향에 온 것 같다”고 말한 뒤, 바로 다음날 검찰총장직을 사퇴했습니다. 대구는 이른바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지역입니다.한 장관은 사흘 뒤인 11월20일에는 ‘시비에스(CBS) 대한민국 인구포럼’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기자들이 총선 출마 여부를 묻자 “보도나 추측, 관측은 하실 수 있는 것”이라며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21일에는 대전에 있는 법무부 산하기관 개소식에 참석해 “일부 운동권 정치인들이 재벌 뒷돈 받을 때 저는 어떤 정권에서든 재벌과 사회적 강자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했다”고 말했습니다. 대구 발언 못지않게 정치적 함의가 있는 발언입니다.22일에는 국회에서 열린 ‘지방소멸 위기, 실천적 방향과 대안’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기자들의 민감한 질문을 하나도 회피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24일에는 울산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문화관을 방문해 조선업 숙련기능인력 도입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의 ‘암컷 발언’ 관련해서는 “인종·여성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구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민주주의 공론의 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이 세계적인 룰”이라고 했습니다. 또 최 전 의원이 에스엔에스에 쓴 글(It's Democracy, stupid)에 빗대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 이렇게 하는 게 국민들이 더 잘 이해하실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한 장관의 행보에 대해 여러 언론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겨레는 22일치 신문에 “‘공직 이용한 정치 행보’ 한동훈 장관직부터 내려놔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동아일보도 “1주일 새 대구 대전 울산…‘정치 행보’는 장관직 내려놓고 하라”는 사설을 썼습니다.
한 장관의 정치 행보에는 두 가지 궁금증이 따라다닙니다. 첫째, 내년 총선에 출마할까요? 국민의힘에서는 한 장관의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법무부 장관 후임자 인사 검증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마한다면 어디로 나갈까요? 한 장관 개인적으로는 당선이 중요할 것입니다. 서울 서초나 강남을 노릴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서울 강북의 이른바 험지에 출마하거나, 차라리 비례대표로 출마하고 다른 후보들 지원 유세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전 90일인 1월11일까지, 비례대표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전 30일인 3월11일까지 장관직을 사퇴해야 합니다. 소수 의견이지만 출마하지 않고 장관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행정부에서 윤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이유입니다.둘째, 차기 대선주자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한 장관의 강점은 야당의 공격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권투로 치면 수비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카운터블로’가 특기입니다. 자신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을 ‘이재명 대표 부인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 ‘송영길 전 대표 엔에이치케이 술집 논란’, ‘서영교 의원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 등으로 맞받아쳤습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직격하는 전술입니다. 민주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합니다. 윤 대통령은 어쨌든 공정과 상식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한동훈 장관에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은 싸움꾼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마무리하겠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쿠데타 동지였습니다. 군인 출신이 연이어 대통령을 했는데, 검사 출신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장관은 정무직 공무원입니다. 한 장관은 이미 정치인입니다. 총선에 출마하든, 대선에 출마하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한 장관은 ‘강남 엘리트’,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이미지가 강합니다. 바로 그게 장점이자 약점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높은 인기는 거품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한 장관 자신의 몫입니다. 당분간 한 장관 기사를 자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한동훈 차기 대통령,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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