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필자는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박근혜 후보 캠프가 선거운동 막바지에 내놓은 기초연금 공약의 파괴력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게 당시 박 후보의 공약을 담당했던 김종인 박사의 작품이란 사실은 최근 출간된 김 박사의 저서(‘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통해 알게 됐다. 김 박사는 저서에서 선거 막바지에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문재인 후보의 추격전이 본격화하면서 예측불허의 국면이 펼쳐지자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는 공약을 발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박 후보의 대선 승리에는 여러 변수가 개입됐지만 기초연금 공약은 확실히 먹혔다. 시골에 계신 노모는 이 공약 얘기를 하면서 “아들보다 낫다”고 했다. 기초연금 대상인 노인들은 6·25전쟁 전후로 태어나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일으켜세운 세대다. 대다수가 노후대책 없이 노인이 돼서 힘든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초연금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묻게 한 공약이었다.

지금이야 여야 가릴 것 없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공약이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씀씀이가 커졌지만 그때만 해도 복지공약은 재원 조달 문제를 놓고 진보 정당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조(兆) 단위 예산이 필요한 기초연금을 보수 정당에서 먼저 치고 나왔으니 과감한 역발상이었다. 진보, 보수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이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라 곳간인 재정을 튼튼히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가를 가계처럼 운영할 수는 없다. 때론 적자를 내면서도 써야 할 곳엔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사회 통합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투자가 그렇다. 자유와 자립의 문화가 뿌리내린 미국도 노인과 저소득층 복지는 국가가 직접 챙기고 있다. 기초연금은 문재인정부가 이어받아서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복지제도로 정착됐다. 박근혜정부가 기초연금과 같은 정치적 상상력과 유연성을 발휘하며 시대 변화의 흐름에 적응했다면 보수의 미래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2015년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선언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조리돌림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 당시 보수 진영은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나누면서 커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당이 되겠다”는 말조차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보수 정당인 공화당이 ‘작은 정부’ ‘감세’ ‘복지 축소’라는 도그마에 갇혀 현학적 논쟁을 벌이다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 집권기간 부유층 증세에 반대하고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는 투쟁에만 몰두했다. 이 틈새를 공화당 당원도 아니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사회보장 예산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노인 의료보험제도는 손도 대지 않겠다”면서 밑바닥 민심을 사로잡았다.

트럼프를 밀어올린 백인 노동자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정부가 대공황으로 무너진 농민과 노동자, 노인 등을 구제하는 조치(뉴딜)를 시행하고 실업보험 같은 사회보장 정책을 도입하자 백인 노동자층은 민주당 지지자가 됐다. 미국이 성장하면서 중산층으로 올라선 이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번갈아가며 지지했지만 2016년 대선에선 그 어느 쪽도 아닌 트럼프를 선택했다. 삶은 어려워졌는데 정치권이 보통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중산층이 쪼그라드는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글로벌 감염병 사태까지 불거지자 세계 각국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기반한 20세기 성장모델을 손질하고 자국 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정책을 고심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는 ‘한국판 뉴딜’을 내걸고 진보 연합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껍데기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아무리 보수를 자처해 봤자 보수답지 않으면 거짓 보수이고, 보수라는 용어를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고서도 보수주의를 제대로 실천한다면 그것이 진짜 보수다.” 통합당이 당 재건 역할을 맡긴 김 박사의 주장인데 그 말에 동의한다. 민심과 괴리된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조남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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