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부든 국회는 여당이 재적 과반을 차지하는 ‘여대야소’(與大野小)이길 원한다. 여당이 독자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 지형도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출하는 유신정우회(유정회) 의원이나 지역구 의원 최다 정당에 전국구 의원의 3분의 2를 몰아주는 위헌적 제도를 도입해 우격다짐으로 여대야소를 만들어냈다. 약점 잡힌 야당 의원을 여당으로 빼가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한국식 민주주의’로 불렀던 시절의 얘기다. 1987년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민주화를 통해 우리 입법부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제도를 마련하게 됐다. 그러자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졌다. 1988년 13대 총선부터 2000년 16대 총선까지 그랬다. 군사독재를 경험한 탓인지 대다수 국민들은 권력 견제를 국회의 첫번째 소명으로 여겼다. 민주화 초기에는 국정이 좀 표류해도 독재정권의 일사불란한 효율보다는 낫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정통성을 지닌 두 권력이 충돌한다. 야당에 발목 잡힌 국정은 표류한다.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은 지체된다. 어떤 대통령은 이런 교착 국면을 풀기 위해 집권당을 통해 야당을 흡수 통합했다. 어떤 대통령은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야당에 총리나 장관 자리를 내주는 연정(聯政)을 제안했다.

그런데 2004년 17대 총선부터 유권자들은 과거와 다른 정치 지형도를 만들어 냈다. 그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에 힘입어 원내 과반을 확보했다. 다시 여대야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친이명박·친박근혜계로 갈려 국정 난맥상을 연출한 집권 새누리당이 심판받은 20대를 제외하면 올해 구성된 21대 국회까지 그렇다. 민주화된 정치를 20년 정도 경험해본 국민들이 이제는 국회에 ‘책임정치’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제1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사례가 많았다. 야당의 책무가 비판과 견제라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선 안 된다는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올해 총선에서 176석의 절대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원하는 법안을 거의 대부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접수됐다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말에 웃음을 날릴 수 있었던 것도 여당의 절대 과반 의석 덕분이다. 추 장관의 미소에 담긴 여유와 자신감은 여권 곳곳에서 포착된다. 오래전 위헌 결정난 행정수도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간 야당몫으로 해오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고집하더니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여당과 정부가 발의한 법안들을 야당과 협의하는 과정을 생략한채 통과시키고 있다. 21대 국회 개원 당시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안건을 합의처리하겠다는 문건에 사인한 민주당은 추 장관 탄핵안 표결에 임하면서 “국회법 원칙에 따라 앞으로 반드시 상임위나 본회의에서도 표결로 처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수로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실제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야당의 반대에도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강행처리했다.

‘법대로 하겠다’는 민주당은 좀 더 겸허해져야 한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에 취해 기존의 제도와 가치를 송두리째 뒤집어보겠다고 나섰다가 당이 와해되는 수준까지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이어진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부도 18, 19대 총선이 만들어낸 여대야소의 이점을 선용하지 못한 채 권력을 남용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초래하며 집권당이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21대 총선은 코로나19 변수가 개입되면서 국민들의 책임정치 요구가 비정상적으로 분출된 선거였다. 문재인정부 임기 중반에 치러진 선거였는데도 정부는 격려받고 야당이 심판받았다. 문재인정부가 잘해서 포상받은 선거였다고 말할 수 있나. 그만큼 여권이 져야 할 책임의 총량은 더 커진 셈이다.

‘법대로 민주주의’는 독재의 수단이었던 사례가 많다. 법대로 하자면 정치가 왜 필요한가. 민주주의는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 올해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을 선택한 41.5%(지역구 득표율)의 유권자도 바라보면서 가야 한다. 절대 과반의석이라도 때론 후퇴할 때가 있어야 한다. 이기더라도 부분적 승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조남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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