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답변에선 고민의 일단이 보였다.
이 대표는 최근 한국방송기자클럽토론회에서 민주당 내 강성 친문재인(친문) 지지자들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강성 지지자라 해서 특별한 분들이 아니라 매우 상식적인 분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놓인 여권 내 위치와 그를 둘러싼 정치 환경이 이 한마디로 선명해졌다. 전당대회에서 그를 압도적 1위로 밀어올린 건 친문이 주축이 된 권리당원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정부를 계승하겠다는 이 대표의 다짐도 이런 여권 내 역학과 무관치 않다.
그렇게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대표의 발언에서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로 소수 의견,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지 말라는 민주주의자의 목소리다. 지난 정부에선 진보, 보수를 떠나서 ‘여당 안의 야당’이 존재했다.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초선 의원이 대통령의 면전에서 실세 인사의 용퇴를 진언하는 일도 있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도 여당 내에는 청와대와 여당 주류를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조국·추미애 논란 같은 이슈가 불거지면 의원총회가 난상토론장으로 변했다. 지금은 대통령이나 당 대표 등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그걸로 끝이다. 이 정부 들어 친문에 맞서 소신 발언을 내놓던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의 궁박한 처지가 현 여권의 분위기를 웅변한다. 이들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조국·추미애·윤미향 사태에서 친문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실상 왕따가 됐다. 금태섭은 당의 경고처분 징계까지 받았다. 박용진은 추미애 사태에 사과했다는 이유로 친문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항의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제 소수의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 정당이 되려는가. 이 대표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대목이었다.
민주당의 생태계는 친문 성향의 단일 수종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민주당에도 위험하다. 19세기 중반 유럽을 덮친 감자잎마름병의 최대 피해국은 소출량이 많다는 이유로 경작지의 절반에 단일 품종의 감자를 심었던 아일랜드였다. 일사불란한 여당은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조성대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그 조짐이 보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추천한 조 후보자가 야당 의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쥐 잡듯이 조 후보자를 몰아세웠다. 어떤 민주당 의원은 “후보자는 민주당이 추천한 만큼 민주당에 불리한, 혹은 공정하지 않은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임무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선관위원이 되면 정파적으로 활동하란 주문이다. 인사청문 자리에서 후보자를 상대로 헌법상 탄핵 사유가 될 행동 지침을 강요하나.
헌법이 주요 헌법기관에 국회 추천 몫을 둔 이유는 해당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그 기관에 민주적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는 추천된 인사 스스로가 임명권자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 있는 헌법 기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의 노력은 헌법기관의 중립성과 권위를 높이는 자양분이 된다. 존 로버츠 미연방 대법원장이 살아 있는 증거다. 그는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 판사였지만 2010년 오바마 민주당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오바마케어)이 위헌 심판대에 올랐을 때 합헌 쪽에 섰다. 로버츠가 왜 진영에서 벗어난 판결을 내렸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필자는 정파보다 국익을 앞세운 결단이었다고 본다. 보수든, 진보든 진영 논리에 빠진 지지자들이 항상 국익과 공익 편에 서지는 않는다. 이때 기꺼이 비난을 감수하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정치인이 용기 있는 지도자다. 이런 지도자를 알아보는 눈 밝은 국민이 많아야 한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국민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과거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익에 바탕한 결단을 내려달라는 취지의 칼럼을 쓰면서 이 경구를 인용했다. 당시 전남도지사였던 이 대표에게 이 경구의 출처를 물었던 기억이 난다. ‘국민’을 ‘지지자’로 바꿔도 그 뜻은 변하지 않는다.
조남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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