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된 ‘SKY’

2020년 SKY 신입생 2명 중 1명 고소득층
서울대 고소득층 출신 3년 새 19.5%P ↑
전국 의대·로스쿨 신입생 절반 고소득층
‘개천용’ 2006년 13.5%→2018년 11.7%
부모 문화적 자본도 승계… 교육격차 강화

‘금수저’ 물고 태어난 부유층 자녀 동경
‘흙수저’ 처지 자조하는 분위기 팽배
‘없는 집 자식’은 명문대 들어가도 좌절
외고 출신 등 동기 집안 배경에 이질감
“교육격차 완화 위해 공교육 수준 높여야”

‘107명’ VS ‘2명’.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지역 일반고 출신 학생 중 강남구 소재 학교 출신이 도봉구 소재 학교 출신의 50배가 넘었다. 강남구의 학생이 도봉구보다 3배가량 많은 점을 고려하면 강남구 출신 서울대 합격률은 압도적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로 확대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지역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자 10명 중 4명은 강남 3구 출신이었다.

18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공개한 ‘2021학년도 서울 자치구별 일반고 서울대 합격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지역 일반고 졸업생은 518명이다. 이 중 43.4%(225명)는 강남 3구 소재 고교 출신이었다. 강남 3구에 노원·양천구를 더한 ‘교육특구’ 소재 고교 출신 서울대 합격자는 315명에 달했다. 이들 5개 구 소재 고교 출신이 서울대 합격자의 60.8%를 차지한 셈이다.

반면 도봉구(2명), 성동·강북·중구(각 3명), 구로·영등포구(각 4명), 중랑·마포구(각 5명) 등은 서울대 합격자가 한 자릿수를 기록해 강남구(107명), 서초구(73명), 노원구(48명), 송파구(45명) 등과 간극이 컸다. 이 같은 격차는 현행 대학 입시제도에서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 외에 교육환경이나 부모의 경제적 능력 등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은 그동안 사회적 이동성을 키우는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계층 대물림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부르는 상위권 대학, 고소득 전문직종을 배출하는 의대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충원 방식이 더 열린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SKY’ 의대 신입생 4명 중 3명은 고소득층 출신이었고, 로스쿨의 경우 10명 중 6명이 소득분위 9∼10분위의 고소득층 자녀였다. 최상위 대학의 최상위 학과,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향하는 관문에 이미 고소득층 부모를 둔 자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만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노력만으로 의사나 법조인이 되기는 더 힘들어졌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유발한 ‘K자형 경제 양극화’가 이 같은 교육 양극화를 고착시킬 가능성이 커졌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중간층이 사라진 모래시계형 사회가 되면 ‘끈끈한 천장(상위계층이 떨어지지 않는 현상)’과 ‘끈끈한 바닥(하위계층이 올라갈 수 없는 현상)’이 만들어지면서 사회가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이동성 없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순 없다”며 “코로나19로 도움이 절실해진 학생들을 발굴하고 양극화 완화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소득층이 점령한 명문대·인기 학과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통계를 살펴보면 대학의 ‘계층 사다리’ 기능이 무너진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SKY’ 신입생 중 고소득층 자녀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 중 부모의 월소득 인정금액이 9분위(949만원) 이상인 고소득 가정 출신은 2017년 41.4%에서 2018년 51.4%, 2019년 53.3%를 거쳐 지난해 55.1%까지 늘었다. 서울대는 고소득 가정 출신 신입생 비율이 2017년 43.4%에서 지난해 62.9%로 3년 새 19.5%포인트 높아졌다.

의대와 로스쿨은 고소득층 자녀 비율이 특히 높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대·로스쿨 신입생 소득분위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신입생의 52.4%가 고소득층이었고, 전국 25개 로스쿨은 51.4%가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SKY 대학은 의대 신입생 중 고소득층 74.1%, 로스쿨은 58.3%에 달했다.

국제사회와 비교해 봤을 때도 한국의 교육 형평성이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성수 한국직업능력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PISA를 활용한 국가별·시점별 교육 형평성 측정방안 연구’ 논문을 보면 ‘성적 상위 25% 학생 중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하위 25%인 학생 비율’인 ‘개천용 비율’은 2006년 13.5%에서 2018년 11.7%로 하락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기반으로 비교한 결과 같은 시기 미국은 개천용 비율이 7.8%에서 8.9%로, OECD 평균 역시 9.3%에서 9.9%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부모의 자산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와 문화적 자본까지 대물림되는 현상이 교육격차를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정영현 교육정책디자인 연구소 정책실장은 “요즘 한국 사회는 부모가 중상층 이상이면 경제력 외에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다 물려받아 부의 대물림이 강화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보와 인적네트워크까지 자녀에게 대물림돼 재력 있는 부모의 자식이 시험 등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는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정환경과 부모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 인맥과 정보에 앞선 아이들이 입시에서도 유리한 건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교육 사다리’의 붕괴… 커지는 좌절감

전통적으로 계층 상승 통로였던 ‘대학 입시’가 계층 대물림의 수단으로 변하면서 청년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유층 자녀를 동경하고 가난한 집 자식인 ‘흙수저’의 처지를 자조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흙수저들은 명문대에 들어가서도 좌절감을 호소한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SKY’ 대학 중 한 곳에 재학 중인 대학생 김모(24)씨는 외고 출신인 대학 동기들과 대화할 때마다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다. 경기도 외곽의 고등학교에서 홀로 이 대학에 진학한 김씨와 달리 외고 출신 학생들은 같은 과에만도 한 학교 출신이 여러 명씩 있다. 대부분 집안의 경제력과 부모님 직업도 좋은 편이다. 고교 시절 학교에서 형성된 인맥이 대학으로 이어지는 건 물론 부모님들끼리도 아는 사이라 친구 부모님이 단기 인턴 자리를 구해줬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지방 대학을 졸업해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씨의 부모님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열심히 해 상위권 대학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은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김씨는 “부모님은 로스쿨 진학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외고 출신인 동기는 로스쿨 진학 계획을 부모님이 세워줬다고 해 충격을 받았다”며 “나 혼자 힘으로는 잘사는 집 친구들만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단순히 가진 기회가 다르다는 차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최소한 같은 길을 보고 있어야 기회의 유무를 논할 수 있는데 지금은 속한 계층에 따라 시야가 아예 달라진다”며 “계층 내부의 정보와 관계망 등이 상위계층 내에서 ‘끼리끼리’ 공유되는 현상이 심화해 하위계층 청년들의 박탈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사다리 복원을 위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공교육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양극화와 정보·기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식은 공교육 안에서 모두가 최상의 경험을 같이하게 하는 것”이라며 “방과후학교 등 우수한 공립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력 격차에 따른 환경적 차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원·이정한 기자 g1@segye.com

김희삼 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

한국 대학생, 성공요인 ‘부모 재력’ 1위 꼽아
中·日 대학생은 ‘재능’, 美는 ‘노력’ 최다 응답

“지금 청년세대는 과거와 달리 좋은 대학에 안간힘 쓰고 들어가도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김희삼(사진)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18일 세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가능성이 사라져 가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우려를 표했다.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청년들이 ‘개인이 노력으로 성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타고난 부모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요즘 청년들이 농담처럼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돈이 많고 싶다’고 하는데 결국 계층 대물림을 동경하는 인식을 내포한다”며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될 가망이 없으니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놀고먹는 처지였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소망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2017년 발간한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는 한·미·일·중 4개국의 대학생 각 1000명에게 ‘자국에서 청년이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가 담겼다. 한국 대학생은 가장 많은 50.5%가 ‘부모의 재력’을 꼽았다. 반면 중국과 일본 대학생은 ‘재능’, 미국 대학생은 ‘노력’이 중요하다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부모의 재력은 한국을 제외한 3개국에서는 청년이 성공하기 위한 요인 2, 3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성공에 중요한 요소 3순위로 ‘인맥’을 꼽았는데, 인맥에 관한 인식도 다른 나라 학생들과 달랐다. 김 교수는 “홍콩에서 청년들에게 인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친구 관계 등 자기의 인맥이라 답했다”며 “똑같은 질문을 한국 청년들에게 했을 때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사회 지도층이 인맥을 동원해 자녀를 특정 대학이나 인턴 자리에 꽂아주는 사례들이 우리 사회에서 잊을 만하면 나오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사회를 경험하기 전인 대학생일 때도 부모의 재력 혹은 인맥이 중요하다고 답한 것은 대학 입시에서부터 부모의 영향력이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보고 느껴온 결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교육현장에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도입할 때 사교육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공교육의 수준을 충분히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다음 세대의 필요에 맞는 좋은 교육적 시도들이 있지만 문제는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이런 새로운 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더 좋은 교육 자원이 학교 밖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을 찾아가게 되고 새로운 교육이 도입될 때마다 새로운 격차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격차 재생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급자 중심의 기존 교육을 탈피해 공교육 현장에서도 학생이 직접 창조하고 평가하고 상호작용하는 프로젝트 식의 수준 높은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교원 재교육과 외부 전문가 수혈 등 다양한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지원 기자

“바늘구멍도 이보단 넓을 거예요.”

취업준비생 이모(32)씨는 2년 넘게 준비하던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올해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 채용’을 도입하면서 취업 문이 크게 좁아졌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채용공고를 기다리려니 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겨우 지원서를 내도 합격 문턱을 넘으려면 비대면 면접·인턴 등 산 넘어 산이었다. 이씨는 “채용공고가 올라와도 2∼3명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것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지원하려는 기업이나 직군에서 공고 자체를 내지 않을 수도 있어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급변한 채용 환경이 청년세대를 압박하고 있다. 기업들이 채용 전형을 바꾸고 문턱을 높이면서 취업준비생들은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됐다. 첫 사회 진출이 늦어질수록 양질의 일자리에 안착할 확률은 줄어든다. 그만큼 생애 소득이 적어지고, 계층·세대 간 격차도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고학력을 기반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어 ‘인생 역전’이 가능했던 과거 세대의 공식은 청년들에게는 꿈같은 얘기가 됐다.

◆기업이 뽑아줄 때 기다리는 취준생들

코로나19 쇼크를 입은 기업들은 지난 1년간 채용 규모와 방식을 크게 바꿨다. 통상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하던 ‘공채시즌’이 사라지고 상시 채용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5대 기업 중 정기 공채를 유지한 곳은 삼성뿐이다. 2019년 현대차가 공채를 폐지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LG도 상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올해는 롯데가 상반기부터 공채 대신 상시 채용을 도입했다. SK는 올해 상반기 공채를 진행하지 않고 내년부터 상시 채용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의 상시 채용 도입은 코로나19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적시 적기에 뽑아 쓰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선 불확실성 증대로 구직활동이 고달파졌다.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예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공채를 계획적으로 준비했다면, 이제는 언제 뜰지 모르는 채용공고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며 “기업마다, 부서마다 공고를 내는 시기가 제각각이어서 내야 하는 이력서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상시 채용은 기업 상황에 따라 아예 신규 인력을 뽑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취업준비생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실제 코로나19로 기업들의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더 경직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에 상반기 계획을 물어본 결과 ‘상반기 신규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답한 기업은 17.3%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채용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8.8%)보다 두 배나 늘어났다. 상반기 채용계획을 세운 기업은 36.4%로 전년(58.7%)보다 크게 줄었는데, 이들 기업 중 채용 규모를 늘린 곳은 30%에 불과했다.

청년세대의 고용상황도 여전히 암울하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3월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31만4000명 증가했다. 코로나19 쇼크로 13개월 연속 감소한 취업자 수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지만, 청년세대의 고용실태를 살펴보면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통계청 분석에서 청년층으로 분류된 15∼29세의 고용률(취업자 대비 인구)은 43.3%로 전년(41.0%) 대비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연령대를 세분화하면 대졸 취업자로 볼 수 있는 25∼29세의 고용률은 전년도와 같은 67.4%에 머물러 있다. 15∼24세의 단기 일자리가 늘어나 청년층의 고용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보일 뿐, 취업준비생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청년세대가 취업난으로 입은 타격은 다른 세대보다 깊고 오래간다고 진단했다. 추후 경제가 정상화되더라도 청년세대의 늦어진 취업에 따른 승진 지연과 경력 상실 등의 여파가 10년간 지속된다는 분석이다.

채용 환경이 급변한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 변화인 만큼, 시장 변화에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예전처럼 기업이 공채로 대규모 인력을 뽑아 교육하는 구조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원하는 사람만 원하는 시기에 뽑겠다는 구조여서 청년 일자리는 씨가 말라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설익은 비대면 채용, 취준생에겐 이중고

상시 채용으로 취업문이 좁아진 것뿐 아니라 문턱 자체도 높아졌다. 상시 채용으로 전환한 LG와 KT의 경우 ‘채용 연계형 인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2∼4주 정도의 인턴을 마친 뒤 최종 면접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취업 기간이 길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구직 기간에, 길게는 한 달가량 미래를 저당잡혀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인턴이 재택근무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높다. 취업준비생 박모(28)씨는 “인턴의 장점은 회사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데, 재택으로 하면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다를 게 없다”며 “들쭉날쭉한 채용 전형을 고려해가며 인턴까지 준비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된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도입된 비대면 채용 방식의 평가 기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반응도 있다.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통상 면접은 지원하는 회사의 인재상이나 분위기 등을 보고 준비하는데, 인공지능(AI) 면접은 평가 기준을 알기 어렵다”며 “인재상이 서로 다른 회사가 면접에서 같은 AI 프로그램을 쓰는 경우도 있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AI 채용 교육기관 다온컴퍼니의 최준형 대표는 “AI 면접은 말하는 내용보다는 표정이나 말투와 같은 태도를 주로 평가한다”며 “AI 면접을 준비할 땐 카메라를 보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AI가 딥러닝을 할수록 정교한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채용시장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구성·조희연 기자 ks@segye.com

계층 간 칸막이가 공고해지면서 일터에서의 갈등 구조가 전통적 ‘노사’에서 ‘노노’로 이동하고 있다. 기득권 사수에 나선 정규직과 철옹성 입성을 바라는 비정규직이 충돌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보호받는 정규직과 거대 노조의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4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이후 노노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를 찾아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를 특별 조사했고, 고용노동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31만6000명 중 64.9%인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인국공을 방문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서울대 비학생 조교들은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기간제 교사들과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정규직의 반발도 거셌다. 서울대 정규직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으로 들어와 비교적 수월한 업무를 하면서 같은 대우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며 반대했다. 근로자 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을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기간제교사연합은 “전교조가 반대한 것에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노노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국공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여론은 폭발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론 취업준비생까지 논란에 뛰어들었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그만큼 신규채용 인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1500명이 근무하는 공사에 1900명이 직접고용됐는데 신입을 뽑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노 갈등을 노동자 간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로 본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정규직은 한번 진입하면 평생 보장받는 철옹성에 있지만 비정규직은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에 같은 노동자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의 생산성을 높여 신규채용의 여력을 확보해야 갈등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된 노조 역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기활황으로 근로자가 귀했던 1987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조가 경영에 개입할 정도로 힘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기득권이 돼버린 노조가 이익단체 모습이 아닌 노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양극화가 축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353만14명(6.8%). 5일 기준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인구다. 지난 2월26일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는 사그라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년5개월간 일상도 크게 변화했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매우 어색하고 불안한 요즘 상황이다. 그럼에도 일부 집단의 이기적인 행동이 최고의 코로나19 백신인 시민 방역 활동을 방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사랑제일교회 등 종교단체 집회와 정부의 의료정책 전환을 이유로 집단 태·휴업에 나선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의 집단행동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1년여간 집단행동에 따른 주요 위기상황을 짚어본다.

◆몰래 집회·자료 미제출 등으로 코로나 확산 부추긴 종교시설

지난해 2월18일은 대구시민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의 불씨를 댕겼다. 이후 대구시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0일 만에 대구시에선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이에 대구시는 신천지 측에 교인 명단과 진단검사, 자가격리, 방역 협조 등을 요청했다. 하지만 신천지 측은 집합시설과 교인 명단을 누락시켜 대구시에 넘겼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곧바로 종교집단이 방역당국의 초반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더기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대구시의 행정기능은 마비됐다. 일각에선 ‘대구 봉쇄론’까지 거론했다. 종교단체가 확진자의 동선 공개와 코로나19 진단검사 등을 거부하면서 집단감염으로 이어진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는 지난해 8월12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대표적인 집단감염원이 됐다. 집단감염 역학조사를 위해 성북구청이 교회 측에 폐쇄회로(CC)TV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사랑제일교회는 당국 요청에 불응한 것은 물론 해당 자료를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다. 한 교인은 자가격리 조치를 받던 중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무단이탈해 산책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올 초 논란이 됐던 경북 상주시 BTJ열방센터도 일부 단체·세력의 집단행동이 나라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은 사례다. BTJ열방센터는 개신교 선교단체인 전문인국제선교단(인터콥)이 운영하는 종교시설이다. 인터콥은 지난해 10~12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당시 이곳에서 ‘50명 이상 집합금지’ 지침을 어기고 여러 차례 선교캠프를 열었다. 방역당국이 집계한 이 모임 참석자는 2797명이다. 지난해 11월 말 참석자 가운데 처음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연쇄감염이 잇따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방문 사실이 없다며 검사를 거부하거나 착신 불가, 결번 등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보건당국은 뚫린 방역의 구멍을 메우는 데 진땀을 빼야 했다.

지난해 8월15일 정부에 비판적인 5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광화문광장 등 서울 도심 일대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서울시는 집회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경복궁 광화문부터 덕수궁 대한문까지 1㎞ 거리를 가득 메웠다. 집회 현장 곳곳에선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 등 방역수칙 위반 행위가 목격됐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집회 참가자 중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전국 지자체 방역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확진자는 150명을 훌쩍 넘기더니 200명, 300명, 400명대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의료계 국민 생명·안전 볼모로 의료정책 전환 반대 으름장

지자체는 광화문집회 참가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대형버스를 타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추정되는 인원 일부는 검사를 끝까지 회피했다. 파악된 명단 가운데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 참석자도 있었다. 누락된 인원도 많았다. 지자체는 집회 참가 명단을 파악하고자 기지국에 협조를 구해 휴대 전화번호 추적을 했다. 올 3·1절 서울 곳곳에서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잇따랐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과 서대문구 독립문 등에서는 집회와 함께 차량시위도 진행됐다.

‘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안’도 그렇다.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치상 등을 제외한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박탈하고, 형 집행 후에도 최대 5년간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는 최근 ‘의료법 개정안’의 뼈대다. 의사를 포함한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도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월쯤 해당 법안이 추진되자 의협은 파업 으름장을 놨다. 코로나19 속에서 의협의 이런 행보는 조직 이기주의로 비쳐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결국 이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됐다.

그러자 의협은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수술실 내부 폐쇄회로(CC)TV 의무 설치법 역시 지난 4월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의협이 이해를 관철하려는 행동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의협은 지난 2월17일 법상 ‘대체조제’ 명칭을 ‘동일성분조제’로 바꾸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백신 접종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국민 건강을 위해 헌신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의사들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가뜩이나 지치고 힘든 의사들을 다시 한번 거리로 불러내겠다는 것이라면 의사들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감염병 사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당해야 하는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감염내과)는 “몇몇만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며 “모두 이타주의자가 돼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내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마음으로 현재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 버려야”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탈피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국난을 겪고 있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상황이 끝난다 해도 제2·3의 신종질환 출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반 ‘K-방역’을 내세운 한국의 요즘 상황도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을 꿈꾸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기는 여의치 않다.

신규 확진자가 연일 600명을 웃도는 국면에서도 일부의 집단행동은 멈출 줄을 모른다. 전문가들은 집단이기주의 분출은 코로나19 방역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전사회적인 위기 극복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집단이기주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적 공공의식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5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감염병을 막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먼저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보건 건강을 위해 방역 대책을 수립하고, 두 번째는 일정 기간을 두고 단체행동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의식수준이 낮을수록 자신을 모든 사례에서 예외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 법리적으로 압박을 가하기보다는 공공복리를 위해 자기 절제나 통제를 유도하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좌절감과 피로감이 높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중진 대구안실련 공동대표는 “감염병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커진 상황 속에서 개인의 이익이나 신념을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회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집단이기주의와 일탈행위로 공동체 안전이 계속 위협받는다면 불가피하게 제도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집단행동을 수용해 준다는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 개인의 방역이 국가의 방역과 직결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우 경북의대 교수(감염내과)는 “이기적 집단행동은 우리 사회에 균열을 초래해 국민 방역의 사회적 공감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지금은 자신만의 이익보다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때이고 자기의 권리 행사보다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에 유념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여러분,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500만장 이상 팔린 비디오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주인공인 로봇 마커스는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의 질타와 야유를 받는다. 이 게임은 2038년 안드로이드 로봇들로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미국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용직 노동에서부터 가사, 비서역할, 각종 컨설팅 등 세상 모든 직업군에 로봇들이 들어온 시대,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자신의 잃자리를 앗아간 로봇들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4차 산업혁명 시대, AI와 로봇과 공존하는 세상은 이제 게임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서비스직을 중심으로 무인화·자동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생산성은 올라갈 수 있지만 일자리 자체는 없어지거나 노동이 파편화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역행할 수 없는 흐름, 위협당하는 인간의 일자리

6일 IT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파괴’ 논쟁은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직물기계의 발명과 전기·전화의 발명, 석유의 발견 등 산업혁명이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될 때마다 일자리 파괴는 노동자들의 공분을 불렀다. 또 20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으로 3차 산업혁명이 도래해 컴퓨터·인터넷·온라인 기반의 정보화 사회가 출현했고 이제는 AI·로봇공학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9년 고용 전망 보고서는 한국 근로자의 43.2%가 AI와 로봇이 주도하는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인공지능 및 로봇의 일자리 대체 가능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직업종사자의 업무수행능력 중 12.5%는 AI와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비율은 2020년 41.3%, 2025년 70.6%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이 같은 AI시대로의 전환은 가속화되고 있다. 임금 상승과 비대면 시대의 바람을 타고 키오스크를 비롯한 단순 노동 업무는 기계화 및 AI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과거 산업혁명이 인류의 역사와 삶을 바꿨듯이 AI의 발전은 이제 시대적 흐름이 됐다. 단순 노동을 비롯한 일부 서비스 등의 일자리는 당장 사라질 위기다. 과거 농업 분야, 제조업 분야가 차례대로 자동화 과정을 거쳤고, 코로나19와 함께 판매, 계산, 배달 등 서비스업까지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AI시대의 일자리 전환은 역행할 수 없는 트렌드라는 점이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나 소비자 교육으로 변화할 수 없는 산업혁명과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4차 산업혁명과 지방세제 및 자동화 등을 연구해온 윤상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재정연구실장은 “이 같은 AI시대로의 전환은 역행할 수 없는 트렌드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AI시대의 도래와 직업의 전환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시대적인 변화이고 트렌드”라며 “과거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 현재까지 기술의 발전과 일자리와 관련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AI와 로봇의 시대가 오는 것을 인정하고 일자리와 일자리 간 이동이 가능한 능력을 배양하고 AI를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를 통한 새로운 기회, 인간 중심의 AI로 극복한다

해결책은 인간 중심의 AI 윤리를 적립하고 AI산업을 비롯한 관련 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AI를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동반자로 바라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를 위해 최근 산업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태동하는 AI산업을 위한 윤리 준칙 등이 제정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AI 개발사인 네이버는 서울대와 협력해 네이버 AI 윤리 준칙을 만들고 준수를 다짐했다. 네이버의 AI 윤리 준칙은 모든 구성원이 AI 개발과 이용에서 준수해야 하는 원칙으로 △사람을 위한 AI 개발 △다양성의 존중 △합리적인 설명과 편리성의 조화 △안전을 고려한 서비스 설계 △프라이버시 보호와 정보 보안의 총 5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네이버는 학계와의 협업을 통해 AI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네이버가 AI를 바라보는 관점과 기업 철학도 고려해 준칙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송대섭 책임리더(이사)는 “네이버 AI 윤리 준칙을 수립해 발표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 단계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학계와 계속 협업하고 현장에서의 적용 사례를 축적하며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준칙을 더욱 구체화하고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인간을 위한 AI를 바탕으로 보다 윤리준칙을 구체화해서 인간과 AI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환경과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AI윤리 정립에 나서며 AI와 사람이 함께하는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 시대 실현’을 목표로 30개 주요 과제로 구성된 인공지능 법·제도·규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AI기술 확산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융합되면서 AI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늘었다”며 “로드맵으로 AI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 개인의 권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낸 ‘미래의 일 보고서’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보편화되는 이른바 ‘로봇 경제’의 출현으로 2025년까지 세계에서 창출될 일자리는 1억3300만개이고, 로봇에 의해 대체될 일자리는 그 절반 수준인 7500만개로 예상했다. 로봇이 기존 노동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새롭고 더 복잡한 노동을 만들어내면서 전체 일자리는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창배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고객상담, 영업이나 서비스직, 교육훈련 등 인간만이 가진 복잡한 감성과 정서, 직관을 다루는 업무 분야의 경우 일자리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AI는 인간을 능가해선 안 되며 정부, 기업, 민간 모두 인간을 위한 AI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정부는 인간을 위한 윤리적인 AI의 개발과 발전을 위한 지원을, 기업은 윤리적이고 안전한 AI의 개발을, 민간은 정부와 기업의 중간자 입장에서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류를 위한 AI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단기 성과보다 미래를 내다본 일자리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미래 일자리 수요에 맞출 수 있도록 직업훈련에 초점을 맞춘 노동정책을 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취업지표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일자리에만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 고용노동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예상하는 일자리 예산은 모두 30조54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9.8% 늘어났다. 고용장려금은 6조4950억원에서 8조4450억원으로 30.0% 많아졌고, 2조8587억원이 투입됐던 직접일자리 예산은 올해 3조1630억원으로 10.6% 증가했다. 하지만 직업훈련 예산은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직업훈련 관련 예산은 지난해 2조2434억원에서 올해 2조2709억원으로 275억원 많아진 게 전부다. 고용부가 한국판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K-디지털트레이닝’을 운영하며 디지털·신기술 분야 실무형 인재 양성에 힘 쏟고 있지만 실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동계와 재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직접일자리 확대에 쏠린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산업이 등장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 수요가 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은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만 봐도 취업지원보다 직접일자리에 무게가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2017년 노동시장정책 유형별 공공지출을 살펴본 결과 우리나라는 GDP의 0.16%를 직접일자리 예산으로 투입했다. 이는 한국노동연구원이 분석한 16개 나라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16개 국가의 평균은 0.06%다. 미국과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일본, 호주 등이 직접일자리 확대를 위해 GDP의 0.01%도 투입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직업훈련은 반대였다. 덴마크는 GDP의 0.46%를 사용했고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0.28%와 0.18%를 투입했다. 반면 한국은 직업훈련에 GDP의 0.03%를 지원했다. 이는 16개 국가의 평균인 0.12%보다 낮은 수치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팀장은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앱 개발자나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처럼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일자리 시장 개방으로 이어져 왔다”며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을 때 일자리와 산업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스매치를 메워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1. 사업장을 운영하던 A씨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됐다. 몇 주 뒤 완치해 퇴원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직후에는 탈모, 가슴 통 증, 체력 저하 등에 시달렸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관절통, 근육통 등이 간헐적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사업장은 동네에 소문이 나면서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코로나19 후유증을 지속해서 겪고 있다”며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등 여전히 생계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2. B씨는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가정불화에 실업까지 겪어야 했다. 교회에 다니다 감염됐다는 그는, 주변에서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더 아팠다고 했다. B씨는 “11년 일하던 직장에서 꼬투리를 잡고, 잔소리를 심하게 해 관뒀다”며 “남편과 시댁도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는 확진자든 비확진자든 심신의 건강이나 경제활동 등 다방면에 큰 상처를 남긴다. 확진자들은 신체적 후유증을 겪는 것은 물론, 직간접적인 눈총에 시달리거나 실업 등 경제적 타격도 입는다. 이를 지켜보는 비확진자들도 혹시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산다. 사회 전반에 ‘코로나 우울’이 번지는 이유다. 우울한 분위기를 해소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코로나19 확진 후 후유증·실업 고통

21일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회복 환자 40명의 후유증을 조사한 결과 피로감(43%)과 운동 시 호흡곤란(35%), 탈모(23%), 가슴 답답함(15%), 두통(10%) 등을 호소했다. 정신과적 후유증으로는 우울감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이 나타났다.

C씨도 코로나19에서 완치했지만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 중 하나다. 일단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 물리치료를 받고 있고, 아직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코로나19로 남편을 잃은 슬픔은 그를 더욱 괴롭힌다. C씨는 “남편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며 “당시만 생각하면 안타깝고, 원망스럽고 그렇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해고되기도 한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확진 이후 직장가입 상실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2월 1일부터 9월 23일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진료비 승인을 받은 2만3584명 중 직장보험 가입자(6635명)의 19.7%인 1304명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임원인 D씨는 “임원이 코로나19에 걸리면 방역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줘 곧바로 집에 가야 할 수 있기에 더 많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손 잘 씻고, 체온 자주 측정하고, 꼭 KF94 마스크를 쓰는 등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우울’ 확산…마음건강 돌봐야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피해가 크다 보니,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두려움에 시달린다.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건강은 악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조사한 ‘코로나19로 인한 정신건강실태’를 보면 지난해 3월 조사에서 5.1점(27점 만점)이던 우울 점수는 5월 5.12점, 9월 5.86점, 12월 5.52점으로 높아졌다. 2018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 나타난 우울 점수 2.34점보다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우울감으로 인해 피로 0.99점, 흥미와 즐거움 없음 0.87점, 수면문제 0.83점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10점 이상일 때 분류되는 우울 위험군도 5월 18.57%, 9월 22.1%, 12월 19.97%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응답자 중 자살 생각을 했다는 비율은 3월 9.66%에서 12월 13.43%로 급증했다. 특히 활동이 많은 19∼29세 연령에서 상승폭이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장이 코로나19 감염 이력을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재택근무, 연차사용, 퇴사 등을 강요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정부는 근로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

심리 지원도 있어야 한다. 정부는 전국 권역별로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해 심리 치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후유증은 선진국 사례와 후유증·격리해제 후 치료비 지원대상 및 규모, 재정 영향, 다른 감염병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지원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 우울’ 극복을 위해서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코로나19가 준 선물이 있다면 시간”이라며 “쓸데없는 모임이나 회식으로 낭비했던 시간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좋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들을 지금 해보라”고 권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었거나 외식업, 여행업 종사자들 주변에 힘든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지원요청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英, 완치 후에도 ‘후유증 클리닉’서 치료·재활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감염병은 완치자들에게도 신체·정신적 후유증,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 때문에 해외 주요국들은 지역사회 등과 연계한 사후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전세 역전에 성공한 영국이 비교적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병원을 퇴원한 뒤 집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있다.

영국 보건부는 지난해 8월 재가 서비스가 필요한 퇴원자들을 위해 5억8800만파운드(약 9152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격인 국민보건서비스(NHS) 심사를 거쳐 최장 6주간 관련 비용을 지원한다. 전체 퇴원자 45%가 지원 대상이다. 나머지 절반은 자원봉사자와 지역사회 도움을 받아 회복할 수 있게 한다.

영국 NHS는 ‘롱 코비드’(Long Covid)로 불리는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웹사이트엔 장기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찾아갈 수 있는 영국 전역의 클리닉 69곳 목록을 정리해놨다. 이 클리닉에선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의 신체·정신 평가를 기반으로 한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국도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 클리닉이 설치돼 있다. 특히 확진자나 완치자를 위한 풀뿌리 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점을 주목할 만하다. 생존자 군단(Survivor Corps), 보디 폴리틱(Body Politi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에 걸려 힘들었던 점이나 코로나19를 이겨낸 경험 등을 공유하고, 온라인으로 국제적 연대도 도모한다. 영국에도 코로나19 후유증을 겪는 당사자들이 만든 롱 코비드 서포트(Long Covid Support)란 단체가 있다.

인구대국 인도는 지난해 9월 마련한 ‘포스트 코로나19 관리 프로토콜’에 따라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퇴원 뒤 7일 이내에 반드시 병원을 찾거나 전화 상담을 받아야 한다.

캐나다는 코로나19 완치자뿐 아니라 사태 장기화에 따른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 전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웰니스(Wellness, 웰빙·행복·건강 합성어) 투게더 캐나다’란 포털사이트를 통해 자가 진단, 온라인 코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4시간 동안 매일 전문 상담사와 전화나 문자 무료 상담이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후유증이 전 세계 보건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퇴원자나 급성 증상이 호전된 사람들의 임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이다. WHO의 재닛 디아즈 박사는 지난 2월 “롱 코비드로도 불리는 포스트 코로나19 증상은 급성 증상이 있은 뒤 한 달, 심지어는 6개월 뒤에 나타날 수 있다”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경·정필재·박유빈·박진영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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