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7년의 일입니다. 
톰 대슐은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그 것도 상원 원내총무로 여당 실세였으니
그 위세가 가히 볼만했겠지요.
그 해 대슐은 자신의 정치 후원금 모금 행사를

지역구인 사우스 다코타 주의
러시모어 산에서 개최합니다.

러시모어 산은 역대 대통령들의 대형 얼굴 조각으로 유명하지요.



이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은
러시모어 국립공원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으면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얼굴 조각상(위 사진 맨 왼쪽) 머리까지 올라갑니다.

만약 일반인들이 그랬다면?

당연히 쫓겨나고 벌금 500달러를 물어야 합니다.

 

 200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톰 대슐이

정치권 로비가 주 업무인 로펌(앨스턴 앤 버즈)에 둥지를 튼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구시대 정치에 물든 그에게
로비스트로의 변신은 손바닥 뒤집기였을 것입니다.

그의 변신 과정에서 다리를 놓은 인사는
이미 그 로펌에 둥지를 틀고 있던 로버트 돌이었습니다.
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돌 역시
구시대 정치 속에서 성장해온 인물입니다.
1995년 여름,
돌은 자신에게 2만 달러 이상 후원금을 낸 
이글스 멤버들을

야간에 미 국회의사당으로 특별 초청합니다.
그리곤 자신이 가이드가 되어 이 곳 저 곳 구경을 시켜줬다는군요.
만약 이 시간에 일반 관람객이 의사당에 들어갔다면?
의회 경비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렀을 것입니다.

비록 당은 다르지만 동병상련이라고,

대선에서 낙마한 돌이 잘 나가다 추락한 대슐을

챙겨주는 차원에서 중간에서 다리를 놨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이 받은 연봉은?
K스트리트(워싱턴 D.C. 로비 회사 밀집 거리) 관행상
돌이나 대슐 정도 거물이면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은 너끈히 받았을 것입니다.
로비회사에서 그 돈을 거저 주지는 않았겠지요.

70년대만 해도 전직 의원들의 3% 만이 로비스트로 전직할 정도로
국회의원이 명예로운 공복의 자리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요즘은 낙선한 뒤 로펌으로 옮겨가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로
국회의원 직책이 이권화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바로 대슐 같은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워싱턴 정치를
확 바꾸겠다는 그의 목소리에 국민들이 응답한 결과입니다.
그런 오바마가 대슐을 보건장관에 내정한 것은
그런 면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로비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오바마였기에
국민들은 그의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오바마로서는,
단기필마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세론을 타고 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 대신 자신을 지지해준 대슐에게
뭔가 정치적 보답을해줘야한다는 부채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바마가 현실과 타협한 순간,
그는 정치적 편의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워싱턴 정치꾼과 다를 바 없는 인물로 전락했습니다.
오바마는 상처를 입었고
대슐은 그의 이미지에 걸맞게 결국 탈세 문제가 불거져
장관 내정자 신분을 스스로 벗어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은 3일 CNN 등과의 연쇄 인터뷰를 자청해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고 사과해야했습니다.
자신감이 흘러넘치던 그 답지 않게,
“스스로 자초한 상처라서 화가 난다”(ABC방송),
 “내가 망친 만큼 벌 받아도 싸다”(NBC방송)면서
회한의 감정도 내비쳤습니다.

AP통신은 오바마의 이 같은 행태를
그의 저서인 '담대한 희망'에 빗대
‘담대한 시인’이라고 부르면서
임기 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세라고,
좋게 봐줬습니다.
과연 오바마다운 솔직한 자세이고
얼마간 까먹은 점수를 만회했을 법도 하지만
그의 행보가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경구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슐과 돌의 사례는
 탐사 보도 기자인 찰스 루이스의 저서
The Buying of Congress(의회 매수하기)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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