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우 명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다선 의원으로 여야 가길 것 없이
두루 두루 신망이 높았습니다.
정파적이지 않았고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특히 여성 단체들의 지지가 높았습니다.
여권 신장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속 정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낙태 문제에서도
그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낙태 반대론자들의 협박을 받아
의회 경찰이 그의 신변 보호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참모 중에도 좋은 자리는 가급적 여성에게 배려했습니다.
 
 92년 11월,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리자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수 많은 여성들은 경악했습니다.
그가 70년대부터 20여명이 넘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괴롭혀왔다는 기사였습니다.
의회 윤리위 조사 결과, 이 중 최소 17명의 여성이
그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의원실 보좌관과 선거 운동원, 수행 비서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입맞춤을 시도하거나
강제로 껴안으려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성추행 행위를 고발하는 한 여성 단체의 포스터>
 
 언론 보도로 사건이 공론화하자
여성의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야가 없었습니다.
사건이 터진 타이밍도 최악이었습니다.
한 대법관 지명자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유야무야된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은 국민들의 머릿 속에서
하나의 성추문 사건으로 결합했습니다.
순식간에 정치적 쟁점이 됐습니다.
이 사건은 상원 윤리위에 회부되고
공개 청문회 개최 여론이 빗발쳤습니다.
그는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일부 혐의를 시인하고
당사자들에게 사죄합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이 알코올성 정신장애 탓이라는
의사의 소견서도 첨부됐습니다.
때 늦은 사죄, 공허한 변명으로 치부됐습니다.
 
 의회 윤리위는 95년 9월 6일
그의 알코홀릭 증세를 인정하면서도
'알코홀릭 증세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여야 합의하에 만장일치로
그를 의회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그 다음날 의원직을 사퇴합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한 순간에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어이없는 인생의 주인공은
미 오리건주 출신의
밥 팩우드 전 상원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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