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 실현을 목적으로 출범한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eriat·TCS)이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3국간 역사인식의 차이라는 암초를 만나 3국 정상회의는 2012년 5월, 3국 외교장관 회의는 2012년 4월 이래 2년째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신봉길 초대 사무총장에 이어 3국협력사무국의 지휘봉을 잡은 이와타니 시게오(岩谷滋雄) 사무총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이와타니 사무총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국이 역사인식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서로 ‘톨레랑스’(자신과 다른 생각·신념을 가진 것을 용인하는 관용)를 갖고 서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3국 협력사무국에서 이뤄졌다.


 

―2년째 한·중·일 정상회의는 고사하고 외교장관 회담도 열리지 않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2년간 열리지 않는 상황은 3국 협력에서도 손실이다. 다만 협력이 연기되는 분야가 있으나 이전과 같은 페이스로 협력이 진행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정치 부문에서는 업·다운(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는 약간 다운되는 시기이나 장기적으로 볼 때 개선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두 개의 어프로치(접근법)가 있다. 하나는 이런 상황에 관계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3국 협력관계를 더욱 촉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관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2010년 5월 3국 관계가 조금 더 좋았던 시기에 ‘비전 2020’이라는 3국 정상이 합의해 작성한 문서가 있다. 그 시점부터 향후 10년간 3국 협력을 해나가자는 꽤 긴 문서였는데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엄청 많다. 이것을 착실하게 하나하나 실현시키는 것을 통해 3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양자 문제의 경우 3국협력사무국이 다룰 수는 없지만 3국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테마를 정해서 작으나마 공통인식을 만들도록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양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도 연관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3국 정부 간에 이런 일을 진행하기는 몹시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학자 등 민간대화를 촉진해 (3국간의) 핵심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상황을 개선할 돌파구를 찾도록 하는 것도 사무국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3국 공통의 문제라고 한다면 한·일, 중·일 양자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문제가 있다. 다만 역사문제도 양자 간에는 공동연구가 이뤄졌으나 그 결과가 양국 관계를 촉진하는 것으로 그리 연결되지는 못했다. 만약 한·중·일 학자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전전(戰前)부터 전후에 걸쳐 이 지역에 크게 관여한 미국의 역사, 정치학자들이 모여 논의한다면 무엇인가 역사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라든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일 일본군위안부 관련 국장급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부분에 성과가 있으면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분위기다. 사무국 차원에서 절충안이나 제안을 내놓을 계획은 없는가.

“양국 간 문제, 개별적 문제는 사무국의 업무 범위 안에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런(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안을 하면 3국 정부 모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제를 보다 넓게 설정해 역사문제에 대해 서로 공통이익을 갖도록 인식을 좁혀간다는 목적 하에 사무국이 무엇인가 기여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국간 어떤 차이가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보나.

“불충분한 지식으로 그런 큰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짧게 말하면 오해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그래서 먼저 각론으로 들어가면 한·중·일 3국의 의식주(衣食住)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예의와 습관, 교제 방식에서 서로 간의 차이를 3국이 서로 이해하고,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구미(歐美)에는 톨레랑스라는 말이 있다. 톨레랑스가 없으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꽤 어렵다. 상대방의 차이를 인식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의 방식도 존중하고 자신의 방식도 존중받는 인간관계가 가능하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3국협력사무국은 2011년 이후 어떤 역할을 했나.

“협정에 규정된 역할은 크게 다섯 가지다. 3국 정상회의 등 각종 회담 준비, 아세안 등 다른 국제기구와 연계, 기존에 협력 분야가 없거나 촉진시켜야 할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 제안, 3국협력진척보고서 작성, 3국협력 분야에 대한 연구다. 특히 다른 국제기구와의 연계와 관련해 3국 협력이 발전하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도 일체화(통합)하는 방향도 생각하고 있어 아세안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또 러시아, 몽골, 유럽연합(EU)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한·중·일 3국이 유럽처럼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관건은.

“물론 유럽에는 유럽의 문화가 있고, 여기(동아시아)에는 여기의 문화가 있다. 그래서 완전히 유럽처럼 이쪽도 나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역시 유럽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동아시아는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나 확실한 법적인 의무, 문서에 근거한 의무가 아닌 수준의 협력에 머물러 있다. 반면 유럽은 좀 더 확실한 법적 틀 안에 있다. 이것이 큰 차이다. 3국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끝나고 실제 발효되면 조약의 형식으로 (3국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게 된다. 법적인 틀을 만들어 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 환경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3국 협력을 새롭게 촉진시켜야 할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

“스포츠가 뜻밖에 아직 충분한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분야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담당 장관급 회의라든지 고위급 레벨에서의 3국 회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서 제안한 바 있다.”

―그동안 부임 후 3국간 편견의 극복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구상하거나 실행 중인 프로그램은.

“3국에서 모두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다. 그래서 3국의 문화, 사고방식이 비슷하다고 생각(오해)하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부작용이 되고 있어 서로 차이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3국 문화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주제로 전문가의 강연을 듣는 월간 강좌(Monthly Lecture) 행사를 열고 있다. 어떤 특정한 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서로 파악하면 편견을 극복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일례로 3국이 모두 젓가락을 쓰지만 형태나 사용법은 다 다르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사례를 통해 3국의 문화, 사고방식의 차이를 일반 시민에게 설명하고 책자로 배포한다면 서로 올바로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에 속해 있어 주한 일본대사관 소속 일본 외교관보다는 자유로운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서 한·일 간 현안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계획은 혹시 없나.

“사무총장의 입장을 떠나 한 명의 일본인, 외교 분야에서 일한 일본인으로서 이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주 안타깝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제가 가능한 것이 있다면 하고 싶은 생각도 있으나, 무엇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저는 사무총장직에 전념하면서 하나하나의 문제에 몰두하는 것보다 보다 큰 틀에서 불행한 역사문제가 양국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넘어설 길이 없을까 좀 더 크게 생각해 보고, 3국 정부 간에는 힘들지만 민간 레벨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있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청중, 사진=김범준 기자

■이와타니  3국협력사무국 사무총장 약력…

▲1950년 일본 고치(高知)현 출생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 법학부 ▲1973년 외무성 입성 ▲주중국공사 ▲주독일공사 ▲주하와이호놀룰루총영사 ▲주케냐대사 ▲주오스트리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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