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조기자닷컴

CHOGIJA.COM — Journalism by Namkyu Cho

조기자가 만난 사람들

안호영 주미 대사 관훈클럽 초청 토론

19분 읽기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 관훈초대석 2016년 3월 16일

사회 이강덕 (관훈클럽 총무·KBS 디지털뉴스국장)

토론 조남규 (세계일보 국제부장) 김희준 (YTN 정치선임데스크)

안호영(주미 한국대사): 먼저 이렇게 관훈클럽 여러 회원 여러분들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이라는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클럽이라는 게 결국은 멤버들이 모여서 되는 건데 훌륭한 클럽은 뭐냐? 제 생각에 훌륭한 클럽은 첫째 연 륜이 있어야 되는 것 같고요, 둘째 회원들이 나름대로 이런저런 회의를 구 성하는 핵심목표(core purpose)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어야 될 것 같은 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저는 관훈클럽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 의 언론인 클럽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훈초대석에 초대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관훈클럽 여러 회원님들을 뵙게 되어 개인적으로 대단히 큰 영광이라는 말씀을 먼저 올리겠습니다. 이곳에서 관훈클럽 회원님들을 뵙게 되니 78년에 제가 외교부 생활을 시작하던 생각이 불현듯 납니다. 제가 78년 외교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북미 과에 배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회원님들 다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출입기자들이 글자 그대로 출입을 했습니다. 과 단위까지 출입을 했었는데 북미과에 근무하다 보니까 그 당시 먼발치에서 뵙던 회원님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먼발치라는 건 왜 그렇게 말씀드리느냐 하면 북미과에 들어오시면 우리 과장을 만나러 오시는 거죠. 저는 과장이 계신 자리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먼발치에서 뵐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그런 시절이 기억나고, 그다음에 1990년이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1990년에 제가 주미대사관에 1등 서기관으로 부임했습니다. 1등 서기관으로 부임했는데 그때 제 임무가 뭐냐 하면 정치군사입니다. 주미대사관 에 부임하면 다들 정무과를 가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 그 당시에는 다들 정무과를 가고 싶어 했고, 정무과 가게 되면 정치군사 담당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제가 정무과에 갔고, 웬일인 지 저한테 정치군사 임무가 맡겨졌고 그래서 제가 정치군사 담당관을 했 었는데, 그때 제가 워싱턴에서 같이 생활하던 언론인들께서 또 이 자리에 계시고요, 그다음에는 제가 오직 칼럼을 통해서만 좋은 글을 읽고 감동을 하고 나름대로 외교관으로서의 식견을 키우고 그러던 회원님들이 와 계시 고요, 그래서 제가 영광이라고 드린 말씀은 결코 지어내서 하는 말씀이 아 니고 실제로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1990년에 제가 주미대사관에 부임해서 정무과장으로 근무했는데 몇십 년이 지나서 2013년에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대사로 근무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연륜 그리고 경험의 중요성입니다. 첫 번째, 제가 워싱턴에 부임했던 1990년이라는 시기가 국제정치적 의미로 보자면 냉전이 막 정리되던 그런 시기였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 제가 근무하는 3년 동안 계속 워싱턴에서 도대체 새로운 국제질서라는 게 어떤 형태를 띨 것이냐, 그 이 야기들을 3년 내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 질서는 무너졌고 새 질서가 와야 될 텐데 새 질서는 어떻게 생길 것이냐는 논의가 활발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북한핵 문제가 처음 대두되기 시작한 게 1991년, 1992년입니 다. 비핵화공동선언과 함께 북한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비핵화공동선언 생각이 납니다. 세 번째는 1992년이 대통령선거의 해였습니다. 대통령선거의 해인데 92 년이 시작되던 그 시기는 41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거의 90%였습니 다. 그러니까 그때는 민주당에서는 후보들이 출마를 망설일 시기였습니다. 그 정도로 아버지 부시가 당연히 재선된다고 그러던 해인데 결국은 그해 11월에 클린턴으로 바뀌었죠. 즉, 제가 1990년에서부터 1993년까지 근무했는데 그 당시 경험한 것을 3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국제질서가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바뀌었다는 것, 두 번째는 북한핵 문제가 처음 대두되던 시기였다는 것, 세 번째는 대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2013년 대사로 부임해서 워싱턴 에서 활동하면서 90년에서 93년까지 경험했던 그 3가지 사실들이 내가 지 금 대사로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냐하면 첫 번째 탈냉전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개인적으로도 굉장 히 궁금했습니다. 뭐가 궁금했느냐? 탈냉전시대의 국제질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다음에 더 궁금한 것은 미국이 과연 자기의 포지션을 어떻게 잡 을 것인지, 젊은 외교관으로서 저는 그것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1990년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었지요. 냉전식 국제질서 논리로 보자면 군사 개입이 고려될 텐데 이제 냉전이 끝났으니 미국이 어떻게 할 것이냐? 대 단히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해 1월에, 91년 1월에 결국은 개입했죠. 그래서 그 당시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미국이 냉전은 끝났지만 계 속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다음에 그것이 한반도에도 분명히 함의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조금은 안심이 되는 측면이 있었고요, 제가 몇 년 전 읽은 책이 있습니다. Council on Foreign Relations(CFR)라는 미국의 가장 권 위 있는 외교협회 회장을 하는 리처드 하스(Richard N. Haass)가 쓴 책입니 다. 그 책 제목이 뭐냐 하면요, ‘해야만 하는 전쟁, 선택에 따른 전쟁’(War of Necessity, War of Choice)입니다. 거기 보면 미국이 했던 전쟁을 그 2가지 기준에 따라서 분류해 놨습니다. 해야만 하는 전쟁(War of Necessity)이라고 쓴 전쟁이 있고, 선택에 따른 전쟁(War of Choice)이라고 쓴 전쟁이 있습니다. 그런데 91년 1월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해 하스가 뭐라고 표현을 해놨느냐 하면 미국이 냉전 이후에 한 최초의 전쟁이다, 이렇게 써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하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냉전이 끝났는데 냉전이 끝난 세계에서 미국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될 것인지, 그다음에 전쟁이라는 걸 외교의 도구로서 어떻게 볼 것인지, 이 사 람도 그 생각을 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으면 그것을 그렇게 표현했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냉전 이후의 최초의 전쟁 이라고. 그것이 결국은 미국이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 국제정치에 있어 미국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 하는 문제였다고 생 각합니다. 제가 미국 정치가를 만나건, 관리를 만나건, 언론인을 만나건, 학자를 만나건 지금 일어나는 국제현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리처드 하스 의 전쟁 분류 이야기를 하면 금방 공감하는 분들이 많습니 다. 그래서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1990년에 제가 젊은 외교관으로서, 1등 서기관으로서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것이 참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제가 말씀 드린 게 북한핵 문제입니다. 북한핵 문제가 1991년, 1992년 비핵화공동선언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그 당시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정치군사 담당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핵 문제가 제 업무였어요. 그 당시 IAEA 이사(Governor)를 하던 케네디 대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보좌관이 개리 새모어 (Gary Samore)예요. 개리 새모어, 여러 회원님들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1991년에는 개리 새모어가 지금처럼 유명인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핵 문제가 대두됐는데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제일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게 개리 새모어더라고요. 개리 새모어가 사실은 그 당시 제 가정교사였습니다. 91년, 92년에 북한핵 문제를 다룬 다음에 많은 세월이 흘렀죠. 그러나 25년 전 북한핵 문제를 최초로 다뤄 봤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가령 94년에 제네바 핵협상을 이끌었던 갈루치(Robert Gallucci)를 만난다거나 하면 제가 91년, 92년부터의 배경을 아니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면 좋은 협의의 기반 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세 번째 말씀드렸던 게 92년 대선이었는데 아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런 대선이었습니다. 제가 아까 연초에 대선 시작할 때는 41대 부시 대통령 이 천하무적으로 보였다고 말씀 올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해 11월에 클린턴이 당선되었지 않습니까? 그 1년 동안 미국 국내정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거죠. 올해 또 대단히 흥미진진한 대선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국내정치 전문가들이 수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미국 사람들을 만나 서 이야기할 때 92년 대선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저 친구 미국 국내정치 뭘 좀 아는구나 해서 또 이야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제 가 78년 외교부에서 처음 북미과에서 시작하고 90년 워싱턴에 가서 한 3년 근무하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워싱턴에 대사로 부임했는데, 78년 북 미과에서 제일 말단으로 근무했던 그 경험, 그다음에 90년에 1등 서기관으 로 아주 새파란 젊은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그 경험이 결국은 지금 대사로서 활동하는 데 큰 버팀목이 되어 주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 회원님들 뵈었더니 역시 관훈클럽이 훌륭한 클럽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자꾸 좀 비약이 되었습니다. 관훈클럽이 어느 사회, 어느 문명사회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언론이라는 직업을 놓고 여러 세대의 회원님들이 모여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계속 의견을 교환하시고 그러한 경험을 축적해 나간다는 것을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관훈클럽에 초청받은 것이 저로서는 너무 큰 영광이 고, 제가 지금 말씀드린 그 기초 위에 회원님들께서 가지신 이런저런 관심 사항에 대해 제가 나름대로 아는 범위 내에서 말씀 올리는 순서로 진행하 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토 론 사 회: 내일 빨리 워싱턴으로 돌아가시는 것도 핵안보정상회의 준비하는 게 제일 중요해서 가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핵안보정상회의와 지금 북한 의 핵문제하고 시점이 겹쳐 있습니다. 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이번에는 북한핵 문제를 조금 다뤄야 되지 않는가? 그동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한 핵무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아 왔는데 좀 다룰 개연성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핵 안보정상회의에서는 북한핵 문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재 같은 것 을 다루는 문서 형태의 결의도 나올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그렇 게 될 수 있을까요? 핵안보정상회의 북한핵 문제 안 다룰 것 안호영: 회원님들께서 국제문제에 대단히 식견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만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가 지금 이강덕 총무 말씀하신 핵비 확산(nuclear nonproliferation)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그것을 먼저 말씀 올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7년 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Nuclear Free World)”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정책으로 표방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공백(gap)을 메꾸겠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공백이라는 게 뭐냐 하면, 오바마 대통령 판단에 핵과 관련된 3가지 중 요한 이슈가 있는데 비확산(nonproliferation)이 있고, 두 번째 안전(safety), 이것은 원자력 시설을 운영할 때의 안전조치겠죠. 세 번째가 뭐냐 하면 핵물질 방호입니다. 핵물질이 많이 생산되는데 이것을 도둑질당해서도 안 되겠 고, 테러리즘에 이용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게 세 번째입니다. 비확산(nonproliferation), 아니면 안전(safety), 이것은 국제적인 협력체제가 많지 않습니까? NPT라는 게 그렇고, IAEA라는 게 그렇고. 그런 많은 국 제 체제를 통해서 비확산과 안전(safety)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데 7년 전 오 바마 대통령이 판단할 때는 핵안보(security)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까 핵물질 방호라든가 테러리즘 억제라든가 이런 문제를 다루는 마땅한 국 제기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공백이고 이것을 메꾸겠다고 시작한 게 핵안보정상회의(NSS)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회의가 2010년 워싱턴에서 열렸고요, 두 번째 회의가 2012년 서울에서 열렸고요, 세 번째 회의가 2014년 헤이그에서 열렸고요, 그다음에 올해 네 번째이자 마지막 회 의가 워싱턴에서 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의 기원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말해서 같은 핵이지만 비확산 문제를 다루는 회의는 아니라는 걸 첫 번째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최근에 북한이 1월 6일날 제4차 핵실험을 했고, 그냥 4차라는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아주 특별히 우려스러운 그런 핵실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에 50명이 넘는 많은 정상들이 모인다고 하니 그 자리 를 빌려서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분을 표시하고 북한으 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어떤 결의를 표명하는 자리로 활용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게 이강덕 국장의 말씀이신데, 물론 그렇게 노력해 나가 야 되겠습니다만 전반적인 여태까지의 배경을 보면 여기서 다른 문제가 자꾸 논의되는 것은, 말하자면 그 문제를 다루는 자리들이 다 있는데 그 자리에서 다루는 게 더욱 효과적이고 여기 와서 또 그 문제를 다루게 되면 이 회의의 본질인 핵안보(Nuclear Security) 문제가 아무래도 좀 경시되는 것 아니냐는 그런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두 번째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지금 제가 드린 말씀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는 이슈가 되겠습니다만, 소위 말해서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역할이 뭐냐, 우리의 좌표가 뭐냐,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핵안보(Nuclear Security) 문제도 어떻게 보면 핵문제에 관심을 많이 나타내는 것이고 평화적 이용에 대해서도 우 리가 관심이 많고요, 그다음에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기 때 문에 우리가 국제사회에 나름대로 일정부분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평가받을 수 있는 그런 회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남규(세계일보 국제부장): 김희준 부장께서 질문하신 것 중에 중국이 평화 협정하고 비핵화를 동시에 논의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던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논의가 뉴욕채널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 우리 주미대사관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안호영: 중국이 동시 병행추진을 제안했다고 조 부장께서 말씀하셨는데, 아까 제가 김희준 부장 말씀하셨을 때 우리가 중국 입장을 잘 알고 있지 않 느냐는 말씀 올렸지 않습니까? 중국은 북한핵 문제만 나오면 꼭 3가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첫째, 비핵화가 중요하다. 두 번째, 한반도의 안정 화가 중요하다. 세 번째, 모든 것을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야 된다. 그 이야 기를 한결같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뭐든지 균형되게 해 야 된다는 게 중국의 기본입장인 것은 물론 저희가 잘 알고 있고요, 그런데 병행추진하자는 걸 저희가 한번 생각해 보면 지금 조 부장님, 이 시기가 어떤 시기입니까? 북한이 1월 6일날 제4차 핵실험을 했는데 이건 대단히 위중한 사태라고 저희가 인식하고, 2월 7일날 미사일 실험을 했는데 그것도 여섯 번째라는 게 문제가 아니고 결국은 그 시점과 그 테스트의 성격이 굉 장히 위중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남한을 위협하고 미국 을 위협하고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그러고 있는 마당에 우리 평화체제를 논의하자, 지금 과연 그것을 할 수 있는 분위기냐, 그것은 저희가 한번 생각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병행추진이라는 것도 글자 그대로 병행추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가자는 이야기를 했던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다음에 뉴욕에서 그런 논의가 이루어졌던 걸 알고 있었느냐, 그 말씀 하셨는데 한·미 공조는 그 실질내용(substance)도 그렇고, 타이밍도 그렇고, 절차도 그렇고 대단히 긴밀히 협의합니다. 그래서 일부 그런 논란이 있는 만큼 또 우려가 있었던 걸 저도 지상을 통해서 봤습니다. 미국이 한반도를 보는 눈, 아니면 비핵화를 보는 눈, 그것이 좀 바뀌는 것 아니냐는 그런 기 사를 제가 봤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케리 국무장관이 했던 이야기를 보면 말이죠, 그 2가지 이야기를 한 문장에 이야기하죠. 그러나 평화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궁극적으로(ultimately)’라는 표현을 씁니다, 궁극적으로(ultimately). 결국은 평화체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게 아니 냐? 궁극적으로(ultimately)라는 건 글자 그대로 최후의 단계에서 하는 게 궁극적으로(ultimately)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미국 국무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가장 심도 있게 보고 있는 아 태차관보도 하는 이야기를 보면 그 2가지 이야기를 한 문장 안에서 하죠. 그러나 반드시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우선순위(priority)는 뭐냐? 비핵화다.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국무부 대변인 마찬가지입니다. 핵심 (focus)은 비핵화다. 첫 번째로 제일 중요한 게(first and foremost) 비핵화다, 그 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를 보는 미국과 우리는 같은 목적의식과, 같은 일의 순서(sequencing)와, 같은 타이밍 감각(sense of timing), 이런 걸 따라서 보고 있고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씀 올릴 수 있겠습니다.

조남규: 그럼 어쨌든 북·미 채널논의를 사전에 미국에서 통보받고 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국무부에서는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한·미가 특별한 이견 없 이 가고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최근에 북한의 핵능력과 관련, 4차 핵실험 이후 소형화하고 경량화를 완성했느냐를 놓고 기관마다 좀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미국의 입장이랄까 평가, 그리고 최근에 또 발사 체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북한에서 발표했는데 그 런 부분들의 진실성을 미국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 부분이 궁금합 니다.

안호영: 소형화, 경량화라는 건 결국 핵실험을 했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것이 과연 무기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되었느냐, 그 이야기이지 않습니 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미사일 탄두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되 어 있느냐, 그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됐건 미국이 됐건 아니라는 게 기본입장이고요, 소위 말해서 재진입 기술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미사일이 발사되어 외기권으로 나갔다가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해야 되는데 그때 그 압력과 열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그냥 미 사일만 있는 게 아니라 핵무기가 뒤에 탑재되어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럼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기술이 과연 있느냐, 그 문제인데 이것을 지상에서 2,000도 정도 열을 가하고 그것이 그냥 쇳덩어리에 열을 가하는 것이지 그 뒤에 핵탄두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고선 북한이 재진입 기 술을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대체 뭘 가지고 저런 주장을 하는지 거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 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조남규: 지금 미국 대선은 민주당은 사실상 클린턴 대선후보 지명이 확실시되고, 공화당도 트럼프가 과반을 차지하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지금 거의 1위는 되어 있는데 두 사람이 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 국무장관 하실 때만 해도 자유무역주의자였다가 대선 돌아오면서 미국 여론에 순응하면서 보호무역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대사님은 통상을 오래 하셨으니까 두 사람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과의 보호무역 문제가 재론될 것 같은데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멕시코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어떤 대비를 하고 계시는지 대사관 차원에서 좀 말씀해 주시죠.

안호영: 사실 전통적으로 보면 공화당은 비교적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입장이었고 민주당은 비교적 조심스러운 입장이었고 그런데, 클린턴은 민주당 인사이긴 합니다만 자유무역의 장점을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분이었습니 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사실 NAFTA가 비준되었죠, 미국 국회에서. 그 리고 클린턴 국무장관 본인도 중요한 자유무역협정을 계속 지원했었습니 다. 한미FTA를 포함해서 모든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었고 그런데, 회원님 들께서 미국의 이번 예비선거(primary)를 관심 있게 보셨으면 지난주 미시간 주에서 힐러리가 샌더스한테 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것을 클린턴 진영에서는 대단히 충격으로 받아들였 습니다. 왜 충격으로 받아들였느냐 하면 미시간은 낙승할 지역으로 예상하 고 있었던 거예요. 클린턴 캠프에서 이건 굉장히 쉽게 이길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몇 표가 됐든 졌습니다. 패인을 분석해 봤더니 결 국은 FTA 때문에 졌다는 거예요. 미시간이라는 지역이 원래 전통적으로 공업지역이지 않습니까? 미국의 제조업이라는 게 대단히 어렵지 않습니 까? 그런데 그 제조업이 강한 지역에서는 FTA가 우리한테 불리하다는 정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시간에서 참패한 원인이 결국 클린턴 국 무장관이 계속 FTA를 지지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후에 힐러리가 무역문제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러워졌다고 이야기 들을 합니다. 그것이 그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트럼프 경우는 기본적으로 외교문제에 대해, 국제문제에 대해 크게 소신을 발표하는 일이 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만 TPP 문제, TPP 문제는 워낙 지금 현안이 되어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본인의 소신 을 밝힌 적이 있는데, 반대한다는 그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조남규 부장님 말씀대로 우리가 미국 대선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런 논의를 대단히 주의 깊게 관찰해야 되겠습니다만 또 하나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은 우리가 왕왕 경험하는 것이 미국도 결국은 선거가 있게 되 면 선거과정에서의 입장하고 그 후의 정책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더 라는 겁니다. 우리로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겠죠. 그 러니까 76년에 지미 카터 대통령의 캠페인 포인트 중 하나가 주한미군 철 수하겠다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그것을 바 로 고쳤죠. 지금 조 부장님 말씀하신 대로 미국이 워낙 영향력 있는 국가니 까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후보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저희 가 면밀히 관찰하고, 해야 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지금 후보의 입장이 반드시 정책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역시 염두에 두고 저희가 대응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론인 조남규의 인물 사진

글쓴이

조남규Namkyu Cho

세계일보 편집인 · 前 편집국장·논설실장

저자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