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만14명(6.8%). 5일 기준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인구다. 지난 2월26일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는 사그라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년5개월간 일상도 크게 변화했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매우 어색하고 불안한 요즘 상황이다. 그럼에도 일부 집단의 이기적인 행동이 최고의 코로나19 백신인 시민 방역 활동을 방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사랑제일교회 등 종교단체 집회와 정부의 의료정책 전환을 이유로 집단 태·휴업에 나선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의 집단행동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1년여간 집단행동에 따른 주요 위기상황을 짚어본다.
◆몰래 집회·자료 미제출 등으로 코로나 확산 부추긴 종교시설
지난해 2월18일은 대구시민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의 불씨를 댕겼다. 이후 대구시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0일 만에 대구시에선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이에 대구시는 신천지 측에 교인 명단과 진단검사, 자가격리, 방역 협조 등을 요청했다. 하지만 신천지 측은 집합시설과 교인 명단을 누락시켜 대구시에 넘겼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곧바로 종교집단이 방역당국의 초반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더기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대구시의 행정기능은 마비됐다. 일각에선 ‘대구 봉쇄론’까지 거론했다. 종교단체가 확진자의 동선 공개와 코로나19 진단검사 등을 거부하면서 집단감염으로 이어진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는 지난해 8월12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대표적인 집단감염원이 됐다. 집단감염 역학조사를 위해 성북구청이 교회 측에 폐쇄회로(CC)TV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사랑제일교회는 당국 요청에 불응한 것은 물론 해당 자료를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다. 한 교인은 자가격리 조치를 받던 중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무단이탈해 산책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올 초 논란이 됐던 경북 상주시 BTJ열방센터도 일부 단체·세력의 집단행동이 나라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은 사례다. BTJ열방센터는 개신교 선교단체인 전문인국제선교단(인터콥)이 운영하는 종교시설이다. 인터콥은 지난해 10~12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당시 이곳에서 ‘50명 이상 집합금지’ 지침을 어기고 여러 차례 선교캠프를 열었다. 방역당국이 집계한 이 모임 참석자는 2797명이다. 지난해 11월 말 참석자 가운데 처음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연쇄감염이 잇따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방문 사실이 없다며 검사를 거부하거나 착신 불가, 결번 등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보건당국은 뚫린 방역의 구멍을 메우는 데 진땀을 빼야 했다.
지난해 8월15일 정부에 비판적인 5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광화문광장 등 서울 도심 일대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서울시는 집회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경복궁 광화문부터 덕수궁 대한문까지 1㎞ 거리를 가득 메웠다. 집회 현장 곳곳에선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 등 방역수칙 위반 행위가 목격됐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집회 참가자 중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전국 지자체 방역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확진자는 150명을 훌쩍 넘기더니 200명, 300명, 400명대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의료계 국민 생명·안전 볼모로 의료정책 전환 반대 으름장
지자체는 광화문집회 참가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대형버스를 타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추정되는 인원 일부는 검사를 끝까지 회피했다. 파악된 명단 가운데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 참석자도 있었다. 누락된 인원도 많았다. 지자체는 집회 참가 명단을 파악하고자 기지국에 협조를 구해 휴대 전화번호 추적을 했다. 올 3·1절 서울 곳곳에서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잇따랐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과 서대문구 독립문 등에서는 집회와 함께 차량시위도 진행됐다.
‘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안’도 그렇다.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치상 등을 제외한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박탈하고, 형 집행 후에도 최대 5년간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는 최근 ‘의료법 개정안’의 뼈대다. 의사를 포함한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도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월쯤 해당 법안이 추진되자 의협은 파업 으름장을 놨다. 코로나19 속에서 의협의 이런 행보는 조직 이기주의로 비쳐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결국 이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됐다.
그러자 의협은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수술실 내부 폐쇄회로(CC)TV 의무 설치법 역시 지난 4월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의협이 이해를 관철하려는 행동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의협은 지난 2월17일 법상 ‘대체조제’ 명칭을 ‘동일성분조제’로 바꾸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백신 접종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국민 건강을 위해 헌신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의사들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가뜩이나 지치고 힘든 의사들을 다시 한번 거리로 불러내겠다는 것이라면 의사들은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감염병 사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당해야 하는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감염내과)는 “몇몇만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며 “모두 이타주의자가 돼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내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마음으로 현재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 버려야”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탈피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국난을 겪고 있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상황이 끝난다 해도 제2·3의 신종질환 출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반 ‘K-방역’을 내세운 한국의 요즘 상황도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을 꿈꾸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기는 여의치 않다.
신규 확진자가 연일 600명을 웃도는 국면에서도 일부의 집단행동은 멈출 줄을 모른다. 전문가들은 집단이기주의 분출은 코로나19 방역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전사회적인 위기 극복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집단이기주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적 공공의식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5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감염병을 막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먼저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보건 건강을 위해 방역 대책을 수립하고, 두 번째는 일정 기간을 두고 단체행동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의식수준이 낮을수록 자신을 모든 사례에서 예외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 법리적으로 압박을 가하기보다는 공공복리를 위해 자기 절제나 통제를 유도하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좌절감과 피로감이 높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중진 대구안실련 공동대표는 “감염병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커진 상황 속에서 개인의 이익이나 신념을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회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집단이기주의와 일탈행위로 공동체 안전이 계속 위협받는다면 불가피하게 제도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집단행동을 수용해 준다는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 개인의 방역이 국가의 방역과 직결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우 경북의대 교수(감염내과)는 “이기적 집단행동은 우리 사회에 균열을 초래해 국민 방역의 사회적 공감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지금은 자신만의 이익보다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때이고 자기의 권리 행사보다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에 유념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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