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차 A씨 부부는 지난 3월부터 거의 매주 휴일 때면 서울 근교와 인근 전원도시로 땅이나 주택 탐방을 다닌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관련 기업과 광고 회사에 각각 근무하는 이들 부부는 지난해부터 늘어난 재택근무 시스템 때문에 비싸고 좁은 도심 아파트에 살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됐다. A씨는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근무형태가 계속되거나 반복된다면 아파트 전세금을 빼서 넓고 쾌적한 서울 근교 단독주택 등을 사거나 지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무자녀인 이들에게 학군 등 교육 여건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들은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다고 했다.
본인 소유 서울의 소형 아파트를 비워 두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지방의 한 혁신도시로 거처를 옮겼던 프리랜서 디자이너 B씨는 아파트 처분을 고심 중이다. 2019년 결혼 이후 지금까지는 일이 생길 때만 서울 집에서 출퇴근을 했지만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면서 굳이 빈 집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B씨는 “언택트(비대면) 근무가 더 늘어날 텐데 값이 오른 서울 아파트를 팔아 혁신도시 전세 아파트를 자가로 바꿔 ‘탈서울’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가 사회에 많은 변화를 부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재택근무와 비대면 업무의 활성화다. 당연히 회사 책상에 앉아야만 근무하는 것으로 보였던 시대가 가고 ‘연결’만 되고, 성과만 낼 수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시대가 됐다.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도 늘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은 쉬이 다시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다소 성급해 보이지만, 회사 소재지에 아등바등 집을 구해 거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일 관련업계와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HSBC는 지난해 콜센터 직원의 영구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이 은행은 재택근무 때 늘어날 직원 집의 전기요금까지 급여에 챙겨주기로 해 화제가 됐다. 일본의 게임사 스퀘어에닉스도 영구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스포티파이는 직원의 절반 또는 희망자에 한한 영구재택을 채택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 사례는 아직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각각의 상황에 맞춰 부분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또한 이러한 수시 재택·비대면 업무 처리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기업 실적에 큰 영향은 없는 것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일부 우려의 목소리는 나온다. 한 대기업 팀장급 직원은 “대면 회의와 토론을 다른 직원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고 배우는 등의 상호작용에 따른 시너지가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한 임원급 인사는 “직원들이 인성과 평상시 근무 태도 등도 승진 평가 등의 중요한 요소인데 그런 과정은 모두 생략되고 성과라는 결과물로만 인간을 판단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비대면 사회의 확장은 이밖에도 여러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현재까지 영구재택을 도입한 회사는 대부분 IT와 그 유관 업무를 처리하는 업종으로 한정된다. 현장에 반드시 근로자가 출근해서 직접 작업을 해야 하는 완성차, 철강, 조선업 등 제조업계에서는 불가능한 업무 형태다. 이런 근로형태의 차이 확산이 근로자 간 갈등과 불필요한 계층 차별 등의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세계 디지털경제 판도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로 성큼 다가온 비대면시대에 우리 IT기업들이 앞다퉈 비대면 배송과 협업툴 시장, 인공지능(AI) 등 각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벤처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벤처기업가들의 도전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이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재벌기업의 지배를 위한 편법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와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위한 필수 정책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도입이 코로나19와 함께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하나
19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표면적으로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증권시장이 세계 유니콘기업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야놀자,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는 이미 미국 나스닥 상장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비단 우리 기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 기업 가운데 자국 증시에 상장하지 않고 다른 나라 증시에 상장한 사례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다.
2013년 홍콩 거래소에 상장하려 했지만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아서 뉴욕으로 선회했다가, 2018년 홍콩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자 재입성했다. 바이두도 차등의결권주식을 허용하는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미래 성장성을 더 높게 평가해 사업이익·매출·자기자본 등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미국 증시의 특성도 있지만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 나서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보유 주식 수가 적어도 의결권한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차등의결권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M&A를 막고 기업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은 말 그대로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다르게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상법 369조는 의결권을 주식 1주마다 1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차등의결권은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선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한다.
최근 차등의결권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이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행을 택한 이유가 바로 이 차등의결권이 국내에는 없어서란 분석이 내놨는데 실제 쿠팡의 미국 뉴욕증시 상장이 현실화하면서 김범석 쿠팡 의장은 1주당 29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갖게 됐다. 지분율은 2%에 불과하지만 의결권은 58%에 달하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분석 따르면 특정 구간에서 벤처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이 1%포인트 오르면 연구개발투자액이 최대 500만원 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차등의결권 도입이 벤처기업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미국과 일본 등 17개 나라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상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위 150개 혁신기업 가운데서는 차등의결권 도입률이 해마다 늘며 현재 13%에 달한다.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각 국가에서는 차등의결권을 포함해 기존 주주에게 신주 저가 인수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 1주만으로 특정 주총 안건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황금주 등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마땅한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차등의결권이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자사주 매입 정도 외에는 적대적 M&A에 대응하기 위한 뚜렷한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재벌세습 악용 반대의견도…정부안은 실효성 논란
하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내 재벌의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차등의결권 도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차등의결권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등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증대시키는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실련 재벌개혁본부 권오인 국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차등의결권이 도입될 경우 재벌 4세 경영인들이 벤처기업을 설립해 일감 몰아주기라든지 자체적 증자로 기업을 키울 수 있다. 이후 기업 가치가 커지면 그걸로 모회사 지분을 사버리면 바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에서 허용하는 주주평등제를 위반해 재벌들을 위해 차등의결권이 악용될 수 있고 시장정의가 흐려질 수 있다는 게 권 국장의 이야기다.
정부도 이러한 시민단체의 우려를 감안해 주당 10개까지, 상장 후 3년 동안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의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2개 이상 최대 10개까지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자금력이 달려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벤처기업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투자를 받아 성장하는 벤처기업의 창업주가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외부자본에 휘둘리는 등의 상황을 막고, 아이디어를 안정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1개의 의결권만 갖는 보통주로 전환된다는 개정안의 내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의 정부안은 실효성이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안은 차등의결권 도입 대상을 현재 벤처 인증을 받은 비(非)상장 기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국내 약 360만개의 중소기업 중 3만9000개(약 1%) 정도만이 차등의결권 도입 대상이다. 특히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최대 10년까지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해야 하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유럽이 각 기업의 업종과 성격에 맞게 자율적으로 소멸기간을 정한 것과 달리 정부안이 일률적으로 3년의 기간을 정한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제한 규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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