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의사당을 밖에서 보면
의사당 돔이 상징처럼 다가오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돔 내부의 로툰다 홀이야말로
미 의회의 심장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본떴다는 로툰다 홀은
천정의 프레스코화가 압권입니다.
로툰다 홀에 서서 180 피트 위의 천정을 바라보면
브루미디 작품인 ‘조지 워싱턴의 승천(昇天)’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이 작품을 좀 더 클로즈 업을 하면 이렇습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워싱턴이 15명의 여자들과 함께 하늘로 오르는 광경인데
2명은 자유와 승리를, 나머지 13명은
독립 전쟁 후 미 합중국에 가입한 13개 주를
상징한다는군요.
로툰다 홀은 영예로운 시민들의 유해가 조문객을 맞기 위해
잠시 안치되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추모객을 맞기 위해
며칠 동안 로툰다 홀에 안치됐고요,
에이브러햄 링컨과 케네디, 아이젠하워 대통령,
에드가 후버 FBI 국장, 헨리 클레이 상원의원, 더글라스 맥아더,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에서 전몰한 무명 용사 등이
이 홀에서 추모됐습니다.
로툰다 홀의 남쪽에 위치한 옛 하원 회의장입니다.
초창기 미국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역사적 현장이지요,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한 프랑스 정치가 라파예트가
미 의회에서 연설한 첫 외국인이 된 장소이고요,
제임스 매디슨이나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 앤드류 잭슨,
밀러드 필모어 등이 이 곳에서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특히 '대머리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와 이 곳과의 인연은 각별합니다.
그가 출마한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후보도 과반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해
헌법에 따라 하원으로 결정권(각 州가 한 표씩 행사)이 넘어갔는데
존 퀸시 애덤스는 1825년 2월 9일 이 곳에서
13개 주의 찬성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가 퇴임하자 고향 주민들이 하원 의원으로 추대,
17년 동안 하원 의원으로 이 곳에서 봉사했고요,
자신의 의석에서 쓰러져 숨집니다.
지금은 이 곳이 ‘National Statuary Hall’로 변해
각 주에서 헌정한 조각상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각자 자신들 주의 대표 선수만을 골라 보낸 조각상들이지요.
버지니아주는 남북 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
텍사스주는 텍사스 건국의 아버지 샘 휴스턴.
이런 식으로 50개 주가 2명씩 선발하도록 한 때가 1864년인데
미국 사람들 무슨 일이든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50개 주 전부 최소한 1명씩 선발을 마무리한 시점이 1971년입니다.
아직도 5개 주는 나머지 1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이 곳에서 미 의회 지도자들과 오찬을 함께 합니다.
옛 하원 회의장에서 로툰다 홀로 통하는
문 위에 눈이 머뭅니다.
‘Car of History’라는 조각상인데
‘역사의 수레바퀴’ 정도로 부르면 되겠네요.
역사의 여신 클리오가 시간의 마차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수 많은 미국사의 주역들이 이 곳을 거쳐갔지만
오직 클리오 만이 덧 없는 인생사를
말 없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의 태자' 무덤가에 서서
신라의 천년 사직을 회고한 소설가 정비석의 심정이
조금은 공감이 됩니다.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롭다”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당선자의 집권기는
미 역사상 일대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재임에 성공한다해도 8년에 그칠 집권기간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점이 수 백 년 후에도 샛별처럼 빛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