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스코트 피츠제럴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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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입니다.
끝내는 그 사랑 때문에 파멸해버리는 남자 개츠비.
저는 고등학교 친구 자취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이었습니다.
영문학도이던 그 친구는
'교수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한 책'이라면서
일독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저
'돈 걱정 없는 미국 유한(有閑)층의
팔자좋은 사랑 타령'이었습니다.
그 때는 고리끼의 '어머니'나
조정래의 '태백 산맥'같은 소설이
가슴을 더 뛰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십 몇 년이 흘렀습니다.
제 나이도 삼십대 중반이 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개츠비 열풍이 불더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작가가 일으킨 바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와타나베)이 '위대한 개츠비'를
최고의 소설로 추켜세운 때문입니다.
언제 읽어도,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대목은 없다는 극찬을 하면서.
와타나베의 선배라는 친구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하고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거들더군요.
그는 또 죽은지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피츠제럴드 만은
예외라고 말했습니다.
난데없는 하루키 열풍에
개츠비도 덩달아 스타가 된 셈입니다.
그런데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를 통해
말하려고 했다는 주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정작 그의 책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루키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개츠비를 통해
그 의미를 알게됐습니다.
그 후 '위대한 개츠비'는 저의 애독 소설이 됐습니다.
또 몇 년이 지났습니다.
올 해로 제 나이 마흔 살이 됐습니다.
하루키가 고백했던 것 처럼
스무 살 청년이 20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사실을,
저 역시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올 해 마흔입니다.
서른 살 되던 해,
저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주절거리고 다녔는데
마흔 살이 되니 노래 따위는 부르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신문을 뒤적이다
피츠제럴드가 메릴랜드주 락빌에 묻혀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차로 30분 거리 밖에 안되는 가까운 곳에 그가 묻혀있다니-.
갑자기 그의 묘소에 가고 싶었습니다.
무슨 청승이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혹시 그가
마흔 살의 의미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 던져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역시 마흔 살의 인생은 참으로 힘든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마흔 살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 젤다 세이어와 별거 상태였습니다.
아내의 정신병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육신도 과도한 음주와 질병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습니다.
그 해 MGM 영화사는
그와 맺은 전속 대본가 계약을 중단했습니다.
아내의 병원비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피츠제럴드가 심장 마비로 비명 횡사하기 4년 전,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끝까지
자신을 실패한 인생으로 믿고 죽어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그가
위대한 미국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피츠제럴드의 분신인 개츠비도
데이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데이지의 배신으로 개츠비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꿈꾸는 자는 그의 꿈이 사라진 이상,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기에.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개츠비가
그의 연인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 즈음,
현실의 피츠제럴드는 1918년 여름 어느 무도회장에서
젤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절,
개츠비와 피츠제럴드는 군인이었습니다.
상류층인 데이지의 가문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개츠비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듯이
앨라바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의 신분 또한
세일즈맨 아버지를 둔 피츠제럴드를 주눅들게 했습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듯이
피츠제럴드는 젤다와 결혼하려는 열망으로
소설에 매달렸습니다.
가난한 샐러리맨과는 살 수 없는 기질의 젤다가
그와의 약혼을 깨버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피츠제럴드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920년 3월 26일은 피츠제럴드가
하룻 밤 사이에 유명해진 날입니다.
그의 처녀작 '낙원의 이 쪽'(This Side of Paradise)은
그를 단숨에 문단의 총아로 만들어놓습니다.
일주일 후 젤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1919년 봄,
젤다가 앨라바마에서 군 제대 후 뉴욕으로 간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편지(아래 사진)에는
'내 예감에 우리는 함께 죽을 거야'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편지는 그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
피츠제럴드가 '낙원의 이 쪽' 마지막장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합니다.
재능많고 아름다운 젊은 부부는
10년 동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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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위대한 개츠비'가 집필된
피츠제럴드의 황금 시절입니다.
피츠제럴드는 아내와 함께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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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편지>
그가 죽고 8년 뒤에
아내는 정신병동 화재로 숨졌습니다.
기구한 운명의 두 사람입니다.
그의 묘비 앞 석관 뚜껑 위에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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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ts against the current,(배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끝없이 과거 속으로 물러서면서)"
끊임없이 그의 과거를 넘어서려고 발버둥쳤던 개츠비의 노력은
끝내 헛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나 강물을 거스르려했던 개츠비의 노력을 피츠제럴드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봤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 도리없이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피츠제럴드를 만나고 와도 삶은 명쾌해지지 않습니다.
마흔 살이 불혹(不惑)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닌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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