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한국언론재단 '국제뉴스연구회' 포럼 연사로 나온 경희대 서정건 교수(정치외교학)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 역대 미국 대선에서 10월에 선거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막판 이벤트가 펼쳐지는 것)를 연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트럼프의 과거 저서에서도 나오지만 트럼프는 북한 현안과 관련해 자신과 김 위원장이 만나서 결판을 지을 수 있다는 'ME vs. Kim' 사고 방식의 소유자"라면서 이같이 내다봤다. 대선 막바지에 판세가 불리해지면 북미 정상회담 이벤트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강연이 있은 직후인 7일(미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3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무기 프로그램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시점에는 매우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현재 자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VOA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그레타 반 서스테렌 VOA 객원앵커와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관련 질문에 “나는 그들(북한)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우리도 물론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만약 힐러리(클린턴 전 국무장관)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지금 북한과 큰 전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모두가 전쟁할 사람은 나라고 했지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고 반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또 한번 정상회담을 할 것이냐’는 거듭된 질문에 “만약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3차 정상회담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마도”라며 “나는 그(김정은)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서 교수는 "공화당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협상하는 것은 미국 제도 정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특이한 양상"이라면서 "공화당 매파(hawks)들은 원래 북한 같은 나라와 직접 협상하는 것을 꺼리는 정당인데 자기 당 대통령이라서 소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민주당은 협상을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기조라서 상대당 대통령이지만 소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과정에 대해서는 "미국은 북한의 핵폐기와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빅딜'과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일부 대북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스몰딜'이 있었는데 트럼프는 회담장을 박차고 걸어나오는 'walk away'를 선택했다"면서 "존 볼턴이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트럼프 참모들은 혹시라도 트럼프가 북한과 딜을 성사시킬까봐 내내 마음을 졸이며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외교정책집단이 서로 협력해온 과거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에서는 두 축이 어긋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이슈에 대해 외교정책집단은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거리를 뒀고, 한미 방위비분담금 증액 이슈의 경우 트럼프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을 압박하면서 밀어붙였지만 이런 기조를 외교정책집단은 반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재선 대통령이 될까.
"선거 결과는 점칠 수 없다. 미국 현직 대통령은 최근 선거에서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2년 선거에서 당선돼 8년 집권했고 그 뒤를 이은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0년 선거에서 집권한 뒤 2008년까지 두번의 임기를 채웠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승리는 2016년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대선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의 재선 성공은 24년 동안 하나의 패턴이 됐다. 관건은 미 중서부 경합주들에서 흑인들이 2008년 오바마 후보가 출마한 대선 때처럼 투료를 하러 몰려나올 것이냐다. 2016년 대선 때는 이들 경합주에서 흑인들의 투표율이 저조했다. 힐러리 승리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어서 굳이 나까지 투표안해도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집에 머물렀다. 이번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의 패배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이들 지역으로 오바마도 보내고 미셸 오바마도 보내서 흑인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이끄는 캠페인을 할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집권 4년을 심판하자는 유세를 하고 있다. 이에 맞서 트럼프는 '트럼프냐 바이든이냐'를 유권자에게 고르도록 하는 '선택 선거'로 몰고가려 한다."
이 과정에서 서 교수는 '3번 연속 대선에서 패배해야 정당이 바뀐다'는 미국 정치의 속설을 소개했다. 민주당은 1980, 1984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에게, 1988년 조지 H.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3차례 연속 진 뒤 1992년 빌 클린턴 정부를 출범시켰는데 클린턴 정부는 이전 민주당 정부와 완전히 차별되는 정책 기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존 민주당 정부가 배척했던 '자유 무역' 등을 수용한 '신민주당' 기조였다.
-트럼프가 승리하면 어떤 세상이 열리나.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 다시 한번 발생할 것이다. 첫번째 임기의 트럼프는 좌충우돌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재선을 염두에 두고 국정을 운영했다. 하지만 재선 대통령은 더 이상 선거가 없다.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 트럼프는 과연 어떤 대통령이 될까? 더욱이 2022년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6년차다. 재선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참패한다는 집권 6년차 현상('6th year itch')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직의 특징은 '가치'가 아닌 '거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승리하면 어떤가.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통해 취소하거나 탈퇴한 국제 협약을 복구하려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트럼프 축출 소임을 마친 바이든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민주당 내부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북한 현안은 트럼프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 이제 공화당 매파들은 민주당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하려하면 물어뜯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대통령들은 국가안보 이슈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
-미국 의회 내 지한파들은.
"공화당 상원의원인 윌리엄 노우랜드(캘리포니아)는 '대만 출신 상원의원'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대만을 위해 발벗고 뛰는 의원이다. 과거에는 북한 이슈를 주도하는 의원들이 미 의회에 포진해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의원들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
-미국 외교정책의 토대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좌우에 두고 있는 미국은 인접 국가들과의 세력 균형에 신경쓰며 살아온 유럽 국가와는 다른 외교정책을 구사해왔다. 세력 균형 대신 민주주의나 인권, 항행의 자유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그래서 국제 현안을 다룰 때 대외 이슈는 미국 정치화(Americanization) 과정을 거쳐야 한다. 2차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에 개입할 때 미국 대통령들이 미국이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느니,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는 파수가 돼야한다면서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식이다. 물론 트럼프 시대에 와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외교안보 정책이 구사되고 있다. 가치 대신 거래 중심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한국이 아는 미국과 미국이 아는 한국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이버에서 검색한 '세계지도'와 구글에서 검색한 'world map'을 보여줬다.
서 교수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네이버 지도상에서는 북한 미사일이 태평양을 건너 미 본토를 타격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하지만 구글 wourld map에서는 구도상 그런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며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인식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2017년 4월 뉴욕타임스가 미국인 1746명을 대상으로 북한의 위치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아래는 답변을 토대로 한 그래픽이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북한이라고 표시한 응답 결과다. 전체 응답자의 36%만이 정확한 위치를 맞췄다.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들은 그렇지 못한 응답자에 비해 대북정책에서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서 교수가 2019년 펴낸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정쟁은 외교 앞에서 사라지는가 아니면 시작하는가(서울: 서강학술총서)'를 참고.
서 교수는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박사 논문에서 미국 양당제 정책 경쟁과 이슈 성격을 구분하면서 북한 이슈는 초당파적(bipartisan) 이슈로 분류했다. 북핵, 북한 인권 등과 같은 북한 현안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체로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당파적(partisan) 이슈는 기후 변화 문제다. 민주당은 과학의 관점에서 기후 변화가 사실이라는 입장이지만 공화당은 기후 변화를 인정하는데 미온적이다.
-한국 정치 얘기를 좀 하자. 21대 총선에서 거대 여당이 탄생하면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과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체제가 됐다. 미국 의회도 단 1석이라도 더 많이 차지한 정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체제다. 이런 입법부 체제의 부작용은 없는가. 미국 소수당은 이런 체제를 개혁하려하지 않는가.
"미국 하원은 2년에 한번씩 선거를 하기때문에 언제든 소수당에서 다수당으로 바뀔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소수당이 이 독식 체제를 바꾸려하지는 않는다. 하원과 달리 상원은 의원 개개인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다수당을 견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하버드대 케네스 쉡슬(Kenneth A. Shepsl)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의회는 그 것이 아니라 그들이다.'(Congress is a 'They', not an 'It') 대화하고 타협하라는 의미다. "
미국 상원의원이 보유한 권한 중 가장 막강한 것이 필리버스터(filibuster) 제도다.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행위'다. 필리버스터를 인정하지 않는 하원과 달리 상원의원들에게 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상원과 하원의 차별성 때문이다. 하원은 의원 수가 435명이고 임기는 2년이다. 상원은 의원 수가 100명에 불과하고 임기도 6년으로 길다. 그래서 하원은 의사일정과 관련 없는 수정안 제출도 금지하는 등 의사규칙이 엄격하다. 신속한 법안 처리를 위해 다수결주의를 강조한다. 특히 하원의장의 의사진행 권한은 강력하다. 상원은 토론을 통해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양보와 타협을 거쳐 만장일치로 회의가 마무리되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상원은 '100인 클럽'(Club of 100)으로 부른다. 최근에는 정치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상원의 타협 문화가 예전같지 않지만 필리버스터는 시간제한 없이 토론을 허용해온 오랜 상원의 전통이 낳은 제도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상원과 하원 중 적어도 한 곳에서는 국가의 장래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법안들에 대해 의원들의 다양한 견해를 충분히 듣고 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제도인 것이다.
필리버스터에 관해서는 찬반 논란이 존재한다. 찬성론자들은 이를 통해 다수의 횡포에 대항해 소수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의원들은 해당 법안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할 수 있게되고 국민들은 의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게된다. 반대론자들은 기본적으로 필리버스터 제도가 의회 제도의 기본인 다수결원칙을 흔들고 있다고 본다. 국민들에게 시급한 법안이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신속히 입법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필리버스터가 소수 의원들이 다수 의원들을 상대로 양보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은 "하원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문제라면 상원에서는 필리버스터를 활용해 소수가 다수의 의지를 저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찬반 양론 모두 일리있는 주장들이다.
필리버스터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운용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인권 등 헌법 관련 주요 안건들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필리버스터가 이뤄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문제들에 대해서까지 필리버스터를 발동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필리버스터를 저지하는 토론종결제도(cloture)가 있긴하다. 하지만 토론종결을 결의할 클로처 정족수는 상원의원 재적 5분의3(60명)이다. 역대 상원의원 선거에서 60석을 확보한 정당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필리버스터의 위력은 강력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이 덜 치열했던 1950년대에는 1년에 1번 정도 필리버스터가 활용됐지만, 2008년에는 한해에만 139번의 필리버스터가 행해졌다. 그에 따라 필리버스터를 막기위한 클로처 투표도 과거보다 더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필리버스터와 유사한 '보류'(hold) 제도 역시 상원의원이 지닌 힘이다. 상원의 양당 지도부는 사전에 협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법안을 처리하려하는데 이 때 개별 의원들은 만장일치 처리 동의(motion)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원내대표 등 지도부에 밝혀 법안 처리를 일정 기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를 보류라고 한다. 누가 보류를 행사했는지 비공개로 요청할 수도 있다. 보류를 행사하는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보류 요청이 들어오면 지도부는 해당 안건에 대한 논의를 중단한다. 그래서 보류를 '조용한 필리버스터'라고도 한다. 보류도 클로처 투표를 통해 막을 수 있다. 보류는 3일 정도 의안 심의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지는데 그 이상도 가능하다. 보류를 놓고도 의원들이 의안 심의를 지연시켜 의안을 좀 더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개개 의원이나 소수당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해 선거 결과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2011년 6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재미 교포인 성 김(Sung Kim) 6자회담 미국 특사를 주한 미국 대사에 임명했을 때 의회 인준이 4개월 넘도록 지연됐는데 그 배경에 공화당 존 카일 상원의원의 보류가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카일 의원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너무 유약하다는 이유로 성 김 대사의 인준을 막았던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이 카일 의원을 백방으로 설득해서 성 김 인준안 보류가 풀리긴 했지만 미국 상원의원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두고 두고 회자됐다. *주(1)
*주(1) 국회에서 바라본 미국의회, 임재주, 한울, p33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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