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조남규 정치부장, 정리=이현미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 ‘不欺自心’(불기자심)

1일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들어서자 집무실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는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앞 여섯 글자는 ‘내가 일어서고 싶으면 남을 일으켜세워라’는 뜻인데 어원은 모르겠다. 그 다음 네 글자는 성철 스님의 말인데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앞 여섯 글자의 어원을 검색해보니 공자의 말이었다.

-무슨 맥락인가.

“나는 늙은 정치 신인이다.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하고 40대 국회의원, 최연소 도지사를 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해 끝도 없는 나락으로 가봤다. 지난 10년간 광야에서 헤매면서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났다. 내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알게됐다. 그 어려운 시간이 내게 준 지혜가 값지게 쓰였으면 좋겠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8년 노무현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이 의원은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노무현정부 설계자 역할을 했다. 17,18대 의원을 지내고 2010년 강원도 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지만 ‘박연차 게이트’ 관련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지사직을 잃었다. 2019년 특별사면을 받은 뒤 21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10년만에 여의도로 복귀했다.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정치인으로서는 내가 자질이 부족하다. 정치가의 길을 가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역사의 장면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다. 강원도나 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싶다.”

이 의원은 ‘이상과 현실 속에서 현실에 좀 더 중심을 두는 현실주의자’를 ‘정치인’(politician)으로, ‘현실에서 어떤 자리에 도달하지 못해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상주의자’를 ‘정치가’(statesman)로 구분했다. 미국에서는 당선에만 연연하는 정치를 하면 ‘politician’, 국익을 위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는 정치를 하면 ‘statesman’이라고 부른다.

 

-최근 강연에서 ‘퓨처 뉴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문재인정부의 ‘한국판 뉴딜’과 겹쳐 보인다.

“3주 전에 정세균 총리가 운영하는 ‘목요대화’에서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세상, 이미 와있는 미래를 앞당기자’라는 주제로 ‘퓨처 뉴딜’ 구상을 발표했다. 이 구상은 ‘생명과학 뉴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스마트 도시 뉴딜’을 포괄하는 것이다.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길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디지털 뉴딜’로 갔다가 ‘그린 뉴딜’이 추가되고 있고 생명과학 논의가 깊어지는 것 같다.”

 

-‘생명과학 뉴딜’은 아직 발표가 안됐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마스크 하나로도 난리가 났는데 이번에 코로나19 치료제를 발견하면 세계 1위 부자가 될 것이다. 앞으로 생명과학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60년간 1등 인재가 의대에 갔다. 의료기술로는 우리가 1등이다. 그런데 의료산업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1등은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나라의 우월한 생명 시스템이 입증됐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신인류가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1900년대 초반 평균 수명이 30∼40세대였다. 앞으로 120∼150살 시대가 온다. 단순히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아니다. 일본, 미국의 건강보험료가 GDP(국내총생산)의 20%다. 우리는 7% 수준이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 100살 넘으면 건강보험료가 GDP의 25%까지 치솟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갈수록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든다. 수명 늘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나나. 디지털 사회로 진화하면 고용, 소득이 불안정해진다. 삶의 방식과 발전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가장 좋은 게 생명과학이라고 본다. 거기에 인류 미래의 성패가 달렸고 생명과학의 주인공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디지털 뉴딜이나 그린 뉴딜, 생명과학 뉴딜 모두 ‘혁신’의 일환이다. 혁신 사업자와 기득권의 이해를 조율하는 문제가 관건인데 문재인정부에서 그게 잘 안됐다.

“꼭 기득권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법안도 민주당이 통과를 못 시켰다. 민주당 내부에도 반대가 많았다. ‘규제 프리존’ 중에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다. 혁신경제로 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민주당 내부나 진보 진영의 반대가 있었고 의석수가 충분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이번에 의석 수가 충분하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세계적 추세도 그렇다. 세계가 경쟁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입법 환경은 좋아졌다.”

 

-이제 혁신 성장이 탄력을 받게되나.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의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생겼다. 하지만 보이는 빙하만큼 잠겨있는 부분도 있다. 잠긴 쪽에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이 혁신경제를 강조하면서 사회안전망을 반대하는 건 혁신으로 가지 말자는 얘기나 똑같다. 혁신경제로 가려면 그 과정에서 낙오되는 쪽을 도와줘야 한다. 혁신으로 가기 위한 다리가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고용과 소득 부문의 안전장치는 미래로 가기 위한 필수 지불비용이다. 과감히 결정해야 한다. 독일은 추경 규모가 1500조원에 달한다. 4차, 5차 추경하기 힘들다. 이번에 준비중인 3차 추경 규모(30조원대)는 너무 작다.”

 

-고용· 소득 안전판, 재정만으로 가능한가.

“재정만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재정은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 쓰고, 시장을 작동시키는데는 다른 돈이 쓰여져야 한다. 우리나라엔 그만한 돈과 우수한 인재가 있다. 작년 기준으로 부동산에 들어간 게 2100조원이다. 기업이 갖고 있는 돈은 2000조원 정도된다. 국민연금과 KIC(한국투자공사)가 700조원쯤 보유하고 있다. 이 돈이 시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소상공인은 정부가 보조해주지만 중소기업에는 돈이 없다. 중소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필요하다면 우리은행, 기술보증기금까지 증자를 해줘야 한다. 증자를 1조 해주면 10배는 시장에서 돌아간다. 금융시장을 확 돌리는게 중요하다. 기술 기업의 M&A(인수·합병)이 활발히 이뤄져야 기회가 생긴다. 우리 국민의 자산 80%가 부동산에 잠겨있다. 미국은 국민 자산의 40%가 증시에 있다. 젊은 세대의 혁신 능력이 노인 세대의 삶과 직결돼 있는 선순환 구조다. 우리도 M&A를 활성화하려면 국가가 투자전문은행이라도 만들어서 금융시장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나.

“(창업기업에 자금을 투자해서 이 기업의 성장을 돕는) CVC는 하나의 수단이다. 벤처캐피털의 문제는 시드(seed) 투자(초창기 벤처에 대한 투자)를 안 하는 것이다. 밸류가 커진 다음에는 M&A(인수·합병) 부분이 약하다. 시드도 강화하고 M&A도 강화하려면, CVC나 중간 단계로 벤처전문은행, 전문투자은행을 만들어야 양자가 강화된다. 일반은행에게 맡기면 힘들다. CVC도 된다, 안 된다는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CVC를 늘릴까, 어떤 부분을 고칠까를 생각해야 한다. 찬성, 반대 논의만 하면 끝없는 미로 속에서 답보 상태에 있게 된다. 목적은 시드와 M&A 활성화다. 비대면 의료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이 얼마만큼 안전하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느냐, 더 나아가 미래 의료산업이 되느냐의 문제다. 정확한 솔루션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그러려면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장이던 시절에도 벤처업체는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요구했지만 무산됐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라는 거대한 게 있는데, 세계적으로 금산분리를 이렇게 엄격하게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런데 금산분리와 관련해 무엇을 걱정하는지 또 알잖아요. IMF 외환위기 때 겪어 봤다. 그걸 현실로 인정하고 답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정부는 이날 벤처 지주사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일반 지주사도 CVC를 제한적으로나마 보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일 “이 방안이 도입된다면 벤처 투자금이 신규 유입되고, 인수·합병을 통한 회수 시장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 뉴딜은 어떤 방향인가.

“인간의 흥망사에 보면 에너지의 미래를 쥔 자가 세계의 주인공이 됐다. 에너지 문제는 한 방향이 기후 변화 대응이나 미세먼지 대책, 또 하나는 디지털 혁명에 따른 전기 수요 대응이다.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 저는 전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휴대폰 1개가 0.8킬로와트인데 전기차는 어마어마하다. 하루 센서에서 발생시키는 데이터량이 140테라바이트 정도다. 상상할 수 없는 데이터를 만든다. 데이터 만드는 것은 전기를 쓰는거다. 지금은 디지털 혁명에 진입하지도 않았다. 전기차가 많이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사우디아리비아에 미래 도시를 짓는 걸 보면 발전소 먼저 짓고 데이터 센터를 짓는다. (무슨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다. 과거는 석탄, 석유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가스, 전기의 시대로 집약된다. 특히 전기의 시대로 간다. 저는 서남해안권 해상 풍력에 주목한다. 풍력 발전기 날개 기술은 중국이 가장 앞섰지만 파이프 박는 기술은 우리가 앞서 있다. 서남해안에는 섬이 많아서 대규모 해상풍력을 만들면 굉장한 산업적 효과가 있다. 해상풍력은 우리나라가 상당히 적합한 환경이라고 본다. (부품 자급률이 낮아서 지을수록 기업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는데) 그건 옛날이다. 지금은 자체 기술도 많다.  (바다 속에 넣는 거?) 그렇다. 시추는 우리가 전 세계적 기술을 갖고 있다. 해상 풍력의 장애는 어민들이 살기 어려워지는 점이다. 어민들과는 바다 양식보다 훨씬 부가가치가 높은 육상 양식을 통해 타협해야 한다. 육상 양식이 훨씬 부가가치가 높고 바다의 오염을 막는데 좋다. 상당한 딜이 있어야 한다. 해상 풍력과 육상 양식의 조합이다. ”

 

-해상 풍력이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인가.

“그럼요. 풍력은 발전량이 굉장하다. 태양광보다 수율이 훨씬 높다. 해상풍력은 건설하기 나름이다. 전남 신안군에서 하는 게 원자력발전소 몇개 짓는 규모다. 그걸 하게 되면 선박회사가 좋아진다.”

 

-태양광, 풍력보다 효율적인 원자력이 있지 않나.

 

“여시재에서 많이 생각을 해봤다. 원전은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원전 R&D(연구·개발)는 해야 한다. 소형 스마트 원자로 부분은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가 우리와 소형 원자로 공동 연구를 요구하고 있다. 성공 여부를 아직은 모른다. 꿈의 기술이다. (빌 게이츠가 하려는 테라파워?) 그렇다. (빌 게이츠는 중국과 하려다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갈등이 악화하면서 무산됐다) 중국과는 못한다. 인류가 꿈꾸는 게 이경수 박사가 했던 핵융합 발전소, 프랑스에서 연구하는게 하나 있고 소형 원자로가 있다. 두개 모두 꿈의 기술을 맞다. 우리도 이걸 연구는 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기술이 없다. 이 기술 나오면 거대한 산업이다. 원전 폐기물 재처리 기술도 지구 상에 아직 없다. 우리는 이런 미래지향적인 원자력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시작됐다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와도 이별해야 하나.

“신한울 원전은 구시대 기술이다. 우리가 원전 중단으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될 걸로 봤는데 작년에 한국전력이 흑자가 났다. 신한울 3·4호기는 섣부르게 뛰어들 문제는 아니고 전체적으로 계산을 해야 할 문제다. 두산중공업도 어려운 건 맞는데, 두산 전체로 보면 선탁 화력 60%쯤 된다. 25%가 원전이다. 그러면 미래 원자로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에서 이 의원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 같다.

“코로나 위원회에서도 발표하고 총리실에서도 발표했다.”

 

-그래서 기본소득 얘기가 나온다.

“재정만으로는 절대 감당하지 못한다. 기본소득 말고 참여소득이라는 말을 쓰자. 지금은 내가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애를 봐주고 사회적 도토리를 얻을 수 있다. 헌혈을 하게 되면 건보료를 싸게 해주고, 유전자 은행에 정보를 주고 페이백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데이터나 노동을 제공하고 받는 게 참여소득이다. 개인적으로 축적하고 사회적 도토리도 축적한다. 김대중정부에서 전자정부를 만들어서 일거리를 만들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 도서관 정보 등 지식 데이터를 모두 모아서 논문까지 공짜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국정 교과서를 나눠주는 것처럼 무한정 깔아줘야 한다. 하버드 대학 논문을 연세대에서 검색하면 싸지만, 집에서 검색하면 비싸다. 국가가 사서 싸게 공급하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은 지식 자원의 무료 공급이다. 이건 보편적 복지다. 여기서 개인마다 재능의 차이 가 있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나온다.

“개인별 능력 차이는 불가피하다. 사회적 약자를 강력히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불안요소가 된다. 내가 진보주의자임에도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높게 평가한다. 비스마르크가 노동자를 좋아해서 사회복지라는 용어를 만든 게 아니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선제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었다. 그처럼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게 진정한 보수주의자다. 보수는 시장이 만능이라고 생각하고, 진보는 시장은 항상 문제가 있어서 사회적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두 가지 모두 새로운 진화가 필요하다. ‘신진보주의’로 갈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성장과 가치를 동시에 따지는 시장이 온 거다. 혁신경제다. 과거에는 성장만 얘기했는데 이제는 더 좋은 성장을 이야기할 시기가 왔다. 성장과 가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게 혁신경제다. 또 이제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좋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다. 서구는 개인 중심 사회였고 동양은 공동체를 중시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미국 의료시스템 보니까 너무 개인주의라서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 코로나 겪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해졌지만, 또 한편으로 떨어져만 있으면 죽는다는걸 알게 됐다. 공동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 새로운 시대가 온 것 같다. 공화주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 혁신경제와 새로운 민주주의를 공화주의에 대한 탐색으로 생각한다. 그런 길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화주의가 확 와닿지는 않는다.

“공동체가 훨씬 강화되는 거다. 과거의 민주주의는 권력으로부터의 억압에 대해 분연히 맞서는 것이었다. 더 많은 민주주의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이제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좋은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때다. 이걸 공동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문재인정부 국정목표 중 하나가 혁신성장이었는데 가장 안 됐다는 지적이 많다. 혁신이라고 추구했던 것이 기득권과의 협상 과정에서 무산되거나 유야무야 됐다.

“꼭 기득권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법안도 더불어민주당이 통과를 못 시켰다. 민주당 내부에도 반대가 많았다. ‘규제 프리존’ 중에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다. 혁신경제로 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민주당 내부나 진보 진영의 반대가 있었고 의석수가 충분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이번에 의석 수가 충분하게 됐다. 코로나 사태 거치면서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세계적 추세도 그렇다. 세계가 경쟁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입법 환경은 좋아졌다.”

 

-혁신 성장에 대한 민주당 내 반대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나.

“그런 부분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의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생겼다. 하지만 보이는 빙하만큼 잠겨있는 부분도 있다. 잠긴 쪽에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이 혁신경제를 강조하면서 사회안전망을 반대하는 건 혁신으로 가지 말자는 얘기나 똑같다. 혁신경제로 가려면 그 과정에서 낙오되는 쪽을 도와줘야 한다. 혁신으로 가기 위한 다리가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사회안전망을 위해서 안전망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혁신으로 가기 위해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대거 살아남았다.

"봉준호 감독을 586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89학번이니 586 끝세대다. 연세대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전 세계에 자기 가치를 가지고 도전해서 성공했다. 586이 공동체에 갖고 있는 건강성이 있다. 이게 다음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지금 586은 조직화돼 있고 그 다음 세대는 조직화돼 있지 않다. 나는 다음 세대가 586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586은 다음 세대의 에너지를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과 결합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586과 자식 세대가 결합된 선거였다. 다음 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짜는게 586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은 자기들이 대통령이 되려고 586 운동권을 대거 수혈했다. 지금 586은 디지털 세대를 대거 영입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드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가야한다. 그 시기도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자연 수명을 고려해도 그렇다. 오래 사는 것과 정치를 계속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요즘 플랫폼에 모여있는 젊은이들을 많이 본다. 확실히 우리와 다르구나, 하고 느낀다. 소프트뱅크에서 투자받은 트레바리라는 독서 모임을 보면 확실히 다른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세대가 어떻게 새로운 세대로 진입할 수 있을까. 그 통로를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민물 게가 껍질을 1년에 4,5번 바꾼다. 게 껍질 바꾸는 동영상 보면 신기하다. 그러면서 몸집이 자란다. 변신을 할 수 있는 586은 살아남고 변신이 없으면 시대의 죽은 화석이다. 봉준호는 끝없이 자기를 변화시키고 한 장르를 만들었다. 586도 다음 시대까지 의미가 있으려면 스스로 변신하거나 새 미래 세대와 과감한 결합이 있어야 시대정신이 생길 것이다. 전체적으로 다음 대선까지라고 본다."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코로나 충격이 내년 대선까지 갈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지금 국민은 지치고 힘들어 한다. 국민에게 기를 불어넣어주고 동거동락하는 리더십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러면서도 비전이 분명해야 한다. 미래로 가야 한다. 고용과 소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사회안전망이 미래로 가기 위한 다리라는 걸 분명히 말해야 한다. 따뜻한 리더십과 분명한 비전을 갖춰야 한다. 퍼스낼리티 차원에서 보면 바다같은 지도자여야 한다. 바다는 모든 물을 빨아들인다.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낮은 곳에서 모든 물을 모은다. 전체적으로 흩어져있는 마음을 낮은 자세로 모을 수 있는 바다 같은 리더십이다. 그럼에도 바다는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다. 한국 사회를 다음 단계로 진전시킬 수 있는 과감함을 지닌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이 한편으로는 지쳐있고 또 한편으로는 자긍심도 많이 생겼다. 이런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멋진 나라로 가지 않을까.”

 

-이 의원이 이낙연 의원 좋게 이야기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코로나국난극복위원장이니까 열심히 도와야죠.”

 

-정세균 총리와도 가깝지 않나.

“지금은 IMF 직후 같은 상황이다. 상황이 절대 간단치 않다. 가급적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나는 열심히 도우려고 한다. 정 총리나 이 의원이나 아이디어 생기면 다 나눠주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는데.

“박 시장이 얼마 전 포스트 코로나 조직, 학습 모임을 만든다고 고문을 해달라고 요청해서 언제든 나를 쓰라고 했다.”

 

-이재명 경기 지사는.

“그 분은 아직 요청이 없더라.(웃음) 지금은 경제의 계절이다.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제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IMF 직후처럼 마음이 쫙 모여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개별 약진이 무슨 의미가 있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도.

“국민이 선택하겠죠.”

 

인터뷰 말미에 그는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링컨 대통령이 아주 재밌다. 위기의 순간에 미국에 과학관을 만든다. 국립과학원을 만들어 과학기술과 기술 발전을 집중적으로 해서 기술특허를 강조한다. 대륙형 철도 구상하고, 홈 스테이법이라고 미국에 와서 5년간 살면 22만평을 공짜로 주는 법을 발표한다. 유럽으로부터 3000만명이 대량 이주한다. 연방제, 노예해방을 한다. 노예해방은 사회통합이다. 미래지향적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도 디지털 뉴딜에서 토목사업 일으켜서 단순 일자리 주는 걸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완전한 미래로 가는 거다. 플러스 사회보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 두가지 개념이 분명히 잡혔으면 좋겠다. 지금 페이스북이 24억명, 인스타그램이 10억명, 라인이 1억6500만명이다. 디지털 이민과 사이버 세상에서 새로운 영역이 열렸다. 디지털 영역에서 생명과학, 그린 등은 새로운 영토다. 새 영토에서 확실한 미래를 가야 한다. 안전망이 부실하면 안된다. 서커스 보면 밑에 그물망이 없으면 안 뛰어내린다. 이게 있어야 뛰어내리고 연습을 한다. 혁신경제로 가기 위한 다리가 사회안전망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대신 돈 쓰는 걸 철저하게 해야 한다. 낭비적 요소를 줄이고.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경제정책도 재밌다. 아우토반 건설과 국민차, 항공의 시대를 연다. 산림 녹화에 대대적으로 성공한다. 뉴딜하면 토목 공사를 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임시방편 일자리를 주는 게 아니다. 김대중정부 당시 전자정부 할 때 조선왕조실록, 30년대 영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했다. 지금은 디지털정부로 가자는 거다. 디지털 교과서를 아직 못 만들고 있다. 이걸 만들려면 데이터가 굉장히 쌓이고 무한정 쓸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다음과 네이버가 국민참고서다. 우리가 구글 참고서보다 약하다. 그걸 만들려면 국가 진흥망이 있어야 한다.”

 

이광재 의원은… ●강원 평창(1965년) ●원주고 ●연세대 법학과 ●국회의원 노무현 보좌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17·18대 국회의원 ●강원도 도지사 ●재단법인 여시재 원장 ●제21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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