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문제로 갑론을박하던 20일 오후 논란의 당사자인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만나러 갔다. 4·15 총선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통합당을 지원했던 김 이사장은 서울 광화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보수, 진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선거 때마다 위기에 처한 정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선 새누리당(통합당 전신)을, 2016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살려냈다. ‘닥터K’라는 별칭이 생겼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김종인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180석 대승을 거뒀다.
“문재인정부 3년간의 정책 결과만 보면 여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요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그런 천재지변이 나면 항상 집권세력에 대해 국민이 신뢰를 갖고 그걸 의지하려는 성향이 생긴다.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 주겠다는 말도 여당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독일은 무조건 국민 일인당 5000유로씩 지급했다. 선거 때 돈을 푸는 계기가 생기면 그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건 틀림 없다. 독일 유학 중이던 1965년 독일 총선이 있었다. 당시 기민당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대학생들에게 매월 용돈을 주겠다는 공약으로 이겼다. 그런 식으로 나가다가 재정이 악화돼서 결국 물러났다.”
―통합당도 긴급재난지원금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야당 이야기는 잘 안 먹힌다. 유권자들은 집행 능력도 없는 야당이 무슨 힘으로,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야당 공약을 안 받아준다.”
―코로나19 변수뿐이었나.
“민주당이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선거구별로 성향 파악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공천 잡음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선거 막판에 돈(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다는 한 방이 나왔다. 반면 통합당은 선거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공천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며 세밀하게 하지 못했다. 적재적소에 맞춤형 공천을 못했다. 공천잡음도 너무 많았다.”
―올 1월에 민주당 공천 작업에 관여한 고위 인사를 만났는데 민주당이 지역구 130석이면 대승이라고 했다.(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인 163명을 배출했다.)
“그 당시엔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전 세계가 다 그렇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집권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 이탈리아는 내각이 잘 못하는데 주세페 콘테 총리 지지율이 70% 이상이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지지율도 80%가 넘는다. 그런 현상이 우리나라 총선에도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가 민주당 대승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총선이 끝나고 정치적 지형 자체가 진보 위주로 재편됐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다. 특히 50대가 진보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도 정당투표율을 보면 미래한국당(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이 앞섰다. 지역구 투표 득표율에서도 차이가 크지 않다. 진보가 주류되고 보수가 비주류되고 하는 식의 분석은 너무 피상적이고 깊게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정당득표율은 각각 33.10%, 33.84%.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였다.)
―통합당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시대 흐름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다. 유권자 정서는 항상 변하는데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새누리당도 사실은 탄핵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식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놓고 솔직하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시인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걸 안 하고 있다. 보수 정권을 담당했던 두 대통령(박근혜, 이명박)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통합당은 ‘보수’만 강조하니 국민이 짜증날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만 남고 ‘보수의 가치’는 사라졌다는 얘기인가.
“나는 보수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세상이 옛날하고 달라졌는데 무슨 보수, 진보를 따지나. 그런 진영논리로 끌고간다는 게 잘못이다. 막연하게 보수만 부르짖는다고 국민이 동조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라는 가치로 실질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5000만 국민을 누구는 진보, 누구는 보수라고 구분하면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 성향이 다음 대선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일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나.
“다음 대선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침체상황에 빠졌다. 일각에서 나오는 V 자 상승 예측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본다. 유세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력으로 봐선 코로나 이후 경제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보수가 대선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통합당도 결국은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것 아닌가. 생존위기에 처하면 살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그 반성 위에서 새롭게 구축하면 기회가 있다.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사라지는 거다.”
―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나.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한 사람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는 뭘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 그런데 (통합당 내에서) 무슨 내 이름을 자꾸 거론하고 그런 상황 자체가 불쾌하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통합당의 생리는 2012년에도 경험해봤다. 아마 꽤 오래 논쟁하다 결론도 안 나고 적당히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통합당은 다음도 기약하기 힘들어진다.”
―여당 180석 시대가 열렸다.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180석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내년이 되면 대선 국면으로 간다. 과거 노태우정부 때 보수대연합인 3당합당이 이뤄졌다. 그때 여당이 217석이었다. 그래도 여당이 특별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대 의석을 만들어낸 여당이 그 힘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보나.
“180석이 됐으니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노동관계법을 정비하는 일이다. 앞으로 진행될 경제구조 개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개혁을 하면 거대 여당의 탄생이 긍정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여당이 그런 일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반대할 텐데 여당이 그걸 하겠나.”
―대한민국이 살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권력은 절제를 안 한다. 여태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없었다. 말년이 모두 비참하게 끝이 났다. 그럼 현재 대한민국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지 않나.”
―어떤 권력구조로 가야 하나.
“내각제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하고 싶은 사람은 내각제를 죽어도 안 하려고 한다.”
―국민에게도 의식과 판단의 ‘창조적 파괴’, ‘각성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 고향사람이라서 찍어주고 아니라서 안 찍어준다. 권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그러면 나라가 발전을 못한다. 재난지원금 준다는 정당에 180석을 몰아줬다.”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보수에서 젊은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1970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 중에서 대권 후보가 나와야 한다. 지난해에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젊은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지도자가 제3세력이 돼서 거대 양당을 좀 허물어뜨려야 한다고 했는데 젊은 지도자가 나오질 못한다. 꿈적대던 사람들도 기껏해야 거대 정당에 붙어서 국회의원하는 걸로 마무리돼버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마크롱 혁명’을 말하면서 나오지 않았나.
“그 사람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 20대 총선에서 제3세력으로 38석이나 얻었는데 그걸 계속 발전시키지 못했다.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다.”
정리=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대담=조남규 정치부장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서울 출생(1940) ●중앙고·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 뮌스터대학교대학원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노태우정부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제11·12·14·17·20대 국회의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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