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치러지는 21대 총선이 기존 정당체계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두 거대 정당이 독과점 구조를 재생산해온 정당체계가 이번 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촉매로 해서 새롭게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21대 총선은 그런 ‘중대 선거’로 기록될 것인가. 두 거대 정당의 대결 정치가 정치 불신, 정치 냉소주의를 키운 결과 지금은 정당민주주의 회의론마저 확산되고 있는 지경이 됐다. 기존 정치인만 물갈이하면 한국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선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 중심의 정치를 주창해 온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을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환담했다. 1992년 14대 국회에 등원한 원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 근 30년의 정치 인생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정계 은퇴 이후의 계획을 묻자 “민간영역에서 웰다잉(Well-dying)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총선을 ‘정초(定礎) 선거’라고들 한다. 정당체계가 처음으로 정렬되는 선거라는 의미인 정초 선거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거대 양당체제의 틀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 결과를 예상하나.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에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은 ‘소선거구제’(최다 득표자만 당선)로 바뀌었다. 이번에 소선거구제의 틀은 유지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부분적 도입이지만 그래도 비례성을 강화한 첫 선거다. 국민이 우리 정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게 된다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 다양성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 몇 번의 선거를 보면 기본적으로 다당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대 총선(2016년)에서는 국민의당이 상당히 선전하면서 존재감을 보여줬다.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이념적 분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선거제도 역시 다당제 분위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된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사회의 갈등구조가 다원화된 만큼 정당도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한국 정치에도 적용할 만한 견해인가.

“지금 대통령제 하의 양당체제는 결국 제로섬 게임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결과한 것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이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정치문화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끝없는 대결과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은 집권세력을 못 되게 하는 것이 절대적인 과제이고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야당을 제압해서 이기려 한다. 결국 아무 일도 못하는 국회가 된다. 소선거구제하에서는 거대세력이 과대 대표되고 소수세력은 과소 대표된다. 이런 정치적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청산함으로써 민심 그대로 국회의석이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정치가 담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태극기부대’에서 급진적인 정치세력까지 국회에 들어와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뤄야 한다. 절대 독점이 없는 상태, 소통과 협력이 없이는 그 어떤 정치적 성과도 불가능한 체제로 가야만 비로소 협치의 정치문화가 정착되지 않겠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이번 선거제도 개혁이 협치 가능성의 단초를 열었다고 본다.”

―한국정치에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고질적 문제가 있다. 대통령 권한이 너무 강력해서 국회가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헌을 통해 협치형 권력구조, 즉 의회와 대통령이 견제만이 아니라 협력할 수 있는 근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회에 총리후보 추천 권한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쭉 일해 왔는데 적어도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는 여야의 의견이 상당히 수렴됐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총리를 임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소극적 동의에 불과하다. 국회가 총리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는 방안(문희상 국회의장 제안)을 포함해서 총리 선임시 국회의 역할이 더 강화되도록 권력구조를 개편하면 자연스럽게 협치의 틀이 만들어진다. 총리가 국회와 정부 사이에서 핵심적인 조율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서 얘기한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협치의 틀이 완성된다.”

―한국 국회에서는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섭단체 전권주의’라고 해서 국회 운영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교섭단체가, 그것도 거대 양당의 원내대표 그룹이 국회 의사일정의 모든 걸 좌지우지한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국회 운영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교섭단체나 당 대표 1인에 의해 자유의사를 발휘하지 못하는 반(反)헌법적 상황이 된다. 그러면 의원들이 다 거수기로 전락한다. 국회의원의 의무인 국회 개회조차 의원들의 자율적 판단에 의하지 않고 양당 교섭단체 대표들이 협상의 재료로 삼는다. 그걸 가지고 여야가 싸운다. 회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회의원에게 당연히 주어진 책임이자 의무다. 이런 교섭단체 전권주의를 21대 국회부터는 청산해야 한다. 그래서 의원 한명 한명이 국민의 대표로서 자기 책임하에 양심에 따라 국가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당론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모든 게 당론화하고 중요한 이슈를 잘 활용하기 위한 부수적 수단과 재로로써 다른 안건들도 다 당론화한다. 어떤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관련 없는 법안까지 묶어서 당론으로 정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국회가 된다.”

 

미국 의회에서는 당론을 떠나 독자적으로 투표하는 ‘크로스보팅’(crossvoting)이 이뤄진다.

"실제 강제적 당론은 일상적으로 많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강제적 당론도 좀 더 절제돼야한다고 본다. 당의 정체성이나 이런 것하고 직결되지 않는 경우는 의원들의 양심적 판단을 존중하는게 맞다고 본다."

―역대 국회가 협치를 강조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협치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대연정'같은 큰 규모 협치는 여당과 제1야당이 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번째 국회연설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제를 만들자, 그러면 총리선출권을 야당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때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가 박근혜였다. 이번 '4+1'처럼 작은 정치세력가 여당이 연대해서 추진할 수도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은 100년 넘게 같은 이름으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부터가 이번 총선이 같은 당명으로 총선을 연속해서 두 번째 치르는 첫번째 선거다.(웃음)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우리 정당사 역시 보수와 진보의 두 흐름을 이어왔다고 봐야 한다. 당명이 바뀐 것이지 세력은 그대로 계승되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과거에 주목받지 못했던 중도세력의 실체를 정치권이 인정하기 시작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궁하면 변하라. 변하면 통하리라. 통하면 영원하리라)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우리 정치는 지금 ‘변(變)’의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이 너무 많이 생긴다는 것은 한편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혼란스런 정치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직 우리 정치가 젊고 역동성이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정당뿐 아니라 정치인 교체도 빠르다. 선거 때마다 정당들은 현역의원 ‘물갈이’에 나선다.

“물갈이는 말 그대로 고여서 썩어버린 물, 즉 정치 문화와 구조를 바꿔서 그 안의 물고기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데 정치권의 물갈이는 썩은 물은 놔두고 물고기만 바꾸면서 쇄신으로 내세운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최소 40%의 의원들이 교체되지만 국회나 정당은 달라졌나. 전혀 아니다. 정당이든 국회든 다양한 계층과 세대를 대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노·장·청의 조화가 필요한데 우리 정치는 인적 교체를 통한 당장의 눈속임에 급급한 경향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국회 가서 일하고 회의하라고 뽑아놓은 의원들이 회의 참석조차 마음대로 못한다. 개원 협상만 3개월 끌었다. 그런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당당하게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야당은 무슨 문제만 있으면 국회를 전면 보이콧한다. 자기들 요구를 관철하기위한 수단으로 국회개원을 제지한다. 이런 것들은 후진적인 작태이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국회의 기본책무조차 방기하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정당도 자기당 후보를 공천하는데 있어서 시대의 요구, 국민의 요구에 맞는 후보를 공천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당 얘기라서 그렇긴 합니다만 공천의 원칙과 기준을 상당히 잘 적립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하위 20%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건 우리당이 최근 새롭게 도입한 것이다. 공당이 공직 후보자를 공천하고 유권자가 그 후보를 선택했으면 당연히 그 공직자가 직무를 성실히, 능력있게 수행했는지 봐야 한다. 그거를 우리가 평가한 것이다. 자격심사도 예비후보자격심사위를 별도로 만들어서 상당히 꼼꼼하게 도덕성 등을 따져서 거른다. 그래서 탈락한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하위 20%는 몇 명이었나. 개인적으로 다 전화했나.

"22명이었다. 다 직접 전화했다."

―당원, 유권자가 정당의 공직후보를 상향식으로 선발하는 시스템은 어떤가.

“과거에 해봤다. 당원이나 유권자들의 실질적인 참여로 발전해 나가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조직 동원이 주가 된다. 조직은 결국 돈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그런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했다. 미국처럼 정당 안에서 인재가 자라나고 진정한 의미의 상향식 공천이 되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불신부터 극복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정당을 기반으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선진국은 학생 때부터 민주주의 훈련을 한다. 민주주의는 정당을 통해 구현된다. 민주적 정치지도자로 훈련받는 학교가 의회와 지방의회다. 구의회나 시의회 같은 곳에서 열심히 훈련받고 거기서 정책 능력이나 리더십 평가받은 사람이 광역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갈 수도 있고 국회로 올수도 있다. 시도지사,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돼야 하는데 우리 국회에는 40대에 오는 사람도 극히 적다. 50대, 60대에 오는데 아무리 그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정치는 초짜다. 그래서 국회의원 공천에 청년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본선 경쟁력이 없으니 현실성 없는 주장이 돼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방선거 때 청년 공천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생각한다. 여성은 그렇게 돼 있다. 청년 의무공천을 우리당부터 해보려했는데 우리가 스스로 불리한 게임을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에 부딪혀 당내 동의를 얻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개헌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개헌 특위에서 죽 일해봤는데 적어도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여야 의견이 수렴됐다고 본다. 대통령중심제는 깰 수 없다는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의 핵심 이슈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겠다는 것이었다. 이거는 당분간 지켜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국회 협력없이는 국정수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국회와 정부가 협치를 할 수 있는 장치로 국회가 총리를 복수로 추천하는 문희상 국회의장안이 나왔다. 문희상 방안을 포함해서 국회가 총리 선임과정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긍정적 역할을 강화하도록 권력구조를 개편하면 그렇게 뽑힌 총리는 대통령을 대리하는 '얼굴 총리' '대독 총리'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 국회와 정부를 조율하는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국회 개혁과 개헌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협치의 틀이 완성된다."

한 때 이원집정부제도 많이 거론됐는데.

"대통령중심제 하에서도 우리 헌법에 내각제적 요소가 있다. 총리의 국무위원제청권 등이 그렇다. 총리 선임 과정에서 국회의 역할을 좀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협치의 틀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국회 선진화법'은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선진화법 제정 취지는 양당의 적대적 공생 구조 속에서 51%는 밀어붙이고 49%는 죽기살기로 물리력을 동원해서 저항해온 악폐를 끊어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소수세력에게 허용하고 다수세력이라도 쉽게 밀어붙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최소 60%는 돼야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 올릴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국회의 효율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하지만 나는 국회의 효율보다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선진화법이 변화된 선거제도와 국회 구성의 환경에 맞춰서 발전해가도록 하는 논의는 필요하다." 

―21대 국회의원 총선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일반적으로 집권세력의 임기 중반, 후반기에 치러지는 선거는 심판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이론이다. 민생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불거졌다. 그런 점에서 쉬운 선거가 아니다. 다행히 지금은 야권심판론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특이하게 이번에는 촛불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촛불혁명 완수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집권세력에게 부과했기 대문에 그걸 완수하도록 지지해야겠다는 흐름이 있다. 여당에 굳건한 40%대 지지가 나오는 것은 우선을 좀 살려놓고 대의를 완수하라는 시민들의 의식이 있기 때문 아닌가. 잘 해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잘 하라고 지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해야하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대담=조남규 정치부장, 정리=곽은산 기자, 사진=서상배 선임기자

 

원혜영 의원은… ●경기 부천 출생(1951)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풀무원식품 창업(1981) ●민선 제 2·3대 부천시장 ●제14·17·18·19·20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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