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 장관 “먼저 진출한 日·中 이길 수 있도록 ‘정교한 전략’ 추진” [아세안을 기회의 땅으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등으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중심 외교에 머물지 않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과의 외교와 교역관계를 도약시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세계일보가 20일 개최하는 ‘2019 세계아세안포럼’ 관련 특별 대담에서 “자금이나 인력 등 가용 자원이 경쟁국에 비해 제한되어 있지만 우리보다 앞서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정교한 전략을 수립,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성 장관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특별 대담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빈접견실에서 조남규 세계일보 산업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왼쪽)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빈접견실에서 한·아세안 경제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아세안 국가들에는 중국과 일본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다. 일본은 1970년대에 아세안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90년대에는 일·아세안 특별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중국도 90년대부터 화교 등을 지렛대로 아세안에 진출했다. 아세안 진출 후발주자인 한국의 전략은 무엇인가.

(성 장관) “아세안이 일본의 텃밭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일본 도요타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는 10만명이 넘는 베트남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아세안을 비롯한 신남방 지역은 중동 지역을 제치고 우리 기업이 해외 인프라 사업을 가장 많이 수주한 지역이 됐다. 우리 금융기관이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실증사업, 베트남 티바이 LNG 터미널 사업 같은 핵심 인프라를 따내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아세안 국민들은 한국을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가깝게 느낀다. 베트남 청년 70%는 한국 문화에 동질감을 느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아세안 국가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이 진출한 이후 20, 30년 동안 자기들이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인식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의 강점과 상대국의 특성을 세밀히 분석하고 정교한 전략을 수립해나가면 아세안은 우리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아세안 국가에 일방적으로 ODA(공적개발원조)를 주면서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 프로젝트 등에 참여해 함께 발전해나가야 한다.”

(안 교수) “이미 일본, 중국의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상당수 아세안 국가들의 국내 제도까지 자국 기업들에 유리한 방식으로 구축해둔 상황이다. 현재 아세안 국가에서 유행하는 한류(韓流)는 한국 기업들과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민관 차원의 노력으로 이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 차원의 개발협력사업과 민간 차원의 사회적 책임활동 강화로 아세안 국가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함께 발전하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빈접견실에서 한·아세안 경제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최근 전 세계 인구 4위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이 타결됐다. 사실상 한·인도네시아 FTA(자유무역협정) 타결이다. 이제 말레이시아, 필리핀과의 FTA가 남아 있다. 기존 한·아세안 FTA와 아세안 국가들의 양자 FTA는 어떻게 차별되나.



(성 장관) “2007년 발효된 한·아세안 FTA는 참여 국가들의 민감한 부분이 서로 달라서 우리의 이익을 모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베트남 FTA(2015년 발효) 같은 양자 FTA를 통해 서로의 관심 사항을 추가로 반영하고 양국 간 교역과 협력을 확대시켜왔다. 인도네시아는 한·아세안 FTA에서 자국 시장의 80%를 우리에게 열었고 이번 CEPA에서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철강, 석유화학제품 등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 시장도 개방했다. 시장 개방 비율이 93%까지 높아졌다.”



(안 교수) “아세안 국가와의 FTA는 시장개방뿐 아니라 무역 및 투자 관련 규제 조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경제 통합을 진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산품, 가공식품 부문의 관세 인하뿐 아니라 기술표준과 위생기준 상호인증을 활성화해 비관세 장벽을 실효성 있게 제거해야 한다.”

―글로벌 통상 환경이 상당히 복잡하게 흐르고 있다. G2(미국·중국)의 무역 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이 빠진 채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발효됐다. 이달 초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이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다.

(성 장관) “RCEP는 세계인구 절반, 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FTA이며, 우리가 참여하는 최초의 메가 FTA다. 젊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국가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기회 창출과 G2를 넘어선 교역 다변화가 기대된다. RCEP는 신남방정책을 더욱 본격화해 역내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투자 여건이 개선되고, 원산지 기준을 통일해 역내 무역·투자가 확대되는 등 신남방 국가와의 경제 협력 전반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번에 도입된 전자상거래 같은 새로운 통상 규범을 통해 한류를 더욱 확산하는 계기도 되고,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협력도 기대된다.”

(안 교수) “RCEP는 미국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포함된 메가 FTA다. 현 시점의 미·중 대치 국면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도 한·일, 한·중·일이 하나의 경제통합 틀 속에 묶인 부분이 주목할 점이다. 최종적인 협상 결과를 봐야겠지만 향후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여부에 따라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주도로 한·중·일과 아세안 국가가 참여하는 EAC(동아시아공동체)가 추진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EU(유럽연합)가 모델이었는데 그때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참여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펴며 중국의 세력 확산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가능하기는 한가. 미국과 밀월관계인 일본이 중국 주도의 RCEP에 참여한 배경이 궁금하다.

(성 장관) “EU 같은 경제통합 형태는 매우 이상적이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그런 모델이 실제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통합협력체를 만든다기보다는 역내에 새로운 협력의 유형과 공동체 유형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과거처럼 선진국의 제조업이 후진국으로 이전되는 산업발전 전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과거 세계의 생산 기지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제조도 단순 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상품이 생산되는 나라가 됐다. 중국의 변화를 직시하면서 중국과의 협력 형태와 유형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안 교수) “일본 아베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타결 이후부터 매우 적극적으로 미국과 경제협력에 나서고 있다. 미·일 무역협정 타결은 물론이고 WTO(세계무역기구)를 개편하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면서 유럽연합과 함께 개편안 준비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RCEP 합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과는 다소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좀 의아한 부분이다. 아베 정부가 TPP 타결 시 대외개방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RCEP 협정문 타결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성 장관) “RCEP에서도 WTO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품 교역을 위해 수량제한조치를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때 참여국들이 RCEP의 틀 내에서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수출규제 조치 등을 공동으로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안 교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한·일 청구권협정 문제와 얽혀 있고 이 사안에 대한 아베 정부의 입장이 확고하다. 단기적으로는 RCEP 합의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을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 교수) “FTA 확대로 아세안과의 무역, 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무역흑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아직 경제개발 수준이 낮은 아세안 국가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그런 만큼 비경제 분야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경제개발 관련 협력이나 문화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 통상교섭의 성과를 보다 폭넓은 경제외교의 발판으로 만드는 작업이 추진됐으면 한다.”

정리=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사회=조남규 산업부장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1963년 대전, 대전 대성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행시 32회,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특허청장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1968년 대구, 대구 덕원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법무박사,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무역구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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